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53화 (649/925)

86. 검은 눈 (6)

작전 회의 당시, 우마왕이 구갈안나의 힘을 사용한다고 결론을 내린 직후에 황지호가 말했다.

―우마왕은 나 혼자 상대하겠다. 우마왕을 잡을 수 있는 시점에 확실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다.

백호군과 적호, 호족들은 천동하의 안내를 받아 은광고 내에서 의식을 벌일 자들을 잡는다.

이쪽은 그 숫자가 미지수이므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죽호는 대나무 숲에서 움직이지 않을 예정이다.

은호는 은광고 밖에 나가서 TC 그룹을 상대하게 된다.

그러니 황지호가 우마왕을 1대1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결론을 내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황지호의 말을 듣던 은호가 말했다.

―변수가 생기면 황호 님께서 수습하기로 하셨죠. 그 뒤에 또 우마왕을 상대해야 하면 번거롭지 않을까요?

―이 몸의 권능을 잊은 건 아니겠지? 만일의 경우가 발생하면 해결 후에 본신의 위치를 바꿔 또 우마왕을 쓰러뜨려 주겠다.

―마왕은 제천대성 혼자서 어찌하지 못한 실력자예요. 구갈안나는 땅의 힘을 말려 버린 황소고요. 황호 님과 상성이 좋지 않네요. 황호 님께서 다칠지도 모르겠군요.

은호는 황지호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황지호를 말릴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다.

은호는 황지호가 다칠까 봐 염려하고 있음에도 그의 힘을 신뢰하는 거다.

은호 외의 다른 호랑이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황지호가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구나.’

사실 그 점에는 나도 동의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가 황지호가 큰 소모 없이 우마왕을 상대한다면, 분명 이길 것이다.

우마왕이 구갈안나의 힘을 빌렸다 한들 싸우는 장소는 바로 호족의 신역인 은광고 아닌가.

황지호가 만전의 상태로 싸운다면 우마왕을 놓치거나, 우마왕에게 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마왕이 비장의 수를 써서 황지호가 다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이 점은 황지호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황지호는 제힘이 강한 걸 아는 오만한 호랑이였으나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는 냉정함도 갖추고 있었다.

―큰 싸움이다. 내게 그 정도의 각오가 없을 줄 알았더냐.

황지호는 내가 다칠 때마다 눈치를 주더니, 정작 저 노친네는 당당하게 다치고 올 각오가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노친네가 했던 말들을 다 꺼내 들고 한마디 하려 했지만 그냥 처웃고 넘어갈 게 뻔했기에 시간 낭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일단 한마디는 했다.

―다른 쪽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너랑 합류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굳이 혼자서 우마왕을 상대할 필요는 없어.

―복잡한 계획에서 변수를 늘리면 위험이 더 커지겠지. 올지 안 올지 확신할 수 없는 원군을 기다리다가 일을 그르칠 수 없다.

내 말에 황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황지호는 비슷한 일을 겪어 본 걸까?

‘원군을 기다리다가 일을 그르친다’라는 말이 유독 무겁게 들렸다.

다른 호랑이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황지호가 계속 말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서 구갈안나가 우루크에 내려왔을 때, 수백 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길가메쉬가 직접 소 사냥에 나설 때까지 피해가 커지기만 했지.

그건 황지호의 말대로였다.

구갈안나를 토벌한 건 우루크의 왕, 길가메쉬였다.

굳이 그 신화의 내용을 들먹이는 건, 호족에서 왕의 입장인 황지호가 직접 구갈안나를 상대하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일 거다.

―왕이 몸소 나서서 정벌하면 쓰러뜨릴 수 있는 소다. 심려치 말거라.

황지호는 그렇게 말하며 뭐가 기분이 좋은지 계속 웃었다.

다칠지도 모르는데 노친네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황지호의 말에는 허점이 있다.

‘길가메쉬가 구갈안나를 쓰러뜨렸지만, 혼자 그렇게 한 건 아니야.’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에서 하늘의 황소를 토벌할 방법을 길가메쉬에게 제안하고 그 실행을 도운 자가 있었다.

바로 창조의 여신 아루루가 찰흙으로 만들어 낸, 길가메쉬의 친우 엔키두다.

엔키두는 길가메쉬에게 구갈안나를 쓰러뜨릴 방법을 제시한다.

그 결과, 엔키두가 하늘의 황소의 꼬리를 잡는 사이에 길가메쉬는 칼로 목덜미, 뿔, 힘줄 사이를 찔러 구갈안나를 무찌른다.

‘황지호는 혼자 우마왕을 상대할 생각이야. 그래서 엔키두에 관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누군가는 구갈안나의 꼬리를 잡아야 해.’

구갈안나의 꼬리를 잡아 줄 황지호의 친우 하면 두 호랑이가 떠올랐다.

호족 최고의 무재(武才)인 백호군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꼬리를 놓지 않을 것이다.

적연으로 몸을 감출 수 있는 적호라면 우마왕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하여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호군이나 적호가 시간에 맞춰서 이 자리에 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은빛 영웅도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한 거겠지.’

은빛 영웅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어날 사건에 관해 언급하며 황지호가 위험에 처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모든 게 네 계획대로 이루어지면, 천익산에서 황호 님이 홀로 싸워야 하는 순간이 올 거다. 황호 님이 혼자서 그자를 상대하게 하면 안 된다.

―……저도 그 상황은 오지 않게 하려고 했어요.

―안다. 하지만 너는 풍백과 우사를 상대한 뒤에 움직이려 하지 않았느냐. 만약 그 싸움에서 힘을 전부 소진한다면 짐이 될 가능성이 크니, 가지 않겠다는 선택지도 고려하고 있겠지.

은빛 영웅은 내 계획을 그대로 꿰뚫어 본 듯했다.

나는 우마왕의 꼬리를 잡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괜히 내가 갔다가 인질이 되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황지호가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빛 영웅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마왕에게는 구갈안나의 힘 외에도 비장의 수가 있다. 그러니 반드시 가야 한다.

은빛 영웅의 말에 응해 지금 나는 황지호와 우마왕이 있는 자리에 왔다.

힘을 아끼고 아껴서 여기까지 온 결과.

나의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의 사용 시간은 조금 남아 있었다.

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천동하의 힘을 쓰고 우마왕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하기 위해 전무영의 ‘그림자 없는 시간’을 써야 했다.

마침 황호와 우마왕은 물리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완벽하게 기척을 죽인 내 앞에 우마왕의 꼬리는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꼬리가 내 손에 잡히기 직전, 광림이 해제되어 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휘이익!

내 기척을 알아챈 우마왕이 뒤로 멀리 뛰어올랐다.

내 종합 능력치만으로는 황지호도 애먹는 상대인 우마왕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꼬리를 향해 뻗은 내 손은 허공을 갈랐다.

‘광림은 쓰지 못해. 이제는 내 힘만으로 꼬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꼬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적으로 인식한 우마왕이 곧바로 쌍검을 휘둘렀다.

황지호보다는 내 쪽을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쌍검이 날리는 검압이 섬뜩하게 내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황지호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우마왕 쪽이 더 빨랐다.

나는 즉시 아이템 카드를 뽑아 들어 실체화했다.

파앗, 카아앙!

쌍검이 목에 닿기 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상보심금파가 우마왕의 쌍검을 가로막았다.

내 목과 쌍검 사이에 상보심금파가 겨우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목이 잘렸을지도 모른다.

“이 몸을 상대하는 중에 한눈을 팔다니!”

황지호의 봉술이 우마왕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우마왕은 쌍검 중 하나를 들어 올려 유연하게 그 일격을 막아 냈다.

“……이쪽도 하나를 추가해야겠군.”

파앙!

우마왕이 쌍검을 휘둘러 황지호를 봉째로 밀어내고 검을 던졌다.

그러자 그 검이 형체를 바꾸어 짐승의 모습으로 변했다.

우마왕의 탈 것, 물속을 자유자재로 오고 간다는 ‘벽수금정수’였다.

언제든 그 짐승을 타고 도망갈 수 있게 숨겨 둔 한 수인 듯했다.

벽수금정수는 이빨을 드러내며 황지호에게 달려들었다.

우마왕은 어쩌면 틈을 노려 황지호에게서 달아날 때 벽수금정수를 부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지금 꺼낸 이유는 하나.

나를 처치하기 위해서일 거다.

“저강렵의 무기에 황호의 인장까지! 호족이 이 정도로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상보심금파가 검게 물들긴 했으나 지금 내 손에 들린 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본 듯했다.

거기에 내 손목에 새겨진 황금의 인장까지 보고 말았다.

나는 상보심금파로 우마왕을 밀어 떨쳐 내려고 했지만, 힘 차이가 심해 점점 밀리고 있었다.

끼기긱…….

점점 힘에서 밀려 상보심금파의 손잡이가 내 목을 누를 지경이었다.

머릿속으로 수를 짜내고 있을 때, 우마왕이 상보심금파의 손잡이를 덥석 움켜쥐었다.

“호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인간에게는 더욱더!”

우마왕은 상보심금파를 회수할 생각인가 보다.

상보심금파를 놓치는 순간, 내 목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황지호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벽수금정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황지호를 상대하던 벽수금정수의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찌그러졌으나 발목을 잡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내 쪽을 보는 황지호가 초조해 보였다.

나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모른다.

‘이러다가는 내가 방해만 한 꼴이 돼!’

끼기기긱!

우마왕 손에 잡힌 상보심금파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상보심금파가 격렬히 저항하고 있지 않다면 바로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우마왕의 이능파가 상보심금파의 손잡이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왔다.

“과연 태상노군이 만든 쇠스랑답도다.”

그 말을 한 우마왕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청금빛으로 보이던 꼬리가 흰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챘다.

본 모습을 드러내 본격적으로 이능파를 발산할 셈이다.

우마왕의 본 모습은 거대한 흰 소.

서유기에서 우마왕은 그 모습으로 대군을 상대하였다.

‘아직 우마왕은 은빛 영웅이 말한 그 수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어지럽게 돌아갔다.

뒤에 놓을 수가 어그러질 각오로 나도 숨겨 둔 수를 모두 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쌍검을 쥔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쌍검은 우마왕의 것이 아니었다.

우마왕의 목을 노리는 그 검의 움직임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것이었다.

10년 가까이 화면 너머로 본 장면이었으니까.

채애애앵!

우마왕은 한쪽만 남은 검을 들어 그 쌍검을 막았다.

하지만 공격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하아아아압!”

누군가가 기합 소리와 함께 우마왕의 정수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우마왕은 추가로 날아오는 그 주먹을 막기 위해 상보심금파를 잡은 손을 놓았다.

어떤 무술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그 싸움 기술도 화면 너머로 몇 번이나 본 것이었다.

타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나와 우마왕 사이를 가로막았다.

은광고 교복 재킷 차림의 등을 보인 자는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방패를 든 자의 정체는 내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인물이었다.

여전히 검은 눈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세 사람을 보니 현실감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주수혁, 맹효돈, 유상훈이 내 앞에 있었다.

돌아가기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5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