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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57화 (65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57)

86. 검은 눈 (10)

유상훈이 이능에 관해 밝힌 건 TC 연구소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처음에 유상훈은 자신의 이능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 병은 내 이능이랑 관계가 있다고 들었다. 이 이능을 각성해서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애초에 이 이능과 연이 없었다면 그렇게 아플 필요도 없었다고 들었어.

―내 이능에 관해 말할게. 스킬도, 광림도, 가호도 전부 다. 그러니 네가 알아낸 걸 말해 줘.

―내 이능과 광림을 쓰면, 적어도 내가 다칠 일은 없다. 믿고 데려가라.

플레이어에게 있어 이능의 상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려운 민감한 정보다.

그럼에도 유상훈은 그를 두고 갈지 말지 망설이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유상훈의 이능에 관해 듣기 전에 같이 가겠다고 말했지만, 저놈이 멋대로 제 이능을 공개했다.

처음엔 제 이능에 관해 술술 말하는 걸 말려야 하나 싶었으나 그의 안전을 위한 수를 짜기 위해서라도 일단 듣기로 했다.

―원래 나는 주변의 충격을 흡수하는 체질을 타고났는데, 광림을 쓰면 그 체질이 한순간 극대화된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뭐 그딴 광림이 다 있나 싶었다.

입학시험 날에 손민기 감싸겠다고 몸을 날렸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던 걸까.

체질이나 광림이 참으로 유상훈다웠다.

저런 놈을 동생으로 둬서 속을 썩여야 했을 유상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유상훈이 광림을 쓰면 그 체질이 극대화된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았나?

유상훈은 충격을 무효화하는 게 아니라 흡수하는 거라고 했으니 안 다치는 게 아닐 텐데.

나는 즉각 한마디 했다.

―이능과 광림을 쓰면 다칠 일이 없다면서.

―뭐, 광림 쓰는 동안에는 좀 다치겠지. 그렇긴 한데 상위 존재랑 광림이 이어져서 그 문제는 대충 해결됐다.

결국 광림을 쓰는 동안에는 다친다는 소리 아닌가.

내 지적에 유상훈이 헛소리로 답했다.

이 자리에 없는 유상희를 대신해서 등짝을 후려갈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유상희 생각에 미친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잠깐, 상위 존재와 광림으로 이어졌다고? 플마고 속 유상희의 광림이 저런 느낌이었는데.’

유상희의 광림은 본래 적을 공격, 견제하는 바람이었다.

유상희의 광림은 아케아와 이어져 치유 이능이 추가되었다.

‘치유하는 광풍’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서포터 능력은 단연 최고로 꼽혔다.

적을 공격하는 동시에 아군을 치유하는 능력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그러나 플마고에서 유상훈이 사망한 이후, 유상희는 아케아 대신 네메시스의 손을 잡았다.

복수의 여신과 계약한 결과, 유상희의 광림은 치유 능력을 상실하고 다른 힘을 두 가지 얻었다.

첫째, 수명을 대가로 유상희가 광림을 발동하는 동안, 마수종에 대한 공격력을 3배 이상 상승시키게 되었다.

둘째, 네메시스와 광림이 이어진 결과 유상희가 광림 발동을 종료한 후에 특별한 효과가 발동한다.

‘유상훈에게 가호를 내리고 광림으로 이어진 건 혹시…….’

유상훈의 이어진 말은 내가 내린 결론과 같았다.

―내 광림은 상위 존재,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와 이어져 있다.

플마고 속의 유상희에게 가호를 내리고, 광림으로 이어졌던 네메시스가 이 세계에선 유상훈을 택했나 보다.

유상훈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네메시스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놀라서 입을 열었다.

―네메시스는 유상희 선배님과 접촉한 줄 알았는데…….

―잘 아네. 너도 그 논문 읽었냐? 작년까지는 유상희 씨한테 가호 주네 마네 하던 상위 존재인데, 내가 광림 얻자마자 내 쪽으로 오더라.

그야 유상희가 발표한 논문은 당연히 읽었다.

네메시스가 언급된 논문, ‘복수의 상위 존재와의 인연과 광림에 관한 연구’ 외에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발표한 논문들은 전부 읽은 상태다.

그 논문에는 네메시스가 유상희에게 접촉했다는 내용도 있었기에, 네메시스가 다른 사람을 택했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설마 유상훈 저놈이 수명을 대가로 위험한 힘을 받은 건 아니겠지?’

의심은 했으나 어쩐지 아닐 것 같았다.

플마고의 유상희에게는 마수종 절멸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유상훈에게는 없으니까.

매일 태평하게 농구나 하던 유상훈이 복수를 하겠다고 수명을 줄이는 계약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아무 대가 없이 네메시스가 네게 힘을 준 거야?

―대가? 처음에 대가 어쩌고 하더라. 대가를 지불하면 더 큰 힘을 주겠다고. 필요 없다고 했다.

유상훈은 칼같이 네메시스의 계약 제안을 거절한 모양이다.

유상희처럼 계약의 대가로 마수종을 상대할 때 공격력이 3배 증가하는 등의 사기 버프는 없는 듯하다.

―그래도 광림은 이어졌고, 가호도 받았어. 광림에 추가된 효과가 마음에 든다.

―어떤 효과인데?

일단 묻긴 했지만 유상훈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광림 발동 중에 흡수한 피해와 충격을 모두 적에게 돌려준다. 본래 광림은 흡수하는 능력밖에 없는데, 적에게 복수하는 힘이 추가된 거다.

예상대로 네메시스와 광림이 이어진 결과 얻은 능력의 정체는 복수였다.

플마고 속 유상희가 광림 종료 후에 발동시킬 수 있는 특별한 효과 역시 복수였다.

유상희는 광림이 발동한 동안 입은 데미지를 적에게 되갚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플마고 속 유상희는 광풍 속에서 제 몸이 난도질되어도 미친 듯이 싸웠다.

자기가 다친 만큼 적에게 복수할 수 있으니까.

그 복수의 광풍이 눈앞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유상훈을 중심으로 부는 광풍이 우마왕을 삼켰다.

우마왕은 광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거센 바람에 발이 붙잡혔다.

저 광풍이 머금은 힘은 바로 우마왕의 것이니 쉽게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단순한 일격이 아니라, 우마왕이 여기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일 생각으로 혼철곤을 휘두른 결과물이었으니까.

콰콰콰콰콰!

복수의 광풍 속에서 빛의 입자가 번뜩였다.

그 빛의 입자가 일제히 터진 순간, 광풍 속의 우마왕과 유상훈의 몸에서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굳어 있던 주수혁이 그 힘을 느끼고 다급히 외쳤다.

“상훈아!”

주수혁은 입자가 품은 힘을 감지하고 유상훈이 또 다치지 않을까 염려한 듯했다.

맹효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을 잡고 주수혁을 만류했다.

뒤늦게 주수혁도 유상훈이 입에 담은 ‘복수’라는 말에서 깨달음을 얻고 멈춰 섰다.

그리고 복수의 광풍이 우마왕과 유상훈을 한 차례 휩쓸었다.

쿠구구구…….

빛이 사그라들고 광풍도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상훈과 우마왕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유상훈이 착용 중인 방어구, 무기의 상태는 엉망이었으나 유상훈 본인은 달랐다.

유상훈은 상처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상훈이 입은 모든 충격이 우마왕에게로 옮겨 간 것이다.

하지만 찢긴 교복과 너덜너덜한 듀얼링 실드, 몸에 남은 핏자국이 눈에 계속 밟혔다.

‘결과적으로 광림이 발동한 동안에 받은 피해가 옮겨 간다고 해도 다치는 건 마찬가지잖아.’

유상훈이 광림을 쓰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유상훈의 이능이 무엇인지 듣고 난 후, 그가 광림을 쓰는 상황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수를 둬 왔다.

하지만 유상훈을 비롯한 세 사람은 예측과 다르게 움직였고, 결국 광림을 발동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비장의 카드를 쓴 후에도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법이구나.”

쩌적, 두두둑…….

우마왕은 쓰러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던 우마왕이 다시 곧게 섰다.

얼굴과 몸을 가리던 가면과 옷 따위가 거의 찢겨 나가고 부상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아직 우마왕은 건재했다.

“귀한 이능을 가지고 있군. 하나 인간의 힘으로 혼철곤을 두 번이나 견딜 수 있겠느냐!”

유상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듀얼링 실드를 들어 올렸다.

몇 번이고 복수의 광풍을 부를 기세였으나 나는 그게 허세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상훈은 첫 번째 일격을 받을 때 이능을 총동원해서 충격을 견뎠다.

하지만 지금은 방패도 부수어졌고, 이능파도 바닥을 쳤을 거다.

다음에는 충격을 반사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플마고 속의 유상희가 퍼스트 크리스마스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카아아앙!

주수혁도 나와 비슷한 결론을 도출했는지, 번개처럼 몸을 날려 혼철곤을 향해 두빛나래를 휘둘렀다.

검과 쇠몽둥이 사이에서 불꽃이 크게 튀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마왕은 혼철곤을 굳게 쥐고 있었다.

그때, 우마왕의 밸런스가 크게 흔들렸다.

휘익!

우마왕은 급히 몸을 틀어 두빛나래를 쳐 내고 발길질을 했다.

우마왕이 발을 날린 곳에는 맹효돈이 있었다.

꼬리를 노리던 맹효돈은 몸통을 얻어맞고 날아갔다.

퍼억!

“에이 씨……!”

맹효돈이 이를 악물고 꼬리 쪽을 응시했다.

맹효돈이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관해 알 리가 없는데, 꼬리가 약점이라고 판단한 걸 보니 감이 뛰어났다.

유상훈이 우마왕을 상대하는 사이에 주수혁과 맹효돈이 광림을 발동시키고 기습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림을 발동할 생각을 하지 못한 두 사람의 처지가 이해는 갔다.

‘눈앞에서 유상훈이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다쳤는데,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겠지.’

주수혁과 맹효돈의 광림은 즉시 발동하는 이능이 아니라서 발동 전에 공격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절호의 타이밍을 놓치고 광림을 발동하지 못했던 거다.

만약 맹효돈의 광림 ‘싸움꾼의 인력(引力)’을 발동했다면 우마왕의 행동 범위를 제한할 수 있으니, 맹효돈이 꼬리를 잡고 주수혁의 쌍검으로 우마왕을 찌르는 데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습은 실패했다.

주수혁과 맹효돈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유상훈은 각오를 굳힌 얼굴을 했다.

‘세 사람의 힘으로 우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실패했지만, 모든 게 헛수고로 돌아간 건 아니야.’

세 사람의 개입으로 우마왕의 시선과 집중력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렇기에 대치 중인 저들의 인식 밖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된 자가 있었다.

바로 황지호였다.

“크윽……!”

복수의 광풍을 맞고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던 우마왕이 신음했다.

우마왕이 벌벌 떨며 믿을 수 없어 하는 얼굴로 꼬리 쪽을 보았다.

우마왕의 희고 긴 꼬리가 황지호의 손에 잡혀 있었다.

“학생을 상대하느라 이 몸의 존재를 잊었나 보군.”

황지호의 뒤로 황금빛의 이능파가 길게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황지호가 은신을 푼 결과 남은 흔적인 듯했다.

“그 짐승은 이 몸을 상대하기 위해 개조했나? 네놈보다 발목을 더 잘 잡는구나.”

“제기랄!”

우마왕이 혼철곤을 크게 치켜들어 황지호를 내리치려 했다.

황지호는 봉을 들어 막으려 들지 않았다.

대신 곱상한 눈을 휘며 그저 우마왕 뒤쪽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우마왕의 뒤에서 상보심금파를 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나는 줄곧 상보심금파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을 저 세 사람이 벌어 주었다.

콰드드드득!

세 개로 갈라진 상보심금파의 갈래가 우마왕을 향해 쏘아졌다.

갈래는 우마왕의 목덜미와 뿔, 힘줄 사이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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