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82화 (67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82)

89. 선물 (1)

은광고 정문 앞, 크리스마스 당일.

정오에 가까워지자 크리스마스 자선 이벤트 입장을 위해 각 출입구에 인파가 몰렸다.

입장을 앞둔 초대객, 취재를 목적으로 온 언론사, 화젯거리를 쫓아온 스트리머, 그냥 온 구경꾼들 등등.

예상 입장 인원수를 세 배 정도 초과한 숫자에 자치 기구 소속 학생들이 급히 임원들을 재배치하게 되었다.

본래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자리를 비울 예정이었던 임원들이 등교하고, 황명 재단 홍보팀이 협력한 결과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네.”

전 학생부장 지명수가 정문 쪽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재 정문은 네 출입구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결계 밖은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명수가 한 말 자체에는 별문제가 없었으나 최종 점검을 하고 있던 학생회 소속 임원들이 순간 우뚝 멈춰 섰다.

‘어제’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제 일어난 일이었죠. 잊을 뻔했습니다.”

현 학생부회장 곽경구가 어색하게 답했다.

곽경구에 이어 학생회 임원들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네? 어제요? 아…… 그렇죠, 어제 일이었죠.”

“맞아, 어제 입장할 때 문제가 생겼지.”

“나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산타 옷이나 순록을 연상하게 하는 의상을 착용 중이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물씬 나는데 영 감각이 어색했다.

시공간이 왜곡된 결계 안에서 오래 있다 나온 데다 큰일을 겪어서 어제라는 말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임원들은 불안한 얼굴로 결계 쪽을 바라봤다.

여기에 있는 임원들 중에선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 몇몇 있었다.

방문객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에너미로 돌변해 결계에 몸을 부딪치고, 충돌이 거듭될수록 결계가 점점 흐려져 밖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고립된 상태로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눈을 감으면 그때 들렸던 소리, 에너미와 결계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화르르륵!

그때, 임원들의 눈앞에 불꽃이 스쳐 지나갔다.

열기와 함께 느껴지는 이능파에 임원들의 상념이 끊겼다.

불꽃의 정체는 염준열이 부른 홍룡이었다.

“염준열 학생회장의 홍룡이다!”

“예전에 봤던 거보다 커졌어.”

“이제 이명 바뀌는 거 아니야? 홍룡 앞에 붙은 그 수식어는 떼야 할 것 같은데.”

홍룡이 뿌리는 온기에 임원들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달라진 분위기를 확인한 염준열이 하얀 시계탑 앞에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홍룡이 학생회 임원 사이를 한 바퀴 돈 후,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고오오오…….

와아아아아!

홍룡이 불꽃을 몸에 휘감아 크기를 부풀리며 하늘을 채우자 결계 밖에서 환성이 쏟아졌다.

홍룡을 발견한 방문객들이 디바이스를 꺼내 촬영을 시작하고 비명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염준열을 연호했다.

염준열의 팬들은 홍룡의 건재함을 눈으로 확인하자 안도와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특별히 준비한 라이브 쇼라고 합니다. 사전에 홍보팀 허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문으로 간 홍룡 팬들은 피눈물을 쏟겠네. 이런 크리스마스 선물을 놓치다니.”

곽경구의 설명에 지명수가 실없이 웃으며 반응했다.

그사이에 염준열이 허공에 불꽃을 뿌리고 청룡을 비롯한 용족들이 하늘로 올라가 용 모양의 화염을 쏟아 내었다.

방문객들과 할 일을 마친 임원들이 홍룡에게서 눈을 못 떼는 동안, 지명수가 곽경구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지금 초대권에 프리미엄 붙어서 거래되던데. 말 나오기 전에 암표 잡아야 되지 않아? 금액이 좀 크더라.”

초대권이 있어 봤자 결계에 등록된 사람이 아니면 입장이 안 되지만, 현재 암표가 돌았다.

문제는 결계에 등록된 인물 중 암표를 사고판 이들이다.

자선 이벤트 목적으로 발행한 초대권이었기에 암표 방지 대책이 철저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이브에 있었던 일로 화제가 커져 초대권은 열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지금 교내 현상 수배범 사냥 파티에서 암표 사냥하는 중입니다.”

“현상 수배범 사냥 파티? 동아리나 소모임 같은 거야?”

“전 교사 최편득이 현상 수배된 후, 그 개새……를 토벌하기 위해 구성된 교내 파티입니다. 플레이어 수배범을 잡은 경력이 여러 차례 있어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최편득의 이름을 듣자 지명수가 바로 그 현상 수배범 사냥 파티의 정체를 떠올렸다.

중범죄자를 몇 번 잡아내 협회와 경찰청으로부터 상금과 표창을 여러 차례 받은 파티였다.

“아, 최편득 토벌 파티. 걔네들 아직도 최편득 추적하고 있대? 워낙 원한을 많이 산 놈이잖아. 이렇게 안 나오는 걸 보면 누가 죽였지 않았을까?”

“죽었다는 증거가 없는 한 포기하지 않을 거라 합니다. 이대로 현상 수배범 헌터로 전직할 예정인 학생도 있습니다.”

“그래? 졸업생도 받아 주면 내년에 나도 가끔 껴 볼까.”

“협력 중인 졸업생분들이 여러 명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지명수가 암표 걱정을 완전히 덜었을 때 즈음, 염준열이 서 있는 시계탑 주변으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이는 학생들은 전원 각 자치 기구의 주요 임원들이었다.

제일 먼저 등장한 건 현 지익회장 계이담과 현 총동아리회장 허채아였다.

두 사람은 친분이 있는지 대화를 하며 걸어왔다.

“계속 도서관에 있었다고?”

“응, 도서관 쪽에는 에너미가 안 왔어. 지하 서고에 보관한 책 때문인 것 같았어.”

“식량이나 물은?”

“도서관 휴게실에 구비되어 있어. 마침 전날에 학교 측에서 비품을 보충해 둬서 넉넉했어.”

“……마침이라.”

두 사람에 이어 현 선도부 부회장 마진승과 전 선도부장 오혜지가 나타났다.

평소라면 염준열이 마진승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리거나 무시했을 거다.

그런데 염준열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손을 들어 인사 비슷한 걸 했다.

마진승은 얼떨떨해하며 ‘아, 안녕!’ 하고 크게 인사했으나 염준열은 이미 홍룡을 부리는 데에 다시 집중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오혜지가 한마디 했다.

“음, 괜히 왔나. 또 이 좋은 날에 진승이랑 준열이가 싸울까 봐 왔는데.”

“동하는?”

“동하가 좀 바쁘대서 진승이가 대신 왔어. 자선 이벤트 끝나기 전엔 얼굴 비친대.”

지명수와 오혜지가 잠시 안부를 확인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장 시각이 1분도 남지 않았을 때, 마지막으로 전 학생회장 도원우가 합류했다.

“다 왔군.”

도원우는 모든 학생 자치 기구의 장들이 입장객을 맞이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황명 재단 홍보팀과 학생회 측에서는 도원우가 그 역할을 하도록 제안했으나 그가 고사했다.

―갑작스럽게 비상사태가 닥쳐 리더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퇴한 학생회장이고 곧 졸업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 이상 앞에 나서는 건 자제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도원우는 다음 해를 이끌어 갈 2학년들에게 방문객을 맞이할 것을 권했다.

3학년들은 돌발 사태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 주변에서 대기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

정문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건 1, 2학년이 될 것이다.

시계탑의 시침이 움직이자 염준열이 홍룡을 자신의 위로 불러들였다.

휘이익!

그러자 자연스레 모든 이들의 시선이 시계탑 앞에 서 있는 네 명의 2학년에게로 쏠렸다.

입장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염준열, 계이담, 허채아, 마진승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정문으로 걸어갔다.

*    *    *

천익산.

백운봉과 가까운 곳으로 추정되지만,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천익산 지리에 관해 통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나 보다.

백호군의 손에 이끌려 수면 밖으로 나간 후 주변을 다 자세히 살폈지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게 신경 쓰였는지 백호군이 알려 줬다.

“이곳은 호족의 신보(神寶)가 나타나는 샘이다.”

백호군의 설명을 듣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명계로 향하는 균열 사이로는 호족의 정수가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 빠져 명계로 갔으니 돌아올 때에도 호족의 정수에 휩쓸려 온 것 같다.

‘신보가 나타나는 샘을 더럽힌 꼴 아닌가.’

호족이 엄중하게 관리한 정수 속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겨 있다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나중에 정화 작업이 필요하면 꼭 협력해야겠다.

이 추운 날, 깊은 산속에서 물에 젖은 채로 있는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

기분 탓인지 백호군이 손을 잡아당기는 힘이 강해진 것 같다.

“어디로 가?”

“지금 그게 궁금한가?”

물은 대상은 백호군인데 답변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에 황지호가 서 있었다.

“당연히 우리 집으로 간다. 그 꼴로 또 어디 가겠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겠지.”

황지호는 그 말을 하고는 내 쪽을 향해 이능파를 쏘았다.

설마 묶어서 끌고 갈 생각인가?

하지만 막 현세에 돌아온 탓인지 힘이 나지 않아 방어할 기력이 없었다.

손은 백호군에게 잡혀 있어 뿌리치고 도망가지도 못했다.

파아앗!

황지호가 나한테 쏜 황금빛 이능파는 마력으로 변해 결계를 만들었다.

결계가 만들어지자 몸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황지호의 결계가 냉기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았다.

“이번엔 놓지 않았군.”

황지호가 백호군의 손을 보고 비꼬듯이 말했다.

백호군은 내가 놓아 달라고 해서 놓은 건데 뭘 비꼬고 있나.

“놔 줘!”

그때, 내 마음의 소리가 새어 나갔나 싶었는데 소리는 황지호 쪽에서 들렸다.

황지호의 손 쪽을 보니 먹물 덩어리 같은 게 있었다.

잘 보니까 산령 같았다.

“네가 왜 갑자기 거기에서 나타나 이쪽으로 이동했는지 설명하면 놔 주겠다.”

“그, 그냥 거기 간 건데…….”

“말할 생각이 없나 보군.”

산령은 또 뭔 사고를 쳤기에 황지호한테 붙잡힌 걸까.

황지호가 매섭게 쏘아붙여도 산령은 끝까지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산령은 그대로 호랑이 저택으로 끌려갔다.

‘여기를 보니까 정말 다녀왔다는 기분이 드는데…… 안 되는데…….’

윤회의 굴레에서 ‘집’을 연상한 순간 황명호 대저택의 일부가 섞여 나왔던 게 떠올랐다.

착잡한 마음이 들어 딴생각을 하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려면 자꾸 백호군이나 황지호가 말을 걸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본채가 아닌 은호가 있는 현대식 별채에 도착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은호는 천성헌의 모습으로 마중 나왔다.

황호처럼 화가 났거나 날이 선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데, 묘하게 긴장이 되었다.

“어서 앉으세요. 춥진 않으신가요? 먼저 진맥부터 할게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진 거실에는 트리가 그려진 담요가 있었다.

원래 있던 장식품인지 준비해 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소파에 앉자 은호가 담요를 어깨에 덮어 주었다.

그제야 백호군의 손과 황지호의 결계가 떨어졌다.

‘거실에서 계속 기다렸나?’

테이블에 차를 몇 차례나 마신 흔적이 있었다.

무언가를 보면서 기다렸는지 찻잔 옆에는 종이 뭉치가 있었다.

일종의 카탈로그처럼 보였는데 표지 한구석에 낯익은 마크가 보였다.

‘저게 무슨 모양이지? 사슴뿔 같기도 한데…….’

이능파를 불어넣어 몸을 살피고, 손목을 잡아 맥을 확인한 은호가 입을 열었다.

“이능파와 체력 소모가 심한 것 외에 큰 이상은 없네요. 더 심각한 상황을 상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이상이 없다면 일단 학교 행사에 참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다음에 이어진 은호의 말 탓에 생각이 멈췄다.

“적벽괴도 형, 그럼 얘기 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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