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96화 (69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6)

89. 선물 (15)

은광고 크리스마스 자선 이벤트 종료 후, 1학년 0반은 뒤풀이를 위해 모였다.

반 아이들 열네 명이 전원 모인 것을 보자 김유리가 반갑게 맞이했다.

“얘들아, 다들 무사했구나!”

오늘 은광고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생각하면 저리 기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은광고는 진족과 에너미의 습격에서 자유로워졌으나, 위기 상황 속에서 눌렸던 0반 선배놈들의 괴짜짓이 폭주했다.

2학년의 경우, 탄핵 위기에 놓인 금찬솔과 왕찬솔을 대신한 연가람 반장 권한 대행이 사고를 쳤다.

연가람은 따오기 인형 옷차림의 제갈재걸에게 눈이 멀어 일정을 급변경해 제 위주로 맞췄다.

그 결과 변경된 일정 덕에 수혜를 입은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이들의 불만이 폭주하였고, 2학년 0반은 금찬왕찬파와 권한 대행파 두 파로 갈려 싸웠다.

‘중간에 늦게 등교한 천동하가 수습을 돕지 않았으면 2학년 구역 전체가 배틀필드가 될 뻔했지.’

어제 천동하는 광림을 과하게 썼고, 집안에서 벌어진 새로운 친자 확인 사건, 소위 ‘천금하 사건’을 조사하느라 상당히 지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힘을 써서 2학년 0반 두 패거리의 유격대들이 벌이는 전쟁터의 위치, 인원을 정확히 파악해 냈고 이를 전달받은 염준열이 협력해 사태를 수습했다.

홍룡을 탄 염준열이 천동하의 지시대로 급강하하며 불 감옥을 만드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올라가 백만 단위의 조회수를 찍었다.

이 사건은 결국 제갈재걸이 날을 잡아 한 번 더 따오기 인형 옷을 입기로 하고, 이런 합의점을 이끌어 낸 금찬왕찬이 0반 선배놈들의 지지와 신임을 되찾아 다시 반장과 부반장을 맡는 것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냥 제갈재걸이 혼자 희생한 결과물인 것 같긴 한데……’

사고가 난 곳은 2학년 구역뿐만이 아니었다.

강한 담임이 합세하여 더욱 강해진 3학년 0반 선배놈들도 사고를 쳤다.

임연화가 우주의 기운이 남긴 흔적을 추적한 결과, 천익산의 백운봉과 천단수 주변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천단수는 그렇다 쳐도 임연화가 백운봉 쪽을 뒤지는 건 매우 곤란했다.

백운봉에는 호족의 신보가 등장하는 샘이 있었으니까.

아직 10대에 불과한 3학년 0반 선배놈들이면 모를까, 강한 담임이라면 황지호가 펼친 결계를 파훼할 가능성이 있었다.

임연화를 저지시키기 위해 황지호는 지익회의 고문, 김신록을 그 자리에 파견했다고 한다.

‘김신록만 보낸 건 아니었지.’

김신록이 출동하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한 용제건도 따라서 움직였다.

김신록과 용제건에 이어 지익회까지 합세하자 임연화도 일단 그 자리에선 물러났다고 한다.

호족 측에선 강한 담임이 3학년 0반 일당에서 빠질 때까지 천익산의 감시를 더 엄중하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용쌤도 무사히 오셔서 다행이에요.”

“그…… 눈은 괜찮으신가요?”

용제건은 1학년 0반 부담임으로서 뒤풀이 파티에 출석했다.

옥색의 실로 마감된 눈가리개가 용제건의 눈을 빈틈없이 가리고, 넘쳐 흐르는 신격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아 주고 있었다.

비록 맹효돈은 저 눈가리개를 보고 새로운 수련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진족이 착용한 눈가리개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사이에 용제건에게 정이 든 건지, 아이들이 섭섭한 마음과 걱정을 담아 눈가리개를 바라보았다.

“눈은 예전보다 잘 보여. 오늘 이벤트 구경은 재밌었어.”

실실 웃는 용제건을 보고 황지호가 마뜩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김유리의 사물함에서 신보를 발견한 이후, 황지호는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용제건을 보니 더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그래도 즐거운 뒤풀이를 위해 제 기분을 감추고 있긴 했다.

‘지금 죽호가 그 가면 부부를 붙잡아 두고 있다고 했지.’

신보는 엄중히 봉인되어 있었으나 결계술에 능한 호족의 수장답게 황지호가 그 속을 꿰뚫어 봤다.

황지호가 뭐라고 하기 전에 김유리에게 그 선물을 맡긴 자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그러자 김유리는 ‘죽림에서 만난 가면을 쓴 부부’라고 답했고, 황지호는 즉각 죽호를 움직였다.

곧바로 분신을 동원해 심문을 할 줄 알았는데, 황지호는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신보를 숨긴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부부는 여태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 내가 다그친다고 해서 입을 열 것 같진 않군.

황지호는 심기가 복잡해 보였으나 그리 다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저번에 신보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고 있나 보다.

―우연히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바로 알게 되었지만, 만약 네가 홀로 호족의 신보를 얻게 되었다 해도 숨기지 않고 내게 알렸겠지. 그 부부도 이를 알고 있을 거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네가 있는 자리에서 이유를 물을 생각이다.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자리를 비워도 좋다.

―갈게.

가면을 쓴 호족 부부가 언제, 어떻게 호족의 신보를 얻었고 왜 나한테 넘겼는지는 나도 궁금했다.

내가 황지호에게 가겠다고 약속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숙박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차피 후예들에게 선물을 전해 줄 겸 호랑이 저택에 들를 예정이었기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어쨌든, 다른 0반 선배놈들과 달리 우리 반은 얌전하게 지나가서 다행이다. 이 와중에 사고라도 났으면 더 일이 복잡해졌겠지.’

비록 진정묵과 관종 둘이서 등교를 하네 마네 하며 승부를 벌이긴 했지만, 무사히 마무리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곧 2학년 0반이 되지만, 지금의 2학년 0반 선배놈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특이한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는 게 마음이 걸리긴 했다.

“소생은 이번 행사에 한 게 없는데 참석해도 괜찮겠소?”

“한 게 없다니! 우리와 승부를 벌인 걸 잊은 건가?”

“그래! 우리 보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데!”

진정묵과 관종 둘은 승부를 벌이며 친해졌는지 아주 잘 놀고 있었다.

논다기보다는 관종 둘이 진정묵을 둘러싸고 뭔가를 캐내려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지금 괜찮지 않은 건 네가 우리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 얘기하면 편해질 거야.”

“말할 수 없소. 직접 들으시오.”

“알아야 직접 들으러 갈 거 아니야!”

무슨 주제로 대화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괴짜들의 사고를 굳이 캐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셋은 무시하고 테이블 세팅을 했다.

황지호는 척척 커트러리를 배치하다가 불쑥 말했다.

“조의신, 케이크는 네가 꺼내 두도록.”

케이크 상자는 황지호 가까이에 있지 않나?

비효율적인 지시였으나 황지호가 일은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괜히 물고 늘어지지 않기로 했다.

MITRON의 로고가 박힌 케이크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냈을 때 의문이 들었다.

‘예약했던 케이크에 이런 장식이 있었나?’

케이크 위에는 검은 눈송이 형태의 몰딩 초콜릿이 장식되어 있었다.

하얀 크림 위에는 슈거 크래프트로 만든 산타와 트리도 얹어져 있었지만, 유독 검은 눈송이가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고르는 과정에 참가했는데, 내 기억에 의하면 케이크 위에 눈송이 장식은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황지호가 덧붙였다.

“MITRON에서 특별 행사 중이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한 고객을 대상으로 검은 눈송이 장식 추가 옵션을 제공하는 중이지.”

MITON의 파티시에 류장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나.

류장은 이번에 권제인이 서문 쪽에서 돌발 행동을 하지 않게 방지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사건이 끝날 때까지 얼쩡거리다가 검은 눈송이도 봤나 보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는 검은 눈송이들을 보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선물 교환식이 있겠습니다! 혹시 모를 추가 등교자를 대비해 넉넉하게 준비해 왔으니까 다 같이 해도 돼!”

구슬비와 옹길동은 김유리에게 이야기를 듣고 미리 선물을 준비해 온 건지 당당하게 제비뽑기 번호를 고를 준비를 했다.

선물 더미 중에 오로라빛 종이로 포장된 상자가 두 개 있더니만 보나 마나 두 관종이 준비한 선물일 것 같다.

진정묵은 사양하려 했지만, 김유리가 제비뽑기 번호를 고르도록 권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소생도 선물을 준비해 오겠소.”

진정묵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올 예정인가 보다.

그렇게 반 아이들이 모두 제비뽑기를 마치고 선물을 하나씩 고르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내용물은 마치 짠 것처럼 대부분 비슷했다.

“또 장갑이네.”

“저만 장갑을 산 게 아니었군요.”

“겨울에는 손이 시리잖아. 이능파로 감싸도 되지만, 그럼 집중력과 힘이 좀 많이 들고…….”

반 아이들이 흘끗 내 쪽을 본 것 같다.

나는 선물로 장갑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어링 타입 디바이스가 차가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캡을 선물로 샀는데 나도 장갑을 샀어야 했나?

마침 내 차례가 돼서 번호를 골랐는데, 내용물은 장갑이었다.

“아, 의신아. 그 장갑은 제가 산 거예요!”

“고마워, 잘 쓸게.”

내가 뽑은 선물은 사월세음이 산 장갑이었나 보다.

감사 인사를 하니 사월세음이 아주 기뻐하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며 껴 보라고 권했다.

껴 보니 마치 맞춰 산 것처럼 손에 딱 맞았다.

“의신이가 장갑을 뽑았네, 잘됐다.”

“네!”

반 아이들은 나한테 장갑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걸까?

참고로 내가 준비한 디바이스 이어링 캡은 용제건의 손에 들어갔다.

“반 아이들이 나를 부러워하겠구나. 의신아, 잘 쓸게.”

용제건은 내 선물을 뽑은 것보다 반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게 좋은 건지 자랑하듯이 내보였다.

신격이 올라도 참 한결같은 유희계 용이었다.

1학년 0반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뒤풀이가 끝날 즈음에는 해가 졌지만, 아직 반 아이들은 쌩쌩했다.

“지익회관에서 밤샘 크리스마스 파티 한다는데, 가실 분?”

“나!”

“저도 가겠습니다.”

“나도.”

반 뒤풀이에서도 신나게 놀고도 체력이 남은 건지 기숙사생들은 전원 지익회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약속이 없다면 나도 가겠지만, 아쉽게도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가지, 조의신.”

선약을 지키기 위해 황지호와 함께 저택으로 향했다.

황명호 대저택은 은광고에서 매우 가까웠지만, 황지호가 미리 대기시킨 에어 리무진에 올라탔다.

위잉.

차 문이 닫힌 순간, 황지호의 얼굴에서 줄곧 감추고 있었던 피로가 진하게 묻어 나왔다.

지금 황지호의 분신은 여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임무는 저강렵과 우마왕을 비롯해 붙잡은 진족들, 풍백, 우사의 감시였다.

‘풍백과 우사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고 했지.’

그 외에도 배신자를 처단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12지 동맹 회담을 소집할 준비도 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이번 일과 연관해 해외에서 손님을 데려올 예정이라고도 들었다.

게다가 은호의 후예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보낸 후에는 신보 건으로 가면을 쓴 부부와도 얘기를 해야 한다.

어쩌면 얘기가 아니라 고문, 심문 혹은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걱정하지 말라니, 무슨 소린가.

“그러니 후예들과도 잘 놀아 주도록.”

“……그래.”

짧은 대화를 마치자 어느새 리무진은 저택 앞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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