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98화 (69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8)

90. 가면 (2)

황지호와 백호군은 부부의 얼굴을 잊은 듯했다.

호족 부부는 아이를 잃은 후 계속 가면을 썼다고 했고, 아이가 유산된 건 웅족이 호족을 배신한 시점이다.

즉, 두 호랑이가 부부의 얼굴을 본 건 5천 년 정도 이전의 일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큰일이 많았으니 잘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지.’

두 호랑이들은 긴 삶에서 수많은 얼굴을 마주치고 그에 반해 가면을 쓴 부부와는 거의 만나지 않았을 거고, 설령 만난다 해도 얼굴은 보지 못했을 테니 점점 기억이 흐려졌을 거다.

황지호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 수 없는지 질문을 던졌다.

“신보가 걸린 문제이니 그 부부에 관해 질문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거지?”

“내 가설이 맞다면 신보와 관련이 없는 건 아니야.”

“어떤 가설이지?”

아직 내가 세운 가설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 말하기 그랬다.

내 가설이 어긋난다면 관련된 이들이 또다시 상처를 입을 게 분명했다.

일단 가설에 관해 밝히지 않고 단서를 더 모을 생각이었다.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두 분은 어떤 진족인지 알고 싶어.”

“웃지는 않는데 수상하군.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던 것 같은데…… 뭐, 좋다. 아는 선에서 답해 주지.”

“두 분의 ‘계’에 관해 말해 줘.”

“신화에 남을 만한 업적은 없으나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먼 옛날부터 회자된 존재로서 전설계 호족이 되었다.”

황지호는 나를 수상하게 여기면서도 순순히 아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부부는 수천 년 전 벽화에 새겨진 존재라고 한다.

부부의 모습을 벽화로 남긴 건 호족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멀리서 둘을 본 인간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돌을 들어 벽에 새겼다.

“남편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아내도 그에 못지않은 자태와 청량한 공기를 두르고 있었다. 소문이 자자해서 둘의 얼굴을 보겠다고 각지의 진족들과 산령들, 천령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지. 그래 봤자 벽화에 새겨진 용모를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직접 와도 벽화에 새겨진 모습을 못 본다는 건 무슨 말인가.

진족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대충 짐작은 갔지만 확인차 질문했다.

“벽화와 실제 모습이 달랐어?”

“그렇다. 그 둘이 벽화에 새겨진 건 짐승의 화신이 되었을 때였으니까. 소문이 난 이후로부터는 인간의 형태를 유지했지.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모두가 그들을 보러 왔다.”

어쩐지 그 몰려든 진족 중에 황지호가 있을 것 같은데.

예전에 은호와 만났던 시절의 이야기를 했을 때, 황지호가 백호군의 소문을 듣고 어찌나 귀찮게 했는지 대략 들었으니까.

예상대로 황지호는 부부를 귀찮게 한 듯했다.

“물론, 이 몸도 그들의 얼굴을 보러 갔었다. 경계심이 짙어 멀리서 보는 게 고작이었다. 멀리서 보긴 했으나 소문에 과장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느꼈지.”

황지호가 봤을 때에도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라.

신화 시절부터 있던 호랑이들은 하나같이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 그들을 제치고 아름다움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대체 어떤 얼굴을 한 걸까?

짐승의 화신 버전이 더욱 아름다운 것 같지만, 인간 형태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황지호는 아름답게 느꼈다는 기억만 남아 있지 얼굴 자체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가까이에서 얼굴을 본 적은 없어?”

“그 부부는 가면을 쓰기 전부터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어찌나 부끄럼을 타는지 둘이 맺어졌다 알리러 올 때에도 도통 고개를 들지 못했지.”

그렇다면 호족 중에 두 부부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구나.

황지호와 이야기를 마친 시점엔 죽림에 도달해 있었다.

부부와 죽호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조금 더 걸어야 했기에 하나 더 확인하기로 했다.

“더 질문하고 싶은 게 있나?”

“은호에게도 질문하고 싶어. 잠깐 은호에게 전화 좀 할게.”

“하도록.”

다음으로 질문할 대상은 은호로 정했다.

부부는 수줍음을 탄다고 했으니 짓궂게 구는 황지호보다는 차분한 은호를 더 편안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또, 은호는 황지호보다 앞서서 수장이 되었으니 부부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은호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고, 천성헌으로서의 삶을 경험했다가 왔으니 기억이 흐릴 가능성이 커. 그래도…….’

은호가 이 세계에서 보인 행보를 하나하나 되짚어 봤을 때, 조금 이상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다.

은호는 어떤 인물과 만났을 때,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 은호는 은광고 입학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었기에 굳이 캐묻지 못했다.

‘내 가설대로라면 은호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

‘천은하’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은호에게 통화 시도를 한 순간.

바로 화면이 ‘통화 중’으로 바뀌었다.

대기 신호도 없이 곧바로 반응한 걸 보고 말을 잊었다.

예전에 황지호도 이렇게 빠르게 응답하지 않았나?

호족들의 반사 신경이 우수한 건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빠른 것 아닌가?

[여보세요, 의신이 형. 백호 형님과 황호 님과 죽림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들었어요. 지금 전화한 걸 보면 급한 일인가 봐요.]

내 사정을 고려해 은호가 빨리 답해 준 거구나.

은호의 사려 깊음에 감탄했다.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그분들을 뵙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의신이 형의 연락은 언제든지 환영해요. 말씀하세요.]

은호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그분들의 얼굴을 기억해?”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은호가 말을 하는 걸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신하지 못하겠군요.]

“왜?”

[이 세계에서 제 기억 속의 그분들과 몹시 닮은 얼굴을 봤거든요. 어쩌면 천성헌으로서 지낼 때, 플마고에서 본 캐릭터를 인상 깊게 여겨 혼선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기억은 변질되는 법이니까요.]

은호가 이 세계에서 그런 위화감을 느꼈을 때,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간 듯했다.

은호와의 통화를 종료한 뒤, 호랑이들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확인하는 방법은 두 가지야. 첫 번째는 가장 확실하지만, 후유증이 크고 호랑이들에게 저지당할 가능성이 커.’

첫 번재,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는 방법은 ‘초상(超象)우주와의 교신’ 스킬을 사용해 내 가설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쓴답시고 천익산에 가겠다고 하면 백호군과 황지호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내 이능파 상태를 고려해 보면 질문 하나의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두 번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 그분들께 질문을 던지고 맨얼굴을 봐야 해.’

가능하면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분들의 깊은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았다.

저번에 단서를 얻는답시고 이미 그분들을 괴롭게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단서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못 본 척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대나무가 높게 솟아오른 바람에 하늘이 보이지 않아 시야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눈앞이 캄캄해지자 어떤 말들이 떠올랐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새벽 별을 따라가라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그 아이는 언젠가 새벽 별에 의지해 어둠을 헤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하나는 적호의 리플레이 속에서, 다른 하나는 파수꾼이 해 준 은빛 영웅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들은 말이었다.

너무나도 비슷한 이야기와 지금 모인 단서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하늘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 앞을 보자 초롱불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다 왔군.”

어느덧 죽림의 중앙에 도달해 있었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한옥 한 채가 보였다.

어둑어둑한 앞마당에 그림자가 셋 있었다.

하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었고, 다른 둘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오셨어요? 편하게 기다리라고 말씀드렸는데 자꾸 찬 바닥에서 기다린다고 하셔서요.”

죽호가 황지호를 보며 안심한 듯이 말했다.

죽호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듯했다.

황지호는 그저 ‘저 둘을 붙잡아 둘 것’이라고 명한 것 같았다.

가면을 쓴 부부는 정갈한 차림으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죄를 청하는 죄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되었다.”

황지호는 부부를 굳이 일으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둘 생각인 건지, 죄를 지었기에 바닥에 내버려 두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황지호가 입을 열었다.

“호족의 정수가 담긴 샘에서는 2천 년간 신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신보가 오염되어 타락한 자 외에는 손에 넣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보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그랬군요.”

죽호는 아직 이 얘기를 전부 듣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워했다.

황지호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호족이 손에 얻었어야 할 신보는 두 개다. 그러나 오염으로 인해 신보 하나는 우마왕의 손에 들어갔지. 문제는 남은 하나였다.”

황지호가 품에서 잘 봉인된 꾸러미를 꺼냈다.

죽호는 그 꾸러미의 출처를 아는지 부부 쪽을 흘끗 봤다.

부부가 김유리에게 저 꾸러미를 건넸을 때 그 자리에 있었나 보다.

“어째서, 어떻게 너희가 호족의 신보를 손에 넣은 것이더냐. 고개를 들고 답하라!”

황지호는 분노했다기보다는 슬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론은 간단한데, 그걸 차마 인정하기 어려운가 보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부부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입을 연 건 아내 쪽이었다.

“제가 타락했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었다’?”

“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가면을 쓴 부인이 그날 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던 어느 날, 그녀는 치솟는 분노와 증오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능파가 컴컴하게 물들고,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그녀의 몸을 지배하였다.

늘 함께 다니던 남편도 저버리고 그녀는 홀로 천익산을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샘 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정수 안으로 손을 깊게 뻗었을 때, 손끝에 무언가가 잡혔다고 한다.

아주 어두운 빛을 띤 보옥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했다.

보옥을 손에 쥔 그녀는 자신이 타락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남편이 저를 붙잡지 않았다면 저는…….”

샘에서 얻은 신보를 들고 그녀는 천익산을 내려갔다.

그녀는 그 보옥으로 어린아이의 혼을 모으고자 했다.

다른 아이를 희생시키면 자신의 아이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일깨운 건 남편이었다.

격렬한 전투 끝에 남편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 맨얼굴을 본 순간 아내는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그 뒤로 그들은 신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차마 황지호에게 건네지는 못했다고 한다.

“적호를 용서한 당신에게만큼은 이걸 건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은인에게…….”

아내의 말이 점점 작게 들렸다.

어째서 부부가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알자 아무도 말을 얹지 못했다.

황지호도, 백호군도, 죽호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그 감정에 휩쓸릴 것 같아 애써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이었다.

‘남편분의 얼굴을 본 순간 정신을 차렸다라…….’

‘계’새끼의 기억 속, 부인 쪽이 한 행동을 되짚어 보니 속이 무거워졌다.

부인은 또 어떤 얼굴을 보고 마음을 잡은 것 같았으니까.

이제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다.

“조의신, 할 말이 있으면 말하도록.”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챈 건지, 황지호가 발언 기회를 줬다.

짧은 망설임 끝에 질문을 던졌다.

“가면을 벗어 주실 수 있나요? 남편분만 벗어도 돼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있던 남편은 어떤 반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들어 가면에 가져갔다.

초롱불 아래에 가면 밑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을 본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외모는 안다인과 몹시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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