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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99화 (69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9)

90. 가면 (3)

오래도록 햇빛을 보지 않아 창백하게 질린 낯과 진한 슬픔을 품은 눈빛 탓에 인상이 몹시 달랐지만, 그와 안다인은 닮아 있었다.

안다인이 남성이었다면, 성인이 된다면 저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만 닮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 것 같네. 황지호도, 백호군도, 죽호도.’

학교에서 몇 번이나 안다인과 마주쳤던 황지호.

퍼스트 크리스마스 때 유상희와 행동하던 도중, 안다인과 합류한 백호군.

이 둘은 안다인의 얼굴을 알 것이다.

죽호는 안다인의 절친 김유리를 제자로 뒀으니 사진 등을 통해 얼굴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내 가설의 검증은 거의 끝난 상태였지만, 확인해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었다.

“당신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시나요?”

언뜻 들었을 때에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이었지만, 수천 년 가면을 쓰고 살았다면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되물을 줄 알았는데, 상대는 바로 답했다.

“하늘 아래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데, 제 민낯을 기억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직접 답하진 않았으나 남편 쪽이 제 얼굴을 잊은 건 확실했다.

아내 쪽의 경우 천 년 전, 타락하여 신보를 얻었을 때 남편의 얼굴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하니 기억하고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가장 하기 힘든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은 다시 아이를 가지려 시도하신 적이 있나요?”

호랑이들이 고개를 휙 돌려 내 쪽을 보는 게 느껴졌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더라도 호랑이들도 슬슬 내가 세운 가설의 윤곽을 어느 정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죽호가 동요하여 남편의 얼굴과 나를 연신 번갈아 바라봤다.

“없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호랑이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부부는 영문을 모르는 것 같았으나 침묵의 이유를 망설임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내 쪽이 황지호에게 죄를 청하였다.

“무엇을 망설이고 계신가요, 벌하여 주십시오. 저희의 어리석음이 천 년이나 호족의 신보를 감추고 있었는걸요. 언젠가 이 마음이 저희를 삼킬지도 모릅니다.”

이어서 남편 쪽이 무릎을 꿇은 채로 몸을 낮춰 엎드리며 말했다.

“누가 배신하지 않았어도 웅족과의 전쟁은 일어났겠지요. 어차피 벌어질 전쟁이었는데도, 그걸 아는데도…… 너무나도 잘 자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이 신보는 ‘초혼(招魂)의 보옥’이지요. 어쩌면 아이의 혼을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놓지를 못했어요.”

“하나 복수를 하게 해 준 은인이 있었기에 저희가 이걸 내놓을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가 가면 너머로 나를 보았다.

가면의 틈에서 보이는 눈이 몹시 슬퍼 보였다.

남편은 재차 죄를 청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여태까지 아내가 지닌 정화의 힘으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아내가 한 번 타락한 이후 정화의 힘이 약해져 남편 역시 점점 미쳐 가고 있다는 것.

내버려 두면 언젠가 부부가 완전히 타락할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이 보옥의 존재를 알았으니,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저희는 또 욕심을 부리겠지요.”

두 부부는 모든 것을 내려 둔 것 같은 말투를 했다.

부부는 마치 황지호에게 죽여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유산의 계기가 되었던 웅족을 잡아 아이의 복수를 끝냈고, 초혼의 보옥을 내놓았으니 미련이 없어진 걸지도 모른다.

부부는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호족을 도운 후, 신보를 내놓고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었던 걸까?

지금 황지호가 벌을 주지 않더라도 나중에 조용히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밝히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부부가 이대로 세상을 등지게 할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부부는 주춤거렸다.

청죄하는 중이니 다시 고개를 들 수 없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황지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조의신의 말을 듣도록.”

부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슬픔 외에도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타락하기 전에 끝을 볼 생각인 것 같았다.

“제가 알고 있는 것, 추측한 것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는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먼 옛날, 웅족과의 전쟁을 계기로 부부는 아이를 유산했다.

그 후, 부부는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은호의 딸, 은빛 영웅이 아이를 가지려 시도했다.

“은호 님의 따님이라면…… 저택에 계신 삼 남매의 어머님 말씀이신가요?”

“네, 그분은 원래 첫째로 기약 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호족의 아이를 맞이하려 했습니다. 연이 닿지 않은 모양이지만요.”

이 뒤부터는 황지호나 백호군도 모르는 이야기가 섞이기 시작하니, 좀 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은호의 따님이 하신 말씀에 의하면, 그 아이는 언젠가 새벽 별을 의지해 어둠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벽 별’이라는 말에 황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쪽을 응시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 황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지금 제 또래 중, 주변이 어두워지면 새벽 별을 따라가라는 예언을 받은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의 태몽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플마고를 통해 알게 된 안다인의 태몽에 관해 이야기했다.

안다인의 부모는 남빛 저고리와 홑단치마 차림의 눈을 가린 노인, 삼신할머니의 꽃밭에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삼신할머니의 말을 어기고 욕심을 부려 가장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을 꺾어 달아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요. 외모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이능이 없는 부모 아래 태어났으나 강력한 플레이어가 되었죠.”

이 대목을 말할 때에는 안다인의 부모가 어떻게 딸을 멀리하고 괴롭혔는지 떠올라 씁쓸해졌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나보다 더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으니 그런 티를 낼 수 없어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부부는 내 말을 듣는 내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다.

나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형편에 좋은 말이라서 믿기 힘든 것 같았다.

하지만 공연히 기대를 품으면 실망이 클까 봐 애써 말을 삼키는 게 보였다.

“그 플레이어는 남편분과 몹시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독과 사기(邪氣)를 정화시키는 특이 체질을 타고났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은호의 따님이 데려오려던 호족의 아이와 같은 예언을 받기도 했죠.”

“설마, 설마…….”

“은인께서는 그 아이가…… 우, 우리…….”

부부가 만나지도 못했던 아이와 내가 설명하는 플레이어, 안다인.

부부는 둘 사이를 직접 연관 짓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두 분의 아이가 줄곧 기다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기회가 없었기에 인간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요?”

“아아아……!”

힘이 빠진 건지 부부가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였다.

부부는 말은커녕 짧은 단어조차 말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플마고에서는 두 분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신록은 사망하고, 부부의 복수 대상인 웅족을 잡는 데에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적호도 죽고 만다.

부부의 복수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점점 무거워지고, 슬픔은 더 독해진다.

그 와중에 남편의 정신을 붙잡고 있던 아내가 지닌 정화의 힘도 약해져 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 초혼의 구슬로 일을 치르려 했겠지.’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안다인과 마주친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들은 초혼의 구슬을 안다인에게 사용하려고 한다.

‘‘계’새끼의 기억 속 히든 퀘스트에 의하면 그랬지. 여기에는 뭔가 더 사정이 있을 텐데 단서가 부족해.’

단서가 부족하다고 하나 대충 짐작은 간다.

원인은 바로 흑막일 것이다.

흑막은 어쩌면 가면 아래의 남편 얼굴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안다인의 탄생 비화도 알고 있었다면, 이를 당연히 이용하려 들 것이다.

‘부부는 그렇게 안다인을 죽이려 했겠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로.’

남편은 자신의 얼굴을 잊었고, 아내는 기억은 하고 있지만 확신은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아내는 플마고 속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남편을 말리지는 않았으니까.

기억을 한다 해도 남편의 얼굴을 본 건 그때 시점 기준으로 천 년 전 일이고, 그사이에 부부가 동시에 타락해 갔을 테니 제정신일 가능성이 적다.

툭…….

그러다 아내 쪽의 가면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가면을 고정시키고 있던 게 이능파였는지, 이능파가 크게 흐트러지자 더는 얼굴을 가릴 수 없게 되었나 보다.

아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눈이 붉어지도록 울고 있었으나 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남편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안다인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부모와 닮지 않았다던 안다인은 누구보다 자기 부모와 닮아 있었다.

“그 아이는 두 분 밑에서 태어나지 못했지만, 외모와 체질은 두 분의 것을 이었어요. 그만큼 그 아이가 그리워하고 기다렸으니 만나 보는 게 어떨까요? 그 아이의 의사는 제가 확인해 볼게요.”

나는 안다인도 이 두 분을 만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과 현실이 다를 수도 있으니 조금 선을 그었다.

그래서 일부러 안다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부부가 당장 그 아이의 정체를 묻고 만나러 가길 원할 줄 알았는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아, 아이를 만나는 건…… 실망할 거예요…….”

“아, 안 됩니다. 저희를 보면 아이들은 무서워하고 겁을 냅니다…….”

“저희 같은 못난 부모 대신 좋은 분을 만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나 아이를 그리워했으면서도 부부는 자신들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부터 생각했다.

단언컨대 지금 안다인의 호적상 부모보다 저들이 훨씬 더 훌륭한 부모인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예의 그 친부모는 욕심에 못 이겨 안다인을 빼앗듯이 데려왔고, 그녀의 재능을 감당하지 못하자 대놓고 멀리하고, 버리듯이 해외로 도망친 후에는 돈이나 요구하지 않았던가.

부부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했지만, 나는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라면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을 보고 싶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줄곧 동요하던 부부가 나를 보고 우뚝 굳었다.

부부만이 아니라 다른 호랑이들도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니 괜히 말했다 싶었다.

뭐라 얼버무릴 말을 찾지 못했는데, 다행히 황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보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묻겠다.”

황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는 방향은 은광고의 주거 구역 쪽, 현재 기숙사생을 모아 밤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중인 지익회관 방향이었다.

그리고 기숙사생인 안다인도 그 밤샘 파티에 참석했다.

분신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건지, 황지호가 부부에게 물었다.

“마침 그 아이는 일어나 있는 듯하군. 어떻게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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