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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04화 (70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04)

90. 가면 (8)

주말, 자칭 괴도들의 아지트,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빛깔의 눈에 띄는 의상들과 소품들이 산재한 방 안.

1학년 0반에서 가장 관심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정진 중인 관종 둘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등교 거부자를 등교시키고 수많은 관중 앞에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등 혁혁한 성과를 세웠다.

그날, 큰일을 이룬 이후라 그런지 반 아이들이 건네는 케이크와 관심이 몹시나 달게 느껴졌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마음이 남았다.

바로 적벽괴도의 존재였다.

“학교에서 보자고 해 놓고…… 왜…….”

“어쩌면 이미 만난 게 아닌가? 우리보다 등교가 한참 늦었던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에게 뒤처질 리가 없다!”

“진정묵이 입만 열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우리가 학교에 등교한 걸 모르는 건가? 아니, 그렇게 큰 관심을 끌었는데 모를 리가 없다!”

아직 관심을 모으지 않았을 때라면 모를까, 이번만큼은 달랐다.

관종들은 원래 한 번 큰 관심을 받으면 자신감이 넘치게 되는 법이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적벽괴도가 자신들을 못 봤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왜 적벽괴도는 그들을 만나러 오지 않는 걸까?

답은 단순했다.

조의신이 ‘그 단어’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관종들은 그런 발상을 하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 했다.

크나큰 관심을 받는 적벽괴도라는 단어를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없던 탓이었다.

“괴도에게 있어서 신비성은 중요한 덕목이지. 분명 적벽괴도는 먼저 이름을 날린 선배 괴도로서 이를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옹길동이 괴도 철학에 기반한 괴도스러운 발언을 했다.

그놈의 괴도 철학 소리에 구슬비는 기가 막혀 했지만, 옹길동은 몹시 진지했다.

“적벽괴도는 크나큰 음모를 훔친 훌륭한 괴도다. 괴도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옹길동은 적벽괴도 본인, 조의신이 들으면 오글거림에 움직임이 멈출 발언을 계속 해 댔다.

모든 문장에 괴도를 넣어 가며 열변을 토한 옹길동은 결론을 내렸다.

“적벽괴도를 만나기 위해선 괴도스러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괴도답게 하자.”

“난 괴도가 아닌데?”

“우리가 이룬 업적을 잊었나? 너는 이미 훌륭한 괴도다!”

옹길동은 영국에 있었던 일부터 출석부 탈취, 진정묵의 등교에 관해 줄줄 읊었다.

따지고 들면 괴도스러운 일이 없지 않아 있어서 구슬비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구슬비는 괴도라는 말에 여전히 저항감을 느꼈으나 옹길동이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몹시 마음에 들어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자, 그럼 괴도답게 화려하고 우아하게 추리를 시작하지!”

“아니, 그냥 추리한다고 하면 안 돼?”

구슬비의 항의를 듣고도 옹길동은 괴도 소리를 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첫째, 적벽괴도는 은광고의 교직원이거나 학생일 것이다.”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으니까 그러겠지? 척 봤을 땐 어른 같긴 했는데…… 학생일 것 같기도 하고…….”

둘은 마족의 경매장에서 마주친 적벽괴도를 떠올렸다.

당시 조의신은 광림을 사용해 어른인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모습을 빌린 상태였다.

그러니 적벽괴도가 교직원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관종들은 호락호락하게 속지 않았다.

“괴도는 모습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적벽괴도는 은광고의 학생회장과 흡사한 모습을 한 적이 있지 않나!”

“괴도가 아니어도 모습을 바꿀 수 있지! 그 정도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얼마든지 가장할 수 있어.”

구슬비와 옹길동은 적벽괴도가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관종들의 추리가 계속되었다.

“둘째, 적벽괴도는 크리스마스 사건 때 큰 실적을 올렸을 것이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경매장에 온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도 알고 있었어. 게다가 환몽 게이트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잖아?”

“그래, 그러니 이번 사건 때에도 미리 알고 손을 썼을 것이다. 정의의 괴도가 그걸 모른 척할 리가 없어!”

조의신은 딱히 괴도라서 크리스마스 사건에 개입한 건 아니었으나 옹길동은 그의 괴도다움에 깊게 감동했다.

한편, 구슬비는 가끔 옹길동이 설레는 말을 해 대는 바람에 심란한 기분이 들었는데, 저 괴도 소리 덕에 두근거림이 가라앉았다.

구슬비는 괴도에도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적벽괴도의 정체에 관해 추리를 계속했다.

“세 번째 단서는 진정묵하고 접촉한 인물이라는 점이지?”

“그렇다, 갑자기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2대1로 싸우겠다고 했을 때 뭔가 이상했지.”

“뭐, 그 덕에 힘을 남길 수 있어서 위대한 드루이디스의 멋지고 놀라운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지만!”

“괴도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술도!”

관종들이 관심을 받은 기억에 흐뭇해하느라 잠시 이야기가 탈선했으나, 그들은 다시 진지하게 추리를 이어 갔다.

네 번째 단서에는 근거는 없었으나 그들의 감이 내린 결론이었다.

“마지막 단서는…… 우리와 이미 만난 누군가일 거라는 점이다.”

“그치? 학교에서 보자고 했는데 설마 한 번도 얼굴을 안 봤겠어?”

“그래! 괴도는 약속을 어기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두 관종이 지혜를 모은 결과 단서는 그럭저럭 모였다.

은광고의 규모를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으나 관종들은 의욕이 넘쳤다.

옹길동은 디바이스의 홀로그램을 전개해 눈앞에 펼쳤다.

옹길동이 스케치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뭘 그리려고?”

“예고장의 디자인이다. 이제 괴도답게 예고장을 보내고 훔치는 일만 남았으니까!”

“어디에 예고장을 보내서 뭘 훔칠 건데?”

“은광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예고장을 보내서, 적벽괴도의 정체를 훔칠 거다.”

그 대답에 구슬비는 옹길동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적벽괴도의 정체’라고 추상적인 표현을 쓰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훔칠지는 이미 속으로 정한 상태였다.

타깃이 정해지니 관종들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은광고의 보안을 뚫는 건 쉽지 않을 거야.”

“그 어려운 것을 하는 게 괴도가 아니겠나! 애석하게도 출석부 건은 예고장을 보내지 못했으니 이번만큼은 기품 있게 일을 준비할 거다.”

“그럼 예고장에 드루이디스답게 떡갈나무를 넣어 줘! 그래야 내가 보냈다는 걸 알 거 아니야!”

“이 괴도스러움을 본다면 바로 그쪽에서 알아차릴 것 같다만, 파트너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지. 떡갈나무가 들어간 고상한 예고장을 준비하마!”

한참 흥분해서 예고장을 제작한 후.

작전을 검토할 겸, 적벽괴도의 단서를 찾을 겸 신문을 죽 훑던 옹길동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흐음.”

“왜 그래?”

“올 한해 한반도에서는 은광고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이 터졌다. 은광고에서 터진 것도 있고, 소속 학생이 연루된 사건도 있지.”

“그야 한국 최고 명문 플레이어 고등학교니까, 이계 때문에 사건에 자주 휘말리는 거겠지.”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괴도의 감이 무언가가 배후에 있다고 말해 주고 있다.”

옹길동은 스크랩된 기사들을 응시했다.

옹길동은 아직 알지 못했으나 그 기사들 내용 대부분이 조의신이 손을 쓴 사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 사건들 뒤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악의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간 나는 엄청나게 크고, 어둡고, 무서운 것을 훔쳐야 할지도 모른다.”

*    *    *

종업식이 끝난 후, 황명호 대저택.

소란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종업식 자체는 평화롭게 끝났다.

괴도의 예고장을 두고 의문을 품은 은광고인들이 많았으나 저걸 본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내 정체를 훔친다라…….’

진정묵과 대화를 하면서 단서를 남겼으니 그걸 바탕으로 둘이 추적해 오리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관종력을 얕본 것 같다.

조용히 정체를 추적하지 않고 저렇게 예고장까지 보내면서 난리를 치다니, 골치가 아팠다.

‘내 정체를 알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많아. 하지만 밝히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옹길동과 구슬비의 사고 회로는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다.

게다가 우수하기까지 하다.

플마고에서 보였던 행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그들은 느리건 빠르건 흑막의 존재에 관해 알아채고 그를 막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괜히 멀리했다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흑막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친분을 갖고 움직여야 그들의 계획을 서포트하거나 막는 데에 유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어’를 계속 연호해 댈 관종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가, 어서 오렴!”

“은인과 황호 님도 오셨군요. 어서 오세요.”

생각에 잠긴 사이, 별채에 도착했다.

내 옆에는 황지호, 안다인도 동행해 있었다.

안다인이 부부를 보며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부부는 아직 가면을 벗은 게 어색한지 얼굴을 손으로 가리거나 고개를 숙이곤 했으나, 안다인에게만큼은 확실히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안다인이 부부를 향해 웃는 걸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괴도의 예고장으로 인해 혼란해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정화되었다.

부부가 우리를 대접한다고 부엌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다인이 물었다.

“지호야, 확인차 묻고 싶은 게 있어.”

처음에 안다인은 황지호의 정체 때문에 존칭을 써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

황지호는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정체가 드러나면 죽이긴 싫고 어떻게 할까라는 등의 협박조로 말하진 않았다.

대신 정체를 감출 겸 편하게 대하라고 말했다.

“묻도록.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답하지.”

안다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의신이랑 지호는 호족이야?”

안다인은 현재 인간이다 보니 호족과 인간을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 저런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할 거다.

황지호는 그렇다 쳐도 나까지 호족 취급을 당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런 오해를 사니까 웬만하면 자리를 비우고 싶었는데.’

하지만 본의 아니게 황지호를 비롯한 호랑이들과 계속 동행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복잡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눈을 크게 뜬 황지호가 신나게 처웃었다.

“하하하하! 친구끼리는 닮나 보군.”

누구와 누가 닮았다는 거지?

안다인의 친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김유리다.

척 보았을 때 안다인과 김유리는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다.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고고한 안다인.

낯선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난 김유리.

친해지고 나면 두 사람 다 다정하고 용감하고 친구를 아끼는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 닮은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뭘 두고 황지호가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김유리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지. 김유리는 조의신과 내가 인간이냐고 묻더군.”

“유리가? 유리도 호족에 관해 알고 있어?”

“어느 정도. 김유리는 수석 주술사의 제자다.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 소개하마.”

김유리가 그런 질문을 했었나.

죽호의 제자가 되면서 호족과 엮이다 보니 김유리도 의문을 품었나 보다.

그런데 서로 아직 인지하지 못한 상태인데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다니, 정말 친구라서 닮은 걸까?

두 사람의 우정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 질문에는 같은 대답을 해야겠군.”

질문에 답하는 황지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조의신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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