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05화 (70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05)

90. 가면 (9)

황지호의 대답을 들은 안다인은 이쪽을 관찰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향후의 일을 두고 대화를 나눴다.

안다인은 부부의 양녀가 되는 건을 두고 적극 협조할 예정인 듯했다.

“2학년이 되기 전에 호적을 정리하고자 한다. 네 동의가 필요하다.”

“서명이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바로 알려 줘.”

듣기로는 안다인과 부부가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호적상 부모가 연락을 해 또 돈타령을 한 모양이다.

곁에 있던 부부는 그들의 딸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고, 몹시 분노하고 슬퍼했다.

부부가 유산의 계기가 된 웅족에게 어떻게 복수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탓에 그 광경이 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부부는 당장 그자들을 처리하고자 했으나 안다인이 가족과 보낼 시간을 그런 일로 낭비하기 싫다고 설득하여 겨우 말렸다고 한다.

“네 호적상 부모 건은 맡겨 다오. 다시는 네게 돈 문제로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호적상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안다인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안다인은 끝까지 용기를 내어 벗어날 결심을 했다.

세상에는 자식을 타인보다 가혹하게 다루는 부모가 많으나,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식이 많다.

심리적 혹은 육체적으로 학대를 받더라도 자식 입장에서는 힘없던 유년 시절을 함께하고 의지했던 상대와 연을 끊는 건 쉽지 않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네 친척 몇 명과 김유리 외에는 그들과 대면한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군.”

한 명도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듣다 못한 내가 질문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관계자 중에서도 없어?”

“없다. 유치원 시절 초반에는 있던 모양이더만, 일주일 만에 안다인이 혼자 등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다인의 부모는 학교 행사에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나 보다.

맞벌이를 위해 가족 동반 행사 등에 불참하는 부모가 있지만, 안다인의 경우는 다를 거다.

무섭다는 핑계로 안다인을 방치한 셈이다.

방치도 아이에게 있어선 학대나 다름없다.

이젠 방치하는 대신 돈을 내놓으라 협박하며 언어폭력을 가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 사감은 둘째치고, 세간에 가족에 관한 정보가 퍼지지 않은 덕에 정리가 편해졌다. 그 부부가 안다인의 부모라고 나서도 의문을 품을 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

하긴 저렇게 단란하고 복사해서 붙인 것 같은 외모를 한 가족을 보고도 의심을 품을 이는 많을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진족과 후예가 저 가족을 보았을 때지만, 변명의 여지는 있다.

진족은 후예를 보기 어려워 드물지만 인간을 입양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안다인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호족에게 입양되었다고 하면 가십거리는 되겠으나 입양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아도 문제로 삼는 사람들이 있지.’

쌓아 둔 악의와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서 안다인을 공격할 게 분명했다.

현시점에서는 팬덤 관리가 잘되고 있어서 악성 개인 팬들이 활개를 치지 못하고 있지만, 플마고에서 ‘악개 팬 광화문 현피 사건’이 벌어진 걸 생각하면 그랬다.

요즘 주수혁과 안다인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으니 주수혁의 악개들이 이를 갈고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안다인의 입양이라는 거대한 떡밥이 던져지면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었다.

플마고 때와 달리 안다인에게는 진짜 가족과 호족이 뒤에 있으니 불이 붙어도 처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안다인이 귀찮은 일을 겪는 건 사양하고 싶다.

“호적을 정리하기 전에 여태까지 내 양육에 들어간 비용을 법정이율 기준으로 계산해서 갚을 예정이야.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 줄 수 있을까?”

안다인이 연도별로 숫자가 정리된 홀로그램을 보여 줬다.

표에는 안다인의 호적상 부모의 임신이 확인된 순간부터 들어간 비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실제로 들어간 자금 외에도 양육에 들어간 부부의 노동력까지 고려해 계산했군. 지나치게 높게 잡은 게 아닌가?”

황지호의 말에 동의했다.

실제로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은 상당하지만, 그 사람들은 오래전에 손을 놓았지 않았는가.

영유아 시절 때면 모를까, 안다인을 완전히 방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중학교 시절의 시간도 포함해 계산되어 있었다.

‘표를 보니 급식이 나오지 않는 시간대에는 직접 해 먹거나 사 먹을 때가 많았네. 어린아이에게 식사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건가…….’

아무리 조숙하고 재주가 많다 해도 어린아이를 방치하는 데에 핑계로 삼는 건 말도 안 됐다.

안다인은 거짓으로 그자들을 감싸 줄 마음은 없는지 솔직하게 말했다.

“가능한 일반적인 경우를 상정해 계산했어.”

“일반적인 경우라 쳐도 많군. 뭐, 그걸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리하도록. 내가 보았을 때 문제는 없어 보이나 법무팀을 통해 재차 검토하겠다.”

“고마워.”

황지호는 안다인이 그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걸 용인할 모양이다.

이 과정을 본 순간 확신했다.

‘그자들이 편히 살지는 못하겠군.’

안다인이 그자들을 상대로 원망을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태도만 봐도 호족들은 알 거다.

안다인이 가족과 정을 전혀 주고받지 못했다는 것을.

호적상 가족과 연을 끊는 과정에서 남은 게 경제적인 문제밖에 없다는 게 그 증거였다.

안다인이 계산하고, 저 숫자를 기입하는 동안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를 떠올리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런데 호족들, 특히 부부는 어떤 심정일지 상상도 안 갔다.

호족들은 안다인이 외로웠던 유년 시절보다 더 긴 기간 그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자들은 호족뿐만이 아니라 상위 존재의 노여움까지 샀으니 얼마나 오래 살지도 의문이네.’

황지호와 안다인이 서류를 몇 개 주고받았을 때, 식사 준비가 끝났다.

부부가 준비한 식사는 평범한 가정 식단이었다.

아니, 평범하다고 칭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기 식단 같다.’

딱딱하거나 간이 센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최소한의 간이 되어 있거나 아예 간을 하지 않은 반찬들이 많았다.

부부가 안다인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식탁 위에 있는 건 서너 살이 된 아이를 위한 건강식으로 보였다.

안다인이 아이로 보여서 그러는 건지, 어린 시절에 챙겨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만 눈치챈 게 아닌 것 같은데.’

안다인이나 황지호도 같은 소감을 느낀 것 같았으나 불만을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맛에 시끄러운 황지호라면 간 조절을 하라 마라 한마디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묵묵하게 그릇을 비웠다.

대신 부부에게 제안했다.

“잘 먹었다. 계속 요리를 할 생각이라면 레퍼토리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레시피 책을 추천해 주마.”

“감사합니다, 황호 님!”

“황호 님은 요리에 조예가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도 정진하겠습니다.”

황지호가 요리 관련 서적을 몇 질 추천한 후, 가족 간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떴다.

별채를 벗어나자마자 황지호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표정을 구겼다.

“귀찮은 연락이 많이 왔군.”

“무슨 연락인데?”

“네 눈으로 보는 게 빠를 거다.”

중요한 연락이 아니면 굳이 안 알려 줘도 되는데, 황지호는 홀로그램을 켜서 전부 보여 줬다.

첫 번째 온 연락은 서돌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거슬리는 쥐] 황호, 크리스마스에 있던 일 들었어요.

서돌의 존댓말을 보니 나도 같이 인상을 쓸 뻔했다.

퍼스트 크리스마스 건을 칭하는 건 아닐 텐데, 무엇을 알고 저러는 걸까.

[거슬리는 쥐] 그 시각에 비서를 느루에 보내서 옷을 사 가다니, 급한 일이 있었나 봐요.

[거슬리는 쥐] 황호 덕에 담당 직원이 보너스 받았다고 좋아하던데요, 액수가 좀 크더라고요.

[거슬리는 쥐] 아주 중요한 일에 필요한 옷이었나 보죠?

그러고 보니 부부가 안다인과 재회하던 날, 황지호가 느루 쪽에 사람을 보냈었다.

셋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게 기뻤던 걸까, 황명 그룹의 위상을 고려한 걸까.

황지호는 그날 의상을 골라 준 직원에게 크게 쐈다.

그리고 그걸 느루의 수석 디자이너, 서돌이 귀신같이 알아챘다.

“거슬리는 쥐가 알아챈 듯하군. 어차피 저 부부가 새로 이름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눈치채겠지만, 귀찮게 됐다.”

귀찮은 연락은 서돌로부터 온 것 외에도 더 있었다.

은광고의 보안을 담당하는 황명 재단 직원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조의신, 네가 괜찮다 해서 방치해 뒀는데 정말로 괜찮은 건가?”

황지호는 은광고의 기록 기기에 남은 흔적들을 보여 주었다.

그 흔적은 오늘 아침 예고장을 남긴 관종 괴도들이 남긴 것들이었다.

그들은 은광고 내부에 보안과 기록 목적으로 설치된 기기들의 영상을 열람하거나 복사해 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래도 일단 경계는 하고 있었다만 놀라운 솜씨로군!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바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은광고의 보안이 허술한 건지, 관종 괴도들이 뛰어난 건지 알 수 없으나 훌륭하게 털리고 말았다.

그야 괴도 네온은 흑막이 꾸민 계획의 일부도 훔친 몸이니 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황지호에게 물었다.

“걔들이 본 기록들의 세부 사항을 확인하고 싶어.”

“이미 무엇을 가져갔는지 알 텐데…… 알았다.”

시간대와 장소를 확인한 결과, 그들이 무엇을 가져가고 본 건지 명확해졌다.

관종들은 진정묵의 이동 경로, 시간에 맞춰서 모든 기록을 확인했다.

진정묵이 은광고 내에서 접촉한 인물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한 것이다.

나름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긴 했으나, 내가 시합 직전에 진정묵을 만난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관종들은 은광고를 상대로도 괴도짓에 성공했어. 다음엔 그게 흑막이 되겠지.’

저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무모한 행동을 해 다치거나 죽는 것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들이 내 정체를 알게 된다 해도 말이다.

비록 손은 벌써 오그라들고 있지만,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미래를 위해서 견디기로 했다.

“다음은 3학년 0반 학생들이 벌인 일인데…… 시간이 됐으니 본채로 향하지. 늦으면 그것들이 시끄럽게 굴 테니 말이다.”

“은호가 있는 곳엔 안 들러도 돼?”

“괜찮다. 은호 쪽에는 내 분신을 보내 뒀다.”

황지호는 본채에 도착해 현관을 열었다.

평소에는 문을 열면 바로 은호의 후예들이 맞이해 주었으나, 지금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중요한 자리를 앞두고 있으니 후예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방에서 대기하게 하거나 미로 정원을 산책하도록 권했나 보다.

“오셨습니까.”

“…….”

후예들 대신 적호와 백호군이 황지호를 맞이했다.

“기다리게 했군. 가자.”

응접실로 향하는 대신 호랑이들은 본채 내 1층 중앙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중요한 자리를 앞둬서인지 엘리베이터에 가까워질수록 호랑이들의 기운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황지호는 교복 차림이었으나 호족의 수장다운 기백을 풍기고 있었다.

황금과 홍옥, 백금에 이어 순은으로 장식된 엘리베이터 안, 황지호가 지하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배신자를 잡은 이후 처음 열리는 12지 동맹 회담이다. 마음을 다잡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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