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07)
90. 가면 (11)
우족의 경우, 돈족에 비해 통솔이 잘되어 있었다.
우마왕은 우족이 납득할 만한 힘을 선보여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물론, 우마왕의 뜻에 반하는 자도 있었으나 설득과 협박, 숙청을 통해 뜻을 모았다.
그 덕에 작전 당일에 돈족의 굴린부르스티가 반기를 든 것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 우마왕이 잡히고, 아피스의 화신들을 비롯한 정예들도 붙잡혔지.’
우마왕을 구하러 갈 것인가.
구하러 가지 않더라도 우마왕의 뜻을 이을 것인가.
우마왕과 손을 끊고 12지 동맹에 용서를 구할 것인가.
이를 두고 남은 우족들의 의견이 크게 갈렸고, 다음 수장 자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때, 우마왕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혼란을 틈타 감금되어 있던 반대파를 구출하였고, 친우마왕파와 결전을 치르는 중이라 한다.
황지호가 간단히 이 사실을 전하자 생각이 많아졌는지 시끄럽게 굴던 수장들이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寅[호랑이님] “우족의 신역 내에서만 일을 치른다면 서로 죽고 살리든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그 반대파를 도와서 전 수장파를 완전히 몰아낼 생각은 없나 봐.”
寅[호랑이님] “염치없게도 이 몸의 협력을 얻기 위해 자칭 반대파들이 그 사실을 알렸다만, 관여할 생각은 없다.”
황지호는 냉정하게 말했다.
寅[호랑이님] “그 반대파라는 것들 대다수는 우마왕의 뜻을 암묵적으로 따른 자들이다. 배신자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켜 제 살을 깎아 먹고 있으니 나설 이유가 없지.”
우족에 대한 황지호의 불신은 뿌리 깊었다.
긴 시간 해외를 떠돌고 있던 게 확인되고, 은광고 코앞에서 반기를 들어 돈족에게 살해당할 뻔한 굴린부르스티라면 모를까.
만약 우마왕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그 결과물을 함께 향유했을 자칭 반대파를 믿기는 어려웠다.
황지호는 그들이 이대로 공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12지 동맹의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 둘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우족을 대신해 다른 진족을 그 자리에 세워 두는 것도 어렵다.
12지신은 나라별로 구성원들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지만, 동맹의 결계가 위치한 곳은 한반도다.
한반도 기준의 구성원이 무너지면 결계의 힘도 약해질 것이다.
물론, 그 점은 미리 대비를 해 두었다.
寅[호랑이님] “뭐, 어느 쪽으로 일이 굴러가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다. 배신자들의 내분이 끝난 후에는 제대로 된 새 수장이 자리에 오를 것이다.”
황지호는 마뜩잖아 보이는 얼굴로 나를 봤다.
적호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랑이들한테 내가 한 대비에 관해 설명하니 ‘그딴 것을 위해 무리를 했단 말이냐!’라며 한 소리를 들었다.
子[올해의 최우수 디자이너 대통령상 받은 꾀돌이] “황호는 안배를 끝냈나 보네요. 왜 나한테는 안 알려 줘요? 이번 일에 협력도 했는데!”
卯[ㅁㅎㄷㅌㄲ] “나 같아도 쥐한테는 안 알려 줄 듯. 아니, 나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쥐한테 알려 주겠냐고!”
辰[조카가 인정한 만렙 청룡] “호족은 이 거대한 사건을 무사히 막아 냈다. 수습도 잘 하겠지.”
巳[탈피 끝ㅋ] “내가 가호 내린 등신 같은 놈이 무사하니까 됐다. 다른 건 호족 맘대로 해.”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휴, 황호를 믿고 있긴 했는데 우족을 말살한다는 소리를 할까 봐 좀 쫄았음. 한 자리가 완전히 공석이 되면 결계가 흔들린다.”
상황을 보니 12지 동맹을 배신한 돈족과 우족 건은 호족에게 맡길 생각인 듯하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수장들이 많은 덕에 호족이 주도권을 가져가기 쉽구나.’
배신자 둘과 호족을 제외한 아홉 진족 중, 협력한 진족은 여섯이다.
플레이어 협회에서 나비령의 수를 막은 서돌과 옥토연.
은광고 동문에서 용족을 이끌고 와 천계의 수군과 싸운 청룡.
방윤섭에게 비늘을 건네 큰 가호를 내려 마신의 사제로부터 그를 지킨 사족의 수장.
저강렵을 제압하고, 은광고가 성에로 뒤덮이는 걸 막은 제천대성.
죽림에서 우족과 싸우고, 은광고의 결계 정상화와 재기동 과정에 협력한 견족의 수장.
‘마족(魔族)의 침입이 있었으니 흑마의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있을 시나리오에 대비해 아껴 뒀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흑마와 황지호가 손을 잡은 게 알려지는 건 막고 싶었다.
흑마가 배신하지 않은 게 확실하다면, 마계 시나리오에서 숨겨져 있던 최대 피해자는 마족(馬族)이었을 테니까.
흑마를 비롯한 마족(馬族)들은 그때 몰살당하거나 완전히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시나리오에서 적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선 동맹 관계를 숨겨 두는 게 좋을 거다.
未[악몽 사절] “호족의 신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개입한 진족이 많나 봐? 새로 온 황금 멧돼지도 황호가 데려온 것 같으니까 말이야.”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그러게. 신입은 황호랑 말을 튼 사이인 것 같네. 뭐, 안 그랬으면 이곳에 발도 들이지 못했겠지.”
대화의 흐름을 지켜보던 양족의 수장과 계족의 수장이 말했다.
이번 사건에 개입하지 않은 수장들 입장에서 봤을 때, 티가 날 것이다.
대화가 길어지면 각자가 지니고 있는 정보량이 들통나는 법이다.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이거 배신자를 처단하는 장이라기보다는 사후 보고 아니냐?”
午[평소보다 더 예민한 흑마] “그렇긴 하네.”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나는 빠진 걸 보니 신뢰를 얻지 못했나 봐. 어차피 나는 바빠서 못 도와줬겠지만!”
어차피 못 도와줬을 거면 왜 서운한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산에만 처박혀 있으면서 뭐가 바빠?”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대화명 안 보임? 날아갈 건데?”
辰[조카가 인정한 만렙 청룡] “닭은 날지 못하는 게 보통 아닌가.”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원래 10초 정도 날 수 있었거든?ㅎㅎ;;;;”
亥[북유럽 최고 미남신의 황금 멧돼지] “높게 뛰기만 해도 체공 시간을 10초 정도 확보할 수 있는데…….”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신입은 닥쳐.”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닥쳐…… 닭쳐…… 닭은 쳐 줄 수 있다.”
巳[탈피 끝ㅋ] “아ㅡㅡ”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원숭이 왜 저럼? 저걸 말이라고 함?”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님 미쳤어요? 싸울래요?”
그때, 양족의 수장이 헛소리들을 끊어 버렸다.
未[악몽 사절] “계족의 수장이 말한 ‘신뢰’라는 말을 들으니까 걸리는 게 있어. 우족과 돈족의 수장이 지닌 기원과 몹시 가까운 수장이 하나 더 있잖아. 그 수장은 신뢰할 수 있어?”
양족의 수장이 예리한 지적을 했다.
배신자들의 기원, 서유기와 연관이 있는 수장 하면 바로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우주최강 제천대성이었다.
‘누군가는 지적할 줄 알았는데, 양족의 수장이 그럴 줄은 몰랐다.’
양족의 수장은 말수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대화를 확실하게 듣고 있었나 보다.
저번 회담에서는 졸지 않았나?
게다가 배신자의 존재에 관해서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양족의 수장은 집중력을 발휘하면 달라지는 타입인가.
제천대성이 그 말에 답했다.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나는 황호에게 결백을 증명했다. 이번 일도 도왔지. 내가 팔계를 잡아 호족에게 넘겼다.”
未[악몽 사절] “현시점까지 결백하다고 해서 배신의 가능성이 0이 되는 건 아니야. 언젠가 저강렵이 가엾게 느껴져 동조하게 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어.”
양족의 수장이 한 냉정한 말에 12지 수장들이 술렁거렸다.
午[평소보다 더 예민한 흑마] “왜 갑자기 쟤가 맞는 말만 하는 거지.”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누구세요? 혹시 꿈꾸는 중이세요?;”
巳[탈피 끝ㅋ] “상위 존재한테 빙의당했을 가능성 있음.”
내용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니라 발화자가 양족의 수장이라서 동요한 것 같다.
어째 진지한 대화를 해도 12지 동맹 회담은 한결같았다.
申[우주최강 제천대성] “맞는 말이다. 황호도 끝까지 나를 경계하더군. 내가 12지 동맹을 배신하면 그의 손에 긴고주가 들어간다. 안심하도록.”
긴고주라는 말에 더는 양족의 수장도 반박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우주의 최강이라 해도 긴고주가 머리에 걸려 있는 한 제천대성은 석가여래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卯[ㅁㅎㄷㅌㄲ] “그럼 황호가 잘하면 되겠네! 나중에 친해졌다고 막 봐주고 그런 거 없기야!”
寅[호랑이님] “이 몸이 배신자를 봐줄 거라고 생각하나?”
午[평소보다 더 예민한 흑마] “봐주지는 않겠지. 다소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어도.”
‘관대하다’라는 표현에 적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이 화제가 길어지면 적호의 마음이 불편해질 것 같았다.
양족의 수장은 더는 파고들 마음이 없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未[악몽 사절] “휴, 다행이다. 사실, 나 빼고 싸워 주면 서로 배신을 하든 말든 별 상관은 없어. 나만 아니면 되니까!”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웃긴다. 상관없는데 그렇게 물고 늘어져?”
未[악몽 사절] “요새 악몽의 기운이 점점 강해져서 12지 동맹의 결계가 무너지면 곤란하거든.”
갑작스럽게 뱉은 ‘악몽’이라는 단어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 진족들 사이에서는 배신자보다 악몽 쪽이 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저번 회담에서도 악몽 이야기가 나왔지.’
배신자였던 우마왕과 저강렵조차도 악몽의 존재를 경계할 정도였다.
현재 회담에 출석한 수장들이 급히 경계하기 시작했다.
巳[탈피 끝ㅋ] “갑자기 분위기 악몽.”
酉[계룡산 밖으로 날아갈 닭] “인섬니움 말하는 거 맞지??? 밖에 나가는 거 관둬야 하나.”
午[평소보다 더 예민한 흑마] “아…… 대화명 보고 짐작은 했지만 일부러 못 본 척했는데…….”
卯[ㅁㅎㄷㅌㄲ] “아, 나도! ㅠㅠ”
子[올해의 최우수 디자이너 대통령상 받은 꾀돌이] “옥토연은 진짜로 못 봤을 텐데.”
卯[ㅁㅎㄷㅌㄲ] “ㅗㅡㅡㅗ”
여전히 장난스러운 소리를 하는 수장도 있었으나 문자가 조금씩 떨리는 게 수장들이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꿈을 타고 다니며 진명을 위협하는 악몽의 존재는 수장도 위협할 정도인가 보다.
양족의 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未[악몽 사절] “나는 대비를 마쳤어. 내 신역에는 악몽 못 들어온다. 알았지?”
戌[내 개털은 개비싸다] “아니, 왜 악몽한테 직접 말을 걸듯이 말해! 기분 나쁘게!”
午[평소보다 더 예민한 흑마] “하…… 오늘 잠 다 잤다.”
수장들의 불평이 폭주하고 있는 가운데, 굴린부르스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亥[북유럽 최고 미남신의 황금 멧돼지] “저기, 양족의 신역에는 악몽이 못 들어온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마법진 너머로 악몽의 존재를 느끼신 거죠?”
未[악몽 사절] “응.”
亥[북유럽 최고 미남신의 황금 멧돼지] “……그렇다면 악몽은 어디에 있죠?”
악몽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수장들이 이를 궁금해할 거다.
‘양족의 수장은 저번 회담부터 악몽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었지. 소재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어.’
악몽은 이 세계의 거대한 변수 중 하나다.
위치를 안다면 다음 수를 두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회담 참석자가 양족의 수장이 무슨 답변을 할지 귀를 기울였다.
짧은 침묵 끝에 양족의 수장이 답했다.
未[악몽 사절] “안 알려 줌.”
양족의 수장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