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10)
91. 히든 피스 (2)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던 3학년 학생들은 한 박자 늦게 말을 이해하고 입을 떡 벌렸다.
3학년 0반 학생들이 임연화의 제안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우주의 기운이 우리의 손에……!”
“하, 졸업 후에도 학교 올 생각에 아찔했다.”
“학교 오면 미로 볼 수 있잖아. 난 좋은데?”
“미로가 너를 왜 봐.”
3학년 0반 학생들은 그 우주의 기운을 얻기 위해 졸업 후에도 학교에 올 생각인 듯했다.
임연화는 약하고 귀여운 제자들이 졸업 후에도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걸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일단 들어준다고는 했는데 막상 그 우주의 기운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왜 찾는 것인지 임연화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우주의 기운은 왜 찾는 거야?”
“우주의 기운을 손에 넣어 강해져 승부에 이기기 위해서입니닷!”
우기환은 전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임연화는 제자의 말에서 이상한 구석을 발견했다.
3학년 0반이 임연화에게 이기려는 이유는 우주의 기운을 찾는 노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다.
또, 3학년 0반이 우주의 기운을 찾으려는 이유는 임연화에게 이기기 위해서다.
임연화는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는 중인 우기환을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 애들이 어리고 약하다 보니 사고 회로도 혼란스러운 건가?’
그녀의 언니 임지화는 과거 이렇게 충고했다.
‘연화야, 평범한 인류의 사고방식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웬만하면 웃으면서 넘겨.’라고.
애초에 우기환을 비롯한 3학년 0반은 평범한 인류에 속하지 않았으나 임연화는 그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연화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넘기기로 했다.
“그렇구나! 그러면 우주의 기운이 뭔지 설명해 줄래?”
임연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3학년 0반은 신나게 브리핑을 했다.
우기환을 필두로 한 3학년 0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우주의 기운이란 우주를 느끼게 하는 거대한 기운.
강한 담임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힘.
아무튼 대단한 무언가.
대단치 않은 정보를 지리멸렬하게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임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번에 애들이 준 책자에서 우주의 기운 항목 설명이 빈약하길래 정보를 감추는 줄 알았는데…… 그냥 저게 다였나 보구나.’
정체 모를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제자들이 안쓰럽게 여겨져 임연화의 자애심은 더욱 깊어졌다.
임연화가 경청하고 있는 사이 3학년 0반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스승의 날 리벤지 매치에서 그 우주의 기운을 빌려 승리할 예정이었는데!”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배신했지!”
“크윽…… 우주의 기운이 협력했다면 천단수 앞에서 강한 담임을 잡았을 텐데!”
스승의 날 리벤지 매치라는 말에 임연화는 페인트볼 게임을 떠올렸다.
천익산에서 3박 4일간 서바이벌을 즐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물론 3학년 0반에게 있어서는 패배와 공포의 기억이었다.
3학년 0반이 겪은 굴욕의 절정은 패배 선언문, 항복 후기를 올리던 순간이었다.
우기환은 배신감과 치욕, 분노를 숨기지 못하며 이런 글을 썼다.
[가장 큰 패배 요인은 ‘우주의 기운’의 배신이었다.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우리 3학년 0반은 ‘우주의 기운’을 타도하기로 했다.]
‘그때 항복 후기에서 우주의 기운한테 배신당했다는 게 그런 내용이었나?’
제자들이 쓴 후기를 전부 기억하고 있던 임연화가 그 내용을 떠올렸다.
우주의 기운이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귀여운 제자를 배신했으니 혼쭐을 내 주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럼 질문 몇 개만 할게!”
임연화는 우기환에게 좀 더 명확한 정보를 요구했다.
우주의 기운이 목격된 시간, 장소, 횟수 등등.
임연화의 질문이 거듭될수록 계획은 명확해졌다.
늘 3학년 0반의 도전에 별 계획 없이 맞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던 임연화가 신중하게 굴자 우기환은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우기환의 의문에 임연화는 이렇게 답했다.
“음, 무작정 쳐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날이 춥잖아. 수색 시간을 줄여야지.”
“추운 거 싫어하세요?”
임연화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기환의 눈이 번뜩였다.
우기환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임연화는 다정하게 답했다.
“아니, 너희처럼 약하고 어린 애들이 추운 날 밖에 오래 있으면 안 되잖니. 추위는 근육에 좋지 않단다.”
실제로 임연화보다 약하고 어린 3학년 0반은 갑작스럽게 쏟아진 팩트의 폭력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3학년 0반은 임연화의 의도 없는 도발에 넘어가진 않았다.
‘도발에 넘어가 봤자 우리 손해다.’
‘우주의 기운을 손에 넣어 승리를 거머쥐겠다!’
3학년 0반이 투지에 불타는 것에 반해 임연화는 느긋했다.
임연화는 천익산으로 향하기 전 셀카를 SNS에 투고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반 애들이랑 우주의 기운을 잡으러 간당!
날이 추워서 약한 아이들이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넹ㅠ0ㅠ;;
빨리 잡아서 푹 쉬게 해 줘야징!^0^
#당분간우주의기운을찾는노동력 #귀여운제자들을배신한우주의기운 #추적개시 #꼭잡고만다 #선생님만믿어]
담임 계정을 팔로우한 3학년 0반 학생들은 그 내용을 읽고 피를 토하는 심정이 들었으나, 간신히 평정을 유지했다.
우주의 기운을 잡기만 하면 이 굴욕도 끝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가롭게 보이기까지 하던 임연화는 천익산에 들어선 순간 돌변했다.
‘이능파를 뿜은 것도 아닌데, 오싹한 기분이 들어.’
‘저게 강한 담임의 추적 모드인가…… 압도된다!’
‘숨바꼭질하면서 술래 맡을 때마다 저랬겠지? 저러니까 당연히 못 숨지.’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전 지식과 오감을 총동원해 추적을 개시하는 임연화의 모습을 본 3학년 0반은 전율했다.
임연화는 천천히 걷고 있을 뿐인데 그 기운이 범상치 않아 3학년 0반 학생들은 내내 긴장했다.
천익산 등산로를 걷기 시작하고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임연화가 목적지를 정한 듯 먼 곳을 스윽 본 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따라올 수 있는 애만 따라와.”
슉!
그 말을 한 임연화의 신형이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탓!’ 하고 나뭇가지가 작게 흔들리는 소리만 남는 바람에 임연화가 향한 방향조차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따라갈……! 없어졌어!”
“대체 담임은 뭘 느끼고 목적지를 정한 거임? 설명해 주실 분?”
“젠장, 따라가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들다니.”
3학년 0반은 바로 패닉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담임의 이동 경로를 예상해 지름길로 가면 돼. 지정하는 방향으로 통찰계 스킬을 써!”
우기환이 우왕좌왕하는 3학년 0반을 지휘했다.
우기환의 혼신을 다한 지휘 끝에 3학년 0반 일당은 간신히 담임이 백운봉으로 향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겨우 백운봉에 도달했을 때, 임연화가 손을 흔들며 그들을 맞이했다.
“백운봉 쪽 수색은 막혔어. 김신록 선생님하고 용제건 선생님이 안 된대.”
“네?”
“우주의 기운을 숨기는 것 같진 않으니까 다른 데를 찾자.”
3학년 0반이 임연화를 찾는 사이에 많은 일이 발생한 듯했다.
김신록과 용제건이 어떻게 임연화의 침입을 알아채고 저지한 건지는 의문이었으나 이들은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백운봉을 지키고 있는 상대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신록 선생님은 지익회의 고문이야. 지익회는 거주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니 천익산도 관할 범위지.’
‘김신록 선생님을 건드리면 귀찮아진다. 현재 담임을 맡은 1학년 1반은 물론, 작년과 재작년 담당 학생도 상대해야 해!’
‘게다가 용쌤도 있잖아…… 승천 직전의 진족을 상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의 목표는 우주의 기운과 강한 담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임연화는 백운봉에 우주의 기운이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강한 담임의 실력을 아는 3학년 0반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우주의 기운은 천익산에 상주하는 게 아니라 랜덤한 타이밍에 방문하는 무언가일 거야. 가장 가능성이 큰 장소에 잠복하자!”
“……지금요? 준비도 없이요?”
“잠복에 준비가 필요해?”
강한 담임 임연화는 딱히 생존에 필요한 도구가 없어도 천익산에 며칠은 잠복할 자신이 있었다.
임연화는 의아해하다가 곧 깨달음을 얻은 듯 자비심 어린 표정으로 제자들을 굽어보았다.
“아, 준비가 필요한 거구나. 그래, 쉬고 와. 선생님이 먼저 잠복하고 있을게.”
“괜찮습니다!”
“저희도 바로 잠복할 수 있습니다!”
한없이 약한 자를 보는 그 시선에 3학년 0반은 준비 따윈 필요 없다고 아우성쳤다.
우기환은 핏발이 선 눈으로 천익산에 마련한 은신처에서 필요한 식량과 아이템을 조달할 것을 명한 후, 바로 잠복 모드에 들어갔다.
임연화 기준으로 허술하게 잠복한 아이들은 후열로 밀려 나가고, 다시 잠복 태세를 갖춰야 했으나 어쨌든 3학년 0반은 전원 참가했다.
그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감시한 곳은 바로 천단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천단수 앞에 무언가가 등장했다.
‘왔다……! 우주의 기운!’
우기환이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임연화에게 신호를 보냈다.
임연화는 그 신호가 오기 전부터 천단수 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딱히 비행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허공에 떠 있는 그것은 마치 사람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먹물을 몸에 두르고 있는 것처럼 어둑하여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체형인지 알아보기는 어려웠으나 임연화는 저 존재가 사람도, 에너미도 아님을 알아챘다.
‘기환이가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저게 우주의 기운인가 본데…… 딱히 우주스러움이 느껴지지는 않아.’
임연화의 의문은 3학년 0반 학생들도 느끼고 있었다.
직접 우주의 기운을 목도했던 이들은 예전과 지금 저 존재가 뭔가 다르다고 느껴졌다.
‘기억하는 거랑 뭔가 다른 거 같지 않냐? 예전엔 거의 투명했잖아.’
‘뭔가 형체를 더 갖춘 데다가 검게 변했는데?’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저게 우리가 찾던 우주의 기운이 맞다!’
3학년 0반 학생들이 입술만 움직여 대화를 나눈 후, 돌진할 결심을 했다.
그사이에 우주의 기운으로 추정되는 무언가, 산령은 천단수 앞에 섰다.
산령은 천단수의 수피 위에 손을 올렸다.
산령의 손바닥에서 이능파가 넘실거리자 잠복해 있던 이들이 긴장했다.
그 긴장감을 참지 못한 3학년 0반 학생 중 하나가 움찔거렸다.
바스락.
고작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천익산의 산령은 그게 인위적인 소리임을 알아챘다.
산속에 살면서 산에서 들리는 소리를 잔뜩 들었기 때문에 바로 분간할 수 있었다.
산령은 스킬을 쓰려는 것을 중단하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들켰다, 쫓아!”
“으아아아아!”
3학년 0반이 돌진하자 임연화도 뒤를 따랐다.
0반 학생들이 전력으로 달리는 것에 비해 임연화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뛰고 있었다.
‘약하고 귀여운 제자들이 공을 세우게 할까, 아니면 내가 바로 잡아 줄까.’
임연화의 시선 끝에 정신없이 달리는 산령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