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15)
91. 히든 피스 (7)
이계 충돌 전에도, 후에도 한반도는 모병제였으나 군사관학교의 생도들은 예외였다.
군사관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생도들은 군인이 되어 일정 복무 기간을 채워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비록 졸업한 생도들에게 의무 복무 기간이 존재하나 이는 사문화되었다고 취급받았다.
졸업을 하지 않고 중간에 자퇴한 생도라면 모를까, 아니면 군인이 된 후 생각이 바뀌었다면 모를까.
그 고생을 하며 사관학교에서 버텨 놓고 출셋길을 마다하는 생도는 없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바로 플레이어 군사관학교 고등부에 수석으로 입학, 졸업한 강한 생도 임연화였다.
임연화는 의무 복무 기간만을 채운 후, 군인의 신분을 내려놓고 강한 담임으로서 은광고에 재직하였다.
콰아아아!
덤비라는 말에 임연화는 곧바로 황호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앞으로 몇 걸음 뛰며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공기가 요동치다 파공음이 크게 울렸다.
마치 그 파공음은 임연화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공기가 지르는 비명처럼 들렸다.
퍼억!
그러나 임연화의 정권은 황호의 명치에 닿지 못했다.
임연화는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주먹에 닿은 것을 바라봤다.
그 무언가의 정체는 우기환 식으로 표현하자면 ‘학교에서 나눠 주는 공짜 무기’였다.
‘황명 그룹의 총수이자 은광고의 이사장이라면 UR급의 아이템도 조달이 가능할 텐데, R급 무기를 들다니.’
끼기긱……! 파앗!
임연화는 얼른 철봉을 박살 내고 다른 무기를 꺼내게 하기 위해 맞닿은 주먹에 힘을 실어 꾹 눌러 봤지만, 꿈쩍도 안 했다.
임연화가 힘을 주자 황호가 곧바로 황금빛의 이능파로 철봉을 뒤덮은 탓이었다.
철봉이 부수어지지 않은 것과 철봉이 황호 쪽으로 밀리지 않은 것에 임연화는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이능파 컨트롤은 물론, 완력도 우수했다.
“학교에서 지급하는 R급 아이템, ‘초보 봉술사의 철봉’이네요. 이사장님도 이걸 쓰세요?”
“자네도 학교에서 지급한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지 않나?”
감탄과 약간의 비아냥을 섞어서 한 말에 황호가 똑같은 말로 받아쳤다.
임연화가 은광고의 지급품을 몹시 애용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임연화가 평소 입고 사용하는 체육복, 잡화, 아이템 대부분에 은광고 로고가 박혀 있었다.
애교심의 표현 겸 지나치게 강한 자신의 힘을 절제하기 위한 임연화 나름의 생활 방식이었다.
임연화는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무슨 보호대를 착용하거나 그게 그거라서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황호가 여유 어린 어조로 답했다.
강한 동생, 강한 생도, 강한 담임으로 살아온 강한 임연화는 저게 허세가 아님을 간파했다.
진정한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임연화는 그 강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강한 힘을 지녔으면서 어째서 여태까지…….’
임연화는 강했지만, 약점이 많았다.
만약 임연화에게 황호가 지닌 재력, 권력이 있었다면 그 약점을 신경 쓰지 않고 은광고의 어둠을 좀 더 일찍 걷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잠시 집중력이 흐려졌으나 임연화는 곧 생각을 고쳤다.
‘이사장에게는 이사장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그걸 이해하려면 싸우고 이기자! 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임연화의 강함은 신체적, 이능적인 힘에만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녀의 건전하고 단순한 사고회로 또한 강함의 근원이었다.
망설임이 사라진 임연화는 뒤로 크게 뛰어 자세를 달리한 후, 다시 이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주먹을 쥔 게 아니라 곧게 손을 펴고 있었다.
임연화는 일직선으로 편 손날을 들어 황호를 노렸다.
황호는 멈춰 선 채로 철봉을 유연하게 움직여 이에 대항했다.
쉬이익! 카아아앙!
부딪친 건 손날과 철봉인데,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친 듯한 소리가 귀를 찔렀다.
황호는 그대로 철봉으로 임연화를 상대하려 했으나 그의 시선에 실금이 간 철봉이 들어왔다.
곧바로 황호는 생각을 바꿔 철봉을 비스듬하게 쥐어 임연화의 손날을 흘리고 구둣발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턱!
그러나 구둣발에 닿은 것은 은광고의 로고가 새겨진 무릎 보호대였다.
구두와 보호대가 충돌해 둔탁한 소리가 울리자 임연화가 싱긋 웃었다.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태호권의 보법, 발차기의 응용 동작과 비슷해. 예전에 공청훤 선생님과 대련해 보지 않았으면 바로 막긴 힘들었겠네.’
한 번 본 동작이니 당연히 어떻게 받아칠지도 생각해 뒀다.
임연화는 그대로 무릎을 찍어 올려 황호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황호가 철봉을 크게 휘두르며 뒤로 물러났다.
“손으로 철봉을 부수는 게 아니라 자르기 위해 달려드는 상대는 처음 보는군.”
황호가 엉망이 된 주변과 빈틈없는 자세로 이쪽을 견제하는 임연화를 보았다.
이 짧은 합을 나누는 동안, 둘의 힘과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땅바닥이 깊게 파이고 뒤집혔다.
처음 3학년 0반 학생들과 분단시킬 때 일어난 폭류의 여파도 있어 크고 작은 흙봉우리와 구덩이가 곳곳에 솟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임연화는 주변 환경이 어떻든 힘을 쓰는 데에 상관이 없는 건지 황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사장님 이능파까지 갈라야 하니까 둔기보다 날카로운 무기가 좋지 않겠어요?”
“자신의 신체를 무기 취급 하는 건가? 자네 광림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군.”
광림이라는 말에 임연화가 눈을 크게 깜빡였다.
마치 황호는 임연화가 광림을 쓰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내 힘을 알면서도 광림을 쓰라는 거야?’
임연화는 최종 면접 당시, 황호에게 자신의 이능에 관해 밝혔다.
임연화는 교직에 몸을 담고 싶어 했으나 받아 주는 학교가 아무 곳도 없었다.
어느 학교도 플레이어 군대에서 이름난 인간 병기를 교사로 맞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호가 변덕을 일으켜 임연화에게 기회를 줬다.
임용의 마지막 관문은 황호와의 1대1 면접이었고, 그 자리에서 임연화는 자신의 이능에 관해 밝혔다.
황호는 흥미진진해하며 임연화를 채용했다.
‘그때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학교 일에 소홀해지셨지. 지금과는 달리.’
임연화가 생각을 거듭하면서도 몇 번 더 합을 주고받았다.
그사이, 임연화의 날카로운 공격은 R급에 불과한 철봉을 완전히 폐기물로 만들었다.
황호가 철봉을 이능파로 감쌌다고 하나 임연화의 주먹과 물리적으로 계속 부딪치는 건 한계가 있었다.
툭.
황호가 너덜너덜해진 철봉을 바닥으로 던졌다.
황금의 이능파가 사라지자 흠집이 나고 마모되어 볼품없어진 철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물리 공격만으로는 자네를 어찌할 수 없겠군.”
“황명호 이사장님, 항복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이 몸의 특기는 따로 있다.”
황호의 태도는 막 무기를 잃은 자가 보일 만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임연화와의 싸움이 즐거운 건지 황호가 입꼬리를 길게 당겨 웃고 있었다.
“그러니 자네도 특기를 발휘해 싸우게.”
황호의 눈에 황금빛이 일렁였다.
그 눈을 본 순간, 임연화는 이사장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
‘진족……! 역시 이사장은 진족이었어.’
임연화는 ‘진족의 이해’를 위시한 진족에 관한 이론과 연구를 다루는 과목을 담당한다.
그렇기에 임연화는 진족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 사회에 섞인 진족은 보통 제 진정한 눈과 머리카락의 색을 숨기다가 힘을 발휘할 때 이를 드러내는 게 보통이었다.
사실 임연화는 은광고에 오래 재직하고, 이능에 민감한 교사로서 이사장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직접적인 증거를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호족일 거야. 그것도 아마 개천 신화와 관계가 있는 그 호족들 중 하나겠지.’
은광고의 위치 등을 생각해 봤을 때 그리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광고의 존재에 관해 ‘호족이 허락하여 인간이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강렬한 존재감과 힘을 품은 진족이 이사장 자리에 있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호족은 계속 은광구에 머무르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를 관리하는 자로서 말이다.
임연화는 진족에 관해 연구한 자로서 묻고 싶은 게 많았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게다가 황호는 지금 질문을 받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파아아……!
황호가 허공에 손을 들어 가로로 길게 긋자, 손이 남긴 자취를 따라 황금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처음엔 빛의 가루가 밀집한 것처럼 보이던 황금의 진은 점차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을 머금었다.
황금의 빛 사이에서 황호가 말했다.
“어서 광림을 쓰게.”
콰아앙!
황호의 재촉에 이어 가장 끝에 있던 마법진이 빛을 뿜으며 폭발했다.
폭발한 잔해 사이로 황금의 결계가 뻗어 나와 임연화를 삼키려 들었다.
임연화는 그 빛을 곧게 응시하며 주먹에 힘을 모았다.
“하아압!”
기합 소리와 함께 임연화가 힘을 모아 주먹을 내지르자 이능파와 주변의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결계를 향해 뻗었다.
주먹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와 황금의 결계가 빛을 뿌리며 터져 나갔다.
하지만 임연화가 부순 마법진은 고작 하나뿐이었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마법진이 임연화를 조준하였다.
마법진의 크기도 처음 것보다 큰 게, 지금처럼 주먹만으로 부수어 가는 건 힘들 듯했다.
‘광림은 힘 조절이 어려워서 누가 다칠 수도 있으니 쓰기가 좀 그런데, 이사장은 진족이고, 세니까 괜찮나!’
상대가 저렇게 강한 진족이라면 사양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임연화의 망설임은 짧았다.
“이사장님 말씀을 따르죠!”
콰콰콰콰콰!
임연화가 오랜 시간 억눌러 왔던 힘이 개방되었다.
피부가 저릴 정도로 퍼져 나가는 이능파의 파동에 황호가 결계를 모아 앞을 막았다.
고작 광림을 개방했을 뿐인데, 마법진이 견디지 못하고 ‘파스스’ 하고 부수어져 내렸다.
이능파의 폭발이 가라앉았을 즈음, 푹 파인 땅 사이에 전신을 검붉은 갑주로 감싼 임연화가 홀로 서 있었다.
“어지간한 진족은 자네와 맞서지 못하겠군.”
먼발치에서 임연화를 보며 황호가 평했다.
지금 임연화의 모습은 강함을 집약시켜 인간의 형태로 한 것처럼 보였다.
그 감상 그대로 임연화의 광림은 그녀가 지닌 힘, 신체를 하나의 무기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즉, 임연화의 광림은 그녀의 강함을 갑주의 형태로 결정화시켜 주었다.
“제 광림은 상대의 강함에 반응해서 어느 정도 조절되는데…… 전신 갑주의 형태로 나온 건 처음이에요.”
“그런가? 그동안 약한 이만을 상대했나 보군.”
“이사장님은 어지간한 진족이 아니신가 봐요.”
“물론이지.”
임연화가 올려다보는 황호는 힘을 전부 개방하여 황금의 머리카락과 눈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이능파의 농도에 임연화는 손끝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붉은색 갑주로 감싼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탓인지, 흥분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갑니다!”
황호는 답하는 대신 황금의 이능파를 허공에 뿌렸다.
임연화가 그 안에 뛰어들자 검붉은 번개가 황금의 안개 사이로 쏘아지는 것처럼 눈앞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