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16화 (71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16)

91. 히든 피스 (8)

천익산의 칼바람 고개.

이곳에는 괴담이 하나 있었다.

‘칼바람 고개 저편에서 이승을 떠도는 저승의 안내견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사실 칼바람 고개는 호족의 신수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터였고, 그 괴담 속 저승의 안내견이란 바로 올무를 가리켰다.

조의신의 말대로 칼바람 고개에 도착한 산령은 호족의 신수와 맞닥뜨렸다.

크르르르.

호족의 신수가 목을 울리는 소리에 산령이 흠칫 몸을 떨었다.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지만, 본 모습을 드러낸 신수를 볼 때마다 겁이 났다.

크릉.

다시 한번 가볍게 목을 울린 후, 호족의 신수는 따라오라는 듯 등을 휙 돌려 걸어갔다.

호족의 신수는 칼바람 고개에서 자주 놀았기에 숨은 샛길을 알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막힌 것처럼 보이던 길이 천익산 아래로 이어지자 산령은 눈을 굴리며 열심히 길을 외웠다.

크르르…….

그러자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호족의 신수가 눈을 부라렸다.

칼바람 고개에서 장난질을 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뜻 같았다.

여차하면 산령을 덥썩 물어 3학년 0반 일당에게 던져 줄 기세였기에 산령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아, 안 그럴게. 여기에선 장난 안 쳐!”

호족의 신수는 그 말을 그리 믿지 않는 것 같았으나 일단은 지켜볼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휙 돌려 다시 걸어갔다.

산령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쟤는 왜 나한테는 까칠하게 굴까.’

그저 장난질을 많이 쳤기에 신수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이었지만, 산령은 불만스러웠다.

조의신이나 백호를 상대로는 순한 아기 강아지처럼 구는 신수였으나 본 성질은 아주 사납고 까탈스럽기 그지없었다.

신수가 굵게 울음소리를 내면 겁에 질려 하는 호족도 있을 정도였다.

‘내가 호족이거나 후예거나 인간이면 안 까칠하게 굴었을까?’

산령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곧 생각을 접었다.

호족 중의 호족, 수장인 황호를 상대로 신수가 얼마나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신수는 은호의 후예들과도 친해지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니 산령이 다른 모습을 했더라도 신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길 안내를 해 줄 정도로는 친해. 백호나 조의신이 부탁해서 해 주는 거겠지만…… 정말 신수가 싫어하면 걔들이 신수한테 부탁 안 했을 거야!’

그때, 신수가 갑자기 멈춰 섰다.

멈춰 선 곳은 칼바람 고개 주변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였는데, 천익산이 잘 보였다.

산령도 신수를 따라 먼 곳을 보았다.

‘어…… 다들 싸운다…….’

갑자기 생겨난 거대한 토벽을 사이에 두고 두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조의신과 백호가 3학년 0반에게 목검을 휘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황호가 임연화를 상대로 이능파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저들이 싸우는 이유는 산령 때문이었다.

괜히 그걸 생각하니 산령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    *    *

임연화가 사용하는 광림의 이름은 ‘막강지병(莫強之兵)의 무장(武裝)’.

저 단어를 그대로 뜻풀이하면 ‘더할 수 없이 강력한 병사의 전투를 위한 장비’로, 막강지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임연화에게 잘 어울리는 광림이었다.

광림을 발동하면 그녀의 이능파 색인 검붉은빛의 무기가 적의 수준에 맞춰서 등장했다.

적의 수준에 맞췄기에 대부분의 약한 인류를 상대로 광림을 발동시켜도 반지인지 너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형편없는 무기가 나오곤 했다.

물론, 그 형편 없는 무기로도 상대가 반죽음이 되어 버렸기에 임연화는 광림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호 앞에서는 힘을 아낄 필요도, 광림 사용을 자제할 필요도 없었다.

‘전신 갑주라니…… 여태까지 막강지병의 무장으로 구현한 무기 중 가장 멋있고 커!’

최강의 무기를 온몸에 감고 있었으나 갑주 너머로도 황호의 힘이 저릿저릿하게 전해져 임연화의 기분이 고양되었다.

임연화는 들뜬 마음으로 황금의 이능파 입자 속에 서 있는 황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콰콰콰콰! 쾅!

앞을 막는 마법진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마법진이 산산이 부수어지고 이능파가 흩어졌다.

황호의 이능파를 산개시키는 건 주먹만이 아니었다.

임연화가 달리는 것만으로도 황금의 입자가 흩어져 그녀의 신형이 움직일 때마다 황호가 다시 이능파를 쏟아 내야 했다.

“훌륭하군.”

황호의 음성이 들리자 임연화가 곧바로 멈춰 섰다.

제자리에 선 임연화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주먹을 날려 보았으나, 그녀의 주먹과 검붉은 이능파는 허공을 갈랐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방향과 다른 곳에 있었어! 주먹도 맞지 않았지. 이사장의 이능파가 짙어서 감각이 어긋난 건가.’

임연화는 멈춰 선 채로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무작정 돌진해 봐야 황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황호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파아아…….

눈을 감고 멈춰 선 임연화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정교한 황금 결계가 임연화를 구속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임연화는 마법진을 인지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환히 웃었다.

“위에 계시네요!”

카아아앙!

임연화가 무릎을 굽혔다가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하늘을 향해 정권을 내지르자 그녀의 주먹이 마법진을 분쇄하고, 그 뒤에 결계를 밟고 떠 있던 황호와 가까워졌다.

퍼억!

황호는 급히 두 팔을 교차시켜 총탄처럼 날아드는 검붉은 갑주 덩어리를 막았다.

양팔에서 시작된 충격이 전신으로 퍼질 즈음에야 그 덩어리의 정체가 주먹인 게 똑똑히 보일 만큼 빠른 일격이었다.

임연화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몸도 튼튼하시군요. 육탄전도 가능하시겠어요.”

“아까 말하지 않았나. 이 몸은 물리 공격이 특기가 아니라고.”

“겸손하시네요.”

도발할 목적으로 한 말이었는데, 황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전히 황호로부터는 강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겸손을 떤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걸세.”

스으으으…….

황호가 말을 마치기 전부터 임연화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급히 황호를 멀리 밀어 내고 바닥에 착지하려 했으나 그녀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임연화의 양발, 허리, 어깨, 목이 결계에 묶여 있었다.

‘마법진은 감지되는 대로 족족 부수었는데, 어느새 이 정도의 힘이…….’

소스라치게 놀란 임연화가 어느 가설을 떠올렸다.

믿을 수 없었지만, 답은 하나였다.

‘설마 내가 부순 마법진들의 잔해를 전부 재구성해서 결계를 만들어 낸 건가!’

임연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황호의 특기는 따로 있었다.

마법진, 결계를 작성하는 것보다 타인의 손에 의해 부수어진 것을 다시 짜맞춰 새로운 형태로 창조하는 건 완전히 다르고, 더 고차원적인 영역이었다.

마치 조각을 만드는 것보다 누군가에 의해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수어지고 찢긴 작품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더 고생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였다.

임연화의 움직임이 멎은 사이, 황호가 구성한 결계는 더욱 견고해지고 그의 모습은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황호에게 한 방 더 먹이려면 그를 찾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능파를 폭발시키면 이 결계를 떨쳐 낼 수 있어. 하지만…….’

임연화는 냉정하게 전황을 파악했다.

임연화의 광림은 그녀가 가진 최강의 비장의 수였지만, 황호에게는 수가 더 남아 있었다.

황호는 싸우는 내내 3학년 0반과 임연화를 분단시킨 땅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임연화의 생각대로 1대1 대결이 시작된 이후로 황호는 지력을 쓰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은 힘은 그 외에도 더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사장은 개천 신화의 황호 같아. 아무리 가명이라 해도 다른 진족이 신화가 남은 땅에서 감히 ‘황’과 ‘호’를 같이 쓰진 않겠지.’

만약 이사장이 그 개천 신화의 황호라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는’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사장은 싸우는 동안 체술과 봉술, 결계술만을 사용했다.

이사장의 광림도 미지수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제가 졌어요.”

파아아…….

항복을 선언한 임연화가 양손을 올리고 광림을 해제했다.

검붉은 갑주가 허공에 녹아들 듯이 사라지자, 그녀를 묶어 두고 있던 결계 역시 공중에 녹아들었다.

안개처럼 보일 정도로 짙은 농도의 황금빛 이능파도 본래의 주인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패배를 그렇게 쉽게 인정해도 되나?”

“쉽게 인정하지 않았어요. 이사장님은 지력도, 천신께 받은 권능도 사용하지 않은 채로 저를 상대하셨죠. 제 패배예요.”

“하하하! 잘 아는군. 그 정도는 알아야 은광고에서 진족에 관해 가르칠 수 있겠지.”

황호는 임연화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웃었다.

사실상 황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호는 자신과 맞선 강한 인간이 몹시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승리한 게 기쁜 건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임연화는 그에 반해 몹시 분한 기분이 들었다.

강한 인간 임연화는 아주 오랜만에 경험하는 완패였다.

‘나도 정진해야겠다! 앞으로 더 강해져서 재도전해야지.’

임연화는 강한 정신으로 분한 마음을 극복한 후,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이사장님 권한으로 천익산을 폐쇄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어째서 번거로운 길을 택하신 거죠?”

그동안 3학년 0반이 선을 넘으면 황명 재단이 나서서 이를 직접 제재했다.

방윤섭이 일으킨 천익산 내 흡연 사건 때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흡연 사건을 계기로 천익산을 완전히 폐쇄할 수도 있었을 텐데, 황명 재단은 그러지 않았다.

“이 땅의 지력은 너무 강하다. 특히 천익산이 그러하지. 폐쇄하면 힘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아 고이고 썩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 땅은 인간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다.”

황호는 그 말과 함께 ‘무엄한 존재들이 많아 최저한의 결계는 가동해 두었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황호가 임연화에게 질문을 던졌다.

“역량 차를 깨닫더라도 끝까지 항전할 줄 알았다만, 의외로군. 다른 이유가 있나?”

“반 아이들을 위해서예요.”

그 말에 황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에선 힘 차이가 나더라도 반 아이들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연화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약한 우리 반 애들이 울면서 바닥에 엎어져 있을 거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패배에 심신미약 상태에 놓인 3학년 0반 학생들이 들으면 피눈물을 쏟을 말이었다.

임연화의 생각대로 3학년 0반 학생들은 조의신과 백호에게 패배하여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겨우 눈물을 참은 학생도 있었지만, 그냥 대놓고 우는 이들도 있었다.

“근손실이 심각해 제대로 걷지도 못할 텐데 제가 챙겨야죠.”

강한 담임은 이 격렬한 싸움 속에서도 제자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제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임연화의 모습에 황호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우리 학교에 좋은 교사가 많군.”

임연화는 ‘우리 학교에 좋은 교사가 많다는 건 아마 이사장님 빼고 모든 교사진이 알고 있었을걸요.’라는 말은 삼키고, 제자들을 맞이하러 토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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