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18화 (71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18)

91. 히든 피스 (10)

3학년 0반과의 일전이 끝난 후.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지호는 임연화, 우기환과 함께 은휘관으로 향했다.

큰 비밀을 알게 됐으니 이야기할 게 많을 거다.

‘우기환은 곧 졸업하지만, 황명 재단이 운영하는 대학교로 진학할 예정이니 이사장으로서 개입할 여지가 있어.’

아마 임연화가 약한 제자를 염려해 우기환의 경호를 자처하지 않을까?

경호가 필요할 정도로 약하다는 낙인이 찍히면 우기환이 발작하겠지만, 강한 담임과 더 강한 이사장이 일을 추진하면 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약한 원시인의 정신 건강을 아주 조금 걱정하며 나와 백호군은 호랑이 저택으로 갔다.

은호가 머무는 현대식 별채에 도착하자마자 정신 공격이 시작되었다.

“적벽괴도 형, 잘 싸우고 오셨나요? 영약 드실 시간이 가까워져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백호군과 함께 행동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싸운 것 자체가 은호 마음엔 들지 않은 듯했다.

‘그 단어’와 영약의 공격을 피해 기숙사로 가고 싶었는데, 다뤄야 할 문제가 많은데 예언이라는 큰 안건이 추가되어 도망갈 수 없었다.

환약을 먹기 직전엔 고등학생 모습을 한 황지호가 나타나 처웃어 댔기에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하하하하! 추운 날 산행을 했으니 몸이 차겠지. 어서 들도록.”

어리고 착한 황유호는 안 보이고 황지호가 저러고 있으니 영약 먹을 맛이 더 안 났다.

아니, 둘 다 같은 노친네이긴 한데…….

“조의신, 내 어린 분신이 신경 쓰이나? 영약을 먹고 나면 알려 주겠다.”

어차피 영약은 피해 갈 수 없고, 황유호의 근황도 궁금했기에 꾹 참고 먹기로 했다.

환약을 씹는 순간 혀 전체로 퍼져 나가는 맛의 고통에 정신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아니, 정신이 한 번 죽었다고 표현하는 게 옳았다.

“하하하하! 착하게 먹었으니 알려 주지. 임연화와의 싸움을 대비해 분신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황유호, 황지호의 모습을 한 분신은 일시적으로 정지시켰지.”

싸움이 끝났으니 움직여도 좋지만, 현재 황유호는 별채의 한구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큰일을 겪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

황지호는 그 화제가 나온 김에 임연화와의 대결 과정을 설명했다.

임연화는 역시나 강했다.

황지호의 마법진을 발견하는 족족 부쉈다는 설명에 은호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황호 님의 마력이 담긴 마법진을 별다른 무기도 없이 물리적으로 부수다니…… 그게 가능한 건 백호 형님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적호는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계속 얼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임연화의 인간 같지 않은 활약상을 듣자 정신이 드는지 눈을 연신 깜빡이며 귀를 기울였다.

‘적호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 이동 중에 가면을 썼던 부부나 안다인과 마주치기라도 했던 걸까.’

다른 호랑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적호가 이상하게 굴어도 지적하지는 않았다.

적호는 이야기를 곰곰이 듣다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3학년 0반의 담임 교사는 진정 인간입니까?”

“인간이다. 강한 인류가 있는 게 이상한가? 이 몸의 학교에는 우수한 이들이 많다. 다른 부장 교사들도 그렇고, 조의신도 강하지 않은가.”

내 이름이 언급된 건 좀 그렇지만, 황지호의 말대로였다.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도원우를 시작해 인간인 학생 중에서도 강한 플레이어가 많았다.

교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제갈재걸, 함근형 선생님을 비롯해 강한 교사들이 여럿 있다.

나는 적합체로서 사기 능력을 받아서 그런 거지만, 인간 중에서도 강한 플레이어들은 얼마든지 있다.

“진족 중에서도 약한 이가 있듯이, 인간 중에서도 강한 이가 있는 법이다.”

황지호는 그렇게 설명을 하며 은호 쪽을 봤다.

“신체적인 능력, 이능으로만 따지면 은호는 약한 편이지. 순수히 힘으로만 승부하면 은호는 은광고에서 최상위권…… 아니, 상위권에 겨우 들 것 같군.”

“저를 높게 평가해 주시는군요. 매해 학생들의 수준에는 격차가 있으니 판별하기 어렵지만, 상위권에 드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은호는 순순히 황지호의 평가를 인정했다.

은호가 호족 중에선 약한 편에 속한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였나?

힘으로 따지면 내가 은호보다 셀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은호가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예상대로 은호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힘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제가 어린 학생들에게 질 상황은 거의 없겠지만요.”

“하하하하! 호족 중에서도 너를 이길 자는 거의 없을 거다.”

은호는 황지호를 이긴 적이 있으니 당연한 소리일 거다.

결국, 강하고 약하고의 여부로 진족과 인간을 가르는 건 무의미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진족과 인간이 강하다는 말은 맞겠지만, 진족은 극소수고 인류는 절대다수다 보니 임연화 같은 반례가 많이 나올 거다.

‘그건 그렇고, 기숙사 돌아갈 타이밍을 잡기 어려운데…….’

설마 해가 바뀔 때까지 호랑이 저택에 머무르게 되는 걸까?

중요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돌아갈 타이밍을 잡아야겠다.

어느덧 화제가 바뀌었다.

“아, 신수는 안다인을 몹시 잘 따르고, 안다인 역시 신수를 아낀다고 들었어요.”

“그렇다. 학교 축제 때 신수를 발견하고 기뻐하더군.”

“안다인은 자신이 호족의 구성원이 되었다고 받아들였으니, 호족의 신수에 관해 알게 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죠.”

내 천재 전사와 플마고 히로인의 이름이 나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니 적벽괴도 형이 둘을 소개시켜 주는 게 어떨까요?”

방심한 틈에 날아온 ‘그 단어’의 공격에 사고가 정지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안다인과 올무와의 약속까지 잡았다.

이어서 은호의 후예들과도 식사 약속을 잡으니 기숙사로 돌아갈 기회는 점점 묘연해졌다.

*    *    *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으나 나는 여전히 호랑이 저택에 있었다.

각종 의류, 생필품 등은 호랑이 저택에 전부 있었기에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기숙사에 간다는 소리는 먹히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쉬면 무디어지니 체력 단련, 훈련을 위해 기숙사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 핑계는 통하지 않았다.

내 말을 듣자 은호는 부드럽게 응수했다.

―백호 형님과 같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같이 싸우셨다고 들었어요. 분명 그때 배우고 느낀 게 있을 테니, 더 발전시키면 좋겠죠.

그야 기숙사에서 혼자 하는 단련보다 호족 최고의 무재, 백호군에게 받는 1대1 훈련이 질적으로 훨씬 나을 거다.

하지만 이건 백호군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마침 옆에 있던 백호군이 그 말을 듣고 답했다.

―조의신이 원한다면.

백호군이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눈앞에서 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백호군과 은련관(銀練館)에서 대련과 훈련을 함께 하게 되었다.

훈련을 제안한 호족은 한 명 더 있었다.

―조의신, 네가 원한다면 이 몸도 너와 훈련할 의향이 있다.

―됐어.

황지호의 제안은 별생각 없이 바로 거절했다.

일이 많은데 쓸데없이 나와 훈련하여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나?

이런 요지의 말을 나름 정중하게 전했더니 황지호가 처웃었다.

―하하하하! 이 몸을 생각해서 거절한 건가. 기특하구나.

황지호가 여유 있는 척 처웃긴 했지만, 실제로 상당히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랑이 저택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더 잘 알게 되었다.

늦은 시각에도 분신을 움직이는지 나폴리탄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먹던 황유호가 움직임을 뚝 멈출 때가 있었다.

‘내년에도 바빠질 텐데. 괜찮을까?’

그래도 쉬게 할 처지가 되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

그 와중에도 황지호는 하루 세 끼에 맞춰 영약을 권하는 걸 잊지 않았다.

노친네는 매우 바쁘고 피곤한 것 같으니 조만간 향록의 영약을 꼭 먹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황지호 외에도 다른 호랑이들 역시 바빠 보였다.

은호는 매일 조금씩 그가 잠든 사이에 이 세계에 일어난 일들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거기에 더해 요즘은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먼 옛날 제가 일어나 있을 때, 신화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복기하고 있어요.

은호는 단정한 글씨체로 연표를 만들었다.

연표에는 날짜 단위, 시간 단위로 과거에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은호의 작업이 흥미로웠는지 다른 호랑이들도 가끔씩 말을 얹었다.

그 말을 듣고 은호는 연표를 수정하기도 하고, 호랑이들의 발언에서 잘못된 점을 정정하기도 했다.

―완성이 되면 같이 봐 주시겠어요?

그야 개천 신화에 흥미가 있으니 꼭 보고 싶었다.

그리고 호랑이들에게는 아직 말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도 있으니 확인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내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은호가 말했다.

―의신이 형이라면 무언가를 알아낼지도 모르니까요.

의미심장한 말이었으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오랜만에 ‘그 단어’로 지칭하지 않았다는 기쁨에 잠겼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호칭이 바뀌어서 다행이다.

한편, 산령으로부터는 감사 인사를 받았다.

―조의신, 고마워!

앞으로 3학년 0반과 강한 담임이 노리지 않을 거라는 말에 기뻤는지 산령은 신나서 까불거렸다.

나와 이사장을 쓰러뜨릴 때까지는 산령에게 손대지 않기로 약조를 받았기에 이제 우주의 기운을 노린 습격은 없을 거다.

‘그 대신 내가 노려질 가능성이 있긴 한데…….’

선배놈들을 상대하는 건 번거롭겠지만, 매번 산령이 습격당할 때마다 찾아서 보호하는 게 더 번거로울 거다.

점점 실체가 분명해진 산령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방치하기도 좀 그랬다.

원시인들에게 아이가 괴롭힘당하는 꼴은 보기 싫었다.

물론, 산령의 경우는 선배놈들을 실컷 약올려 댔으니 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이제 나도 조의신을 은인으로 불러야 돼?

그 일은 임연화를 상대한 황지호의 지분이 더 컸기에 내가 은인 소리를 들을 처지가 안 됐다.

그렇게 설명하니 산령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서운해했다.

별게 다 서운한 것 같다.

혹시 호랑이들과 같이 은인 연호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호랑이들 말고도 은인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아. 지금 디바이스에도 은인 소리가 들어간 메시지가 많은데, 산령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연말을 맞이하여 디바이스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가장 인상 깊고, 슬펐던 건 김유리의 메시지였다.

[김유리] 사실 반 아이들이랑 같이 해돋이 보러 가고 싶었어……. ㅠ▽ㅠ

[김유리] 내년에는 꼭 다 같이 가자!

김유리는 새해 첫날, 반 아이들과 해돋이를 보러 가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자, 연말에 반 아이들끼리 놀러 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모든 계획을 엎어 버렸다고 한다.

실제로 아직도 언론에서 그날의 일을 두고 떠들고, 보도하고 있으니 눈에 띄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김유리가 말하는 ‘다 같이’를 위해서는 전원이 등교해야 할 텐데.’

나도 그 관종들과 협력해 남은 두 명이 등교하게 해야 할까?

메시지에 답변을 하며 이동하는 사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호랑이들은 한 해를 보내며 파티를 할 예정이니 꼭 돌아올 것을 신신당부했다.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상대는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신아, 여기야!”

내 제자이자 선배, 염준열이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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