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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32화 (732/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32)

93. 손님 (4)

‘상위 존재를 이 세계에 강림시키는 건 최종 목적이 아닌 과정이었구나.’

황지호가 저강렵을 심문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들이 이 땅에 강림시키려는 상위 존재는 한 명이 아니라고 한다.

저강렵은 상위 존재가 된 삼장법사, 사오정, 백마를 이 땅에 불러들여 다시 여행을 하려 했다.

저강렵의 목적은 상위 존재의 강림 그 자체였으나 흑막의 의도는 따로 있는 듯하다.

‘상위 존재가 현세에 없으니 무슨 짓을 하려 해도 한계가 있겠지. 그래서 강림시킨 후에 상위 존재의 힘을 강탈하려 한 거야.’

흑막의 의도를 파악했지만 이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힘 그 자체는 수단이 될 수 있어도 목적이 되기는 어렵다.

흑막은 상위 존재의 힘을 얻어 무엇을 할 생각이지?

아직 흑막의 진정한 목적은 알 수 없었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현무가 침묵을 깼다.

“상위 존재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다들 빠르게 납득하네.”

호랑이들은 그간 겪어 온 사건들과 얻은 정보 덕에 빠르게 납득했는데,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의외일 것이다.

물론, 호랑이들은 그 이유에 관해 구구절절 밝히지 않았다.

현무는 호랑이들이 보이는 반응의 이유를 캐는 대신 내 쪽을 바라보고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고생이 많았구나.”

현무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내가 그 사건들에 개입했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현무는 지혜와 예지의 사방신이니, 예지 스킬로 무언가를 감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일기에 적힌 내용이 전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게 있군.”

일기에서 눈을 뗀 황지호가 리웨이에게 물었다.

황지호의 시선을 받은 리웨이가 움찔 몸을 떨었다.

황지호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건 아닌데 갑자기 쳐다봐서 놀란 걸까?

아니면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은 호랑이의 시선에서 위압감을 느끼나 보다.

“너는 우족의 수장이 이러한 흉계를 꾸미는 걸 알면서도 이 몸에게 만남을 주선해 달라 청했다. 그자와 만나서 무엇을 하려고 했나?”

질문을 받은 리웨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황지호에게 느낀 두려움보다는 다른 감정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는 듯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했습니다.”

삭이지 못한 분노와 통탄이 리웨이로부터 느껴졌다.

리웨이는 성인과 다름없는 체격이었으나 아직 앳된 얼굴을 한 아이였다.

염준열과 동갑인 아이가 저런 얼굴로 말을 하고 있으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면으로는 승부해 봤자 개죽음을 맞이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광림을 미끼로 우족에 잠입하려 했습니다.”

리웨이의 결의 앞에서도 황지호는 냉정하게 그 말을 들었다.

황지호는 나와 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나를 통해 우마왕을 만날 필요가 없지 않나? 네가 염제 신농의 광림을 이어받았다는 걸 알면 그쪽에서 먼저 접근했을 거다.”

“그건…….”

리웨이는 말을 머뭇거렸다.

아버지의 비밀과 복수에 관한 건도 밝혔는데 하기 어려운 말이 더 있는 걸까?

황지호가 리웨이의 답변을 한참 기다렸지만 계속 말을 꺼내지 못했다.

리웨이의 행적.

지금 나눈 대화.

호랑이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

이 단서를 조합해 리웨이의 의도를 추측해 보았다.

“할 말이 있나 보군. 말해 보도록.”

답으로 추정되는 사항을 떠올렸을 때, 황지호가 내게 말했다.

리웨이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이쪽을 살피고 있었던 건가.

노친네의 시야가 몹시 넓은 것 같다.

“호족을 방패로 삼으려 한 것 같은데.”

“뭐라고?”

“……!”

리웨이가 흠칫 놀라서 내 쪽을 바라봤다.

저 태도를 보니 내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설령 리웨이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됐더라도 금방 우족에게 속내를 들켰을 것 같다.

“호족은 리웨이에게 거래를 제안했잖아. 그 거래가 성립되면 호족은 리웨이를 보호하려 했을 거야.”

리웨이는 적호를 치료할 수 있는 귀한 치유 광림 소유자다.

그런 리웨이가 호족의 거래에 응한다면, 황지호는 적호를 위해서 리웨이를 보호할 것이다.

“호족의 수장이 직접 우족의 수장에게 소개해 준다면, 우마왕도 눈치채겠지. 리웨이가 호족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걸.”

현재 현무가 리웨이를 보호하고 있으나 우족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그의 복수를 돕는 것 같지는 않았다.

현무의 힘은 미지수였으나 만약 그에게 그럴 힘과 의지가 있다면 리웨이는 굳이 호족과 거래하려 하지 않았을 거다.

‘리웨이에게 아무런 방패가 없다면 유상희 같은 처지에 놓이겠지.’

인질을 잡혀 협박당하거나, 힘으로 짓눌려 복수는커녕 우족이 시키는 대로 실험체 꼴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거래가 성사되고 황지호의 주선으로 둘이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리웨이의 뒤에 호족이 있다는 걸 알면 우족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염제 신농의 힘을 빼앗기 위해 수작을 부리면서도 리웨이에게 대놓고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 복수를 두고 줄다리기가 가능할지 모른다.

“……맞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어 호족의 수장이 주선한 자리에서 그자를 만난다면, 우족이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그때 거래를 하는 걸 망설였나? 아니면 호족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 그런 건가? 우족과 한패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그건 아닙니다. 현무 님께서는 호족을 믿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황지호가 냉소적으로 묻자 리웨이가 허둥지둥 부정했다.

현무는 제 이름이 언급되었으나 끼어들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 리웨이가 복수를 두고 망설이는 사이 오늘에 이른 건가.’

리웨이는 플마고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을 겪었을지 상상이 갔다.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황지호가 리웨이에게 거래를 제안했더라도 그는 해가 바뀔 때까지 망설임을 버리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거래도 성사되지 못했을 거다.

크리스마스에 적호가 죽어 버리는 바람에 황지호가 리웨이와 거래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결국 복수는 이루지 못했겠지.’

퍼스트 크리스마스 이후 뜻을 이룬 우족의 기세는 더욱 커졌을 텐데, 리웨이 혼자서 복수를 할 방법은 묘연해졌을 거다.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겠지만, 그런 마음 때문에 더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다.

“복수를 위해 위험한 짓을 했다는 건 잘 알았다. 염제 신농이 네게 복수를 권하며 힘을 빌려줬나?”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복수를 권하지도, 말리지도 않으셨으니까요.”

그냥 힘만 던져 준 건가.

가호와 광림으로 이어졌다 한들 상위 존재의 의사는 파악하기 어려운가 보다.

듣고 싶은 건 전부 들었는지 황지호가 다시 한번 거래를 제안했다.

“죽이는 건 곤란하지만, 분이 풀리게 도와줄 수는 있다. 이 몸의 거래에 응한다면 말이다.”

리웨이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거래에 응하겠습니다.”

“좋다.”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볼 수 있을까요?”

“1대1로 만나는 건 불허한다. 수를 아무리 줄여도 호족의 고문 기술자를 포함해 둘 이상을 대동해야 한다.”

“상관없습니다.”

김신록을 포함한 호족 둘 이상을 대동해야 한다는 말에 리웨이는 오히려 화색을 띠었다.

리웨이는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는 근심 한 점 없었다.

“눈이 많은 곳에서 인간에게 당하면 더욱 굴욕을 느끼겠죠.”

리웨이의 답변에 황지호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호가 결계를 해제하고 문을 여는 사이, 현무가 말을 걸었다.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하고 싶구나.”

여기에 남아서 같이 대화하자는 건가?

어차피 리웨이가 복수를 하는 장면을 직접 봐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을 것 같긴 했다.

우마왕은 김신록을 상대로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으니, 리웨이를 상대로도 입을 열 것 같진 않았다.

‘마침 현무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 남아서 이야기할까. 새로 정보를 얻는다면 호랑이들이 알려 주겠지.’

현무에 이어 백호군도 말했다.

“나도 남는다.”

백호군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할 말이 많은가 보다.

그럼 내가 자리를 비켜 줘야 하는 걸까?

하지만 백호군과 현무가 자연스럽게 나와 문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백호가 남는다면 문제없겠지. 기다리고 있도록.”

황지호는 마치 감시가 없으면 내가 어디 도망갈 것처럼 말했다.

*    *    *

호족을 적으로 돌린 자는 쉬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호족은 사로잡은 적을 ‘나락’으로 불리는 곳으로 끌고 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한다.

나락과 이어진 입구는 은광구 연구동 구역 광림 연구 4관, 은영관의 지하에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은 손님을 맞이하여 특별히 입구를 하나 더 열었다.

황호와 죽호는 황명 타워의 지하에 나락의 임시 입구를 만들었다.

문을 연 황호가 경고했다.

“이 몸에게서 세 걸음 이상 떨어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잘 따라오도록.”

“알겠습니다.”

리웨이가 긴장하여 황호의 뒤를 따랐다.

현재 나락의 임시 입구를 통과하는 길에는 황호, 리웨이, 적호, 김신록이 있었다.

문밖에서 대화하는 동안 말수가 별로 없었던 적호가 물었다.

“황호,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해 봐라.”

“저자와 거래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리웨이는 저 대화 내용이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황호의 의사를 무시하고 거래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족의 수장은 다른 호족들에게 거래 내용을 밝히지 않았나? 내가 거래를 한 대상은 호족 전체가 아니라 수장 한 사람인 건가?’

이 자리에 동행할 정도의 호족이라면 수장이 몹시 신뢰하는 존재일 텐데도 거래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게 이상했다.

거래 내용은 호족이 원할 때 치유 광림을 사용하고, 이를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과연 저게 최측근에게 숨길 만한 내용인지 의문이었다.

황호는 답하는 대신 적호를 약 올렸다.

두 호족이 몹시 친해 보여 리웨이의 의문은 깊어졌다.

“적호, 내가 무슨 거래를 했는지 궁금한가?”

“궁금하니까 물어봤습니다만, 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답을 말해 주지 않아도 되겠군.”

황호는 계속 웃기만 할 뿐 끝내 적호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적호는 호기심과 갑갑함보다는 황호의 태도에 질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거래에 관해 대화하는 내내 수장다운 위엄이 있었다. 하지만 적호라는 호족과 대화할 때는 그냥 평범한 사람 같군.’

만약 리웨이가 없었다면 황호는 처웃으며 적호를 놀렸을 거다.

황호는 나름 자제한 것이었으나 리웨이는 저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놀랐다.

“아들아, 조심히 걷거라. 길이 험하구나.”

“……감사합니다.”

적호는 곧 황호에게서 관심을 떼고 김신록을 챙겼다.

김신록은 여러 번 나락을 들락날락해서 이 장소에 익숙해졌으나, 적호는 어린 아들이 이런 험한 곳에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황호는 적호와 김신록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이 거래의 조건을 사용할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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