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34화 (73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34)

93. 손님 (6)

화르륵!

시작 신호와 동시에 염준열이 홍룡을 소환했다.

스킬로 간을 볼 생각은 없고 바로 광림으로 몰아붙일 생각인가 보다.

염준열이 불러낸 화염의 용은 김신록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싸움을 앞두고 있는데도 매우 호의적으로 보였다.

‘김신록이 광림을 사용하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시작과 동시에 홍룡을 불러내면 김신록도 광림을 사용해 호랑이를 불러낼 거라고 생각했나?

내 생각대로였는지 염준열은 아쉬워하며 말했다.

“광림을 사용하시지 않네요.”

“……제 광림에 관해 아십니까?”

“네, 제건이 형이 알려 주셨거든요.”

대련 상대의 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흘린다는 건 상당히 비상식적인 행동이었지만, 훈련 목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용제건은 왜 김신록의 훈련에 염준열을 불러낸 건지 알고 있는 거다.

‘둘 다 유사한 광림을 지니고 있고, 김신록은 광림을 잘 다루지 못하니 어렵지 않게 짐작했겠지.’

이 훈련의 표면적인 목적은 김신록이 광림을 잘 다룰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용제건이 그건 알아차렸지만, 이 훈련의 진정한 목적까지 알고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염준열은 용제건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자세히 말했다.

“제 광림과 능력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서로 알고 있는 게 공정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또, 제건이 형이 자기가 알려 줬다는 걸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

용제건은 원격으로도 상대의 속을 긁을 수 있구나.

염준열의 말을 듣고도 김신록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용제건이 관전하러 왔다면 염준열과의 대련을 중단하고 압정을 날리러 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도발당해도 김신록은 선공할 마음은 없는지 경계 태세를 갖췄을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렸는데도 정말 선공해 오지 않는군요. 제건이 형 말씀대로예요.”

용제건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김신록의 행동 패턴을 다 읽고 여기까지 예상한 건가.

이 자리에 용족의 수장이 없었다면 김신록은 ‘그 망할 용이 그렇게 말했습니까?’라고 이를 갈며 되받아쳤을 거다.

“제건이 형이 절대 봐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김신록 선생님은 강하다고요.”

화르르륵!

도발을 마친 염준열이 움직였다.

염준열이 부른 화염이 낮게 깔리고 하늘을 나는 홍룡이 김신록의 머리 위로 불을 뿜었다.

두 용이 부른 화염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김신록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솔직하게 정면을 노릴 줄 알았는데, 뒤를 잡을 줄 아는구나.’

염준열의 화염술은 일직선으로 뻗지 않았다.

그 대신 호선을 그리며 김신록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김신록은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

불꽃 너머로 김신록의 신영이 일렁였다.

피잉! 쉬이이익!

화염이 김신록을 삼키기 전, 낮게 몸을 숙인 그가 무언가를 휘둘렀다.

날이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비도(飛刀)였다.

비도가 날카롭게 베어 낸 화염은 힘을 잃고 연기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킬 발현을 저런 무기로 저지했다고?’

보통 투척용으로 쓰는 작은 무기로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백호군이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빙속성 이능 스킬 발현을 목검을 휘둘러 취소한 것과 비슷한 요령인 것 같았다.

과연 백호군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다웠다.

염준열의 불꽃이 지워지자 탄식하던 청룡이 김신록의 손에 들린 비도를 보며 말했다.

“용제건의 호랑이 친구는 아직도 저 비도를 쓰고 있군. 여전히 눈에 띄는 무기를 소지하는 걸 꺼리고 있나?”

“다른 무기를 권해 보았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가.”

청룡은 호족의 사정과 김신록의 선택에 그 이상 개입할 마음이 없는지 다시 말없이 불꽃이 쏟아지는 대련장을 바라봤다.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청룡도 나름 용제건의 친우에게 신경 쓰고 있나 보다.

나는 두 수장이 나눈 대화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웅족의 후예가 호족 사이에서 눈에 띄는 무기를 들고 다니면 경계하겠지. 그래서 김신록은 저 무기를 선택한 건가.’

김신록이 스승인 백호처럼 눈에 띄는 대검을 들고 다니면 호족들이 좋게 볼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김신록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학용품 같은 도구로 고문하고, 품에 금방 감출 수 있는 비도를 사용하는 건가 보다.

화르르륵!

“홍룡의 최대 출력 불꽃까지는 지우시지 못하는군요!”

김신록이 비도를 휘둘렀으나 홍룡이 불러낸 불꽃 기둥 하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염준열이 직접 불러낸 불꽃은 모두 흩어졌으나, 홍룡이 불러낸 것들은 일부 남아 있었다.

염준열은 김신록에게 계속 화염을 쏘며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지우지 못한 불기둥을 하나둘씩 합쳐 큰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홍룡이 의기양양하게 허공에 떠서 거대한 불기둥의 소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룡을 상대하는 건 까다롭겠군요.”

비도를 휘둘러 염준열의 화염술을 지우던 김신록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홍룡이 불꽃을 뿌리는 것을 막기 위해 허공을 향해 비도를 움직였으나, 홍룡은 크기에 비해 날렵하게 몸을 날려 그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비도가 남긴 잔상과 황지호가 친 결계가 부딪쳐 스파크가 몇 차례 터졌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김신록이 불리해진다.

대련장이 불바다가 되어도 용왕신의 가호가 있는 염준열은 무사하겠지만, 김신록은 이능파로 열기와 불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싸워야 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질 것이다.

그렇게 허점을 보이면 염준열이 놓칠 리가 없다.

‘하지만 김신록은 여유가 있어 보여.’

김신록의 움직임을 보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우리 반은 1학년 1반, 2반과 합동으로 전투 연습 수업을 몇 번 했기에 김신록이 싸우는 걸 볼 기회가 있었다.

지금 김신록은 마치 반 아이들의 전투 연습을 봐줄 때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제자를 가르치며 보이던, 소위 봐주면서 싸울 때의 몸놀림이었다.

“홍룡을 좀 더 지켜보고 싶었으나 길게 끌기는 어렵겠군요.”

말을 마친 김신록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늘에 떠 있던 홍룡이 순간 김신록의 모습을 놓친 건지 여기저기 돌리며 그의 위치를 찾았다.

홍룡보다 먼저 김신록을 시야에 담은 건 염준열이었다.

카아앙!

김신록은 이능파를 빠르게 순환시켜 순간적으로 몸을 급가속하여 염준열에게 달려들었다.

김신록의 비도의 날과 염준열의 팔이 닿아 있었다.

찢긴 염준열의 옷 사이로 용의 비늘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염준열이 피하는 게 불가능하단 걸 깨닫고, 몸의 일부를 용의 비늘로 덮어 비도를 막아 낸 것이다.

화르르륵!

홍룡이 둘을 향해 다급히 불꽃을 뿜고 모은 불기둥을 움직여 둘에게 부딪치려 했다.

어차피 염준열은 불에 닿아도 타지 않으니 화염으로 삼켜 버리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으윽…….”

김신록은 체술에도 능한 건지, 염준열이 비도를 막기 위해 들어 올린 팔을 뒤로 꺾고 제압해 버렸다.

몸을 틀어 염준열의 뒤에 위치한 김신록은 화염으로부터 몸을 숨기고, 동시에 염준열의 목덜미에 비도를 가져갔다.

염준열은 비도 끝에 자리 잡은 목의 피부를 비늘로 덮었지만, 이는 소용 없었다.

“저는 용의 비늘 틈 사이를 어떻게 노려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용제건의 친우로 있어서 비늘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던 걸까.

김신록이 비도의 끝을 놀려 틈이 없어 보이던 비늘 사이를 솜씨 좋게 파고들었다.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피부로 칼날의 선뜩한 감각을 느낀 건지 염준열이 숨을 얕게 뱉었다.

청룡은 당장이라도 저 비도를 치워 버리고 염준열을 끌고 나오고 싶은 건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마 상대가 오랜 시간 믿고 지낸 김신록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 같다.

‘염준열은 우수하지만, 김신록이 더 강해. 홍룡 관찰을 위해 많이 봐주면서 한 것 같은데, 경험과 역량 차가 너무 커.’

염준열은 마지막까지 화염술의 파생 스킬인 원격 점화를 사용하는 등, 최선을 다해 저항하였다.

그러나 곧 모든 수가 막힌 것을 깨닫고 패배를 인정했다.

“제가 졌습니다.”

염준열이 패배를 인정하며 홍룡의 소환을 해제하였다.

그 패배의 말이 떨어지자 김신록은 곧바로 비도를 거두었다.

비도를 어떻게 감춘 건지, 겉으로 볼 때는 어디로 무기가 사라졌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준열아!”

대련이 끝나자마자 청룡이 날아갈 듯이 염준열을 향해 뛰어갔다.

염준열은 김신록에게 붙잡히고 꺾였던 팔이 저린 건지 손을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였으나 그것 외에는 부상이 없었다.

부상은 없었다지만 이능파의 소모도 있고, 몸 여기저기가 불편할 텐데 염준열은 졌다는 사실을 더 아프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염준열은 의연하게 자신을 걱정하느라 정신없는 청룡을 달랬다.

“청룡 삼촌, 저는 괜찮아요. 걱정하셨을 텐데 저와 했던 약속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조카와의 약속을 어길 리가 없지 않느냐. 나는 네가 인정한 청룡이다.”

“네, 믿고 있었어요.”

염준열은 현명하게도 흥분한 청룡이 개입하지 않도록 사전에 교섭했나 보다.

어쩌면 염준열은 자신이 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야 용제건과 몇천 년 같이 지낸 친우를 약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염준열이 청룡을 달래는 사이, 황지호와 백호군도 김신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백호군은 ‘잘했다.’라고 짧게 칭찬을 했고, 황지호는 염준열이 다치지 않았으며 청룡도 네 탓을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돌려서 전하고 있었다.

대련은 무사히 끝났지만, 목적은 전혀 성취되지 않았다.

‘김신록은 광림을 사용하지 않아도 강해. 어지간한 힘으로는 김신록의 광림을 이끌어 낼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염준열이 광림을 사용하는 강좌를 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예상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나도 나서야 할 것 같다.

‘이래서 용제건이 오길 바란 건데.’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노릇이니 차라리 잘된 걸까.

청룡도 다음 달 용궁에 갈 예정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같이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 미리 밝혀 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염준열 선배님의 이능파가 안정되면 한 번 더 대련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제안에 염준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김신록도 마지못해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황지호는 내게 무슨 의도가 있는 걸 알아차린 건지 흥미진진해하며 웃었다.

청룡은 의아해했다.

“우리 준열이는 대단히 우수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아이지만, 용제건의 친구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고 긴 세월 갈고닦아 온 기술을 갖고 있는 아이일세.”

청룡의 말을 해석하면 둘의 힘 차이가 크니 또 싸워 봤자 의미가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일단 내가 용족의 은인 비슷한 입장에 있으니 나름 말을 골라서 유하게 거절하는 것 같았다.

“네, 김신록 선생님은 강해요. 그래서 이번엔 선생님께서 용을 둘 상대하셨으면 

해요.”

“나도 가세하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쪽이 너무…….”

“가세하는 건 저예요.”

청룡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끔벅였다.

염준열은 단박에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뜨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도 홍룡을 불러 염준열 선배님과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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