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43화 (74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43)

94. 용반호거 (5)

용왕신의 무녀 후보생은 총 세 명이다.

윤여랑은 그중 하나로, 가장 강력한 무녀 후보생이다.

플마고에서 윤여랑은 17세가 되자 꿈에서 용왕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용궁에 강림한 용왕신이 가짜임을 꿰뚫어 보았다.

윤여랑은 그 우수함 탓에 경계당하고, 신뢰를 사지 못했다.

결국 무녀로 뽑히지도 못했고 흑막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그 확인이라는 건 조의신이 무녀 후보생의 소집을 앞당긴 것과 관계가 있나?”

“그렇겠죠. 윤여랑은 진짜 용왕신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생이니까요.”

“용왕신과 관련이 있는 사안인가 보군.”

황호의 질문에 답한 후, 은호가 내게 물었다.

“의신이 형, 용왕신이 윤여랑에게 어떤 계시를 내린 건지 알고 계신가요?”

은호가 천성헌이었을 때, 플마고를 조금 플레이하긴 했으나 세세한 부분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은호는 엔딩을 보긴 했지만, 나처럼 여러 차례 리플레이하거나 공략을 위해 영상을 찍어 플레이를 검토하고 설정집을 확인하진 않았을 테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은호의 질문에 답했다.

“그것까지는 나오지 않았어. 내가 윤여랑에 관해 알고 있는 건 저번에 브리핑한 게 전부야.”

“윤여랑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였고, 용궁 시나리오에서 처음 등장해 중요한 역할을 맡았죠. 그런데 정보가 그것밖에 없다고요?”

“응.”

“…….”

은호는 그 이상 말을 얹지 않았고,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플마고를 좋게 생각할 것 같진 않았다.

그때 나를 비롯한 얼마 남지 않은 유저들도 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플마고는 역시나 망겜이라고 한탄했다.

윤여랑이 등장했다가 퇴장한 시점은 콘크리트 붕괴 사건 이후, 염준열의 등장 이전이라 유저층이 한창 줄어들었을 때였다.

용궁 시나리오의 허무함과 답답함은 그 혹독한 시절을 버텼던 이들조차 깔 정도였다.

“사전에 윤여랑과 접촉해 보는 것도 생각해 봤어. 하지만 윤여랑은 솔직한 성격이라 정보가 쉽게 새어 나갈 가능성이 커.”

윤여랑은 용왕신의 무녀 후보생으로 선정된 것을 제외하면 놀라울 정도로 평탄하게 살아왔다.

윤여랑은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고 은광고에 진학할 정도로 우수했으며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무녀 후보생으로 선정되긴 했으나 윤여랑은 그저 자신이 특별한 이능을 얻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은광고를 목표로 공부하느라 자신보다 뛰어난 동년배 플레이어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윤여랑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르고, 그 힘을 감추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래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윤여랑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이 배신자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그랬다가는 배신자들이 더욱 집요하게 윤여랑을 노리겠지.’

배신자들이 윤여랑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건 무녀 선정 시험을 치를 때부터다.

그 경계심이 살의로 바뀌는 건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였다.

마지막 시험에선 용궁 깊은 곳으로 향해 강림한 용왕신을 직접 마주하여 시를 발표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윤여랑은 그 용왕신이 가짜라 선언했다.

‘적어도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는 윤여랑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

윤여랑은 막 17세가 되었으니 지금쯤 꿈에서 용왕신을 만나고 있을 거다.

용족이나 무녀들이 알면 경악할 만한 사실이지만 윤여랑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직 그 사실이 퍼지지 않았을 테니 윤여랑은 안전할 거다.

“용족의 배신자는 흑막과 손을 잡고 있어. 용궁이 아닌 이곳에서 윤여랑과 접촉하면, 흑막의 세력이 노리겠지.”

그렇게 되면 흑막이 내가 모르는 진족이나 플레이어를 움직여 윤여랑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손을 뻗을 가능성도 있다.

윤여랑 주변을 철저하게 경호한다면 막을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변수가 크게 늘어나 불필요한 교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윤여랑과의 접촉은 외부와 단절된 용궁에서 하고 싶었다.

“윤여랑과 접촉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무녀를 앞당겨 부르신 거군요.”

“맞아. 용궁 밖에서 만나면 경계해야 할 것이 늘어나니까.”

“그렇군요. 의신이 형의 생각대로 용궁에서 윤여랑과 만나는 게 좋겠어요.”

은호가 수긍했다.

은호는 화제를 바꿔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적호에게 물었다.

“적호 님과 용제건이 용궁에 갔을 때, 용왕신은 부재중이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황룡은 그것을 두고 뭐라고 했죠?”

적호의 말에 의하면 용제건이 아무리 용왕신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용제건은 용왕신의 총아로 불릴 만큼 큰 은혜와 사랑을 받는 용으로, 용왕신이 그의 부름을 무시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룡은 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황룡은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용궁은 인간계와 신계의 경계로 신의 세계와 몹시 가깝지만 온전히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용왕신이 경계 주변에서 잠시 자리를 비워 용제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여기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용왕신이 올 테니 그때 만나면 될 거라고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황룡은 용족을 배신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배신자에게 도움을 준 꼴이 되었다.

플마고 속의 황룡은 가짜 용왕신을 구분하지 못했다.

황룡이 만약 용왕신의 진위를 구분할 수 있었다면 그 시나리오는 많이 달라졌을 거다.

‘아마 배신자들이 황룡에게도 손을 썼을 가능성이 커.’

황룡은 용족 중에서 가장 용왕신을 따르는 용이다.

자유를 버리고 용궁에서의 삶을 택했을 정도다.

윤여랑이 매우 뛰어난 무녀 후보생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그녀가 알아본 걸 오랜 기간 용왕신 곁을 지켜 온 황룡이 알지 못했다는 건 이상했다.

아마 배신자가 황룡의 눈을 가리기 위해 무슨 짓을 했을 것이다.

“의신이 형은 배신자가 황룡에게 무언가를 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죠.”

“응.”

“그래서 황룡에게 배신자의 존재에 관해 언급을 삼가도록 한 거고요.”

황룡은 아직 배신자의 존재에 관해 모른다.

용궁에 배신자가 있고, 그 배신자가 황룡의 눈을 속일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게 되면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룡에게는 청룡이나 용제건이 용궁에 머무는 상황에서 배신자의 존재를 알리는 게 좋을 거다.

청룡은 당장이라도 배신자의 존재에 관해 황룡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내가 설득하자 납득해 주었다.

“그렇다면 용왕신의 부재가 언제부터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없겠군요. 황룡에게도, 무녀에게도 물어볼 수 없으니까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용왕신이 언제부터 자리를 비운 건지는 알 수 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용왕신을 목격한 자는 나일지도 모른다.

“용궁에서 만난 건 아니지만, 용왕신과 이야기한 적이 있어.”

“뭐라고?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황지호가 황유호의 모습으로 코코넛 샤베트를 먹다가 급히 멈추고 물었다.

잘 먹던 것을 멈추고 저러니 안쓰러운 마음에 바로 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붉은 사자 팀 빌딩에 방문하여 무녀들로부터 치료를 받았을 때야.”

그 당시, 운명력이 발동하여 용왕신이 나타났다.

용왕신은 카드모스가 용제건과 염준열을 노린 건을 두고 내게 감사를 표했다.

‘염준열을 속상하게 했다고 한마디 하기도 했지.’

제자한테 못 볼 걸 보여 준 건 미안한 일이었다.

또, 용왕신은 용궁의 출입을 허락한다는 의미에서 내게 용왕신의 비늘이 들어간 구슬을 건넸다.

“그때 용궁의 출입 허가증을 얻었을 때 용왕신을 직접 만났나 보군. 3자의 손을 거쳐 받은 게 아니라 직접 받았던 건가.”

“의신이 형,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 하시는 건가요.”

용왕신과 대화한 적이 있다는 걸 밝히자 황지호와 은호가 뭐라 한 소리 했다.

혹시 ‘그 단어’를 사용해 가며 뭐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말은 듣지 않았다.

운명력에 대해서 밝힐 수 없기에 말하지 않은 사건이 많은데, 나중에 그걸 다 밝히면 ‘그 단어’의 세례를 받는 건 아닐까?

앞으로도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상위 존재와 마주치고도 무사히 돌아온 건 다행이군.”

“용왕신의 부재 시기를 좁힐 수 있는 것도요.”

황지호와 은호는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다.

이 세계에 와서 상위 존재를 여럿 만났는데, 내 생각보다 그게 엄청난 일인가 보다.

“그렇다면 그 시기에 무녀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게 좋겠군요.”

“청룡에게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확인해 달라고 했어.”

“이쪽에 넘긴 정보가 없는 걸 보니 별다른 사항을 찾지 못했나 보군요.”

그 뒤로도 대화가 이어졌다.

대부분 사전에 수립한 계획을 재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이 자리에 용족이 없었기에 확인이 가능한 내용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호족에게 있어 낯선 장소에서 벌어질 사건이었기에 시뮬레이션하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이만 쉬는 게 좋겠어요. 용궁은 먼 곳이니까요.”

은호의 말을 끝으로 지상에서 한 마지막 작전 회의가 끝났다.

*    *    *

붉은 사자 팀 빌딩의 최상층, 염방열의 집무실.

용궁행 전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 몇몇 간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청룡의 힘이 벽과 천장, 바닥을 덮고 나서야 용제건이 입을 열었다.

“황룡은?”

“잘 지내고 있더군. 항상 주변에 무녀가 있었다.”

청룡이 표정을 흐리며 말했다.

용궁에는 오간색을 상징하는 용왕신의 무녀 외에도 무녀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들을 존중해 무녀라고 부르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정식 무녀가 아닌 탈락자들이었다.

역대 무녀 계승식에서 탈락한 이들 중 용궁에 남아 황룡을 돕는 것을 택한 이들은 정식 무녀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특히 최고참인 유황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전부 알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등 꽤 가까운 관계였다.

유황이 배신자이니 그녀와 가까운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저번에 황룡을 만나러 갔을 때, 힌트라도 주는 게 좋았으려나? 하지만 그때에도 무녀의 눈이 많았어.”

“감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은인의 말대로 우리가 갈 때까지 함구하는 게 좋겠지.”

그들을 가족처럼 여겼을 때에는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가족이 곁에 있다고 해서 의심이나 위화감을 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나니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다.

뿌리 깊게 박힌 의심은 깊이 파고들어 먼 옛날 그들이 한 선택에까지 미쳤다.

“애초에 용왕신에게 선택받지 못했던 그들은 왜 용궁에 남겠다고 한 것인가.”

황룡은 용왕신을 위해 용궁에 남았다.

용궁은 아름답고 윤택한 곳이었으나 자유를 버리고 살아야 했다.

이능파로 인해 외부와 통신이 가능하다고 하나 쉽게 육지를 오고 갈 수는 없다.

외부와 단절된 채, 해저에 머무는 삶을 택하는 이유는 오로지 용왕신과 용족을 위해서다.

“용왕신께서는 자신을 따르고, 용족을 위하는 자를 선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신자가 있다는 건, 얼마든지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청룡은 용왕신이 선택한 무녀들을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붕괴하자 의문이 생겼다.

“용왕신이 부재한 것도 필시 무녀들의 배신과 관련이 있을 터. 무녀들은 용왕신께 무슨 무고한 짓을 저지른 것인가. 그렇게까지 하여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가!”

그 자리에 있는 용족들 대부분은 답을 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무녀들이 배신할 만한 이유가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인간의 수많은 욕망과 소원을 직접 접해 온 용제건은 답이 짐작 가는지 씨익 웃고 있었다.

“무녀도, 후보생도 인간이었잖아. 우리들 곁에 오래 있다 보면 탐이 나는 게 생기겠지.”

용제건은 그 자리에 있는 인간 대표인 염방열을 향해 짓궂게 웃었다.

염방열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용제건의 의도를 파악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염방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배신자들이 원하는 건…….”

염방열의 대답을 들은 용족들이 침묵했다.

염방열이 입에 담은 것은 인간이 무모하고 무엄한 짓을 하며 과욕을 부릴 만한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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