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48화 (74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48)

95. 도룡지기 (2)

무녀 후보생들은 나와 같은 방법으로 용궁에 오지 않는다.

그들은 중국 쪽에 있는 입구를 경유해서 용궁으로 온다.

황룡이 관리한다는 중국 쪽 용궁 입구 역시 전이의 형태로 발동하지만, 내가 경유한 길보다 안정적이라고 한다.

전이 과정에서 받은 충격을 고려하면 나도 그쪽을 통해 이동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었으나 아쉽게도 나는 그쪽 길을 이용할 수 없었다.

나는 무녀 후보생이 아니었으니까.

‘그 길을 통과하는 것도 무녀 시험의 일환이라고 했지.’

그곳은 용왕신의 선택을 받은 무녀 후보생과 용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입구다.

누군가가 용왕신의 뜻을 어기고 사의로 후보생을 골라 용궁에 보내 버리거나, 착오로 뽑힌 후보생이 용궁에 오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 시험이 있는데도 흑막 측에선 가짜 후보생을 끼워 넣었다.

‘그 가짜는 지금쯤이면 행동 불능 상태가 되어 입구 쪽에 쓰러져 있을 거야.’

안 될 걸 알면서도 왜 그런 짓을 하는가.

플마고에서 무녀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녀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가 갔다.

특히, 배신자 중에 유황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더욱 납득이 갔다.

무의미한 짓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저 짓은 유의미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이대로 가면 순조롭게 이번 무녀 후보생 시험의 권위가 뒤흔들리고, 새 무녀를 뽑는 건 뒤로 미루겠지.’

시험 중 불미스러운 일이 잦고, 용족들이 무녀 후보생들의 자질에 의심을 품은 결과.

플마고 속에선 이번 무녀 후보생 후보 시험이 무효가 되어 모든 후보생이 탈락하게 된다.

그렇게 시험이 무효가 되어 새 무녀는 탄생하지 않았다.

덤으로 가장 강력한 후보생이었던 윤여랑의 제거까지 성공했다.

‘그렇게 되면 유황은 은퇴하지 않고 좀 더 무녀로 지낼 수 있게 돼.’

그리고 플마고 속의 유황이 무녀직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

염준열을 죽이는 데에 성공하고 용왕신의 가호까지 거둬 복수 중인 용족과 붉은 사자의 뒤통수를 쳐 주요 전력을 괴멸시킨다.

배신에 성공한 이후에 무녀가 무엇을 했는지는 플마고에 나오지 않는다.

비록 확실히 나오지는 않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을 갖췄으니 원하는 바를 달성했을 거라고 추측된다.

“묵을 곳은 확인하고 왔나? 손님을 번거롭게 만들어 미안하군.”

황룡궁 앞.

황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룡 뒤에는 무녀 후보생 세 명이 서 있었다.

그 셋 중에는 윤여랑도 있었다.

다른 후보생 두 명은 몹시 긴장한 데다 멀미를 일으켜 비틀거리고 있는데, 윤여랑은 호기심이 넘치는 얼굴로 용궁을 둘러보고 있었다.

‘역대 가장 강력한 무녀가 될 예정이었던 후보생답구나.’

윤여랑에 관해서도 설명해 두었기에 호랑이 손님 일행은 후보생들 중 그녀를 가장 주목하는 것 같았다.

내가 미리 말하지 않았더라도 가장 활기차 보이는 윤여랑에게 주목했을 것 같다.

용제건 역시 후보생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괜찮아. 후보생 얼굴을 보고 싶었거든.”

“용제건, 네가 아니라 손님에게 한 말이었다.”

용제건이 손님을 대표해 멋대로 답하자 황룡이 웃었다.

비슷한 디자인의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격 없이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형제 같다.

둘의 기원을 생각하면 같은 용이라도 형제라고 하긴 어렵지만, 백호군과 은호도 피가 이어진 형제는 아니니 그와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운룡(雲龍)의 태도를 보니 이동 중에도 꽤 까분 모양이구나. 손님이 온 게 그렇게 좋더냐.”

“응, 좋아.”

구름을 탄 황룡의 권속, 운룡이 용제건에게 구름 조각을 툭툭 던져 댔다.

이능파가 실리지 않은 탓에 운룡이 던지는 구름은 솜털이나 다름없어서 용제건은 실실 웃기만 했다.

황룡이 용제건과 잡담을 나누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용을 앞에 두고 긴장했던 무녀 후보생들이 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나 보다.

의도한 걸까?

황룡은 용제건 사용법을 잘 아는 듯하다.

무녀 후보생들이 안정을 되찾자 황룡이 말했다.

“이번 무녀 선정 시험은 청룡의 제안으로 길게 진행된다. 이번에 선발될 무녀는 ‘유황’의 이름을 이을 예정으로, 용족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무녀다. 그런 무녀의 자리를 대신할 이를 뽑는 자리이니 청룡이 신중을 기하고 싶다더군. 나도 동의했다.”

청룡은 후보생들의 소집 시기를 일주일 당긴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나 보다.

전부 맞는 말이니 무녀들이 저걸 들어도 의심을 갖진 않을 것이다.

일이 정말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지만.

‘유황이 언제부터 배신을 꾀했는지 모르겠지만, 플마고에선 최후의 비수를 꽂는 순간까지 배신을 숨겼어. 상당한 심력의 소유자겠지.’

황룡은 후보생들과 손님 사이에 서서 말했다.

“체재 기간 동안 후보생과 손님들이 얼굴을 마주칠 일이 많을 테니 지금 소개해 두겠다.”

황룡은 차례로 소개했다.

내 차례가 된 순간, 윤여랑이 나를 알아보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윤여랑은 은광고에 입학시험을 치르러 왔다가 길을 잃어 나와 김유리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나보다 김유리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기에 나를 잊었을 가능성을 고려했는데, 기억해 주고 있었나 보다.

황룡의 중개로 소개를 마치자 윤여랑이 바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은광고에서 길 안내해 주셨던 의신이 오빠 맞죠? 제가 길은 잊어도 사람 얼굴, 특히 선배 얼굴은 안 잊어요!”

“그래, 맞아. 선배라고 부르는 걸 보니 합격했구나.”

“네! 이제 오빠 대신 선배님이라고 부를게요. 아, 합격 소식 받고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광림을 얻고 나서 정신이 없어서요. 유리 언니한테도 나중에 잊지 말고 연락해야겠어요.”

윤여랑은 붙임성 있게 대화를 이었다.

광림을 얻고 나서 정신이 없어 연락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은 흔한 인사치레나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윤여랑은 정말로 정신이 없었을 거다.

‘윤여랑의 광림은 잘 다루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해. 게다가 광림을 얻었을 때부터 용왕신이 접촉해 왔을 테니 정말 정신이 없었겠지.’

한편, 내가 윤여랑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후보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황룡과 용제건이 말을 붙였다.

용제건의 농간에 의해 김신록도 말을 한마디씩 거들고, 적호는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봤다.

짧은 대화가 끝날 때쯤, 용궁 밖 바닷물이 크게 흔들렸다.

휘이이이……!

이능파가 피부가 따가워질 정도로 크게 요동쳤다.

대부분 반사적으로 이능파를 끌어올려 방어했지만, 윤여랑을 제외한 무녀 후보생들이 숨을 헉 들이켜며 당황할 뿐이었다.

황룡이 손을 크게 들어 올리자 황색의 구름이 솟아올라 이능파의 소용돌이를 둘러싸 주변이 안정되었다.

슈우우…….

이능파의 격류가 가라앉자 구름 너머로 그림자가 여러 개 보였다.

가장 앞에 서 있는 건 청룡이었다.

“도착했군.”

청룡 뒤에는 용족 다섯 명과 용왕신의 무녀들이 있었다.

한반도에 상주하던 용족 중 이 자리에 온 용은 청룡, 용제건을 포함해 일곱 명.

많은 숫자가 아니었으나 스무 명 남짓한 용족 중에서 이만큼 온 거면 적지 않았다.

‘염준열이 온 것도 아닌데 설날을 앞두고 너무 많이 오면 의심을 사겠지. 이 정도의 숫자도 아슬아슬하다고 했어.’

도착한 용족들과 무녀들을 본 황룡이 환영 인사를 했다.

“어서 와라. 기다리고 있었다.”

용궁에 올 예정이던 이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것으로 모든 수의 배치는 끝났다.

*    *    *

붉은 사자 팀 빌딩.

오전 스케줄을 마치고 염준열이 귀가했다.

염준열이 도착할 시간이 되자 남아 있던 용족들과 붉은 사자 팀원들이 하나둘 현관에 모였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준열아.”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할머니. 청룡 삼촌은 용궁에 잘 도착하셨나요?”

“그렇겠지. 방금 도착했을 거다. 전이 과정에 이상은 없었단다.”

촉룡의 답변을 들으며 염준열은 안심했지만, 아쉬움도 느꼈다.

이번 용궁행에는 곧 승천할지도 모르는 용제건과 후배이자 스승님인 조의신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배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염준열은 사실 함께 용궁에 가고 싶었지만, 가겠다고 투정을 부리지는 않았다.

많은 이들이 불꽃의 용을 다루는 염준열이 바닷속에 가는 걸 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의신이 용궁에 동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던 탓도 있었다.

‘제건이 형이 의신이를 멋대로 끌고 갔다고 했지. 그건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정말 그것뿐일까?’

무슨 사건이 벌어진다면 염준열을 지키느라 누군가가 다칠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염준열은 용궁행을 완전히 포기했다.

‘용궁에 가고 싶다면 다들 걱정하지 않을 만큼 강해져야 해.’

염준열은 조의신, 김신록과 했던 훈련을 떠올렸다.

김신록은 물론이고, 조의신에 비해 염준열은 약했다.

조의신과 팀을 맺고 싸우다 보니 더욱 확실히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김신록은 약한 쪽인 염준열을 더욱 집요하게 노렸다.

‘의신이는 내 힘만을 썼는데도 그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정확히 말하면 조의신은 호족의 힘도 썼지만, 호족의 힘으로 김신록을 멈추게 하기만 할 뿐이었다.

어떤 호족인지 몰라도 조의신은 그 호족이 가진 전투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 힘을 쓸 수 있으니까 괜찮아! 좀 더 연습해서 그걸 잘 다루게 된다면…….’

염준열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웃으며 용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준열아, 오후에 또 스케줄이 있다고 했지?”

“네, 설날을 앞두고 있어서 한복 화보와 명절 인사 촬영 예정이 많이 잡혔어요.”

염준열이 용궁에 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바쁜 스케줄 탓이었다.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난 염준열은 여러 그룹으로부터 생일 서포트를 받아 팬들에게 서포트 인증과 감사 인사를 올려야 했고,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낸 이들에게도 답례해야 했다.

또한, 설날을 앞둬 여러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했다.

매년 생일과 설날은 비슷한 시기에 있어 늘 이렇게 바빴다.

“그래, 오후 스케줄의 경호를 새로 뽑아야겠구나.”

“네? 오전에 담당하셨던 분들이 계속 맡는 게 아니라요?”

“바쁠 때일수록 안전에 만전을 더해야지.”

오전에 염준열 경호를 담당한 이들은 아쉬운 티를 대놓고 내면서도 순순히 촉룡의 말에 따랐다.

촉룡은 스케줄 시작 직전에 경호를 뽑을 생각인지 후보 명단을 확인할 뿐, 바로 선정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신중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두고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염준열은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이번 무녀 후보생 선정 시험은 길게 진행될 거라고 했고, 용궁에 용족분들이 많이 가셔서 걱정하시는 건가.’

염준열이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덥석’ 하고 무언가가 염준열의 팔을 빠르게 움켜쥐었다.

촉룡이었다.

“준열아, 어디 가니?”

염준열은 조금 놀랐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드럽게 답했다.

“……어머니께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그렇구나, 우리 준열이는 정말 착한 효자야.”

촉룡은 평소대로 다정한 말을 했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염준열이 무시하려던 위화감과 의문이 자꾸 깊어졌다.

촉룡이 한마디 덧붙였다.

“외할머니랑 같이 만나러 가자꾸나.”

촉룡의 말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마치 빌딩 안에서도 경호가 따라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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