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60)
96. 오룡쟁주 (3)
두 번째 시험 결과, 세 명 전원 꽃을 피워 내는 데에 성공했다.
활짝 피어난 세 송이의 꽃을 받아 든 황룡이 선언했다.
“고생 많았다. 세 번째 시험은 내일, 정월 초하룻날에 치른다.”
본래 플마고에서는 시험이 정월 초하룻날에 모두 끝났지만, 이번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은 오늘 치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험은 내일 치르게 되었다.
‘두 번째 시험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용왕신의 무녀에게는 치유의 힘이 있다.
치유 스킬을 가진 무녀들도 있고, 설령 스킬이 없다 해도 무녀들이 힘을 모으면 치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용왕신의 무녀들이 나에게 치유의 힘을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용왕신의 무녀들이 같이 노래를 불러 치유의 힘을 발휘했다.
‘이번 시험은 윤여랑에게는 좀 어려웠겠지. 다른 후보생들은 치유 스킬이 있던 것 같은데…….’
윤여랑에게는 치유 이능이 없다.
하지만 용궁은 용왕신의 힘이 충만한 곳이고, 과제로 부여받은 시든 꽃은 용궁에서 자란 특별한 꽃이었다.
그 꽃은 용왕신의 무녀로서의 재능이 있다면 얼마든지 살려 낼 수 있었다.
‘그 꽃은 무녀들이 수작을 부려서 이무기의 힘에 당한 상태였지만, 이곳에서 벽사 의식을 세 번이나 했으니까.’
황룡에게 확인했을 때, 두 번째 시험에서 사용하는 시든 꽃은 황운호 주변에서 선택한다고 들었다.
첫 번째 시험을 마친 후, 다른 꽃에게 영양을 빼앗겨 시든 꽃 세 송이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시험도 황운호에서 치르니, 그때 벽사 의식을 하면 꽃에도 영향이 가리라 생각한 것이다.
얕은 수였지만 나름의 계산 결과였다.
‘만약 두 번째 시험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첫 번째 시험에서 훌륭한 결과를 내고, 세 번째 시험도 성공하면 유황이 이번 계승식을 무효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겠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긴 했다.
‘대신 세 번째 시험에서 반드시 손을 쓸 거야.’
플마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 용왕신을 준비하는 것 외의 다른 짓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표적은 윤여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일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곳이 있긴 한데…….’
여태까지 난 손님인 주제에 이것저것 요구한 게 많았다.
이건 내가 직접 가 보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기에 억지로 부탁하기엔 좀 그랬다.
생각을 접고 다른 수나 떠올리려고 할 때였다.
“두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렀는데, 용족의 은인은 아직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나.”
청룡궁에서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방문한 황룡이 말을 걸었다.
황룡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성의를 담아 답했는데 딴생각이 많았던 게 드러났나 보다.
황룡은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소화가 잘 안 된다, 성장에 지장이 온다는 둥 걱정의 말을 던졌다.
‘황룡은 무녀의 일 때문에 힘들 텐데 나를 살피다니.’
황룡은 후보생들이 염려한 것처럼 야위었긴 했지만,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청룡궁을 나서기 전, 황룡은 나에게 말했다.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용족의 은인에게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
“안내하고 싶은 곳요?”
황룡은 내 머릿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내가 죽 생각하고 있던 장소를 입에 담았다.
“용궁과 신의 세계가 이어지는 곳이다.”
* * *
두 번째 시험이 무사히 끝났다.
시험 자체는 아무 일 없이 끝났지만, 그 점이 무녀들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되었다.
특히 이번 시험이 잘못되지 않는다면, 무녀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유황에게 있어선 큰 문제였다.
용족과 손님들이 물러난 황운호 앞, 그곳에 남은 유황은 호수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째서 후보생들이 꽃을 살려 낸 거지?’
이무기의 힘으로 오염된 땅에서 자라다가 시든 꽃이 고작 후보생의 힘으로 치유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무녀가 가진 치유의 능력은 용왕신이 힘을 빌려주어 발동하는 것이다.
용왕신은 지금 용궁 주변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을 텐데, 그들이 꽃의 치유에 성공하는 것은 이상했다.
‘설마 용왕신이 사전에 후보생과 접촉하기라도 했나? 미리 용의 기운을 접했다면 가능할지도…… 아니, 상위 존재를 접하는 건 제아무리 무녀의 재능이 있어도 감당하기 힘들거늘. 정식 무녀도 아닌 이들이 지상에서 용왕신을 만났을 리가.’
후보생 중 윤여랑은 이미 몇 차례나 꿈에서 용왕신을 만났다.
후보생조차 아닌 조의신도 용왕신을 만나 용궁 출입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시험이 치러진 곳은 황운호에서 우수한 후보생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세 차례나 벽사 의식을 해 정화를 마쳤다.
무녀들이 두 번째 시험을 두고 부린 술수는 첫 번째 시험 덕에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그러나 유황은 모르는 사실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도 있었기에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녀 자리에서 내려오는 건 물론, 여의보주의 소원도 얻지 못하게 된다.’
두 번째 시험이 끝나자 유황의 여유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자는 여유가 무너지면 조급함을 드러내 일을 그르치겠지만, 유황은 달랐다.
유황의 정신과 집중력은 몹시 예리해졌다.
‘위화감을 느낀 건 지상에서부터였다. 크리스마스 때부터 경계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지.’
유황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여태까지 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의심스러웠던 점이 적지 않았다.
위험 요소는 더 있었다.
‘그리고 저 윤여랑이라는 후보생이 너무나도 뛰어나다. 어쩌면 세 번째 시험에서 저 후보생이…….’
유황은 면사 뒤에서 자신을 불안한 얼굴로 보는 무녀들의 시선을 느꼈다.
여기서 불안과 불길한 예상에 관해 드러내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뿐이었다.
유황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자꾸나. 내일은 바빠질 거다.”
그렇게 말하며 황운호를 뒤로하는 유황의 옷깃에 무겁게 날갯짓하는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
마치 나비가 유황의 처지를 알고 위로하려 앉은 것처럼 보였다.
유황은 그 나비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삼켰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거늘.’
유황은 나비에게 무언가를 전하듯 작게 속삭인 후, 나비를 날려 보냈다.
나비는 어지러이 움직이며 용궁 안을 돌아다녔다.
나비의 편린이 닿은 땅의 색이 조금 변한 것처럼 보였다.
* * *
지상, 붉은 사자 팀 빌딩 정문.
스케줄을 마친 염준열이 귀가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준열아. 춥지? 얼른 들어와라.”
“날이 많이 춥네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염준열은 홍룡 덕분에 웬만하면 추울 일이 없지만, 외할머니 촉룡의 눈에는 손주가 추워 보였나 보다.
겉옷을 입으면 땀이 날 정도로 난방이 세게 가동 중이라 염준열은 곧장 코트와 장갑을 벗었다.
염준열은 촉룡을 시작으로 마중 나온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로비를 둘러본 염준열은 마중 나올 거라 예상한 인물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아버지가 일찍 귀가하실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자리를 비우셨나요?”
“염방열은 이계 공략 중이다. 희귀도는 높지 않지만 숫자가 많아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더구나.”
“요즘 들어 아버지가 많이 바쁘시네요.”
설날을 앞두고 프로 플레이어 팀들이 바빠지는 건 흔한 일이다.
염방열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바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염준열은 최근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무녀님들이 다 자리를 비워서 경계하는 건가? 아니, 홍이가 시험을 치던 시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청룡 삼촌도 자리를 비워서 그런 걸까?’
염준열의 스케줄 관리나 경호 담당 선정 과정이 더욱 신중해졌다.
심지어 빌딩 내에서도 염준열을 경호하는 이가 생겼다.
빌딩 내에서는 대놓고 경호를 하지는 않았지만, 구실을 붙여 염준열과 함께 행동하려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정보가 전달이 안 되고 있어. 내가 알면 곤란하거나 위험한 일인 거야.’
염준열은 위험한 정보를 전달받을 정도로 자신이 강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정보를 숨기는 이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염준열은 전적으로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들을 믿고 따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지?’
정문 쪽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 경비를 담당하는 붉은 사자 팀원과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누군가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 듯했다.
염준열 외에도 로비에 있는 용족들 모두가 이를 알아챈 건지, 전원 강화 유리 문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럽네요.”
“내가 가 보겠다. 준열아, 너는 안에 있거라.”
“건물 안에 있을게요.”
염준열은 촉룡과 다른 용족과 함께 정문 쪽으로 다가갔으나 말한 대로 문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염준열은 문밖으로 나간 촉룡을 지켜보았다.
밖은 해가 져서 어두웠지만, 조명 덕에 그럭저럭 잘 보였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냐. 소란스러워 편히 쉴 수 없구나.”
촉룡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경비와 불청객의 말다툼을 멈추게 했다.
불청객은 낡은 점퍼를 입은 여성으로 급하게 나온 사람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염준열은 그 불청객을 어디서 본 듯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냐.”
“저, 저…… 용족분이시지요? 청룡 님을 뵙게 해 주세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예요!”
촉룡은 눈을 슥 좁혀 불청객을 응시했다.
눈앞에 있는 불청객은 분명 인간인데, 한눈에 촉룡이 용족임을 꿰뚫어 보았다.
용으로서의 힘을 드러낸 상황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상대는 눈이 좋은 편인 듯했다.
“청룡을 보러 온 거냐? 약속을 하고 온 것 같지 않구나.”
“그, 그게……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불청객은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염준열은 저 불청객이 누군지 알아봤다.
차림새나 표정 등이 염준열의 기억과 많이 달라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말할 때의 버릇 등이 떠오른 덕이었다.
염준열은 촉룡과 약속한 대로 문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 외쳤다.
“외할머니, 제가 저분을 알고 있어요.”
염준열의 목소리를 들은 촉룡의 말투가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촉룡 외에도 불청객을 경계하고 있던 용족들 역시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준열이의 지인이었구나. 그렇다면 왜 준열이가 아니라 청룡을 보겠다고 한 거지?”
“용왕신이나 무녀와 관련된 일 때문에 오신 게 아닐까요?”
염준열의 말에 날이 선 것처럼 날카로운 공기가 흘렀다.
성질이 급한 용족은 무기 아이템 카드를 손에 쥘 정도였다.
매서운 분위기에 절박해 보이던 불청객도 주춤할 정도였다.
‘설마 다들 용왕신이나 무녀와 관련된 일로 경계하고 계셨던 건가?’
염준열은 줄곧 품었던 의문에 답을 얻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불청객의 소개부터 하기로 했다.
“저분은 선대 홍(紅)의 무녀입니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던 날이 길어서 다들 알아보지 못하신 것 같아요.”
불청객의 정체는 선대 홍의 무녀로 몇 년 전, 돌연 용왕신의 무녀 자리에서 내려온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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