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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61화 (76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61)

96. 오룡쟁주 (4)

선대 홍의 무녀를 들이기로 결정하고, 신분을 확인하고, 몸수색을 마쳤을 때에는 어느덧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 되었다.

확인한 결과, 불청객이 선대 홍의 무녀인 건 확실했다.

선대 홍의 무녀를 안으로 들일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들이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대신 무장 해제가 조건으로 붙었는데, 선대 홍의 무녀는 아이템 카드를 하나도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템 없이 이능을 발현할 가능성을 고려해 이능파를 억제하는 구속구를 채우기로 했다.

염준열은 복잡한 심정으로 그 과정을 지켜봤다.

‘아무리 무녀의 힘이 강하더라도 촉룡 외할머니께는 미치지 못할 텐데, 전 무녀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경계하다니…….’

염준열은 선대 홍의 무녀가 양손에 무거운 팔찌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로비 쪽을 둘러 보았다.

티는 잘 나지 않지만, 빌딩 내의 많은 물품이 새로 교체되었다.

동일한 물품으로 교체되었기에 알아보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늘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력이 뛰어난 염준열은 어느 사실을 알아챘다.

무녀들이 선물하거나 손을 댄 물건들이 전부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내가 생각한 가설은 잘못되었나 봐.’

염준열은 무녀들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아주 건전한 가설을 세웠다.

용왕신의 적이 무녀들을 공격했고, 저주를 받았다.

무녀들의 손길이 닿은 물건, 선물 등에 그 여파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무녀들의 마음을 배려해 조용히 교체를 진행했다.

이상이 염준열이 떠올린 내용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무녀들이 적이 된 게 아닐까? 아니, ‘적이 되었다’라기 보다는 ‘적이라는 걸 알아냈다’일 가능성이 커.’

만약 염준열의 가족과 무녀들이 적대하는 상태라면 함구령이 내려진 이유도 납득이 갔다.

염준열은 무녀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중에서도 나이가 같은 현직 홍의 무녀와 사이가 좋았다.

그러니 염준열의 마음을 배려할 겸, 무녀들에게 이쪽이 파악한 바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을 삼간 것이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최근에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자 그간 위화감을 느꼈던 상황들의 답이 나왔다.

염준열이 생각한 가설은 점점 굳어져 슬픔과 경악으로 혼란해졌지만, 염준열은 내색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어. 그래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해. 그동안 내 경호를 하느라 귀중한 전력을 낭비하셨겠지. 그러니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움직여야 해.’

염준열은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선대 홍의 무녀로부터 정보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선대 홍의 무녀는 용족들의 적의 앞에 겁에 질렸지만, 염준열을 상대로는 달랐다.

자신을 알아봐 궁지를 벗어나게 해 준 염준열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연하인 염준열 쪽이 위압감이 덜할 것이다.

염준열은 자신이 개입하는 쪽이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외할머니, 오랜만에 선대 홍의 무녀님을 뵈었으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준열아…….”

촉룡은 조금 망설이다가 눈에 이능파를 머금고 선대 홍의 무녀를 살폈다.

대기 중이던 용족이 촉룡에게 귀엣말을 건네기도 했다.

선대 홍의 무녀가 가진 이능에 관해 보고 받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촉룡이 말했다.

“그럼 외할머니와 같이 이야기를 듣자꾸나.”

“감사합니다. 찬바람을 맞고 오셨으니 따뜻한 음료를 준비할게요.”

“준열이가 주는 거라면 얼음물이라도 달게 마실 거란다.”

염준열과 선대 홍의 무녀가 만나는 자리에는 촉룡 외에도 용족 한 명과 붉은 사자 팀원 한 명이 동행했다.

팀 빌딩 1층에 위치한 접견실이 인원수에 비해 넓어서 그런 건지, 다들 경계를 늦추지 않아서 그런 건지 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염준열은 선대 홍의 무녀가 마실 몫까지 차를 준비했다.

“홍이 누나, 오랜만이에요. 아니, 홍의 무녀를 그만두셨으니 이제 그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겠죠.”

“……편한 대로 불러도 돼.”

선대 홍의 무녀가 잔을 받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목소리는 귀에 익었지만 얼굴은 몇 번 보지 않았기에 사실 염준열에게도 낯설었다.

염준열은 무녀를 그만둔 후에 몇 번 보았던 그녀의 맨얼굴을 떠올리며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보았다.

선대 홍의 무녀는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잘 먹지 못한 듯 마른 데다 피부가 거칠었고, 옷은 매우 낡은 상태였다.

촉룡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지적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용족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았을 것을. 용족은 선대 무녀를 소홀히 대접하지 않는다.”

“그, 저…….”

비록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문전박대당할 뻔하긴 했지만, 촉룡의 말대로였다.

절차를 밟아 만나러 왔다면 이런 대접을 받진 않았을 거다.

선대 홍의 무녀도 그 사실을 잘 아는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염준열은 다정히 말했다.

“누나,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말씀해 주세요.”

“……나한테 일어난 일들은 전부 내 잘못이야.”

“무녀분들이 은퇴하면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용족분들이 돕는다고 들었어요. 용족의 후예인 저도 돕는 게 당연해요.”

염준열의 진심 어린 말에 선대 홍의 무녀가 먹먹한 기분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때, 붉은 사자 팀원이 홀로그램 하나를 켜 촉룡에게 보여 줬다.

염준열에게도 홀로그램이 일부 보였다.

무녀에 관해 조사한 내용이었다.

‘붉은 사자의 정보팀을 움직여 누나에 관해 조사하신 건가?’

길이를 보아하니 정보팀은 지금 당장 조사한 게 아니라 꽤 예전부터 무녀들에 관해 캐 본 듯했다.

빠르게 홀로그램의 내용을 확인한 촉룡이 말했다.

“사기는 속은 피해자 책임이 아니다. 가해자의 잘못이지.”

“네? 사기요?”

염준열이 촉룡의 말에 놀라서 선대 홍의 무녀를 바라봤다.

선대 홍의 무녀는 면목 없어 하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간의 설움이 북받친 건지 무녀가 목멘 소리를 내며 눈물을 쏟았다.

‘사기를 당하셨구나. 우리 쪽에 도움을 청하셨으면 도왔을 텐데…….’

염준열은 오열하는 선대 홍의 무녀를 달랬다.

가족처럼 지내던 예전처럼 그녀를 대하는 염준열 덕에 마음이 놓인 건지, 선대 홍의 무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나는…… 그 사람들의 말대로 하면, 다시 무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선대 홍의 무녀는 이능을 강화시켜 준다는 등의 사기에 당한 듯했다.

선대 홍의 무녀는 다시 무녀가 되기 위해 사기꾼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고 한다.

염준열은 그 사기꾼들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의구심을 품었다.

염준열이 알고 있는 대로라면, 선대 홍의 무녀가 한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촉룡이 이를 지적했다.

“선대 홍의 무녀는 자의로 무녀를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어째서 마음이 바뀐 거지?”

“저는 처음부터 무녀를 그만두고 싶던 게 아니에요!”

선대 홍의 무녀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지만, 저는 유황 무녀님처럼 지혜롭지 못하고, 녹의 무녀님처럼 강하지 않고, 벽의 무녀님처럼 귀가 밝지 못해요. 자의 무녀님처럼 주변과 잘 섞이지도 못하니 용왕신을 위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선대 홍의 무녀는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목이 상한 건지 갈라진 목소리로 혼자 중얼중얼 자신이 무녀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를 읊었다.

본인이 무녀로서 얼마나 부족한지, 그럼에도 무녀로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어리석다며 자신을 실컷 비하했다.

그 말을 듣는 염준열은 아연해졌다.

‘누나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 혼자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닐 거야. 누군가가 저런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 거야.’

선대 홍의 무녀는 가장 뛰어난 무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 또한 결코 아니었다.

염준열은 그녀가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소극적이었지만, 정이 많고 밝은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억 속의 무녀와 지금의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강해지면, 다시 무녀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어쩌면 다른 무녀님들이 저를 용인해 줄지도, 그러면 용궁의 무녀라도 될 수 있을지도 몰라서…….”

선대 홍의 무녀가 독을 토해 내는 것처럼 귀기 어린 말을 쏟는 동안 자리에 동석한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촉룡 조차 말을 아끼고 그녀를 지켜볼 정도였다.

염준열은 조용히 그 말을 듣다가 문득 어느 생각에 미쳤다.

‘만약 무녀들이 적이 된 거라면, 누나를 저렇게 만든 건 무녀들이 아닐까?’

염준열은 선대 홍의 무녀에게 물었다.

“청룡 삼촌을 뵈러 오셨다고 하셨죠.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염준열의 말에 선대 홍의 무녀가 손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에서 빛바랜 조각이 나왔다.

익숙한 이능파가 느껴졌으나 선대 홍의 무녀가 오래 지니고 있던 탓에 제대로 감지하기 어려웠다.

‘용의 비늘?’

잘 보니 용의 비늘처럼 보였지만, 색이 나쁘고 힘도 잘 느껴지지 않아 확신할 수 없었다.

촉룡이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청룡의 비늘과 같은 형태구나.”

“청룡 삼촌이요? 하지만 색도, 힘도 전혀…….”

선대 홍의 무녀가 답했다.

“이건 청룡 님의 비늘이에요! 무녀를 그만둘 때, 무슨 일이 있으면 이걸 보여 주고 만나러 오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청룡의 비늘이 있다면 왜 정문에서 이를 보여 주지 않았던 걸까.

염준열은 한순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비늘의 상태를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비늘 조각을 보고 바로 청룡을 떠올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용궁에 연락할 수 있을까요? 청룡 삼촌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어요.”

“방법이 있다. 맡겨 다오.”

“네, 부탁드려요. 어……?”

비늘의 색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염준열이 눈을 깜빡였다.

염준열이 이를 지적하려 했을 때였다.

삐이이이!

디바이스가 자정을 알린 순간, 경고음이 붉은 사자 팀 빌딩을 뒤흔들었다.

건물 내부에 이계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    *    *

자정을 앞둔 시각, 청룡궁의 청주각.

적호가 창문을 열어 두고 밖을 보고 있었다.

용궁 전체를 감시하듯 밖을 보고 있자니 익숙해진 기척이 가까이 왔다.

청룡이었다.

“자리를 많이 비웠군. 다들 외출 중인가?”

“제 아들과 조의신은 황룡과 행동 중입니다. 용제건은 무녀들을 살피러 갔습니다. 시험 내내 무녀들의 속을 헤집었으니 그들의 반응이 궁금한가 봅니다.”

“용제건은 한결같군.”

용궁에 온 이후로 적호와 청룡은 매우 친해졌다.

서로 팔불출이다 보니 공감대가 금방 형성이 되었고, 청룡이 김신록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다 보니 적호가 몹시 기뻐했던 덕이다.

“그런데 당신은 오늘 황룡궁에 머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음, 청룡궁을 돌아보려고 왔다. 공연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청룡의 안색이 어두웠다.

평소에 이능파를 잘 갈무리하고 있었기에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안광 스킬을 사용해 살펴보니 청룡의 힘이 불안정해 보였다.

적호가 재차 청룡의 상태를 확인하려 한 순간.

쿠웅!

청룡궁 밖에서 굉음이 울렸다.

그 힘의 영향이 청룡궁 안까지 미쳐 바닥이 잘게 떨렸다.

거대한 충돌음은 그 뒤로도 몇 차례 이어졌다.

고요했던 용궁이 힘과 힘이 충돌하는 여파로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움직일 셈인가!’

적호는 제일 먼저 아들의 안위를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아들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적습이 시작된 후에 적호가 할 역할은 따로 있었다.

현재 김신록은 조의신과 황룡과 움직이고 있으니 적호는 아들이 안전할 거라고 되뇌며 자신을 다스렸다.

적호가 침착한 목소리로 청룡에게 말했다.

“용족들의 위치를 확인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후보생들의 안전을 확보하여…… 청룡!”

그러나 적호가 말을 마치기 전, 청룡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적호는 서 있지 못하는 청룡을 붙잡고, 주변을 경계하며 살폈다.

용궁 전체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청룡의 힘으로 청색을 띠던 청룡궁의 색이 점점 변했다.

청룡궁뿐만이 아니었다.

청주각 밖으로 보이는 각 용궁의 색도 변하고 있었다.

오방색이 아닌, 오간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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