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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65화 (76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65)

96. 오룡쟁주 (8)

구름이 사라져 시야가 확보되자 달라진 풍경이 보였다.

방금까지 지하에 있던 김신록은 실외에 있었다.

황룡은 그 둘이 서 있는 바닥의 위치를 최대한 무녀와 떨어뜨리려 했던 것 같았다.

반쯤 유황색으로 물든 바닥은 녹색과 청색이 섞여 있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

용궁이 크게 변화하여 황룡궁 지하 깊은 곳에서 청룡궁으로 이어지는 길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김신록은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상태로 용궁을 이렇게까지 변하게 하다니. 사전에 황룡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면 전이한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김신록이 황룡을 지지한 손에 무게감이 더 느껴졌다.

황룡이 혼자 서 있기 어려울 만큼 힘을 소모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곧 김신록의 손이 가벼워졌다.

황룡이 비틀거리며 억지로 혼자 힘으로 서서 말했다.

“청룡이 걱정되는구나. 가서 네 아버지와 합류해 청룡을 살펴 다오.”

“마치 저 혼자 가라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제대로 들었다.”

김신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황룡은 부드럽게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 유황에게 황룡궁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큰 힘을 사용했으니 황룡은 전력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황룡을 두고 갈 마음은 미진도 없었다.

김신록은 답답한 속을 누르며 가능한 사무적으로 말했다.

“당신을 두고 가면 용족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호족이 나를 용서하지 않겠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 게냐?”

황룡이 되묻자 김신록의 머릿속에 호족 몇몇이 떠올랐다.

낯이 뜨거워질 만큼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 적호와 김신록을 지켜보며 짓궂게 웃는 황호, 말없이 서 있는 백호, 자신을 잘 따르는 은호의 후예들 그리고 최근 호족의 일원이 된 안다인까지.

어쩌면 몇 명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호족 전체로 보면 어떨지는 뻔했다.

김신록은 복잡한 심경을 숨기려 했지만, 황룡은 그 생각을 전부 읽은 것처럼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신록은 청룡궁 쪽을 살필 겸 고개를 돌려 버리며 말했다.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과 같이 갈 겁니다.”

“착한 아이구나. 제건이가 서둘러 승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승천이라는 말에 김신록이 손에 쥐고 있던 비도를 놓칠 뻔했다.

황룡은 김신록의 속을 긁어 일부러 두고 가게 만들려고 용제건의 얘기를 꺼내는 걸까?

그래 봤자 김신록은 황룡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그 망할 유희계 용 탓이라는 생각에 이 자리에 없는 용제건에게 압핀을 던져 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김신록이 목소리에 울화가 섞이려는 걸 꾹 참으며 말했다.

“……그 용이 승천하는 것과 이 상황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텐데, 어째서 눈을 돌리는 게냐.”

황룡의 말에 김신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황룡은 김신록을 보며 여전히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요 며칠간 너와 대화하고 너를 관찰하며 확신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너도 용제건과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을.”

김신록은 황룡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을 지나치게 소모한 바람에 황룡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걸까?

김신록이 그 속을 알 수 없는 유희계 용과 같은 선택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많은 게 다른 둘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이라곤 교사의 길을 골랐다는 것 정도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김신록을 두고 황룡이 어린아이를 어르듯 말했다.

“용제건이 너와 같은 처지이고, 네게 상위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거라. 그랬다면 너도 용제건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을 것이다.”

용제건이 자신과 같은 처지라니.

김신록은 둘의 입장이 바뀌었을 상황을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다.

호족과 용족의 상황은 전혀 다르고, 용제건은 저래 봬도 용왕신의 여의보주인 진족이니 가정 자체를 하지 못했다.

또 유일한 친우가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싫었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황룡이 눈앞에서 저 소리를 하니,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약의 이야기를 자아냈다.

‘그 용이 호족과 웅족의 후예로 태어났다면, 근원으로 이어진 진족으로부터 노려지고 있다면…….’

김신록은 짧은 순간 동안 자신과 황룡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조차 잊었다.

그저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캄캄하고 어두운 상상 끝에 황룡의 말이 떠올랐다.

황룡은 마치 이 만약의 이야기와 용제건의 승천이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황룡의 말 외에도 용제건과 김신록을 두고 한 마디씩 말을 건넨 옛 제자 성국언과 현 제자 안다인도 떠올랐다.

“설마, 그 용은…….”

황룡은 김신록이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김신록은 아직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만큼 정리하지 못했다.

몇 초를 더 기다린 후, 황룡이 말했다.

“무녀들이 움직이지 않는군.”

황룡궁 방향을 보며 황룡이 말했다.

황룡은 김신록의 머릿속을 헤집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녀들을 죽 경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황룡은 큰 힘을 발휘할 만한 여력이 남지 않았고, 황룡궁 일부가 유황에게 장악되어 무녀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아직은 황룡궁 내의 기척을 어렴풋이 감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리고 그건 무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무녀들은 용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지만, 반쯤 손에 넣었다. 길을 헤매더라도 우리가 있는 방향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구나.”

“혹시 무녀들이 추적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황룡은 무녀들이 있을 지하를 내려다보며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나 보구나.”

*    *    *

용궁이 변화한 후, 무녀들 몇몇은 낯선 용궁의 모습에 공황 상태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반쯤 용으로 변한 용왕신의 무녀들이 엄하게 그들을 다그치고, 그들의 힘을 과시하자 무녀들이 진정했다.

“황룡 님이 큰 힘을 쓰셨구나. 오히려 잘된 일이야. 이제 허수아비나 다름없지 않겠느냐? 이무기신의 비늘을 드시지 않아 곤란했던 참이다.”

유황의 말에 무녀들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또, 용족들은 약해졌으나 그에 반해 무녀들은 강해졌다.

용궁의 무녀들은 용왕신의 무녀처럼 용으로 변할 정도로 강해지지는 않았지만, 전신에서 힘이 넘쳤다.

이무기신은 용왕신을 따를 때보다 몇 배의 힘을 그들에게 쏟아부어 줬다.

용기백배한 무녀들이 힘을 움직여 용궁의 상황을 살폈다.

“변한 용궁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 길을 잃어 고립될 수도 있다. 다른 보고를 듣겠다.”

“용궁이 온전히 우리의 색으로 물들지 않았습니다.”

“색이 더 변하지 않는 걸 보니, 황룡 님 말고도 청룡 님도 그걸 먹지 않았구나.”

보고를 받은 유황이 작게 탄식했다.

용이 된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던 벽의 무녀와 자의 무녀가 유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비늘을 먹지 않은 걸 보니, 사전에 저희의 움직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상에 있을 때부터 눈치챘을지도 몰라요.”

“그래…… 내가 지상에서 위화감을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니었나 보구나.”

유황은 일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아 아쉬워하긴 했으나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이를 기민하게 알아챈 녹의 무녀가 웃으며 말했다.

“대비를 하셨군요.”

“물론이란다. 이미 ‘그분’과는 이야기가 되어 있지.”

유황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황룡은 그들을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지하 깊은 곳에 처박았기에 용들의 기척이 멀리 느껴졌다.

그러나 유황의 얼굴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분께서 웅족의 권속들과 호랑이를 잡을 덫을 보내 주신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심해 깊은 곳까지 내려왔을 테니, 어렵지 않게 데려올 수 있다.”

“전이시킬 준비를 하셨군요.”

“그렇다. 미리 곳곳에 진(陣)을 깔아 두었지.”

무녀들은 문답을 주고받으며 원격 전이를 실행할 준비를 했다.

유황의 말대로 그자가 보낸 것들이 용궁 가까이 내려온 상태라면, 그들이 용궁에 왔을 때 사용한 전이의 힘보다 적은 힘으로 그것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용궁의 구조가 바뀌었는데 괜찮겠습니까?”

“용궁의 구조가 바뀌었다지만 결국 그림 맞추기 조각 같은 것 아니겠느냐. 그들이 향할 곳에 있는 조각 위에 전이를 시키면 된다.”

“그들이 향할 곳이라면…….”

“그 아이는 아비가 있는 청룡궁으로 향할 테니, 동쪽 지상에 그것들을 풀어놓으면 된다.”

유황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바삐 움직이는 무녀들의 움직임에 활기가 더욱 넘쳤다.

전이의 준비를 마쳤을 때, 여태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홍의 무녀가 입을 열었다.

“……지상에 있는 용족분들은 괜찮을까요?”

그 말은 마치 지상에 있는 용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그 용족들이 자신들을 해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녀들은 홍의 무녀가 한 말을 후자로 받아들였다.

“지상에는 촉룡 님을 비롯한 용족들과 붉은 사자 팀이 있지요.”

“홍염의 제왕 염방열은 인간 중에서도 강한 플레이어로 꼽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플레이어 협회가…….”

동요가 퍼지려 했으나 다시 유황이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는 약점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유황의 말에 다른 네 명의 무녀들과 달리 여전히 면사를 쓴 홍의 무녀가 벌벌 떨었다.

유황은 홍의 무녀를 달래듯, 협박하듯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미 지상에서도 그 약점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테니.”

*    *    *

붉은 사자 팀 빌딩.

이계가 발생해 비상사태에 빠진 가운데, 빌딩 주변을 밝히는 바깥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꺼진 조명 아래에 그림자가 모여들었다.

“결계 해제는 끝났습니까?”

“용족이 머무는 곳은 12지 동맹의 결계로 지켜지고 있는데, 괜찮은가?”

“뿌리 깊게 심은 거목을 한 번 옮기면 약해지는 법. 용족은 후예를 위해 본거지를 한 번 옮겼다. 용족의 결계는 다른 곳에 비해 약하다.”

가장 앞에 선 이가 담담히 말했다.

“용족은 약해진 결계를 무녀의 힘과 붉은 사자의 무력으로 보충해 왔다. 그리고 지금 붉은 사자의 주전력은 이계 공략으로 자리를 비웠고, 무녀는 그자…… 그분과 한패가 되었다.”

‘그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움찔거렸다.

그들은 얼마 전 그자와의 계약에 의해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대등한 관계로 있을 수 없기에 그자를 그분으로서 존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섬겨야 하는 건 분노의 이라노우스 님 하나뿐이거늘…….”

분노의 이라노우스를 섬기는 마족의 사제 중 하나가 이를 갈았다.

맨 앞에 선 이가 말없이 앞으로 나섰다.

크리스마스이브, 이계 시뮬레이터로 구현한 가든의 지배권을 염준열에게 빼앗겼던 마족이었다.

마족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때의 치욕을 갚아 줄 때가 왔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용족은 끝이다.”

그 말을 하는 습격자의 손에 들린 용살의 전승을 가진 무기, 그람(Gram)이 흐릿한 빛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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