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66화 (76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66)

96. 오룡쟁주 (9)

적룡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과,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소모하게 되었다.

그래도 상위 존재를 만나는 동안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용궁으로 복귀하는 게 그렇게 늦지는 않을 거다.

‘결과적으로 적룡과 협력하는 게 효율적일 거야. 상위 존재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이런 수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적룡, 백룡, 흑룡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힘을 빌려주리라는 건 계산하지 못했기에 득을 본 기분이었다.

세 용이 힘을 끌어올리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정말 신기하네.]

[무엇이 신기하다는 거지?]

[우린 지금 현세에 존재하는 인간과 많은 대화를 했잖아. 대화에 중요한 정보도 많이 담겨 있었고.]

흑룡이 눈가리개를 한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다.

고개를 휙 돌리는 바람에 댕기로 정리한 흑룡의 머리카락이 크게 흔들렸다.

[보통 이 정도로 현세에 간섭하면 힘에 제한이 걸리잖아. 솔직히 좀 걱정했거든?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

[그것도 그런가. 무녀를 통해 현세에 개입하는 것보다 페널티가 적은 것 같군.]

[용왕신께서 용족의 은인을 아주 귀하게 대하라고 하셨잖아. 그냥 은인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던 게 아닐까?]

흑룡의 말에 적룡도 관심을 보였다.

단순히 생각하면 운명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력이 아무리 개사기 이능이라고 해도 결국은 일개 스킬이다.

운명력이 상위 존재와 만날 계기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스킬 하나로 상위 존재가 현세에 개입하는 데에 제한을 두는 절대적인 법칙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냥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이세계 미래 개변 적합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백룡, 용왕신께 뭐 들은 거 없어?]

흑룡이 줄곧 말을 아끼고 있던 백룡에게 물었다.

백룡은 흑룡의 말에 답할 마음이 없는지 몇 차례 무시했지만, 흑룡이 끈질기게 묻자 동문서답 같은 말로 답했다.

[저만한 기량과 특이성 없이 용족의 은인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지.]

[왜 당연한 소리를 해. 용왕신께 뭐 들은 거 없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건 용족의 은인을 캐 보는 게 아닐 텐데.]

흑룡과 백룡이 투닥거렸지만, 힘을 운용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기에 적룡이 이를 방치했다.

적룡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저 두 용은 승천해도 철이 없군.]

그렇긴 한데 대놓고 앞에서 ‘네, 그렇네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 모호하게 웃어넘겼다.

적룡이 이어서 말했다.

[촉룡에게 받은 부탁도 있지 않더냐. 미안하구나.]

“알고 계셨나요?”

[그래.]

어쩌면 처음에 나를 불러낸 것도 촉룡이 했던 부탁과 관련이 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일이 터지기 전에 적룡이 황룡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촉룡의 부탁에 관해 무언가 말했을지도 모른다.

[황룡은 짊어지고 있는 게 많다. 부디 네가 그 짐을 덜어 줬으면 하는구나.]

촉룡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 모르는 척할 생각은 없는데, 이렇게 신신당부하다니.

황룡이 승천한 용들을 그리워하는 만큼 저 용들도 황룡을 아끼나 보다.

용들의 걱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상에서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괜찮을까? 지금 보러가기엔 힘이 모자른데…….]

[지상에는 촉룡이 있다. 잘해 줄 거다.]

[하지만 적은 촉룡이 있는 걸 알고도 쳐들어온 거잖아!]

흑룡과 백룡의 말다툼 주제가 그새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나 현세에 남은 용족들을 걱정하는데, 왜 승천을 한 거지?

김신록을 걱정하면서도 승천하겠다고 하는 용제건도 그렇고 용들이 하는 생각은 다 똑같나 보다.

[문제없을 것 같군.]

백룡이 갑자기 이쪽을 보며 말했다.

[용족의 은인이 괜찮다고 말해 줄 것 같으니까.]

백룡에 이어 다른 두 용의 시선도 내 얼굴로 향했다.

흑룡이 한마디 했다.

[오, 아까 봤던 수상한 표정 짓고 있네.]

*    *    *

붉은 사자 팀 빌딩.

오간색으로 빛나는 손톱만 한 구름 조각을 삼킨 마족의 사제들이 소리 없이 결계를 넘었다.

12지 동맹이 만든 결계의 파훼를 두고 고심했던 게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호족의 결계를 넘기 위해 들였던 수고를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사를 한 번 하는 바람에 결계가 약해졌다고 해도 지나치게 허술하군. 용족이 무녀들을 이리도 믿었을 줄이야.’

돌입 직전, 선봉을 맡은 이라노우스의 사제가 마족들에게 배포한 구름 조각은 무녀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 구름 조각 덕에 12지 결계는 그들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돌입한 후에도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무녀들이 붉은 사자 팀 빌딩의 구조를 사전에 세세하게 전한 덕이었다.

그들은 빌딩 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방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삐이이이이……!

현재 붉은 사자 팀 빌딩 내에 이계가 발생하여 비상경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빌딩 내에 상주 중인 붉은 사자 팀원과 용족들은 이계 공략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시 행동 요령에 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마족들은 그들의 동선을 꿰뚫고 있었다.

환기구를 통해 소리 없이 이동하던 중, 마족들은 아주 잘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소홍룡이다.’

용족의 자랑인 후예 염준열이었다.

염준열은 그자, 아니, 그분이 척결 명령을 내린 대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들이 그자를 그분으로서 모시게 된 원흉이기도 했다.

‘저 애송이 소홍룡에게 이계 지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염준열은 이계 공략에 가담할 마음이 없는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염준열은 남루한 차림의 여성을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숨죽이고 숨어 있는 마족의 존재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염준열을 죽이면 협상의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라노우스의 사제가 용살의 무기, 그람의 손잡이를 굳게 움켜쥐었다.

사제를 따르는 마족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눈알을 굴려 염준열의 움직임을 좇았다.

결정을 내릴 때였다.

‘참아야 한다.’

이라노우스의 사제가 그람을 쥔 손을 뗐다.

이가 갈렸지만, 이번 계획을 그르칠 수 없었다.

작년에 몇 차례 목숨이 노려진 염준열은 엄중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기습이 성공하여 염준열을 죽이더라도 무사히 탈출하고, 다른 목적을 달성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 목표는 염준열이 아니었다.

스으으…….

이라노우스의 사제는 보란 듯이 손가락을 들어 염준열의 뒤를 가리켰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보고를 들으며 이동 중인 촉룡이 있었다.

마족들은 촉룡이 감지하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기척을 한계까지 줄이고 거리를 더 둬야만 했다.

‘소홍룡을 죽일 기회는 또 올 것이다.’

‘이번 계획이 성공하면, 염준열 말고도 다른 용족들을 꾀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저들은 노려지는 건 소홍룡뿐이라고 방심하고 있다. 허를 찔러야 한다.’

마족들은 각자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마음을 달랬다.

염준열을 향한 살의를 억누른 마족들은 계획대로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위로, 다른 하나는 아래로 향했다.

그분은 이번 계획을 지시하며 말했다.

―염준열의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다면, 고정된 타깃을 우선한다.

염준열의 스케줄, 동선, 경호 담당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암살, 납치 등은 어려웠다.

방금은 우연히 마주친 것뿐, 염준열을 잡을 준비는 전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예의 고정된 타깃을 사로잡을 계획을 마친 상태였다.

그 고정된 두 개의 타깃 중 하나는 바로 염준열의 어머니였다.

‘방의 위치, 비상시 발동하는 결계의 수준은 전부 파악했다. 문 앞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

염준열의 어머니는 염준열의 은광고 입학식을 마지막으로 외출한 흔적이 없다.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일은 없었고, 빌딩 내에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녀는 매일 같이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빌딩 안으로 잠입할 수만 있다면 염준열보다 더 노리기 쉬운 타깃이었다.

그분은 타깃에 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그녀 또한 소홍룡 못지않게 용족이 아끼는 후예다. 산 채로 잡아서 인질로 삼는 것도, 죽여서 시체를 미끼로 삼아도 좋겠지.

살려도, 죽여도 되는 타깃이라면 더욱 다루기 쉬워졌다.

마족들은 용족, 특히 염준열을 꾀어내기 위해 그녀를 살리는 편이 향후 유리할 것이라고 여겼으나 그분의 말대로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후예의 시신을 얻기 위해서라면 용족들은 위험하고 무모한 조건에도 응할 테니까.

이윽고 마족들은 타깃이 위치한 플로어에 도달했다.

몇 분, 아니 몇십 초 뒤에는 타깃이 손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화르륵!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공간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빛을 내뿜는 홍염이었다.

홍염과 그 뒤에 선 자를 알아본 마족들이 경악했다.

“이 앞은 내 아내가 머무는 곳인데, 무슨 용건이지?”

마족들의 앞을 가로막은 인물은 붉은 사자의 팀 마스터이자 염준열의 아버지, 타깃의 남편인 염방열이었다.

마족들이 동요를 억누르며 임전태세를 갖췄다.

‘염방열이다! 어떻게 된 거냐, 분명 부재를 확인했다.’

‘붉은 사자의 주전력은 이계 공략 중이었다. 최대 공헌자 중에 염방열의 이름이 뜨기도 했다.’

‘최대 공헌자가 되자마자 귀가하지 않은 이상 여기에 있는 건 말도 안 된다.’

‘소홍룡이 빌딩에 돌아왔을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염방열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의 노림수를 정확히 파악하여 부재를 가장해 이곳에 매복해 있지 않는 한.

“붉은 사자들은 유능한 플레이어들뿐이다. 그 정도의 이계는 얼마든지 나 없이도 제압할 수 있고, 내가 가족을 지키러 갈 시간도 벌어 줄 수도 있지.”

염방열이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주변에 감도는 홍염이 더욱 강렬한 열기를 머금었다.

염방열은 말을 하는 동안 시간을 벌면서 출력을 올리고 있었다.

이를 알아챈 마족들이 신호했다.

“그래 봤자 인간이다. 죽여라!”

마족들이 두건을 벗어던지자 이마에 새겨진 이라노우스의 인장이 빛났다.

분노를 상징하는 인장이 염방열의 홍염 못지않게 붉게 타올랐다.

콰아아앙!

홍염과 인장이 뿜는 빛이 부딪쳐 폭발했다.

폭발을 틈타 마족 둘이 염방열의 목과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매캐한 연기 속, 기세가 죽은 것처럼 가라앉던 홍염이 마족의 접근을 감지하자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몸을 부풀렸다.

화르르륵!

염방열의 몸에 손도 못 댄 채로 마족이 물러나야 했다.

연기가 걷히고 시야가 확보되자 그들은 다시 경악했다.

복도 전체가 홍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글거리는 홍염은 그들이 염방열에게 다가가는 것도, 퇴로를 확보해 도망치는 것도 막고 있었다.

매복한 염방열의 수에 완전히 당했지만, 마족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소홍룡 말고도 다른 후예의 경호를 강화한 모양이군. 우리의 생각이 짧았다.’

‘지하로 간 이들이 있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쪽에서 성공하면, 형세가 역전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염방열은 홍염의 틈 사이로 그들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 인장은 분노의 마신 이라노우스의 것. 하나 그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용살의 무기를 든 자는 지하로 간 건가?”

염방열은 그들의 정체도, 그들의 목적도 전부 알고 있는 듯했다.

마족들의 경악이 점차 의문과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염방열이 그들을 포획하기 위해 홍염을 움직이며 말했다.

“모든 게 은인의 예상대로군.”

*    *    *

붉은 사자 팀 빌딩의 지하.

지하 깊은 곳, 두 번째 타깃을 노리러 간 이라노우스의 사제들은 20대 청년의 모습을 한 진족과 마주했다.

여럿이 그 앞을 지키고 있으리라고 예상했으나 있는 거라곤 진족 한 명뿐이었다.

‘침착해라, 우리에게는 그람이 있다.’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틈을 노려 용살의 무기로 용족을 벤다.’

마족들은 눈앞을 막은 진족의 틈을 노리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은 데다 묘하게도 그람으로는 저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용족이 아닌 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나의 은인은 이자를 우리 쪽에 두는 대신 이곳에 두자고 했지. 왜 그런지 아나?”

‘우리’ 쪽?

그 우리라는 것은 용족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의 은인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또, 마치 저 진족은 자신이 용족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진족의 말이 길어질수록 이라노우스의 사제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한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너희 같은 잡졸을 붙잡을 수를 둔 거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들 주변이 황금의 결계로 뒤덮였다.

결계를 조작하는 진족, 황호의 곱상한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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