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4)
99. 새로운 1학년 0반 (5)
목격담 속 진정묵은 0반 그 자체였다.
입학식이 끝나 뒷정리를 하고 교실로 향하던 곽경구는 무림인과 마주쳤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잠복해 있던 무림인이 뛰어난 보법을 구사하며 곽경구의 앞으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강호 말학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선배에게 배움을 청하오.
진정묵은 검은 죽립을 착용하고 무복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그 모습에 진정묵이 0반이라는 걸 바로 깨닫고 장난질에 대비하던 이들은 어둠의 다크니스라는 단어에 그만 사고가 멈췄다.
―다크…… 뭐라고 한 거임? 내가 잘못 들었음?
―제대로 들은 듯요. 쟤 무림인 콘셉트가 아니었나 봄.
―이제 0반 놈들은 하나의 콘셉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나 봐.
―그런데 작년에도 무림인이 학교에 왔던 적 있지 않았냐. 흑림의 검성 제자가 학교에서 싸웠다고 했는데…….
―혁대에 검과 숲이 그려져 있어. 저거 절흑풍림의 팀 로고야! 쟤가 그 제자인가 봐.
3학년이 될 때까지 수많은 0반의 괴짜들을 본 이들도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냥 평범한 괴짜라 해도 골치가 아픈데, 무려 절흑풍림 팀 마스터의 콘셉트충 제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곽경구가 정신을 차렸다.
―……0반 학생인가? 아무한테나 이렇게 싸움을 걸고 다니나?
―그건 아니오. 철혈쌍검 곽 대협의 명성을 익히 들은바. 마침 곽 대협의 제자이자 아드님인 곽 선배와 같은 학관에서 동문수학하는 사이가 됐으니 가르침을 얻으러 왔소.
철혈쌍검은 천재 검사로 이름난 플레이어, 곽경구의 아버지인 곽 사범의 이명이었다.
비록 진정묵의 옷차림새나 행동은 현대인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지만, 크게 보면 흑림의 검성이 키운 제자가 철혈쌍검의 제자에게 대련을 청한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대련을 피할 방법은 여럿 있었으나 응하지 않는 것도 모양새가 살지 않았다.
―알았다. 대신 대련이 끝나면 바로 교실로 돌아가도록.
―응해 주셔서 감사하오.
곽경구는 그렇게 입학 첫날부터 0반 후배를 상대하게 되었다.
소문은 금방 퍼져서 싸움 구경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우리 반 아이들도 있었다.
목격담을 들은 아이들이 너도나도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오, 그 새끼 싸우는 거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나도.”
“정묵이를 응원하러 가자!”
“그래요, 우리 반 아이가 혼자 싸우게 할 수는 없어요!”
맹효돈과 한이는 진정묵의 무력을 확인하러, 권레나와 사월세음은 응원이 목적이었다.
이미 반의 의견이 과반수로 기울어져 있었다.
“음, 그럼 다 같이 가자! 시간이 되기 전에 돌아가면 늦지 않겠지.”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전원 문제의 장소로 향했다.
입학식이 끝난 상인관 앞 운동장.
은광고 종합 게시판을 통해 소식을 접한 2, 3학년들과 사진을 찍느라 오래 남았다가 얼떨결에 말려든 1학년과 학부모가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곽경구와 진정묵이 있었다.
카아앙!
진정묵의 연검과 곽경구의 쌍검이 부딪쳐 불꽃이 튀었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의 연검에서 나온 검은 연기 탓에 검의 움직임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쨌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건 잘 전해졌다.
‘관객들 대부분이 곽경구를 응원하고 있네. 곽경구는 학생부회장인 데다가 이명을 받은 플레이어인데 진정묵은 이름을 숨기고 해외를 떠돌아다녀서…… 응?’
관중석을 돌아보니 유독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진정묵을 응원하는 관객이 보였다.
내가 아는 관종들이었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 여기에서 지지 마라! 네 검은 이런 곳에서 꺾일 수 없다!”
“그래! 우리한테 이겼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겨야 해!”
옹길동과 구슬비는 눈에 띄는 빛깔의 온갖 수단을 이용해 응원하고 있었다.
옹길동이 오로라색 풍선을 허공에 띄우고, 구슬비는 덩굴을 불러내 오로라색 응원 도구를 걸어 두었다.
관종 외에도 우리 반 아이가 더 있었다.
어쩌다가 휘말린 건지 민그린과 송대석이 관종들 옆에 앉아 있었다.
“정묵이 이능파 색 예쁜데, 연검에 달린 장치 때문에 잘 안 보여서 아쉽다.”
“그린아, 관…… 쟤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교실로 가자. 지각해.”
“지금 우리 반 애들을 관종이라고 부르려던 거 아니었지? 대석이도 아까 막 큰 소리로 응원했으면서 왜 그래?”
대놓고 말하긴 뭣하지만 송대석 말대로 쟤들은 관심 종자가 맞긴 했다.
송대석은 보아하니 방금까지 과몰입해서 진정묵을 응원하다가 민그린이 이능파 색을 칭찬하는 말에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듯하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합류를 기뻐했다.
“다들 와 있었구나, 같이 응원하자!”
“우리 반에서 하는 첫 행사가 되겠네요!”
우리 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응원하던 관종들이 자신들 쪽으로 반 아이들이 모이자 기고만장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어떻게 왔어? 아, 우리가 눈에 띄어서 금방 찾아낸 거구나!”
“계획과 다르지만, 여전히 우리가 이목을 끄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인 듯하군.”
“응, 멀리서도 눈에 띄더라. 덕분에 바로 찾았어.”
김유리가 밝은 얼굴로 관종들이 기대하는 답변을 해 주자 옹길동과 구슬비는 더욱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저 둘은 입학식이 끝나고 상인관에서 눈에 띄는 등장을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학식이 일찍 끝나고, 뒤늦게 거사를 벌이려 했으나 진정묵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그만 관심을 빼앗겼다.
이들은 매우 속이 쓰렸으나 만약 이대로 진정묵이 지면 예전에 그에게 패배한 두 사람도 진 거나 다름없어지기 때문에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응원을 이용해 관종력을 발휘하기로 했다고 한다.
‘거창한 미사여구가 많긴 했는데, 결국 눈에 띄고 싶다는 내용이겠지.’
그사이에도 진정묵과 곽경구는 검을 주고받았다.
쌍검의 칼등이 진정묵의 목을 내리칠 듯이 매섭게 공기를 갈랐으나 번번이 연검의 유연한 움직임에 가로막혔다.
언뜻 보기에는 곽경구의 쌍검이 일방적으로 매섭게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정묵 쪽이 더 여유 있어 보였다.
진정묵은 곽경구의 검을 배우는 것처럼 묵묵히 검날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곽경구가 광림을 써서 연검에 몸이 꿰뚫리는 걸 각오하고 공격하지 않는 한, 질 거야.’
‘저 새끼는 실전 경험이 많아 보인다’라는 짱돌 맹효돈 선생의 평가대로 진정묵의 검은 실전에 최적화되어 있다.
곽경구는 이계 공략 경험이 적지는 않지만, 학교도 안 나오고 해외에서 마족을 상대하던 진정묵에 비해서는 경험이 적다.
진정묵이 곽경구의 공세에 익숙해지기 전에 예상하지 못한 거친 수를 둬서 뒤집는 게 최선으로 생각되었으나 귀한 광림 시간을 이런 곳에서 낭비하는 건 악수였다.
속으로 두 사람을 같이 응원하고 있을 때, 우리 반의 일원이 한 명 더 등장했다.
“와, 함근형 선생님이다.”
“선생님, 같이 응원해요!”
함근형 선생님은 급히 달려온 건지 입학식장에서 봤을 때보다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곽경구와 싸우는 중인 진정묵과 그를 응원 중인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상황 파악을 한 건지, 머리가 아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함근형 선생님은 흉흉하고 근심 어린 얼굴과 달리 안심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실에 아무도 없어서 놀랐다.”
2학년 0반이 된 첫날 출석률이 0%일까 봐 걱정하신 듯하다.
반 아이들 얼굴을 보러 수업 시간보다 이르게 교실에 왔더니 아무도 없으면 당황스러울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메모라도 남길 걸 그랬다.
함근형 선생님은 같이 응원하는 대신 둘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 대련장 가까이 내려갔다.
저 둘은 함근형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가는 걸 신경도 안 쓰고 계속 대련을 이어 갔다.
합을 주고받을수록 진정묵의 움직임이 더욱 대담해졌다.
‘거의 파훼한 것 같아. 시간을 더 끌면 곽경구가 진다.’
진정묵이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로 몸을 낮춰 곽경구의 옆구리를 노렸다.
곽경구는 쌍검으로 큰 기술을 쓰기 위해 이능파를 모아 높이 들어 올린 상태라 진정묵의 칼날을 막기에는 늦은 듯했다.
진정묵 못지않은 속도로 뒤로 물러나거나 그냥 베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힘찬 금관악기 소리에 이어 오케스트라 합주가 울려 퍼졌다.
오케스트라부의 주도로 여러 동아리가 협연해 준비한 수업종,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교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만!”
수업종이 울리자 함근형 선생님이 이능파를 담아 두 사람을 제지했다.
그러자 진정묵과 곽경구는 바로 칼을 거두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진정묵은 연검을 곧바로 허리에 두르고, 곽경구는 쌍검을 카드화하였다.
“많이 배웠소.”
“시간제한이 없었다면 내가 졌을 거다.”
“과분한 겸양의 말 감사드리오.”
진정묵이 포권지례를 하며 고개를 숙이자 곽경구는 분하고 복잡한 심경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진정묵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표정을 감춘 곽경구가 말했다.
“쌍검을 연구하고 싶으면 아버지의 다른 제자를 찾아가 봐. 나보다 그쪽이 한 수 위다.”
한 수 위인 다른 제자.
이를 지칭하는 건 바로 주수혁이었다.
주수혁에게 찾아가 보라고 할 정도면 진정묵이 좀 마음에 든 건지도 모르겠다.
좀 많이 이상하긴 해도 대련에 있어선 진지한 놈이니, 검을 다루는 플레이어들끼리 통하는 게 있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곧 찾아갈 생각이오.”
진정묵은 주수혁을 상대로도 비무를 청할 듯하다.
* * *
황명호 대저택.
첫날부터 신세를 질 생각은 없었지만, 은호의 후예들이 꼭 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여 저택에 들르게 되었다.
오늘부터 기특하게도 함께 광일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은재호와 황유호와도 만나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마침 호랑이들과 할 이야기도 있어서 들르게 되었다.
“의신이 오빠! 2학년 0반은 오늘 3학년분과 싸웠다면서요!”
“좀 일찍 알았으면 저희도 갔을 텐데요, 아쉬워요.”
은이호와 은서호는 마주치자마자 화제가 된 비무 건을 꺼냈다.
첫날부터 사고를 친 2학년 0반은 종합 게시판에 계속 언급이 되었다.
출석하지 않을 때는 얌전하더니, 학교에 나오자마자 저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우기환 일당이 졸업할 때까지 참아 줘서 고맙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솔직히 비무보다는 은호와 처음 만났을 은서호와 은이호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아이들이 저렇게 관심을 표하고 있는데 말을 생뚱맞게 돌릴 수 없어서 비무에서 내가 본 것들을 얘기했다.
비무 이야기가 끝날 때에는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김신록이 늦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김신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적호가 황지호에게 불만을 표했다.
“제 아들이 늦는군요. 개학 첫날인데 학교 일이 많이 바쁩니까?”
“확인해 보겠다.”
황지호는 학교에 배치한 분신을 움직여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1학년 기숙사 건물에 폭발이 일어나서 지익회 고문으로서 수습을 위해 움직였다고 한다. 곧 올 테니 기다리도록.”
새로운 1학년 0반은 보통 아이들이 아닌 것 같다.
1학년 0반 기숙사생 중엔 은호가 있는데 괜찮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