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00화 (80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00)

99. 새로운 1학년 0반 (11)

“아, 쟤는 용족과 연이 있다고 해서 골랐는데, 1차전 탈락이네.”

“상대가 안 좋았어. 수석이잖아.”

“선도부장 동생은 건강 이슈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다 나았나 보다.”

윤여랑의 탈락을 두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금방 미련을 털어 냈다.

윤여랑은 대기실로 향하는 은호 옆에서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모처럼 반 아이들이랑 같이 하는 행사니까 좀 오래 버티고 싶었는데! 아, 맞다. 아까 싸울 때 존댓말 해서 놀랐어. 말을 높였는데 어쩐지 내 쪽이 위축되는 기분이 들더라.”

“관객 중에 선배가 있어서 존댓말을 썼어.”

“그랬구나!”

윤여랑은 반장 자리를 노리고 이 난리 통에 끼어든 게 아닌 것 같다.

그냥 반 행사니까 참가하고 싶어서 나선 걸까?

윤여랑은 반장 자리보다 은호가 대련 중 선보인 기술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물망 아이템 만들 때 미리 머릿속에 완성된 모습을 생각하고 배치한 거야? 그리고 이능파로 재료 띄울 때 말인데…….”

윤여랑은 이번 대련을 통해 소환 광림을 다루는 방법의 힌트를 얻은 건지 아이템 구상, 제작 과정에 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윤여랑이 긴 질문을 던져도 은호는 전부 친절하게 답변했다.

은호는 윤여랑에게 힌트를 줄 겸 아이템 제작 과정을 피로한 게 아닐까?

패배에서 교훈을 얻은 윤여랑도, 가르침을 주고자 한 은호도 굉장했다.

그런 굉장한 후배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후로도 대련이 이어졌다.

“긴장하지 않고 잘 싸우는군.”

은서호, 은이호의 대련을 본 황지호가 평했다.

둘은 힘을 아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가면 둘 중 하나는 결승에서 은호와 만나게 된다.

강적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 몸을 사리는 듯했다.

하지만 은호와 만나기 전, 준결승전에서 둘이 만나게 되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사전에 합의한 게 있는 건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권할게요.”

은이호가 기권하겠다고 선언했다.

은서호 쪽이 체력이 더 많이 남아 있고, 실력도 그쪽이 위라서 전략적인 방법을 택한 듯했다.

둘이 전력을 다해 싸웠다가 지친 쪽이 올라가 패배하는 게 더 손해라 생각했나 보다.

‘만우절에 구조 요청을 부르러 갔을 때 은서호가 혼자 온 것도, 전투 능력이 더 나아서 그랬다고 했지. 아직도 은서호가 앞서 나가는 중인가 보네.’

실력 차가 현저히 나는 건 아니었기에 어떻게 싸울지 기대했는데 아쉽게 됐다.

아쉬운 건 나뿐이 아니었다.

입학 성적 3등인 점을 고려해 은이호에게 베팅한 이들이 탄식했다.

하지만 준결승전까지 진행되는 동안 은서호 쪽이 더 잘 싸웠기에 그럭저럭 납득한 것 같았다.

“둘 중 하나는 반장이 되어야지. 수석도 내줬는데 반장 자리까지 빼앗길 수는 없어! 잘해!”

“응, 잘할게!”

은서호와 은이호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대련장에서 물러났다.

이름이나 생김새를 봤을 때 척 봐도 남매인 둘을 두고 관중들이 말을 나눴다.

“저 둘은 쌍둥이야? 사이 좋네.”

“아님. 10개월 터울이래.”

“오…… 쟤네들 부모님 힘드셨겠다.”

“집이 황명 그룹 쪽이라니까 육아 쪽은 걱정 없었을걸.”

“2학년 0반 돌아이 친척이었나?”

쟤네들은 호랑이네 가족이긴 하지만 육아는 거의 토족에서 맡았다.

은빛 영웅이 저들과 같이 있었던 건 재호가 태어날 때까지였으니까 오래 있지 못했을 거다.

황지호 귀에도 이 대화 소리가 들어갔을 텐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토족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을 삼키는 중인 듯했다.

전교 꼴찌인 데다 또라이인 점을 고려해 사람들이 황지호를 돌아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선 별로 열받은 것 같지 않다.

뭐, 황지호가 열받든 괜찮든 그게 다 사실이니까 저런 말이 도는 건 어쩔 수 없긴 했다.

“마지막 시합을 진행할게요. 은서호, 천은하는 앞으로.”

공청훤의 말이 떨어지자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둘이 움직였다.

은서호가 날이 선 모습으로 앞으로 나오고, 천은하는 첫 시합 때와 변함없이 차분해 보였다.

천은하는 은서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은하 쪽이 키가 커 살짝 내려다보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든 건지 은서호가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은서호의 어린 치기를 보며 은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주 부드럽게 웃었다.

황지호는 안광이 발동된 눈으로 체육관 한구석을 보다가 말했다.

“적호가 적연 뒤에서 난리를 치고 있다. 저럴 거면 그냥 만나서 정체를 밝히라고 말이다. 옆에서 백호가 말리지 않았다면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

신입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전설계, 신화계 호족들이 가족사를 갖고 날뛰는 건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백호군처럼 상식 있는 호족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황지호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선 호랑이 얘기는 자제하길 바란다.

일단 결계를 치고 입술 모양이 안 보이는 방향에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천동하 같은 능력자가 작정하고 황지호를 보고 있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챌 거다.

그 정도로 황지호를 주목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늙은 호랑이가 연륜을 발휘해 다 눈치채고 대응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결승전 시작이 가까워졌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말씀드릴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공청훤이 시합 개시를 선언하기 전 갑자기 은호가 손을 들고 말했다.

“기권할게요.”

은서호는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몰라 눈을 크게 떴다.

은호는 은서호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권한다고 선언한 후, 이유를 말했다.

“저는 처음부터 1학년 0반 부반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어요.”

“어째서 부반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죠?”

“제 형이 1학년 때 부반장을 해서요. 저도 하고 싶었어요.”

천동하가 그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은호의 말대로 천동하는 1학년 당시 부반장을 했다.

수석으로 입학한 천동하는 1반에 배정되었는데, 같은 반에 곽경구가 있었다.

인상으로만 따지고 보면 천동하는 차가운 반면 곽경구는 노숙한 인상이나 든든한 인상을 줘 그런지 곽경구 쪽으로 표가 모였다.

그렇게 투표에서 밀리는 바람에 천동하는 부반장이 되었다.

“소문 들었어. 쟤가 0반에 들어간 건 면접 때 형 타령을 엄청 해 대서 그런 거라고.”

“천동하 선배 동생이지? 나도 천동하 선배가 오빠면 좀 많이 따를 것 같긴 해.”

“너님은 친오빠가 있지 않음?”

“그건 오빠가 아니라 엄마 아들임.”

“……쟤는 부반장 되려 할 줄 알았다.”

모두가 납득하면서도 의외라고 여기는 가운데, 면접에서 은호와 만났던 학생만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호가 저런 선택을 할 줄 몰랐는데, 통찰력이 상당한 편인 듯하다.

“조의신, 너도 1학년 때 부반장이었다는 걸 잊지 말도록.”

그건 나도 아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은호가 부반장이 되고 싶다는 건 그냥 핑계고 사실 손주와 싸우는 걸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진명의 존재는 숨겨도 진족과 후예 간에 존재하는 법칙은 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혼란한 1학년 0반 반장 결정 행사의 우승, 준우승이 정해졌다.

1학년 0반의 반장은 은서호, 부반장은 은호다.

“서열 정리가 됐으니까 이제 다음 준비도 해야겠다.”

“리더가 정해지면 일을 진행하는 게 편해질걸?”

소동이 막 가라앉은 직후인데 불길한 내용의 대화가 들렸다.

좀 불안하긴 하지만, 학급 임원직에 믿을 만한 호랑이들이 있으니 별문제 없을 거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    *    *

그날 저녁.

호랑이 저택에서 식사하자는 권유를 받았으나 주중에 자주 방문하면 등교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거주 구역으로 향했다.

저녁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디바이스 메시지가 잔뜩 도착해 있었다.

은광고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 대부분은 1학년 0반이 너희를 노릴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장난기가 좀 많긴 하지만 착한 애들이라 큰 문제는 없을 텐데 왜들 그렇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유일하게 걱정 없이 제 할 말을 하는 은광고인도 있긴 했다.

[유상훈] (링크)

[유상훈] 당첨됐다

웬일로 긴 메시지를 보냈나 싶어서 링크를 확인해 봤다.

링크를 누르자 홀로그램 페이지가 열리며 낯익은 화면이 보였다.

SZ게임즈에서 올해 출시할 예정인 게임의 클로즈드 베타 테스트에 참가할 유저 선정 결과를 발표한 페이지였다.

유상훈이 발매를 고대하던 게임이었으니 자랑할 만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성공할지 아는 입장에선 착잡했다.

‘플마고는 망겜이지만, 이 게임은 갓겜이지.’

저 게임은 플마고의 세계에서도 존재했다.

국내 게임사인 SZ게임즈에서 발매한 저 게임에는 갓겜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가 존재했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갓겜인 탓에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 정도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박을 친 저 갓겜은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프로리그도 생겨 단숨에 e스포츠계 최고의 흥행 카드로 부상한다.

‘플마고도 저 정도로 흥행했으면, 이 세계에 ‘계’새끼보다 더 나은 후보가 오지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멀티 대전이 불가능한 플마고의 특성상 저 정도로 히트를 치는 건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인기의 10퍼센트, 아니, 1퍼센트만 따라갔어도 이 꼴이 안 났을 거다.

그 생각 때문인지 괜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안다인은 유상훈이 3학년 때에는 1반에 합류하길 기대하는 것 같던데.’

성적이 중간에서 좀 위인 유상훈은 당연히 특별반인 1반에 들어가지 못했다.

1학년 때 같이 학급 임원을 하면서 정이 든 건지 안다인은 몹시 아쉬워하며 3학년 때에는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유상훈은 그리 공부에 뜻이 없는지, 1반 출신 아이들이 한다는 훈련엔 가끔 어울렸지만 성적을 올리겠다는 열의는 전혀 없었다.

이대로라면 3학년 때에도 유상훈은 1반에 가지 못할 것 같다.

공부를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화풀이 비슷한 말을 던졌다.

[나] 공부는?

물론 저 짧은 말에 유상훈이 타격을 받을 리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내가 던진 말 덕에 장남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잔소리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장남욱] 나도 의신이처럼 네가 걱정돼. 상훈아, 우리는 이제 2학년이라 진로 선택을 신중하게 생각하며 공부해야 해. 중요한 시기를 놓치면 선택을 하고 준비를 하는 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거야. 게임을 하며 가끔 스트레스를 푸는 건 좋지만, 공부에도 신경을 쓰는 게 좋겠어. 의신이의 성적은 걱정되지 않지만, 상훈이 너는 공부보다 농구랑 게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 1학년 때 놀았던 애들도 이제 진로를 위해 공부하면 성적 유지하기 힘들어질 거야.

장남욱의 긴 메시지가 이어지자 유상훈이 ‘ㅎ’ 하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평소에 자주 쓰는 ‘ㅋ’보다 피로감이 느껴져 만족했다.

장남욱의 장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국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설마 리플레이 건을 두고 김신록이 개인적으로 접촉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성국언] 의신아, 포모르 마족이 우리가 은광구에 있다는 걸 특정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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