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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01화 (80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01)

100. 약속 (1)

작년 핼러윈, 영국에서 포모르 마족이 경매를 열었다.

경매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마족들이 눈을 뒤집고 범인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경매 자체를 망친 건 물론이고, 다누 신족의 신보인 루의 창과 매물로 나왔던 이무기의 귀천을 가져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야기를 듣자 하니 그들이 애가 타서 찾는 건 나나 괴도 일당이 아닌 성국언 쪽인 것 같았다.

신보의 회수보다 왕의 자격을 가진 이를 찾는 것을 우선시한 거다.

[성국언] (첨부 파일)

[성국언] 무영이가 포모르 마족의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다. 먼저 읽고 이야기하는 게 빠르겠구나.

첨부 파일을 열자 포모르 마족의 이동 경로, 탐색 수단 등이 소상히 정리된 보고서가 나왔다.

전무영이 포모르 마족만 살펴보는 게 아닐 텐데도 정보의 양이나 정리 수준이 뛰어나 감탄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유능함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포모르 마족의 수색 범위는 세계에서 한반도로, 한반도에서 은광구로 좁혀져 있었다.

‘절흑풍림이 교란 작전을 벌이고 있구나. 그 무림인들이 없었다면 진작에 특정되었을 수도 있어.’

보고서의 내용에는 절흑풍림의 활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절흑풍림으로 추정되는 흑의 차림의 플레이어들이 포모르 마족의 은광구 내 수색 작업을 방해했다고 한다.

그게 발각되어 절흑풍림의 무림인들과 포모르 마족이 대치한 적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두고 절흑풍림 측에서는 증원을 부르고, 이를 지켜보던 전무영도 가세할지 지원을 요청할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포모르 마족은 묘하게도 저자세로 물러났다고 한다.

‘포모르 마족처럼 호전적인 자들이 그냥 물러난 건 이상해. 이유가 있을 거야.’

그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이유가 있다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성국언 때문이다.

‘그만큼 성국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던 걸까?’

푸른 가면의 마족은 그날 리어 팔이 비명을 지른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포모르 마족의 힘을 생각하면 대선 후보나 왕위 계승권을 가진 자를 한 번쯤 경매에 초대하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왕의 자격이 없는 자가 국가수반에 오르는 일이 많아서 그런 건지, 리어 팔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시간과 돈과 힘을 갈아 가며 성국언을 찾는다는 건 대체자가 없다는 뜻이다.

‘싸움을 피한 건, 대관석이 비명을 지르도록 만든 성국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겠지.’

왕의 자격을 갖춘 자가 있는 영역에서 싸움을 벌이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거다.

그 생각에 포모르 마족은 수색은 하되 충돌은 피한 것이다.

‘당장의 충돌은 면했지만, 문제는 그들의 수색 방법이야. 그렇게 철저히 흔적을 지웠는데, 신보가 그런 식으로 활용되는 바람에 덜미를 잡히다니…….’

우선 마족들은 성국언을 찾아내기 위해 경매의 모든 참가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집요한 짓을 벌여 한반도로 범위를 좁혔다.

그 이후에 대관석 리어 팔을 활용했다.

리어 팔은 성국언의 존재를 느끼고 비명을 지른 적이 있어 그와 공명하는 듯하다.

리어 팔의 공명을 이용해 한반도 전체를 스캔하는 짓을 했다.

이 방식은 효율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저 과정에서 소모된 이능파나 아이템 등의 가치를 환산하면 한반도의 1년 국가 예산에 필적할 거라고 한다.

저 방식으로 성국언이 은광구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알아낸 후, 그들은 마족을 투입했다.

[성국언] 한반도의 지력 때문에 더는 리어 팔을 활용한 추적은 사용하지 못할 거라 하더군. 특히 은광구는 지력의 밀도가 높아 제대로 공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이제부터 마족은 발로 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은광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은 성국언이라 금방 특정될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는 유명인사가 여럿 있어서 지명도만으로 특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우수한 지도력을 지닌 플레이어 팀 마스터도 꽤 있고, 성인이 아니라고 하나 은광고에 재학 중인 플레이어 중에도 인재가 많다.

게다가 한국 4대 재벌 중 하나인 황명 그룹도 은광구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포모르 마족이 생각 중인 후보는 꽤 많을 거다.

‘하지만 이런 대치 상태가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어. 게다가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아.’

성국언의 암살 시나리오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포모르 마족이라는 큰 변수가 추가되어 머리가 복잡했다.

저 포모르 마족을 먼저 배제하고 움직여야 할지, 저들을 포함해 계산하여 수를 두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먼저 내가 가진 피스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확인해야겠어.’

일단 수를 두기 전에 알아봐야 할 게 생겼다.

지금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책을 생각하고 연락드릴게요.

[성국언] 하하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네게 대책을 세워 달라고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야.

성국언은 딱 잘라 말했다.

상의하기 위해서 보낸 게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 메시지를 보낸 걸까.

[성국언] 그 마족들이야 내게 바라는 바가 있으니 함부로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너를 상대로는 다르지.

[성국언] 조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라.

성국언은 나를 걱정해서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고 복잡한 상황에 휘말린 건 성국언 쪽인데, 나를 걱정해 주다니 과연 훌륭한 선배였다.

감동하여 감사의 말을 하자 성국언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

[성국언] 그래, 고마우면 내 말을 잊지 말고 있거라.

[성국언] 너는 위험한 일에 휘말려도 나를 안 부를 것 같아서 말이다.

가뜩이나 위험한 상황에 성국언까지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성국언의 마음만 고맙게 받기로 하고 메시지 전송을 마쳤다.

*    *    *

다사다난했던 개학 첫 주가 지나 동아리 가입 기간을 맞이했다.

1학년 구역은 동아리와 소모임들이 전시한 작품, 홀로그램 전시물로 가득했고 가끔 홍보를 위한 게릴라 공연 등이 열리곤 했다.

내가 소속한 신문부의 경우, 홍보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가입 신청이 꽤 많이 들어왔다.

교지 편집부가 작년 사건 때문에 폐부되어 경쟁자가 없어진 바람에 신문부는 교내 유일한 언론 동아리라 그런 듯했다.

‘우리 반 애들도 많이 바빠졌지.’

우리 반에서 동아리 활동 현황은 다음과 같다.

권레나는 현악부.

김유리는 학생회.

민그린은 미술부.

한이는 태호권 소모임.

나와 황지호는 신문부.

‘최근 등교한 애들도 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했지.’

등교도 안 하던 애들이 등교하자마자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본인들도 원하고 동아리 측에서도 환영했다고 한다.

구슬비는 원예부.

그리고 옹길동은 무려 체스 소모임, 스테일메이트에 소속했다고 한다.

‘그 자유로운 고문 교사가 용제건이었겠구나.’

용제건은 등교 거부에 가깝던 상태인 옹길동이 스테일메이트에 가입했다는 걸 알고도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게 좀 그랬다.

용제건다운 짓이고, 굳이 신입 부원에 관해 밖에 떠들고 다닐 필요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옹길동은 켈틱 체스라고도 불리는 피드헬(Fidchell)의 귀재 미처르의 가호를 받았기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덕분에 스테일메이트의 홍보물은 매우 눈에 띄게 만들어졌고, 그에 지지 않겠다며 원예부의 홍보물 역시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화려했다.

‘오로라색 체스와 오로라색 화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 곳이 무슨 관계라도 있는 줄 알겠다.’

두 곳 다 관종들이 가입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긴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관종에게 이끌려 등교한 진정묵 역시 동아리에 가입했다.

우리 반 애들은 진정묵이 동아리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무술 관련 동아리나 검도부라고 짐작하였는데 예상이 뒤집혔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 무림인 진정묵이 택한 동아리는 무려 서예부였다.

혹시 흑림의 검성이 지시하여 가입했나 싶어서 누가 떠 보기도 했는데, 순전히 본인의 의지로 가입했다고 한다.

―정신 수양을 위해 서도(書道)를 갈고닦고자 하오.

권레나의 생일 파티를 준비할 때, 진정묵이 붓글씨를 썼다가 망한 적이 있다.

진정묵의 붓글씨는 무림인답지 않게 몹시 심각한 상태였는데, 그걸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흑림의 검성이 쓰는 글씨를 보면 좀 휘갈겨 쓰긴 해도 진정묵보다는 훨씬 나았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자 하면 좀 연습할 필요가 있긴 했다.

―2년으로 어떻게 될 글씨가 아니던데, 그걸로 되겠…….

―왜 저 새끼는 말을 하다 마냐.

―음, 그린이가 지금 문밖에 도착해서 저런 건가 봐.

그때 진정묵 대신 붓글씨를 쓰게 됐던 송대석이 날카로운 소리를 하려다 자리를 비웠던 민그린이 돌아오는 걸 감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송대석이 나름 성장한 듯하다.

어쨌든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각자 동아리 홍보나 외부 활동으로 바빴다.

독고미로의 경우 오전 수업만 듣고 조퇴하는 일이 잦아졌고, 맹효돈은 탁거산 도인과 고된 훈련을 하고, 송대석은 위성 연구팀 일로 바삐 움직였다.

사월세음은 별일 없지만, 1학년 구역에 있는 전시물과 공연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총동아리회가 많이 바쁜 것 같던데, 총동아리회장인 허채아는 괜찮을까?’

나중에 취재를 핑계로 인터뷰를 신청해 간식이라도 가져다주는 게 좋겠다.

방과 후에 신문부에서 할 일을 생각하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 아는 인물과 마주쳤다.

반이 멀어지고 흡연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 최근 자주 보지 못했던 방윤섭이었다.

“억.”

방윤섭이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사람을 보자마자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간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오랜만이네.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고?”

“뭐! 여, 여친!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제부터인데…….”

그냥 놀리려고 한 소린데 진짜 사귀기 시작했나 보다.

크리스마스 직후에 그 일을 겪고도 바로 안 사귄 게 신기하긴 한데, 주수혁과 안다인에 비하면 훨씬 빠르니 뭐라고 할 수준이 안 됐다.

방윤섭은 당황한 나머지 묻지도 않은 정보를 줄줄 흘려 댔다.

‘어쨌든 잘 사귀라고 선물로 빵이라도 사 줘야 하나? 아니, 류장의 말에 의하면 최영희는 쿠키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쿠키는 방윤섭이 잘 사 줄 테니 나는 빵을 사 주기로 했다.

“빵을 사고 싶은데, 어느 걸로…….”

“나 이제 빵 안 사! 담배 피워도 너는 나한테 못 시킨다!”

내 말의 의도를 오해한 건지 갑자기 방윤섭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방윤섭이 갑자기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건 사족의 수장을 받아 강해져서가 아니다.

약속의 불집게가 안 무서워서 저런 것도 아니다.

방윤섭이 내 빵셔틀이 된 날, 이런 대화를 나눴다.

―네 조건대로 싸우는 대신 지는 사람은 1년 동안 상대방의 빵셔틀······ 이 아니라 심부름꾼이 되는 거다. 어때.

즉, 계약 기간은 첫 수업으로부터 1년이므로 이미 기간이 지난 것이다.

빵셔틀을 잃은 건 아쉽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렇네. 이제부터 담배 안 피울 거지?”

“네가 뭔 상관인데.”

“피우지 마. 모처럼 좋은 힘을 얻었으니까 최대한 유효하게 활용하려면, 안 피우는 게 나아.”

방윤섭은 내 말을 그대로 듣는 게 싫은 건지, 반항적으로 말했다.

“싫어, 피울 거다!”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방윤섭의 손톱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희귀도 R급 아이템으로 걸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이능파가 뿜어져 나왔다.

손톱 끝에서 희미하게 비늘 모양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 어! 뭐야!”

당황하는 방윤섭에게 말했다.

“사족의 수장이 가호를 내릴 때 손톱에 건 불집게를 매개로 쓰는 바람에 생긴 부작용 같은데.”

방윤섭이 눈을 크게 떴다.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사족의 수장이 가호를 거둘 때까지 방윤섭은 내 빵셔틀 노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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