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02)
100. 약속 (2)
방윤섭의 빵셔틀 연장 소식은 널리널리 퍼졌다.
내가 퍼뜨리지는 않았다.
그저 방윤섭이 내 욕을 하고 소리 지르는 바람에 듣는 귀가 많았던 것뿐이다.
저 소식을 들은 이 중, 목우람이 가장 기뻐했다.
“올해에도 부업을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목우람은 방윤섭의 흡연 적발 부업을 계속할 예정인가 보다.
그 말에 덧붙여 목우람이 말했다.
“작년 말에는 갑자기 기량이 상승해서 상대하기 어려웠습니다만, 지금은 그럭저럭 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윤섭의 기량 변화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인비디우스의 사제는 방윤섭의 생명력을 깎아 가며 이능을 확장시켰다고 한다.
마족에게 있어 방윤섭은 크리스마스에 잠시 쓰다가 버릴 패였으므로 후유증이나 줄어들 수명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때 방윤섭이 큰 힘을 쓰기 전에 막았고, 사족의 수장이 뒷수습을 도와줬기에 큰 문제는 남지 않았다.
현재 방윤섭은 마족이 한창 개입했을 때에 비해선 약하지만, 훨씬 건강해졌고 발전 가능성도 커졌다.
“나는 수색을 돕기 어려울 것 같아. 미안.”
주수혁이 미안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데 사과했다.
주수혁은 수련이 바쁘다고 말하긴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사족의 수장이 주수혁에게 뭐라고 한 거겠지.’
사족의 수장과는 크리스마스 이후에도 몇 번 연락을 했다.
방윤섭에게 비늘을 잘 전달해 준 것에 관해 감사를 표한 사족의 수장은 주수혁에 대해 신경 쓰는 눈치였다.
사족의 수장이 쓴 표현을 빌리면 ‘방윤섭이 등신 같은 열등감을 품은 상대’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아직 방윤섭의 정신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정한 주수혁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씁쓸해했을지 상상도 안 갔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수혁은 이런 일을 계속 겪겠지. 익숙해져야 할 거야.’
주수혁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났다.
인품, 능력, 외모, 배경 등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다.
저렇게 완벽한 타이틀 히어로를 두고 질투하고 열등감을 품은 사람이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방윤섭 외에도 주수혁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사람들이 넘쳐 날 거다.
주수혁이 과시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수혁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으니, 심적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주수혁은 방윤섭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잘 지내길 바라지만…….’
사람들이 주수혁에게 품는 감정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주수혁과 방윤섭이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방윤섭의 열등감을 지운답시고 정신을 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우선 방윤섭의 성장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후에 친해질 만한 계기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입하면 될 거다.
[맹효돈] 아 맞다
[맹효돈] (사진)
[맹효돈] 전에 피우는 거 찍음
빵셔틀 금연 캠페인 재개 소식을 들은 맹효돈이 두 장의 사진을 보냈다.
첫 번째 사진에는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문 방윤섭이, 두 번째 사진에는 탁거산 도인이 날아차기로 담배를 날려 버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날짜를 확인하니 방윤섭이 최영희에게 고백하기 전날이었다.
저 한심한 놈은 고백하기 전에 니코틴의 힘을 빌리려 한 듯하다.
한편, 또 다른 니코틴 중독자가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내 왔다.
[주수겸] 계약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방윤섭과 달리 유능한 흡연자는 일 처리 속도가 빨랐다.
주수겸은 주오 그룹의 중역이자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니 오씨 그룹의 사정을 당연히 빨리 꿰야 하는 거지만 말이다.
구체적으로 묻기 전, 주수겸이 추가 메시지를 보냈다.
[주수겸] 확인 과정에서 부상자가 다섯 명 나왔다.
[주수겸] 암호화된 파일을 보내지. 패스워드는 전에 약속한 날짜와 시간이다.
계약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왜 부상자가 나온단 말인가.
주수겸은 메시지로 설명하는 대신 첨부 파일을 보냈다.
암호를 입력하니 보고서 파일이 열렸다.
보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주수겸이 확인한 결과, 현재 생존해 있는 오씨 중에서 계약에 관해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선대가 비명횡사하여 계약에 관해 전할 수 없었을 거라는 가능성도 있지만, 주수겸의 생각은 달랐다.
유언장을 통해 사해 용왕과 맺은 수정궁에 관한 계약을 전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목숨이 걸린 계약을 후손에게 전하지 않는 건 이상하지. 목숨 외에도 부와 명예가 걸려 있는 데다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용족과 척을 질 수도 있는데.’
주수겸은 오씨의 선대가 남긴 유언과 그 집행 과정을 재확인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흔적을 찾기 어려웠지만, 주수겸과 그의 비서진이 직접 나서 유언장의 누락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계 종이에 인쇄된 유언장에 남은 이능파의 흔적을 정밀 조사 하여 중간에 흐름이 끊긴 부분을 찾았다고 한다.
유언을 집행한 고문 변호사는 현재 사망했고, 그가 죽기 전 세운 로펌을 아들이 이은 상태였다.
그리고 주수겸의 비서들이 사전에 약속을 잡고 법률 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습격이 발생했다.
‘대형 법률 사무소가 박살이 났는데 이렇게 조용하다니. 주수겸이 막은 건가?’
저항할 힘이 없어 숨어 있던 사무소 직원들은 무사했으나, 법률 사무소에 상주 중인 경비원들과 주수겸의 비서들은 부상을 입었다.
또, 습격의 결과로 금고가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기록 기기들은 대다수 완파되었다.
보고서에 나온 피해 보고 내역을 보면 기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대로 기사는 주수겸이 막아 둔 듯했다.
[주수겸] 현재 기사화는 막았지만, 습격 건은 오늘 내로 기사가 뜰 거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일종의 보복 사건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희비가 갈리다 보니 변호사에게 원한을 품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플레이어 용병을 사주해 사무소를 습격했을 거라고 판단해 경찰은 원한 관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수겸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주수겸] 타이밍이 지나치게 좋더군. 계약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누군가의 공작일 수도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실 계약 내용은 용들에게 직접 들었으니 그 내용을 숨기고 말고는 별 상관이 없었다.
상관이 있는 건 대체 누가 오씨들이 후대에게 계약을 전하는 걸 막았는가다.
[주수겸] 유언장의 누락 자체가 계약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군. 나는 배후에 관해 더 조사할 생각이다.
[주수겸] 그사이에 계약의 해제에 관한 중재를 진행해 줬으면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씨 집안은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린 듯했다.
배후의 누군가는 오씨 집안의 단명과 용족의 고뇌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두말할 것도 없이 흑막일 거다.
문제는 누가 흑막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고 있냐는 거다.
‘주오 그룹의 유언 집행 과정에 관여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진 이들이겠지.’
상당한 재력과 연줄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짓이다.
떠오르는 건 주오 그룹 못지않은 힘을 가진 다른 4대 그룹들이었다.
그중 호족의 황명 그룹은 아닐 테니, TC와 남궁일 것이다.
아마 주수겸도 여기까지는 짐작하고 있을 거다.
‘이것도 4대 그룹 암투 시나리오의 불씨가 될까.’
아직 시나리오의 발생 시기까지는 시간이 꽤 있는데, 불길한 징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그 암투극은 뿌리가 깊었나 보다.
* * *
동아리 가입 권유 기간은 순조롭게 흘러가 대부분의 1학년 학생들이 갈 곳을 정했다.
은서호의 경우 반장직에 집중하고 싶다며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은이호는 학생회에 들어갔다.
은이호는 학교 일에 관심이 많았고, 안다인과 친자매 부럽지 않게 부쩍 친해진 덕도 있는 듯하다.
‘윤여랑은 동아리 구경은 열심히 하고 다녔는데, 결국 무녀 일 때문에 바쁠 것 같다는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지.’
의외의 선택을 한 1학년도 있긴 했다.
차석원이 지익회에 들어간 게 그러했다.
차석원이 입학 첫날에 방을 폭파시켜 지익회 쪽에서 0반이 아닌 요주의 인물로서 주목했는데, 그러다가 친해져 그대로 지익회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필 ‘계’새끼 따위가 있는 지익회에 들어갔나 싶었지만, 그곳엔 박승현같이 제대로 된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도 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박승현이나 다른 3학년이 지익회장을 맡으면 더 좋을 텐데.’
요새 1학년 0반이 기숙사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김신록이 조금 바빠졌다.
작년엔 우리 반이 워낙 얌전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성시완이 빠르게 정리를 해 김신록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 지익회장은 작년에 비해 무능했고 그 차이는 점점 피부로 느껴졌다.
“의신이 형, 형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 동아리 선택도 형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했어요.”
누구와 달리 은호는 기특한 말을 했다.
은호는 선도부와 신문부에 들어왔다.
동아리 이중 가입은 고문 교사와 동아리 부장의 허가가 필요했는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함근형 선생님, 제갈재걸, 천동하, 신문부의 부장이 모두 동의했다.
은호는 ‘형과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의신이 형은 대학생 때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아서 아쉬웠죠.’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선도부 일을 메인으로 하는 게 좋겠지. 신문부는 객원 기자처럼 활동해도 충분할 거야. 올해는 신문부원이 많아서 활동 부담이 적어.’
그렇게 신문부에 황지호에 이어 호랑이가 하나 더 들어왔다.
변화가 있던 건 동아리뿐만이 아니었다.
2학년이 된 우리의 커리큘럼은 이론에서 실기 위주로 바뀌었다.
제약이 있던 1학년 때에 비해 파티 가입과 생성이 더욱 자유로워져 이계 공략 등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상 수배범 최편득 사냥 파티? 이곳 아직도 있었군요. 전투 스킬을 더 올리면 가입하고 싶어요!”
최근 여러 파티에 관심을 보이던 사월세음이 그렇게 말했다.
최편득은 사월세음을 환몽 경매에 팔아먹은 장본인이다.
사월세음은 처음엔 그 이름만 봐도 긴장했는데, 이젠 많이 떨쳐 낸 듯했다.
‘최편득 사냥에는 성공하지 못하겠지만, 현상 수배범 사냥에는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 가입할 만하지.’
최편득 없는 최편득 사냥 파티긴 했는데, 뭐 어떤가.
저길 들어가겠다는 선택은 나쁘지 않다.
“효돈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어?”
“내일 수학 쪽지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또 수학을 골랐구나.”
“어쩌다가 또…….”
무모한 선택을 하는 자도 있었다.
맹효돈은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는 과목을 택해 지옥으로 향했다.
아직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맹효돈은 반쯤 정신이 나간 듯했다.
이번 학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은 방과 후에 약속이 있어서 돕지 못하겠지만, 내일부터는 공부를 시켜야지.’
방과 후에 약속 장소로 향하며 맹효돈 공부 계획을 짰다.
내가 향하는 약속 장소는 MITRON이었다.
오늘은 파티시에 류장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체스 피스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포모르 마족의 경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