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05화 (80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05)

100. 약속 (5)

‘그렇게나 만우절 장난을 치고 싶었나.’

작년 만우절에 있던 후예 암살 미수 사건 당시, 황지호는 같이 장난을 치는 대가로 협력했다.

말 그대로 장난 같은 계약이 없었다면 후예들과 토족은 굉장히 위험해졌을 거다.

사건 때문에 결국 약속한 만우절 장난은 같이 못 쳐서 다음 해로 미뤘는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때 그런 제안을 한 것도 그렇고, 늙은 호랑이는 어린 인간들이 학교에서 장난치는 게 부러웠던 걸까?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 협력하기로 했다.

“이 몸이 치는 장난이다. 보통 장난으로 끝내선 안 된다.”

“…….”

교사지만 후예라는 입장 때문에 뭐라 할 수 없는 김신록은 입을 다물었다.

아들 대신 적호가 뭐라 했다.

“황호, 제 아들이 고생합니다. 살살 하십시오.”

“그럼 김신록이 고생하지 않도록 적호 네가 수습을 도우면 된다.”

이사장이 저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걸 보니 올해 만우절에도 난리가 날 것 같다.

황지호는 미리 계획을 짜 둔 건지 신나게 이것저것 떠들었는데, 저래도 되나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

황지호가 제안한 기획 중 유독 마음에 드는 게 있었다.

‘저 말대로 하면 황지호의 돈과 이능이 크게 소모되긴 하겠지만, 기뻐할 사람들이 많겠지.’

어차피 늙은 호랑이가 돈 자랑과 힘자랑을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닐 테니 괜찮을 거다.

기왕 저대로 할 거면 나도 제안할 게 있었다.

황지호의 제안에 몇 마디를 얹었더니 곧바로 찬성했다.

“하하하하! 조의신, 너도 의욕을 보이다니 기쁘군. 이 몸과의 약속을 잊지 않은 것도 그렇고, 대견하구나.”

계획의 큰 줄기를 정하고 나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실컷 떠든 황지호가 만족하여 말했다.

“길게 얘기했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자도록.”

황지호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할 소리를 했다.

실제로 노친네 쪽이 나이가 훨씬 많았기에 그냥 순순히 들어주기로 했다.

응접실에서 나와 거실로 가 보니, 일찍 자러 간 줄 알았던 은호의 후예들이 있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홀로그램이 잔뜩 있었는데, 전부 테마파크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거실에서 산령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보여 주고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나 보다.

“좋겠다…… 나도 가고 싶다…….”

산령은 홀로그램을 뚫어져라 보며 중얼거렸다.

좀 더 실체가 분명해진 산령은 아이 같은 실루엣을 하고 있었다.

막내 은재호와 엇비슷해 보이는 아이가 저러고 있으니 안쓰럽게 보였다.

본래 산령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위치상 그럴 수 없었다.

“너는 천익산에서 멀어지면 실체를 유지할 수 없지 않느냐. 가고 싶다면 얼른 힘을 키우도록.”

“다음엔 산령도 같이 가자!”

산령은 백호군에 비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번에 동행하지 못하는 건 아직 힘이 회복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백호군이 냉정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 것치곤 수련을 게을리하는군. 다음에 동행할 수 있게 대련 횟수를 늘리겠다.”

“악! 싫어!”

모처럼 백호군이 시간을 내어 대련을 해 준다고 해도 산령이 싫다고 수선을 부렸다.

저래서야 힘을 언제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크릉.

천사도 한심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산령은 변명하듯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을 키우는 건 왠지 위험할 것 같아서…….”

뭐가 위험하다는 건가.

백호군과 대련을 하면 자신이 위험하다는 뜻인가?

하지만 대련할 때 약간의 위험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고통이나 자잘한 부상을 두려워하면 평생 실력은 늘지 않는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산령이 뭐라고 더 하긴 했지만, 말을 더듬는 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정리가 안 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황지호가 자러 가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금방 해산했다.

산령은 마지막까지 거실에 혼자 남아 테마파크 사진을 응시했다.

“응접실에서 무슨 얘기 하셨어요?”

“같이 들으려 했는데, 산령이랑 유원지 얘기를 빨리 하고 싶어서 못 들었어요!”

손님 방으로 향하는 길에 후예들이 물었다.

산령은 나중에 상대하고 그냥 응접실에 왔어도 됐을 텐데, 산령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예뻤다.

그동안 산령에게 음식 비슷한 무언가를 먹이면서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나는 응접실에서 나눈 얘기 중 후예들이 들어도 되고 관심을 가질 것 같은 것들을 간략하게 전했다.

후예들은 만우절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은광고의 만우절은 엄청 화려하다면서요. 특히 0반은 사고를 많이 쳤다고도 들었어요. 저희도 꼭 뭔가를 하고 싶어요.”

은이호가 의욕에 차 말했다.

우리 반은 작년에 얌전하게 보냈는데.

우리 반은 한 게 없다고 하자 은서호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의신이 형이랑 황호 님은 작년에 저를 구하느라 이벤트를 못 하셨죠…… 올해에는 꼭 좋은 만우절을 보내셨으면 해요.”

“아니야. 네 일이 없었어도 우리 반은 조용히 지나갔을 거야.”

사실을 말해도 성실한 은서호는 계속 미안해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올해 1학년 0반은 무엇을 준비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후예들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요? 아직 회의 중이긴 한데 거의 정해진 것 같아요!”

“그렇지? 은하도 그 건에 찬성하는 것 같으니까…….”

은호도 찬성했다고?

올해 1학년 0반이 만우절을 그냥 넘어갈 것 같진 않았는데, 은호도 가담할 줄은 몰랐다.

반 아이들이 기대하고 있으니 부반장으로서 이벤트 기획에 참가했나 보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고, 내가 물어보면 답해 줄 것 같긴 하지만,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 같으니 묻지 않기로 했다.

*    *    *

만우절을 앞둔 날, 어느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은 공개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찍으며 기사화되었다.

그 영상의 정체는 바로 권제인이 출연한 황명 테마파크 광고였다.

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손님도 없고, 어트랙션도 낡아 황폐하여 거칠고 쓸쓸한 테마파크 안, 권제인이 걸어간다.

테마파크의 중심인 성 앞에 멈춰 선 권제인이 이능 바이올린을 실체화해 연주를 시작하자 분수에서 물이 차오르고, 물방울이 떠올라 테마파크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모든 게 변하기 시작한다.

‘이 테마파크 주제곡은 권제인이 직접 작곡했다고 했지.’

유원지를 찾는 즐거움을 표현한 경쾌한 느낌과 모험과 꿈이 있는 분위기를 담아낸 몽환적인 곡조 속, 풍경이 일변했다.

테마파크의 빛과 색이 돌아오고 어트랙션도 새롭게 바뀌어 간다.

성과 바닥에 깔린 블럭들까지 전부 교체되고 호랑이 마스코트들의 실루엣이 멀리서 보일 때쯤, 연주가 끝나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거짓말처럼 시작하는 환상]

이 문구가 흘러가자 4월 1일, 황명 테마파크의 그랜드 오프닝을 알리는 소개 글이 한 줄 떠오른다.

테마파크의 주인이 바뀌고,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광고는 큰 주목을 받았다.

권제인의 연주와 광고 속의 화려한 연출, 남궁물산이 운영할 때보다 훨씬 호화로워진 어트랙션과 정비된 시설들이 눈길을 끈 덕이다.

‘권제인은 광고에 잘 출연하지 않는데, 오랜만에 나온 게 화제가 됐지.’

영원의 호수가 호족에게 빚을 진 것도 꽤 있고, 권제인이 황명 테마파크를 둘러보며 영감이 떠올랐다고 해서 쉽게 수락해 줬다고 한다.

그 과정을 설명하던 황지호는 ‘조의신 네가 허락한다면 광고 모델로 너를…….’이라는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상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생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싶으면 직접 나가는 게 어떤가 싶다.

어쨌든, 권제인이 광고 모델로 나선 것 외에도 주목받는 요소가 많았다.

4월 1일은 주말도 아닌데 굳이 개장일로 택한 것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호족이 은호에게 후예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구하고, 만난 게 4월 1일이야. 그래서 4월 1일을 개장일로 택한 거겠지.’

날짜 선택부터 호족들의 후예 사랑이 절절히 느껴졌다.

일단 광고는 호평을 받으며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테마파크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였다.

여전히 ‘석촌호수의 비극’ 사건에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이 많아 유원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꽤 있었다.

어차피 테마파크가 적자가 나도 황지호가 망할 일은 없겠지만, 후예들은 사람이 가득한 테마파크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기왕 하는 거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학교 만우절 행사와 테마파크 개장을 앞둔 시점, 은광고 곳곳에 벚꽃이 피게 되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벚꽃만 보면 편하게 즐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벚꽃을 보고 웃을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반도의 고등학생에게 있어 벚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벚꽃은 특정 시기를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 어떡하냐. 망했다.”

벚꽃잎이 쏟아지는 창을 등지고 앉은 맹효돈이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부러진 샤프의 잔해와 텅텅 빈 노트, 수식으로 가득한 교과서가 있었다.

한국의 벚꽃은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기간에 핀다.

어느덧 중간고사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2학년은 1학년 때보다 공부할 양이 많아 좀 더 이르게 준비해야 했다.

‘중간고사는 4월 중순이니까 그리 넉넉하게 남지는 않았어.’

평소에 공부를 했다면 2, 3주 전부터 준비해도 충분히 괜찮은 성적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부족하다.

벼락치기로 공부할 양은 남은 기간에 비해 충분하지 않고, 공부하는 중에도 진도는 계속 나가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맹효돈은 지금 제 발등이 활활 타오르는 걸 달아오른 돌머리로 보는 중이다.

2학년 0반의 부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스터디 모임 할 사람.”

이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참가했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정묵아, 혹시 한자검정시험 몇 급이야? 이 과목은 2급 이상 정도 되는 실력의 학생들이 듣는 걸로 아는데…….”

“시험을 치러 본 경험은 없소.”

“1부터 10까지도 한자로 못 쓰는데 2급을 땄겠냐?”

진정묵은 용감하게도 ‘한문 고전 독해’ 과목을 택했는데, 의외로 알고 있는 한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라는 본인 수식어 중에 한자라곤 검객 두 글자밖에 없으니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영어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사월세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질문을 던졌다.

“정묵이는 영어를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영어 과목도 선택했소. 그 과목은 괜찮을 것 같소.”

진정묵은 영어 관련 과목 쪽지 시험에서 90점 이상을 획득하였다고 한다.

필기체로 답을 썼는데, 단어 선택과 문법도 완벽하여 보통 실력이 아닌 듯했다.

한자 과목을 다 빼고 영어 쪽 과목을 넣는 게 성적에 유리하지 않았을까?

‘무림인 콘셉트를 잡은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해외에서 평범한 플레이어로 지내다가 무슨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무림인이 되려고 한 게 아닐까?

자세한 정황은 모르겠지만, 한자 과목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낙제할지도 모른다.

뭣하면 절흑풍림에서 한자를 잘 아는 무림인을 소환해 개인 교습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우리 반에는 자청해 누군가의 개인 교사가 된 인물이 있었다.

“우람아, 이번에도 설마…….”

“네, 미리 공부해 왔습니다. 어느 과목이든 질문해 주십시오.”

목우람은 이번에도 권레나에게 맞춰서 대비를 해 왔다.

목우람은 이능 아이템 제작 관련 과목을 택하고, 권레나는 악기 연주 관련 과목을 택해 몇몇 선택 과목이 갈렸는데도 저랬다.

권레나는 미안해했지만, 목우람은 연주에 관해 공부하는 게 악기 제작에도 도움이 된다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여유가 없는 아이들이 많으니 다 같이 만우절 대비를 하긴 어렵겠네.’

반 전체의 분위기와 달리 나와 황지호처럼 멋대로 만우절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중간고사를 대비하는 사이, 만우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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