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13화 (81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3)

101. 흔적 (4)

계절이 바뀌어 개학, 입학 시즌이 되었다.

성국언은 은광고를 볼 때마다 성시완의 생각에 괴로웠고, 은광고의 안일한 운영에 분노를 품었으나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성국언은 제 감정을 누르고 그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했다.

그러던 와중, 뜻밖의 보고를 들었다.

“주수혁이 0반에?”

“네. 교사진이 0반행을 결정했고, 주수혁 학생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동의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겠지.”

성국언은 0반 출신이고, 자신이 0반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 한 점 없었다.

0반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런 식으로 후배가 강제로 0반에 가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보고서에 첨부된 사진 속 주수혁은 작년 초와 달리 어딘가 그늘져 보였다.

촬영당할 가능성을 생각해 부드럽게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지만, 성국언의 관찰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어른스럽고, 우수한 플레이어라고 해도 아직 한참 어린 학생이다. 친구를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성국언은 주수혁이 크리스마스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주수혁은 마족의 손 속에 놀아나 권속이 빙의해 에너미화한 급우를 제 손으로 쓰러뜨려야 했다.

그 사달을 일으킨 마족은 외부 지원이 오기 전에 유유히 탈출했고, 자리를 비웠던 교사진은 주수혁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

주오 그룹과 협회가 적극적으로 주수혁을 변호하지 않았다면 주수혁은 은광고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오 그룹이 뒤에 없었다면 퇴학당하거나 범죄자로 몰렸을지도 모른다. 0반에라도 간 게 다행인가.’

지금 교사들은 영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교사다운 이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사망한 교사들, 나태하고 부패한 교사들의 업무까지 소화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제대로 된 교사들이 일하고 사건을 수습하는 틈을 타 최편득 일당은 세력을 불려 갔다.

은광고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주수혁이 학교에 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추가로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주수혁 학생과 안다인 학생에 관해서입니다. 두 사람은 방학 사이 용족의 용궁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성국언이 주목하고 있던 두 학생이 용궁에 다녀오다니.

용족은 진족 중에서도 좀 낫다고 생각하곤 있었으나 그래도 둘이 진족과 엮였다니 마음에 걸렸다.

용족과 가족처럼 지내도 용궁에는 쉽게 갈 수 없다.

진족과 연이 없어 보였던 둘이 어쩌다 그렇게 깊이 용족과 엮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두 학생은 용제건 선생님과 가깝게 지냈던 모양입니다. 장례식에서 황룡과 마주쳤다는데, 그게 연이 되어 용궁에 초대받은 듯합니다.”

“초대한 건 청룡이 아니라 황룡인가? 그 진족은 지상에 나오는 일 자체가 드문데, 초대라니 의외군. 무슨 일로 초대한 거지?”

“용왕신의 무녀를 선발하고, 계승하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 새 무녀가 탄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하는 전무영이 점차 말꼬리를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폐쇄적인 용족이 외부에 공개하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용궁은 심해 속에 있으니 추가로 조사하는 건 불가능했다.

냉정하게 따지면 전무영이 이 정도로 조사한 것도 굉장한 성과였다.

용족이나 두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것 외에는 더 조사할 길이 없었다.

여전히 의문이 남아 성국언은 거듭 사고했다.

‘이상한 점이 많군.’

황룡은 동생처럼 아끼던 용제건을 보내는 자리에서 그와 가까운 제자에게 정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성국언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일면식도 없던 주수혁과 안다인을 동시에 용궁으로 초대할 이유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사실 그 이유는 다른 용족조차 알지 못했다.

‘어째서 황룡은 그 둘을 초대한 것인가.’

그 답을 알고 있는 건 황룡뿐이었다.

황룡은 ‘이럴 때일수록 용궁을 단단히 지켜야 한다’고 그를 만류하던 무녀들을 뒤로하고 지상으로 왔다.

지상에 온 황룡은 위화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이무기의 영향권을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이무기의 비늘이 섞이지 않은 식사를 한 덕이었다.

하지만 황룡은 용제건을 잃은 슬픔 탓에 제 감각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황룡의 위화감이 절정에 달한 건 장례식장에서 나란히 앉아 용제건을 추모하고 있던 주수혁과 안다인, 두 사람과 마주쳤을 때였다.

―제건이의 제자니?

황룡은 저도 모르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둘에게 다가가자 황룡은 몹시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꼈다.

안다인의 ‘특이 체질’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무기의 비늘에 잠식된 몸이 정화된 효과였으나, 황룡은 거기까지 알지 못했다.

황룡은 본능적으로 용궁에 저들을 초대해야 한다고 느꼈다.

황룡은 스스로 영문도 모르는 채로 둘을 용궁으로 초대하겠노라고 선언했고, 당혹스러워하는 청룡을 설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용왕신께서 저들을 부른 것도 아닌데 어째서 초대한 건가?

―청룡, 저 둘은 제건이의 제자다. 용궁으로 초대해 제건이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황룡…… 네게 계승식을 다 맡겨서 미안하군. 나는 지상의 일을 처리하고 있겠다. 손님을 잘 대접해 주게.

무녀들과 용궁을 지키는 황룡의 처지를 고려해 청룡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주수혁과 안다인의 용궁 방문 덕에 황룡은 이무기의 존재를 알아챌 기회가 생겼다.

황룡의 마지막 기회였지만, 흑막과 무녀들의 기만으로 그 기회는 스러졌다.

황룡이 용궁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눈치챘으나 무녀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용왕신의 자리를 이무기가 대신하리라곤 생각지 못한 탓도 있었다.

흑막은 무녀들을 부려 황룡과 안다인을 따로 행동하게 했고, 황룡에게 투여하는 이무기의 비늘 양을 늘렸다.

그 결과, 유황의 무녀는 무녀들을 장악하고 무녀 후보생들을 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가장 강력한 무녀가 될 예정이었던 윤여랑은 거짓말쟁이로 몰린 채로 암살당했다.

그리고 이무기가 온전하게 용왕신을 대신해 용궁에 자리 잡아 이무기의 비늘이 용궁 전체에 스며들고 황룡을 삼켰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군. 사고도 있었고…… 마음이 불안하지만, 용왕신께서 우리의 곁에 있으니 괜찮을 거다.

황룡은 용궁에서 안대 너머로 이무기가 강림했던 흔적을 바라보며 흐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황룡이 마지막 기회를 놓친 시점에서 용궁은 붕괴했다.

더 끔찍한 건 용족들은 용궁이 붕괴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상에 있는 용족들은 황룡과 무녀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리 성국언이 예리한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용족의 사정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 외에 보고할 사항이 있나?”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주수혁 학생의 스케줄을 체크하다 보니 눈에 띄는 게 있었습니다.”

용궁에 다녀온 후, 주수혁은 자주 병원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주수혁의 먼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이 중병에 시달리거나 급사하는 일이 잦아 문병과 조문 갈 일이 많았던 게 그 이유였다.

“전원 주오 그룹 관계자로군. 다 오씨인가?”

“네. 성씨가 다른 자도 있지만, 성본 변경을 한 자로 본래는 오씨입니다.”

오씨 집안의 불운에 관해서는 암암리에 퍼져 있었지만, 갑자기 의문사, 급사하는 페이스가 지나치게 빨라졌다.

주오 그룹에선 갑자기 중역들이 줄줄이 사망하거나 쓰러져 대혼란이 일어났다.

이 건을 두고 유전병, 상위 존재의 저주, 진족의 암살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으나 원인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주오 그룹 측은 저주 쪽으로 용하다는 무당 플레이어에게 자문을 구해 봤으나 ‘자업자득’, ‘다른 신은 개입할 수 없다’, ‘썩 약속을 지켜라’라는 답변과 함께 소금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장녀 오혜정은 실종, 차녀 오혜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사.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의문사라.’

오씨 성을 이은 생존자 중 병마에 시달리지 않는 자는 아직 중학생인 아이 하나뿐이었다.

상속 절차도 밟기 전에 오씨들이 차례차례 죽어 가고 있었기에 유산과 마지막 상속자인 중학생을 두고 오씨 집안은 뒤집힌 상태다.

주오 그룹 중역 중에서 오씨와 가장 친분이 깊고 업무상 엮일 일이 많았던 게 주수겸 전무 이사였는데, 주수겸이 마지막 남은 오씨를 보호 중이라고 한다.

‘주수겸이 보호 중이라면 안전하겠군. ‘오씨 집안의 불운’으로부터는 지킬 수 없겠지만…….’

오씨 집안의 불운은 사해 용왕과 오씨가 맺은 계약의 결과물이었다.

그나마 황룡이 수정궁 관리를 대신해 왔기에 오씨들이 그럭저럭 버텨 왔으나 용궁 붕괴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황룡은 이무기의 비늘에 완전히 잠식되어 수정궁 관리를 그만두고 이무기에게 힘을 더해 주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실타래가 꼬인 채로 썩어 가고 있는데, 실을 풀어내긴커녕 실타래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주수혁 학생이 들어간 0반에 관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뭐가 더 있나 보군.”

전무영이 2학년 0반의 명단을 건넸다.

가장 윗줄에 담임 교사 함근형의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부담임 교사는 공란이었다.

2학년 0반은 학생이 한 자릿수라 부담임 교사는 지정하지 않은 듯했다.

명단을 확인하던 중, 성국언이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황지호? 작년에는 없던 이름이군.”

“올해 은광고에 전입한 학생입니다. 황명 그룹 관계자라고 합니다만, 황명호와의 호적상 관계로 추측해 봤을 때 아마…….”

“높은 확률로 호족이겠지. 인간을 입적시켰을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눈에 띄는 행보는 삼갔을 거다.”

“은광고 전입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니까요. 의원님 말대로 호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황지호의 사진을 본 성국언은 실소했다.

황지호는 황명호의 젊은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국언은 저 황지호란 학생이 호족이라고 확신했다.

“학교가 그 지경이 됐는데도 놀고 있을 생각인가. 외부의 눈치도 안 보고 학생을 꽂아 넣는 게 진족답군.”

“학생 신분을 이용해 조사를 진행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학생은 수업, 시험 때문에 제약이 많다. 제대로 조사할 마음이 있었다면 교직원의 신분을 사용했겠지.”

성국언은 은광고의 새 학기가 시작된 이후, 황지호의 행보를 주목했다.

황지호는 학교에서 주로 주수혁과 자주 어울리는 듯했다.

하는 양상을 보면 황지호는 주수혁을 관찰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 같았다.

‘호족이 주수혁을 주목하고 있다. 주수혁이 관심을 보이는 안다인도 살피겠지. 그 둘에게 접근하는 건 관둬야겠군.’

자칫하다간 은광고 교내의 비밀 결사에 관한 정보가 호족에게 흘러 들어갈 위험이 생긴다.

성국언은 둘과 접촉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은 채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갔다.

성국언은 마치 주변의 지반이 점점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가끔 느끼게 되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성국언은 마지막까지 땅에 서 있고자 다짐했다.

성국언을 향한 정치 공작이 묘하게 잠잠해졌을 때, 어느덧 5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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