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4)
101. 흔적 (5)
5월 5일은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참사 1주기였다.
지난 한 해, 수많은 참사가 발생했는데 어린이날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럿 있었다.
첫째,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스포츠 경기 중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
둘째, 중계진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생방송으로 경기장 상황이 중계되었다는 점.
셋째, 사상자 중에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의 관중이 많다는 점.
넷째, 피해자 중에 대한민국 4대 재벌 총수 일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다섯째, 국내에서 최초로 전조 없는 이계 발생 현상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
여러 이유로 인해 대중은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건도 이 정도로 회자되고, 기억되면 좋겠지.’
아직 아무런 수습과 대책이 없는데도 잊힌 사건이 많았다.
설령 그 사건의 숨은 비밀이 드러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공개한다 해도 날씨 예보나 먹거리 소개 방송이 더 주목을 받을 거다.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니 대중들은 무감각해지고, 옛 사건으로부터 관심이 멀어진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성국언은 무관심한 대중 탓을 하지 않았다.
비극을 기억하고, 진상을 파헤치고 대책을 세우는 건 대중이 선택한 성국언의 역할이었다.
‘대중이 동요하지 않고 일상을 지켜 가는 건 정부와 협회, 사회에 믿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역할을 해야 한다.’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 성국언은 어느 인물과 마주쳤다.
무쇠팔 대영웅 송만석이었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국언이도 왔구나.”
올해 73세가 된 송만석은 여전히 나이에 비해 정정해 보였으나 작년에 비해 부쩍 나이가 들어 보였다.
송만석은 은퇴한 플레이어였으나 작년부터 움직일 일이 많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위해 한강을 찾는 이들이 늘었고, 순찰 중 이계를 발견해 싸우는 일이 잦았다.
한강 싸이클링 팀은 순찰 시간을 늘려 대응했으나 은퇴한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가족이나 지인, 혹은 본인이 피해자가 되어 더는 싸울 수 없게 된 플레이어들이 늘어나 남은 이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작년에 사망한 해설자가 송만석 어르신과 아는 사이라고 했지.’
송만석은 당대 최고의 영웅으로서 수십 년 전에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막 해설가의 길을 걷게 된 고인과 알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고인은 작년 참사 때 대피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안내 방송을 하다가 방어선이 무너져 사망했다.
에너미가 문을 부순 순간, 단말마가 마이크를 통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설가와 캐스터는 마이크와 송출용 디바이스를 끄고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고 한다.
고인과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던 송만석이 물었다.
“요새 위성 건으로 시끄럽더만, 잘 해결됐나?”
“아직도 국유화 추진 중입니다. 그전에 플레이어 특별법에 손을 대려 하더군요.”
“플레이어 특별법에?”
“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국회에 있지 않습니까? 입법 과정에 허튼짓은 못 합니다.”
송만석은 안심했다기보다는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송만석 정도 되는 거물에겐 아직 성국언은 한참 어린 연배의 신출내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위성 이야기를 꺼낸 송만석은 이어서 손주, 송대석에 관해 말을 꺼냈다.
“전에 손주 이야기를 한 걸 기억하나?”
“은광고에 합격한 대석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손주가 자네 후배일세.”
은광고에 들어간 손주가 대견한 건지 송만석은 흐뭇해하며 웃었다.
성국언은 송대석에 관해 알고 있었다.
본가가 홍천에 있다 보니 홍천 출신 플레이어에 관한 소식은 금방 전해졌다.
송만석의 젊은 시절과 빼닮은 외모에 강한 이능을 타고났으나 악의 어린 사고로 인해 피해자였던 소꿉친구 민그린과 나란히 등교 거부자가 된 것도 전부 퍼져 있었다.
‘송만석 어르신하고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지.’
사회적인 영웅은 가정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송만석도 그런 케이스였다.
게다가 송대석과 민그린이 그런 사건에 휘말린 건 송만석의 위광 탓도 있었기에, 조손 관계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 건지 오랜만에 송대석이 송만석에게 독대를 청해 무언가를 전한 듯했다.
“위성 자료에서 무슨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하더구나. 인터넷에 아무리 글을 써도 사람들이 보지 않고, 협회에 문의해 봐도 무시당해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됐다 말했지.”
등교 거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서먹한 관계였던 할아버지의 도움을 청하는 데에 이른 듯했다.
송만석은 협회에 있는 연줄을 이용해 위성 연구팀과 접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플레이어 협회는 지난 1년간 심각한 사내 정치로 인해 파탄이 나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큰 사건들을 협회 내에선 사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고, 책임을 물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기존의 한국 지부장은 실각하고 간부도 대거 교체되었다.
“그러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국유화 문제 때문에 위성 관리팀과 말할 기회가 많습니다.”
지금의 협회엔 송만석의 이름이 통하지 않을 테니, 성국언이 나서기로 했다.
고등학생과 위성 관리팀과 접촉시킨다고 국회의원이 나서는 건 이상한 모양새였지만, 송만석이 저렇게 나오는 걸 보면 위성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무영을 통해 위성 관리팀 측에 송대석이 정리한 자료와 그의 디바이스 코드를 전달하기로 한 후, 송만석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항상 몸조심해라.”
한 해 동안 저보다 젊고 유망한 이들을 먼저 보낸 송만석이 성국언을 걱정했다.
성국언은 걱정 마시라며 웃고 자리를 비웠다.
시간이 흘러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오전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해가 질 무렵에는 전무영과 함께 은광고로 향했다.
스승의 날에 찾아뵙겠다는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의원님, 저 학생은…….”
“우리가 받은 첫 민원인이었지. 은광고에 왔었구나.”
두 사람이 받은 첫 민원은 광일초등학교에서 누명을 쓸 뻔한 어느 초등학생을 지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위기에 처했던 초등학생은 한이였고, 민원인은 독고미로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들은 바로 독고미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독고미로는 그들에게 민원을 하러 왔을 때처럼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축 늘어뜨린 검은 머리카락과 내리깐 새카만 눈에서 초등학생 시절에 두르고 있던 패기라곤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퇴근할 시간이니 서둘러 전하는 게 어떻나.”
독고미로가 들고 있는 카네이션을 보며 성국언이 말을 걸었다.
성국언을 뒤늦게 발견한 독고미로가 눈을 크게 떴다.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이라니…… 저를 기억하세요?”
“당선하고 만난 첫 민원인인데 기억하고 있지. 후배가 된 줄은 몰랐구나.”
성국언이 입꼬리를 크게 올리며 웃었다.
그 얼굴을 본 독고미로는 뭔가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였다.
성국언은 독고미로가 두 번째 민원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게 직업이다. 기다리마.”
전무영에게 눈짓을 하자 주변을 둘러보는 척 결계를 쳤다.
공개된 장소이니 모습은 보여도 엿듣는 귀를 막기 위함이었다.
독고미로는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은광고가 광일초등학교처럼 변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이 정도로 이상하진 않았는데…….”
독고미로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전했다.
정말로 은광고에서 벌어진 일인가 싶을 정도의 막장이었다.
‘은광고에 요청한 자료 중, 조작된 부분이 있군. 횡령을 숨기고 있고, 인사 과정에 비리가 있는 데다 학생 성적을 둔 청탁까지…….’
은광고가 썩어 있는 와중, 또 광일초 때처럼 독고미로의 지인이 위험에 처한 듯했다.
“이번엔 한이가 아니에요. 청훤이 오빠, 공청훤 선생님이 위기에 처했어요.”
독고미로의 설명에 의하면, 공청훤은 은광고의 기간제 교사로 현재 실세를 잡은 최편득의 눈 밖에 난 인물이다.
공청훤이 최편득으로부터 학생을 몇 번 보호했는데, 그 이후로 상당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듯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카네이션을 한 송이도 받지 못한 최편득은 그 화풀이를 공청훤에게 했고, 하루 종일 수업도 쉬게 하고 붙잡아 둔 바람에 아무도 꽃을 건네지 못했다.
몰래 카네이션을 건네기 위해 교무실로 잠입했던 독고미로는 최편득 일당의 대화를 들어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학기에는 공청훤이 은광고에서 해고당할 것이고, 횡령 건과 관련해 누명을 쓰고 학교 측에 고소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디바이스를 켜면 위치를 들킬 수 있어서 하지 못했어요. 제가 참여하지 않은 대화를 녹음하는 건 불법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는 독고미로의 눈이 한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증거를 잡지 못한 것보다 공청훤을 두고 헛소리를 하는 교사들의 머리를 박살 내지 못한 걸 더 아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사실 꽃을 주겠다고 몰래 교무실에 숨어든 건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닌데, 성국언이 0반이었을 때에는 더한 일도 했으니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성국언은 아주 오랜만에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독고미로와 대화를 나눴다.
성국언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고 대책을 세워 가자 독고미로의 눈에서 절망이 사라지고 희망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좋은 선생님은 날짜가 지나도 기쁘게 카네이션을 받아 줄 거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출근길이나 퇴근길을 노리는 게 어떻나?”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독고미로는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굣길에 올랐다.
은광고는 그동안 있던 사건 탓인지, 천익산의 나무들이 시들시들해서 그런 건지 몹시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밝게 하교하는 학생을 보니 한결 분위기가 나아졌다.
그 광경을 본 전무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의원님이 계시면 괜찮을 거다. 의원님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상황을 올바르게 이끄는 힘이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전무영만이 아니었다.
전무영처럼 성국언이 가진 힘에 관해 이해하는 자가 많았다.
그런 이들이 성국언을 지지하거나 경계했다.
그리고 성국언을 경계하는 자들 중에는 흑막도 있었다.
성국언은 역경 앞에 무너지지도, 심지가 꺾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흑막은 성국언을 이 세계에서 아예 지워 버리기로 했다.
‘묘하게 사람이 없군. 얼른 의원님을 모시고 자택으로…… 응?’
은광고 주변, 인적이 없어 텅텅 빈 도로.
어린아이 둘이 도로 위에서 에어 세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아이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클랙슨을 울리려고 했을 때, 눈앞이 멸했다.
파아아앗!
“무영아, 내려!”
성국언이 경고하자 전무영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대신 주저 없이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성국언도 전무영과 동시에 탈출에 성공했으나 둘은 세단과 함께 아공간에 삼켜졌다.
성국언과 전무영의 흔적이 현세에서 사라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