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18화 (81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8)

102. 대책 (1)

은광고에 와서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앞둔 1학년 후배들은 대부분 죽상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예외도 있었다.

“의신이 형, 안녕하세요.”

기숙사 식당, 아침.

은호는 평소와 다름없는 상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험 기간이 되었다고 해서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는 건 천성헌 때와 마찬가지였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다들 안색이 안 좋아지거나 옷차림이 지나치게 편해지는 등 변화가 발생하는데 천성헌은 한결같았다.

지금처럼 말이다.

“시험 기간을 맞이해서 의신이 형이 저희 반 아이들을 잘 챙겨 주신다고 들었어요. 다른 반 아이들이 부러워할 정도예요.”

“한 게 없는데.”

“없기는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1학년 학생들이 하는 말이에요.”

은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이 아니라 주변의 의견이라고 재차 말했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우기환, 금찬왕찬 일당 같은 0반 선배놈들이 있었던 탓에 평범하게 해도 대단한 선배 노릇을 한 것처럼 포장되는 것 같다.

‘1학년 구역에 자주 갈 수 없어서 챙길 기회도 별로 없는데.’

교내를 자주 돌아다니는 1학년 0반 아이들과 신문부 신입 부원, 기숙사 소속 후배들은 그나마 자주 보지만 그뿐이었다.

다 착한 애들이다 보니 그 몇몇 아이들이 좋게 말을 해 주고 다니나 보다.

은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주말에 석원이가 며칠 굶고 실험을 하다가 쓰러질 뻔했어요. 의신이 형이 사 준 비상식량과 이온 음료를 떠올려서 불상사를 면했다고 해요. 어제 마주쳤을 때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여가 시간에 보통 실험에 매달리는 차석원과는 가까워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은호 덕에 얼굴을 트게 되었다.

차석원의 행동 패턴을 생각해 이것저것 챙겨 줬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결국엔 쓰러질 뻔했으니 그리 대단한 도움은 못 됐다.

우선 차석원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몸은 괜찮대?”

“네. 만약을 대비해 지익회에 기숙사생 건강 관리에 유의해 달라고 건의했어요. 기숙사생이 기숙사 내에서 큰일을 겪을 뻔했으니 대처를 해 주겠죠.”

은호처럼 남을 잘 챙기는 후배가 차석원의 옆방에 배정되어 정말 다행이다.

올해 지익회는 잘못된 회장을 뽑는 바람에 불안했는데 기숙사생 중에 은호가 있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은호가 저런 건의도 했는데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아 비슷한 문제가 또 발생한다면 그건 그냥 지익회장 잘못이 아닐까?

그나마 지익회에 현 회장 같은 놈만 있는 게 아니라 박승현 같은 인재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등굣길에 올랐다.

‘올해도 벚꽃이 길구나.’

신수가 바라면 벚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진다.

작년에는 천사의 천재적인 힘 덕에 벚꽃이 길게 피었고 천사의 기적은 다시 발생했다.

작년에도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벚꽃이 피었는데, 올해도 그럴 것 같았다.

화사한 빛깔의 벚꽃과 어울리지 않게 등굣길의 학생들은 죽어 가는 얼굴로 홀로그램을 보거나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수상한 부반장님, 여유가 넘치시네.”

벚꽃 사진을 찍던 문새론이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저렇게 말하는 문새론도 시험공부보다는 취재를 우선할 만큼 여유가 있어 보였다.

부지런한 문새론 덕에 은광고인이 아닌 사람들도 은광고의 벚꽃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만났으니 같이 등교하자며 문새론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가 문새론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문새론은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경계하는지, 주변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다인느님 부모님을 본 애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 앎? 크리스마스 때 다인느님 괴롭히던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들’ 말고 진짜 닮은 그 양부모님들…….”

문새론은 크리스마스 이후에 금전적으로 안다인을 괴롭히던 가족의 존재에 관해 알고 있다.

그리고 황지호가 한 선언도 들었다.

늙은 호랑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는 안다인은 현재 황명 그룹의 관계자로, 황지호 친척의 양녀가 되어 가족처럼 지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정보들을 전부 알고 있는 문새론은 안다인의 가족사에 복잡한 문제가 있음을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호족 부부는 안다인과 교내에서 훈련을 하고 있고, 또 황명 그룹 쪽에서 일할 예정이라 점점 목격자가 늘 수밖에 없겠지.’

호족 부부는 얼굴을 숨기지 않고 안다인의 곁에서 지지해 주는 길을 택했고 황지호도 이를 도우려 하고 있다.

호족 부부가 안다인의 진정한 가족이 되는 것 자체는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문새론처럼 모든 걸 알고도 모르는 척 지켜봐 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 반장님이랑 다인느님한테 악개 붙어 있음요. 요새 두 분이 대련한다고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런 사정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듯!”

정보통 문새론이 하는 경고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닐 거다.

그 경고를 새겨듣기로 했다.

안다인 팬덤은 관리가 잘되고 있고, 주수혁 악개 견제도 잘하고 있으나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상황이 터지면 호족이 아무 대책 없이 지켜볼 리는 없지만, 아예 그런 상황이 안 터지게 하는 것이 최고다.

교실을 향하는 동안 문새론과 정보 교환을 하며 경계심을 다졌다.

*    *    *

2학년 0반 교실.

교실에 도착해 보니 몇몇 자리가 비어 있는 게 보였다.

원래 학교에 안 나오던 등교 거부자들, 오로라빛 책걸상만 남기고 다시 사라진 관종들이 없는 건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민그린이 와 있는데 송대석이 없어 의문을 표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럼 대석이는 오늘 결석하는 거야?”

“응, 급한 일이 있나 봐. 바로 협회로 갔어.”

권레나의 질문에 민그린이 답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협회도 나름 절박한 상황이었다.

홍규빈에게 대강 들어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들었다.

‘포모르 마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힘이 작용하는 바람에 관측값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지.’

홍규빈은 포모르 마족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한 요소를 배제하고 관측값을 재조정하는 작업에 송대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대석이 없어도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고 하지만, 관측 자료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고안한 인물이 빠지면 작업 속도가 심각하게 더뎌지므로 부디 송대석을 보내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개입할 필요 없이 송대석은 협회의 부름에 기꺼이 응했다.

송대석은 평소에도 수업 때만 제대로 듣고 따로 시험공부는 하지 않는 타입이라 시험 기간에 연연하지 않고 별 망설임 없이 갔을 거다.

‘리플레이 속에선 위성팀과 접촉하기 위해 송만석과 성국언의 힘을 빌렸어야 했는데.’

지금은 협회에서 송대석을 모셔 가게 되었다.

송대석을 학교에서 못 보는 건 아쉽지만,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낫다.

한편, 우리 반에는 리플레이와 크게 달라진 처지에 놓인 인물이 또 있었다.

“와, 이거 공청훤 선생님 과목 시험 범위야? 진짜 많다. 난 선생님이 좋아도 수업은 못 듣겠더라.”

“…….”

독고미로가 한이가 공부하는 ‘이계 환경과 에너미 생태’ 과목의 범위를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

독고미로는 과목 선택을 할 때, 도전 정신이 요구되는 과목은 전부 피했다.

현명하게도 공통 과목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체 능력과 이능으로 점수를 딸 수 있는 과목을 택했기에 한이나 맹효돈처럼 고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플레이어로서의 장래를 생각하면 미묘한 선택이지만, 독고미로는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다.

독고미로는 남는 시간을 춤 연습, 보컬 트레이닝에 쏟아부으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플마고에서 봤던 무기력한 모습과 전혀 달라. 그때보다 더 활발하게 배우고 움직이고 있으니 플레이어로서의 능력도 훨씬 향상되었을 거야.’

독고미로와 달리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력을 하는 반 아이도 있었다.

교실에서 가장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서툴게 붓펜을 놀리고 있는 진정묵이 그랬다.

“음, 정묵아. 혹시 볼펜을 안 가지고 왔으면 빌려줄까?”

“괜찮소. 붓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오.”

김유리가 조심스럽게 제안했으나 진정묵이 고개를 저었다.

진정묵의 한자, 서예 실력을 고려하면 편한 펜을 써도 한자를 제대로 쓰기 어려울 것 같은데, 붓펜이라니.

먹을 갈고 전통 붓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앗, 저번에 보니까 그냥 붓을 쓰시던데 붓펜으로 바꾸셨군요! 다행이에요. 먹을 가는 데 오래 걸려서 걱정했거든요.”

“절흑풍림에서 파견된 무림인이 붓펜을 대량 제공해 주셨습니다.”

사월세음과 목우람의 말을 들으니 전에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나 보다.

절흑풍림이 콘셉트에 완전히 잡아먹힌 줄 알았는데 아직 붓펜 정도의 상식은 남은 듯하다.

진정묵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답했다.

“소생은 여전히 붓을 선호하오. 하나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다망한 와중에 선배들이 주신 선물이라 무시할 수 없었소.”

절흑풍림은 포모르 마족에 대응하느라 바쁜가 보다.

진정묵은 학업보다는 마교 척살을 우선시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학관에 성실히 다니겠다는 다짐과 장문인의 당부를 어길 수 없어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왕 저렇게 된 거 붓펜으로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부반장…… 미안하다…….”

갑자기 맹효돈이 대뜸 사과했다.

맹효돈이 내민 문제지가 오답과 물음표로 가득했다.

질문할 게 많아 보였다.

“괜찮아. 어떻게 생각하고 풀었는지 설명해 줘.”

“그러니까 이 문제에선 이 공식을 써야 할 것 같았는데…….”

맹효돈은 정말 열심히 생각하다 온 것 같았다.

나는 과외를 해 본 경험이 있어 학생이 공부를 하고 왔는지, 안 하고 왔는지 바로 구분할 수 있었다.

맹효돈은 저렇게 머리를 굴리다가 돌이 가루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티가 났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지만, 맹효돈은 내 설명을 이해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 진짜 미안하다…….”

맹효돈에게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계속 미안해하기만 했다.

문제 풀이 과정이 오래 걸리다 보니 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도 미안해하길래 맹효돈에게 언질을 주기로 했다.

“미안하면 이번 스승의 날에는 미리 약속 잡고 탄래중에 가.”

“어…… 스승의 날에?”

“응, 선생님께 카네이션 드려야지. 요새도 연락하고 지내잖아.”

사실 지금 맹효돈은 스승의 날보다 수학 성적 걱정을 해야 하긴 했다.

그래도 미리 말해 두기로 했다.

‘같이 가서 또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맹효돈이 딴 길로 새지 않도록 스승의 날에 동행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올해 스승의 날에는 아주 중요한 예정이 있어 함께 갈 수 없다.

맹효돈은 머뭇거리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중간고사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을 것 같네.’

최악의 경우 맹효돈이 추가 시험을 치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리 노력을 하니 낙제는 안 할 것 같다.

문제는 중간고사가 아닌 다른 시험이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천동하는 아직 옛 한국 지부장에게 도전하는 중이던데, 괜찮을까?’

천동하는 바쁜 몸이라 시간을 두고 옛 한국 지부장의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데도 일정을 조정한다고도 들었다.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동하가 걱정됐지만 걱정을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천동하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후배 걱정을 덜어 준답시고 공략을 서두를까 봐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중간고사를 한 주 남긴 주말, 드디어 천동하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천동하] 통과했어.

천동하가 옛 한국 지부장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축하의 말에 이어 어떤 제안을 했다.

[나]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천동하] 설마 또 다른 AI를 소개하는 건 아니지?

그 AI와 관계가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 있는 인간을 소개할 예정이다.

옛 한국 지부장이 남긴 정보를 확인해야 할 인물이 더 있었다.

[나] 그분의 손주 되는 분이에요.

조만간 성국언과 약속을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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