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19화 (81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9)

102. 대책 (2)

한밤중, 중앙 구역의 주차장.

성국언의 일정상 만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제안하기 무섭게 약속이 잡혔다.

성국언은 바로 밤에 만날 것을 제안하며 마중 나올 것을 요청했다.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국언이 탄 에어 세단이 도착했다.

“기다렸나? 늦은 시간에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마중 정도는 당연히 나와야죠.”

“우선 타라. 이동 전에 얘기하자.”

굳이 타라는 걸 보니 리플레이 건을 두고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늦어 주차장에선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음, 도청 대비가 되어 있는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게 안전할 거다.

‘천동하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르게 마중 와 달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전무영이 경험한 리플레이에 관한 사항이 정리된 문서를 건네려 하지 않을까?

양해를 구하고 곧장 확인한 후에 질문을 던져서 내용을 확실히 알아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전무영은 나를 보고 인사를 했을 뿐, 뭘 건네지는 않았다.

‘……왜 말이 없지?’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성국언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무슨 말을 하려고 불렀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구나.”

리플레이 건에 관해서 말하려던 게 아니었나?

포모르 마족이 또 무슨 짓을 한 걸까?

성국언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건을 떠올려 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리플레이 건으로 부른 게 아니냐고 되묻자 성국언이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조금 달라. 내가 은인에게 고마움도 표현할 줄 모르는 매정한 선배라고 생각했나?”

성국언이 매정한 인물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플마고를 통해 접했을 때에도, 이 세계에서 직접 봤을 때에도 성국언은 정이 깊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성국언이 은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성국언의 은인과 이 상황이 무슨 관계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 큰 손이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반사적으로 손의 주인, 성국언을 올려다봤다.

“그땐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지. 의신아, 고맙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리플레이를 통해 정보를 제공해 준 걸 고맙다고 하는 걸까?

정보를 얻겠다고 악몽에 밀어 넣은 후배에게 감사 인사를 하다니, 성국언의 배포는 남달랐다.

정보를 얻기 위한 행위였으니 감사받을 이유가 없다는 요지를 전하자 성국언이 고개를 저었다.

“리플레이를 해 줘서 고맙다고 하는 게 아니야. 지금까지 네가 해 온 모든 것에 감사를 표하는 거지.”

성국언은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국언은 이름 없는 조연의 튜토리얼에 있었던 일부터 꺼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쏟아지는 감사의 말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어떻게 안 건지 성국언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줘서 정신을 들게 했다.

성국언은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도,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던 일도 거의 다 집어내 말했다.

‘리플레이와 현재와의 차이점을 비교해 다 찾아낸 건가? 몇 개는 그냥 짐작한 것 같기도 한데, 내 반응을 보고 그냥 사실이라 확정 지어 버리네.’

성국언처럼 우수한 두뇌와 기억력, 정보력을 가진 인물이 리플레이를 하니 얻는 정보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 같다.

과연 성국언은 굉장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이번엔 성국언이 등을 ‘팡!’ 하고 두드렸다.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하던 생각을 잊고 말았다.

“리플레이 속에서 나쁜 의미로 주목하고 있던 의원이 하나 있었다. 이 세계에는 정계에 없던 자라 조사해 봤더니 환몽 게이트와 연루되어 있더구나.”

환몽 게이트에 관해 들으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적벽괴도가 내 후배였다니! 경매에서 괴도 네온이 뜬금없이 적벽괴도에 관해 물은 이유가 그거였구나.”

아…… 결국 성국언도 ‘그 단어’에 관해서 알아 버렸다.

백조 가면을 쓰고 경매에 참석한 옹길동은 그날 까마귀 가면을 보고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날은 성국언과 행동하고 있었기에 그걸 바로 앞에서 보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화려한 등장을 한답시고 구슬비와 동시에 유리창을 깨러 갔지만 말이다.

“네가 적벽괴도의 협력자일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너는 그 위험한 일을 남한테 떠넘길 성격이 아니지. 너와 호족의 행보를 보면 그 시점엔 아직 호족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시점 아니냐. 혼자서 그걸 해내다니, 대단하다.”

“적벽괴도가 이렇게 어린 인물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적벽괴도의 후보로 여기던 인물 중에 고등학생은 없었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냥 감사 인사를 받는 편이 훨씬 나았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리플레이를 사용할 때마다 ‘그 단어’에 관해 탄로 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성국언은 아주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의 말을 듣는 게 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편견에 사로잡혀 진족과 후예,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을 외면했지. 계속 외면한 결과가 그 리플레이의 일부가 되었어.”

낯간지럽고, 들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 감사의 말이나 ‘그 단어’의 연호는 듣기 괴로웠으나 저 말은 매우 반가웠다.

성국언의 세계가 더욱 넓어지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성국언은 김신록의 존재를 통해 진족에 대한 편견을 덜어 낸 게 아닌가?

저 감사 인사는 김신록에게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핫! 아무리 네가 부정해 봤자 다 의신이 네 덕분이다. 네가 없었다면 선생님이 후예라는 걸 알 기회가 없었겠지. 용제건 선생님의 진의도 알지 못했을 거야.”

“의원님 말씀대로입니다. 저도, 의원님의 생각도 리플레이처럼 흘러갔을 겁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둘 다 독심술이라도 쓰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악몽을 보여 줘 놓고 저런 소리를 듣는 건 마음에 걸린다.

성국언은 나를 다독이듯 말했다.

“의신아, 나는 네가 왜 리플레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다.”

할 말을 마무리한 건지, 성국언이 내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 악몽은 네가 있다면 결코 시작될 리 없는 허구다. 그러니 이 악몽을 보여 줄 능력을 가진 자는 당연히 너여야 한다.”

자격은 둘째치고, 성국언의 말대로 나는 악몽을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계속 수를 둘 것이다.

*    *    *

선도부회관 앞.

천동하와 약속한 시각에 정확히 맞춰서 도착했다.

사실 늦는 게 아닐까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길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얼마 안 지났네.’

대화에 참가한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말을 듣기만 해서 길게 느껴졌나 보다.

천동하는 우리를 발견하자 선도부회관의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했다.

“비밀 결사는 선배님 대에도 이어지고 있었군요.”

“후배들이 언젠가 수수께끼를 풀어 주리라 믿으며 뒤를 맡겼지.”

“결국 수수께끼를 푼 건 학생회와 선도부가 아니었지만요.”

성국언과 천동하는 인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천동하는 처음엔 끔찍한 정신 공격을 가하던 옛 한국 지부장이 생각난 건지 복잡한 얼굴을 했지만, 대화를 하며 그 둘이 다른 존재임을 받아들인 듯했다.

“후배들에게 이계 공략을 떠넘길 수 없지. 우리가 하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재학 중에 몇 번이나 의원님과 클리어했었죠.”

보스 룸까지 돌파하는 건 성국언과 전무영이 맡았다.

경험자답게 두 사람의 공략하는 속도는 지극히 빨랐다.

둘의 공략법과 호흡이 척척 맞는 팀플레이에 천동하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활약으로 여느 때보다 더 이르게 보스 룸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 문 너머를 내 눈으로 보는구나.”

이미 내게 보고를 들어서 무엇이 있는지는 알 텐데, 직접 보고 싶었나 보다.

성국언이 기대에 찬 얼굴로 문 위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기계음에 이어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점차 옛 한국 지부장의 모습으로 실체를 굳혔다.

성국언과 옛 한국 지부장이 마주 보고 있으니 외모의 차이점이 좀 느껴지긴 했지만, 참 닮아 있었다.

성국언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옛 한국 지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처음 뵙습니다.”

[또 손주가 왔나? 다른 손주의 기억에서 본 그 아이군.]

“하핫! 저를 아이라고 부르시는 걸 보니 정말 제 할아버지의 AI가 맞군요.”

두 사람은 매우 닮아 있어서 보는 입장에선 위화감이 상당했지만, 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성국언은 할아버지를 만난 게 반가운 건지 연신 기분 좋게 웃었다.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따라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거든요.”

[그런가? 단서를 얻고 싶다면 시험을 통과해라. 손주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압니다. 시완이를 봐주지 않으셨다고요. 저도 손대중은 필요 없습니다.”

처음 만난 조손이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긴 어려웠지만, 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무영은 둘을 보며 쓴웃음 지었다.

“제가 먼저 시험에 응하려 했습니다만, 의원님이 양보해 주지 않을 것 같군요.”

전무영의 예상대로 성국언은 양보하지 않고 옛 한국 지부장의 시험에 응했다.

성국언의 굳건한 정신력을 생각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다.

최단 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역시나 성국언은 금방 시험을 통과해 버렸다.

시험을 마친 성국언은 그리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렇게나 빨리…….”

공략에 애를 먹었던 천동하가 허무함이 섞인 감탄사를 뱉었다.

성국언이 뛰어난 것도 있긴 하지만, 그저 이능 간의 상성 문제 때문에 천동하의 공략이 늦었던 것이니 그리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국언의 공략이 빨랐던 건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

옛 한국 지부장이 손주의 선전을 두고 뭐라고 평가할지 기대했는데,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보스 룸 전체에 노이즈가 꼈다.

전무영이 노이즈를 보며 말했다.

“시뮬레이터가 연산 오류를 일으켰을 때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디버깅 프로그램을 가동해 대응하는 중이군요.”

“내 기억 속의 시간대가 얽혀 있어서 그렇겠지. 재연산할 때 내 기억이 이능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정상화될 거다.”

옛 한국 지부장은 정신 공격을 가할 때 성국언의 리플레이도 읽었다가 오류를 일으킨 듯하다.

그래도 심각한 수준은 아닌 건지 노이즈가 점차 가라앉았다.

성국언은 생각에 잠긴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옛 한국 지부장과 대련을 하면서 뭔가 알아낸 게 있나 보네.’

노이즈가 사라지자 다시 옛 한국 지부장이 나타났다.

성국언은 바로 질문을 던졌다.

“제가 당한 공격은 할아버지의 광림을 구현한 겁니까?”

[그렇다.]

옛 한국 지부장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아직 연산 오류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걸까?

성국언은 시간을 두고 다시 질문했다.

“제 기억을 읽으셨으니 자세한 정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어째서 그자들이 할아버지의 광림을 사용한 겁니까?”

성국언의 공략이 지나치게 빨랐던 건 한 번 경험해 본 이능이었던 탓도 있었나 보다.

풍백과 우사가 사용한 힘은 옛 한국 지부장의 광림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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