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21)
102. 대책 (4)
중간고사 대책을 철저히 세워 둔 이들은 시험이 어서 지나가길 기원했다.
그에 반해 준비가 덜 된 학생들은 시험을 하루라도 더 미루고 싶어 했다.
‘미룬다고 해서 결과가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진 않은데.’
대책이 있건 없건 모두 공통된 생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은광고의 벚꽃이 지기 전에 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길 바란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시험을 치는 호랑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천사는 벚꽃이 오래 피도록 천재성을 발휘했다.
“전 이걸로 시험 끝났어요! 다행히 벚꽃이 지기 전에 끝났네요.”
기숙사생 중에선 사월세음이 가장 빨리 시험을 끝냈다.
선택 과목을 보니 딱히 시험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른 것 같지는 않은데 운이 좋았다.
‘시험이 일찍 끝났다는 건 그만큼 몰아서 시험을 쳤다는 뜻인데. 괜찮았나?’
하루에 시험을 여러 개 치르면 준비하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사월세음은 이번 시험은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고, 가채점 결과도 괜찮다고 한다.
사월세음이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다.
“사실 현상 수배범 최편득 사냥 파티 측에서 만든 스터디 모임에 참가했었어요. 자습한 시간을 공유하는 간단한 스터디 모임인데요, 거기에서 공유하는 공부 자극 문구가 도움이 됐어요.”
사월세음이 자신이 가입했다는 스터디 파티를 소개했다.
홀로그램에는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모두가 잊어도 우리는 잊지 않을게요, 현상 수배범 최편득을 까며 빡공하는 팟 (10/10)]
[최편득 까팟2 (10/10)]
[ㅊㅍㄷ ㄲㅍ3 (10/10)]
[4 (10/10)]
[5 (10/10)]
……
‘작년보다 늘어난 것 같은데?’
파티 모집 게시판을 보니 최편득 관련 파티가 늘어나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최편득에게 당한 이들이 일부 졸업했으니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월세음도 그게 궁금해 스터디 파티장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현상범을 여럿 사냥하면서 표창을 많이 받은 덕에 인지도가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현상 수배범 헌터를 지망하는 분들이 많이 가입했어요. 많지는 않지만, 1학년도 있었어요.”
최편득과 연이 닿은 학생들이 모두 졸업한 후에는 저 파티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월세음의 말을 들어 보니 최편득 토벌 파티는 계속될 듯하다.
“이번엔 스터디 모임만 참가했지만, 전투 훈련을 좀 한 다음엔 토벌과 추적 활동에도 가 볼까 생각 중이에요! 의신이도 같이 할래요?”
시간이 맞으면 참가하겠다고 하자 사월세음이 크게 기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장기간 지명 수배범이었던 플레이어 범죄자를 잡아내는지 궁금하므로 한 번쯤은 같이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월세음은 자유를 얻었으나 아직 다른 기숙사생들은 시험이 남은 상태였다.
“…….”
기숙사 스터디 룸, 한이가 파리한 얼굴로 홀로그램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이는 공청훤의 ‘이계 환경과 에너미 생태’ 시험을 앞둔 상태였다.
한이의 고생이 심한 것 같아 진정묵을 절흑풍림의 무림인에게 떠넘길까 고민했는데, 한이가 고개를 저었다.
“정묵이는 한 번 설명해 주면 곧잘 이해하니까 손이 별로 안 가.”
한이의 설명을 들어 보니 진정묵은 글 쓰는 손이 느린 것을 빼면 우수한 학생인 듯하다.
진정묵은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동안 쉬는 시간을 활용해 몇 분 정도 짧은 질문을 던질 뿐, 한이의 공부 시간을 빼앗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진정묵은 오히려 한이에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시험 범위에 포함된 논문을 읽을 때, 정묵이의 도움을 받았어. 번역 앱으로도 잘 안 읽히는 복잡한 구문을 쉽게 풀어 주더라.”
공청훤이 참고 자료로 언급했던 해외 발표 논문을 말하는 건가?
나도 그 논문을 읽을 때에는 평소보다 시간을 오래 들여야 했다.
‘2학년이 된 후에 공부할 양이 늘어서 좀 힘든가 보네.’
한이는 대화하는 내내 손에 학교에서 나눠 준 무설탕 레몬 사탕을 들고 있었다.
이번에 학교 측에서 설탕 대체 감미료가 들어간 무설탕 간식을 많이 제공했는데, 어쩌면 황지호가 친우를 위해서 준비한 걸지도 모르겠다.
‘독고미로와의 대련 이후부터 한이의 성적은 조금 떨어진 채로 유지되는 중이지.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는 중인가.’
한이와 독고미로, 두 사람의 과거를 두고 개입하는 건 매우 어렵다.
친우 소리를 해 대며 한이를 귀찮게 하는 황지호도 가만히 있을 정도다.
언젠가 한이와 독고미로가 대련이 아닌 대화로 옛일을 풀어낼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야! 부반장! 생각보단 쉬웠다!”
수학 시험을 마치고 온 맹효돈이 핼쑥해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채점 결과는 42점이었다.
대체 무엇을 생각했기에 생각보다 쉬웠다는 말이 나온 걸까.
40점은 넘었기에 재시험은 피했지만, 앞날이 걱정되는 점수였다.
“레나, 고생하셨습니다! 시험 보느라 많이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지익회에서 나눠 준 간식이 남아 있습니다. 괜찮다면 같이…….”
“간식은 나중에 먹을게. 우람아, 잠깐 거기 앉아 있어 봐!”
시험을 마치고 스터디 룸에 나타난 권레나가 목우람을 자리에 앉혔다.
권레나는 테이블 근처에 놓인 의자가 아닌 휴식용 카우치를 지정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목우람은 아무 의심 없이 권레나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목우람이 자리를 잡자 권레나가 늘 들고 다니는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당연한 거지만, 학교에서 지급한 바이올린이구나.’
저게 목우람이 만든 이능 바이올린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바이올린 장인께서는 아직도 주저하고 있었다.
목우람이 망설임이 가득한 눈으로 바이올린을 응시하는 사이, 권레나가 연주 준비를 마쳤다.
권레나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한 후에야 정신을 차린 목우람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렇게 권레나가 목우람에게 헌정하는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 이 곡은……?’
권레나가 권제인의 신곡을 연주한다고 하기에 황명 테마파크에서 발표된 곡을 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권레나는 다른 곡을 택했다.
곡명은 ‘The Dazzling Cyan Pearl’.
은광고 축제 당시, 승천을 결심한 상태였던 용제건과 만난 권제인이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었다.
그러나 듣다 보니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내가 알던 곡과 다른 부분이 있어.’
내가 기억하던 그 곡은 자유롭고 생기 넘치던 선율이 점차 외롭고 흐리게 변하는 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권레나가 연주하는 곡은 마지막까지 활기가 넘쳤다.
중간중간에 장난스러운 변주가 더해지니 완전히 다른 곡 같았다.
‘권레나가 편곡한 것 같지 않아. 권제인이 직접 어레인지한 미발표 신곡이구나.’
목우람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밝은 음색을 뒤집어썼다.
곡이 하필 용제건을 테마로 한 곡이라서 그런지 넋이 나간 목우람을 놀리는 유희계 용의 모습이 그려졌다.
목우람은 용케 기절하지 않았지만, 곡이 끝난 후에도 박수조차 못 치고 권레나를 응시했다.
연주를 마친 권레나가 수줍게 웃으며 곡 소개를 했다.
“권제인 선배님이 개학 후에 용제건 선생님을 뵙고 새로 편곡하셨어. 아직 발표가 안 된 신곡이야!”
권제인이 처음 만들었던 곡은 승천을 앞둔 용제건을 보며 만든 것이었다.
권제인은 곡을 발표했던 은광고 축제 날에 이런 코멘트를 했었다.
―제가 기억하는 용제건 선생님은 자유로운 분이지만, 비행을 마치면 반드시 땅에 발을 붙일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하늘로 그대로 올라가 버리실 것 같아요.
그러나 용제건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으므로 권제인의 감상도 변했다.
그렇게 새 버전이 탄생했다.
권제인은 ‘The Dazzling Cyan Pearl’을 편곡하며 ‘On The Ground’라는 부제를 붙였다고 한다.
용제건이 승천하지 않고 지상에서 살아가리라는 의미를 담은 듯했다.
권레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겨우 정신을 차린 목우람이 물었다.
“훌륭한 연주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연주를 하신 겁니까?”
“우람이한테 선물을 주고 싶어서. 전에 우람이가 원곡을 듣고 즉석에서 악보를 만들어서 나한테 줬었잖아. 그래서 이 곡의 어레인지 버전을 골랐어!”
그냥 신곡이라서 고른 게 아니라 나름 목우람과 연관이 있는 곡을 고른 건가.
선곡 과정에서 느껴지는 권레나의 마음씨에 깊이 감동했다.
목우람은 권레나가 자신을 위해 연주했으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듯했다.
“이번 시험도 도와줘서 고마워. 우람이 덕분에 시험 준비가 수월해서 바이올린 연주를 연습할 수 있었어. 두 번째 곡으로는 권제인 선배님이 황명 테마파크에서 발표한…… 우람아?”
스르륵…….
목우람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놓고 카우치에서 눈을 감았다.
뮤즈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그 연주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정신이 감당할 수 없었나 보다.
“두 번째 곡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하루가 다르게 권레나의 연주 솜씨가 발전하고 있으니, 다음엔 더 견디기 힘들 텐데.
목우람은 조만간 또 기절하게 생겼다.
한편, 시험이 끝난 반 아이들로부터 디바이스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유리] 의신아, 어제 보내 준 1/4분기 학생 대표 회의 대비 운영 자료 확인했어!
[김유리] 내가 먼저 준비하려고 했는데…… 고마워! >▽<
김유리는 늘 시험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학생 대표 회의 준비를 시작해 자료를 만들어 내게 보낸다.
늘 김유리가 학생 대표 회의 준비를 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이번엔 시험 기간에 내가 만들었다.
‘이번엔 자료 준비할 시간에 좀 쉬었으면 좋겠다.’
김유리는 학생회의 주요 멤버로서 할 일이 많으니 학급 일의 부담을 덜어 주고 싶었다.
지금은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괜찮지만, 앞으로 있을 시나리오에 따라선 내가 돕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김유리 외에도 내게 메시지를 보낸 우리 반 인물이 있었다.
[독고미로] (링크)
[독고미로] 들어 줘.
독고미로가 앞뒤 설명 없이 대뜸 링크를 보냈다.
은광고의 패왕이 낚시 링크를 보낼 리는 없으므로 의심 없이 확인해 보았다.
독고미로가 첨부한 링크는 SZ게임즈에서 발표한 예의 갓겜의 트레일러 영상으로 연결되었다.
‘그 갓겜의 오픈 베타 테스트 게임 트레일러가 공개되었구나!’
클로즈드 베타 테스트에서 대호평을 받은 그 갓겜은 이제 오픈 베타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짧은 오픈 베타 테스트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정식 오픈을 할 텐데도 갓겜답게 OBT 게임 트레일러를 따로 뽑은 모양이다.
플마고에서도 저 갓겜의 게임 트레일러가 잘 뽑혔다고 몇 차례 언급되어 기억하고 있다.
‘플마고도 게임 트레일러는 잘 뽑았지.’
하지만 운영과 게임성, 스토리 등등 때문에 플마고는 희대의 망겜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게임 홍보가 잘 안 됐거나, 게임 트레일러가 후졌으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바람에 망겜 소리는 들어도 국민 망겜이라는 악명까진 얻진 않았을 텐데.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독고미로가 ‘봐 줘’라고 하지 않고 ‘들어 줘’라고 했는데, 설마…….’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가사 없이 모음으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독고미로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