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22화 (822/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22)

102. 대책 (5)

독고미로가 어느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하는 중이라고 몇 번 말했지만, 이 갓겜의 OST 작업에 참가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만큼 트레이닝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던 것 같은데 귀가 트이는 듯한 소리를 들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는 듯하다.

독고미로는 반주와 가사도 없는 곡을 오로지 목소리로 끌어갔다.

‘플마고에선 게임 삽입곡에 관한 언급은 없었어. 이런 노래가 있었다면 한 번쯤은 말이 나왔을 텐데.’

갓겜답게 OST에도 신경 썼지만, 내 기억대로라면 보컬이 있는 곡은 없었다.

독고미로의 존재로 무언가 바뀐 게 분명했다.

혹시 플레이어 서바이벌 프로그램 플레이리스트를 보고 제작사가 보컬 곡을 추가한 걸까?

SZ 게임즈는 한국 게임사이므로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 게임의 주역은 플레이어니까. 플레이어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을 거야.’

이 갓겜은 이세계로 향한 플레이어들의 도전, 모험, 경쟁, 대결을 그리고 있다.

이 게임의 주제곡을 부를 이는 플레이어가 어울릴 것이다.

독고미로의 맑고 강렬한 고음 속에서 SZ 게임즈의 로고가 떠올랐다.

로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이 영상은 클로즈드 베타 테스트에 참가한 유저들의 동의를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게임 트레일러에 유저들의 영상이나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독고미로의 보컬이 멈추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화면 속에선 고퀄리티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인게임 배경이 흘러갔다.

모든 배경 속에서는 막 신세계에 소환된 플레이어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어스름의 푸른 계곡, 최초의 공격대.

하단에 자막이 떠오른 것에 이어 갑자기 인게임 음성 채팅을 이용 중인 듯한 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정까지 얼마나 남았어?]

[5분 30초 정도.]

[마지막으로 확인합니다. 23시 58분에 보스 룸에 돌입해 광림을 연속으로 쓸 거예요.]

화면이 밝아지고, 인게임 화면이 보였다.

디바이스 게임 화면 녹화 장면인 듯했다.

게임 화면 속 3D로 구현된 공격대장이 미니맵을 가리키며 사전 오더를 내렸다.

공격대장은 자정에 광림 재사용이 가능해진다는 걸 이용해 광림을 연속으로 날려 단숨에 보스를 제압할 계획이었다.

공격대장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공격대원의 긴장을 풀어 주며 짧은 브리핑을 마쳤다.

‘어스름의 푸른 계곡을 최초로 공략한 공격대는 전 서버 랭커 1위였던 것 같은데…….’

내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공격대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돌입합니다.]

앞으로 돌진하는 플레이어들을 비추며 화면이 빛으로 물들었다.

화면은 다른 곳을 비추었다.

이번엔 플레이어 협력 PVE 모드가 아닌, 팀 대결 PVP 모드가 진행 중인 인게임 화면이었다.

―연옥의 사슬 투기장, 결승전.

[교전 중지, 멈춰! 잡몹은 상대하지 마. 저쪽에서 또 용암 소환한다, 용암술사부터 잡아!]

[죽을 것 같다. 서포터 어디? 결계술 스킬 가능?]

[멀어! 못 가. 아이템 써, 아니야, 그냥 뒤로 빠져.]

[침착해, 안 늦었어. 아직 우리 포인트가 높아.]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투기장에서 격돌한 가운데, 혼전이 이어졌다.

아니, 혼전으로 보일 뿐이지 사실 한쪽의 일방적인 책략에 따라 전황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대 팀에선 텔레파시 교신 스킬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적을 가지고 놀고 있는 중이었다.

[예상대로 움직이네. 곧 용암술사 잡으러 오겠지?]

[오면 바로 스위치 스킬로 광전사와 위치 바꾸고, 광전사가 광림으로 도발 잡으면 광전사 채 다 날려 버린다.]

동귀어진 전술을 지시했는데도 광전사가 불만 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개인보다는 팀의 승리를 택한 것이다.

[확인!]

인게임 화면은 몇 번 더 바뀌었다.

직접 아바타 의상을 제작해 비경을 배경으로 스샷을 찍는 플레이어, 상인으로서 느긋하게 교역하는 플레이어, 유적을 발굴하여 제 이름을 붙이는 플레이어 등 몇몇 화면이 빠르게 흘러갔다.

트레일러에는 게임사가 심혈을 담아 만든 게임을 만끽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서 게임의 방대한 세계관과 완성도, 자유도, 몰입도가 느껴졌다.

이 모든 게 전문가가 연출한 CG나 성우의 연기가 아닌 일반 유저들이 만들어 낸 장면이라는 게 인상 깊었다.

트레일러 영상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도약의 항구 도시, 이계화 방어전.

자막이 뜨는 건 전과 같았는데, 이번 장면은 시점이 달랐다.

여태까지는 조작하는 캐릭터의 몸이 전부 보이는 숄더 뷰 시점이거나 멀리서 맵을 조망하는 시점이었는데 이번엔 완전한 1인칭 시점이었다.

마치 게임 속에 직접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디바이스 게임 화면이 아니야. VR 기기를 이용해 풀 다이브한 버전이다.’

풀 다이브 버전의 경우 디바이스 버전에 비해 섬세한 조작이 가능하지만, 시야가 좁아지는 등 훨씬 어려워지고 집중력을 더 요구한다.

초반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모드인데 CBT에서, 그것도 이계화 방어전이라는 난이도 높은 전투를 치르며 사용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상당한 수준의 게임 폐인인 듯했다.

[플로어 마스터 하나 더 떴어! 일곱 시 방향에서 접근 중!]

[둘이라고? 잡을 수 있나? 이계화 진행이 너무 빨라!]

[아…… 보스 룸 결계 겨우 부쉈는데…….]

상황은 절박했다.

사기가 떨어진 듯 절망에 찬 탄식을 끝으로 음성 채팅이 잠시 끊겼다.

그러자 1인칭 화면의 주인공인 듯한 인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러다 전멸합니다. 제가 막을게요. 보스 잡으러 가세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탄성을 지를 뻔했다.

이 화면의 주인공은 유상훈이었다!

유상훈의 플레이 화면이 트레일러에 사용되다니, 이 게임 폐인의 정체가 유상훈이었다니.

내가 경악하는 사이에도 재생이 계속됐다.

[저걸 혼자 막는다고요?]

[네, 제가 죽기 전에 깨세요.]

말하는 동안, 유상훈은 설정 화면을 열어 타기팅 모드를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꾸었다.

자동 모드에선 스킬 키 버튼을 누르면 바로 적을 타기팅해 쏘는데, 풀 다이브 중에 수동 모드로 하면 사실상 몸으로 싸우는 것과 다름없어질 정도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저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올라간 난이도에 내가 대항할 수 있다면 그만큼 캐릭터의 성능이 좋아진다.

유상훈도 그걸 알기에 저런 선택을 한 거다.

[……갑시다!]

공격대원들이 유상훈을 뒤로하고 보스 룸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부터 혼자 남은 유상훈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디버프 확인. 독 4중첩된 분 있어요. 5중첩되면 바로 브리핑.]

[즉사의 저주 걸린 도끼 와요, 도끼! 도끼 온다고! 조심!]

[독 안개가 시야 가림! 앞이 안 보여, 도끼 어디야. 정화 스킬 좀!]

[아직 넌 3중첩이야. 참아. 네 위치는 안 위험해. 믿고 그대로 2시 방향으로 계속 공격 스킬 갈겨.]

[더 길어지면 방패병 님 죽어요. 딜 사이클 유지하세요!]

[다 왔습니다. 집중하세요. 마지막까지 집중!]

공격대원들의 음성 채팅이 정신없이 들리는 중에도 유상훈은 플로어 마스터들을 막았다.

유상훈이 보고 있는 화면이 점점 붉고 어둡게 변했다.

조작하는 캐릭터가 죽음에 가까워지자 화면의 초점이 맞지 않기 시작했는데도 유상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유상훈을 향해 플로어 마스터가 검을 들어 올린 순간.

파아아앗!

눈앞의 적들이 한순간에 빛의 입자로 화해 사라졌다.

항구 도시의 중심에서 이계화를 노리던 보스 에너미 토벌에 성공한 것이다.

바다 저편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환희에 찬 음성이 쏟아졌다.

[클리어! 깼어요!]

[진짜……? 깬 거야?]

[이거 깰 수 있는 이벤트였다고! 우리가 증명했다!]

[깼다, 깼어어어!]

환호하는 플레이어 사이에는 홀로 플로어 마스터 둘을 상대하던 빈사 상태의 방패병, 유상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상훈이 최대 공헌자임을 알리는 메시지 뒤로 그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오는 공격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점점 밝게 변하며 화면이 전환되고, 다시 독고미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랫소리가 멎는 순간 ‘쿵!’ 하는 효과음과 함께 게임 슬로건과 타이틀이 떠올랐다.

―플레이어에게 경의와 승리를

―PlayerZ

이 갓겜의 이름은 ‘PlayerZ’로, ‘플레이어젯’ 혹은 줄여서 ‘플젯’, ‘피젯’으로도 불린다.

플레이어를 주제로 한 매체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는 플레이어젯의 트레일러 속에 우리 학교 학생이 둘이나 등장하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여운에 젖어 있는 대신 우선 독고미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칭찬과 감상의 말을 적어 보내자 독고미로는 안심한 듯한 메시지를 보냈다.

어쩌면 독고미로가 처음으로 이 링크를 보낸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풀 버전도 들어 보고 싶다.

[독고미로] 풀 버전 공개되면 알려 줄게.

[나] 그래.

[나] 이 링크, 반 아이들한테 보내도 돼?

[독고미로] 그러든가.

독고미로가 직접 링크를 거는 것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한 3자가 소개하는 게 덜 긴장될 것 같았다.

독고미로도 승낙했으니 반 아이들에게 이 링크를 보내기로 했다.

반 아이들이 아닌 인물에게도 보내기로 했다.

[나] (링크)

[장남욱] 의신아, 이거 무슨 링크야? 확인해 볼게.

[장남욱] 어? 이거 상훈이가 하던 게임인 PlayerZ 영상이네. 곧 오픈 베타 테스트를 하나 보구나. 사관학교 생도 중에 기다리는 애들이 많더라. 의신이도 이 게임에 관심 있어?

[나] 일단 봐.

[장남욱] 응? 알았어. 일단 보고 올게.

이 게임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이 메시지방에 올린 건 유상훈 때문이다.

유상훈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들은 장남욱이 놀라워했다.

[장남욱] 마지막에 나온 거 상훈이잖아! 상훈아, 이거 진짜 너야?

[유상훈] ㅇ

[장남욱] 와, 조작 모드가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데 어떻게 한 거야? 저 정도로 조작하기 위해서 상훈이가 얼마나 오래 게임을 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아.

시작은 칭찬으로 했지만, 점점 게임 폐인을 향한 장남욱의 잔소리가 길어졌다.

아무래도 유상훈은 이번에 필기시험을 꽤 망친 듯한데 여전히 머릿속엔 저 게임이 가득해 보였다.

‘실기 시험 성적은 오른 것 같던데.’

저 게임을 하며 유상훈의 이능 다루는 솜씨가 향상되었을 거다.

플레이어의 전투를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시뮬레이터를 많이 참고한 덕에 나중엔 플레이어젯으로 실기 연습을 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걸로 안다.

전용 전문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운전 시뮬레이터 게임으로 운전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보다는 플레이어를 동경하던 사람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게 되지만 말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트집을 잡는 사람도 나오긴 하지.’

허구로 창조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지만 플레이어와 이계 공략 요소가 포함된 게임이 유행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도 나오긴 한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한 전쟁을 소재로 한 FPS 게임, 영화, 드라마 등이 있는 현실에서 이세계 판타지물인 플레이어젯만 물고 늘어지는 건 그냥 잘나가는 게 배 아파서 그렇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잡음과 상관없이 플레이어젯은 대성할 예정이었다.

*    *    *

PlayerZ의 오픈 베타 테스트 트레일러가 공개된 지 며칠 후.

1/4분기 학생 대표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는 길.

“미로 노래 있잖아, 학생회 사람들이 나한테 풀 버전은 없냐고 몇 번이나 물었어. 다들 기대하고 있나 봐.”

김유리가 독고미로의 노래 얘기를 꺼냈다.

독고미로의 노랫소리는 호평을 얻었고, 기존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중이 독고미로에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전체 분량에 비하면 매우 짧은 독고미로의 노래보다는 트레일러 영상의 구성과 내용, 출연한 유저들과 게임 그 자체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큰 기회라는 건 변함이 없어.’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가하다 보면 반드시 큰 기회가 온다.

독고미로가 부디 그 기회를 잘 붙잡길 바랄 뿐이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중에 김유리가 갑자기 디바이스를 확인하고는 멈춰 섰다.

“……의신아, 우리 잠깐 체육관 들렀다 가지 않을래?”

학생 대표 회의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의문은 김유리가 보여 준 홀로그램을 보자 풀렸다.

홀로그램 속에는 한이와 진정묵이 비무를 하기 위해 몸을 푸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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