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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26화 (82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26화 : 대책 (9)

102. 대책 (9)

TC 나이츠의 광팬이자 스폰서인 달토끼떡의 대표이사.

공개적으로 진족임을 드러내고 사는 토족의 수장.

작년 어린이날 이계 공략에 참가한 플레이어.

위 사항을 생각하면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옥토연이 시구자로 선정되기 충분했다.

‘작년에 염준열이 등장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많네.’

옥토연이 손을 흔들며 야구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모자 밑에서 새하얀 토끼 귀가 튀어나오고, ‘오오’ 하고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옥토연이 붉은 눈은 드러내도 귀는 숨기고 다니는데 팬서비스 차원으로 보여 준 듯했다.

한껏 귀 자랑을 한 옥토연이 와인드업 자세를 취하다 공을 던졌다.

‘구속은 그럭저럭 있는데 제구력이 엉망이야.’

옥토연은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큰 건지 몸 여기저기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포수가 급히 일어나 미트를 뻗지 않았더라면 공이 더그아웃 쪽으로 굴러갔을 거다.

옥토연은 눈을 크게 뜨고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포수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환히 웃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오래 산 진족이라도 제구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몸이 던졌다면 저런 형편 없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겠지.”

황지호가 아무도 묻지 않은 말에 홀로 답했다.

옥토연은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중앙석으로 왔다.

곧바로 나한테 말을 걸 생각인지 우리 반이 자리 잡은 곳을 향해 왔다.

“어!”

“…….”

내 쪽으로 오기 전에 옥토연이 송대석과 마주쳤다.

송대석은 권레나가 작성한 문구인 ‘민그린+25cm’가 쓰인 반 티를 입고 있었는데, 옥토연의 시선을 피해 슬쩍 몸을 돌리는 바람에 문구가 아주 잘 보였다.

‘저 둘은 협회에서 월궁계도를 다루는 것 외에도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가한 것 같던데.’

그 프로젝트에 관해선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그 때문에 임지화 팀장이 팀에 묶여 있다는 말을 홍규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위성팀의 업무가 워낙 과중하고, 최근엔 정부에서 위성을 걸고넘어지는 바람에 이에 대응하느라 프로젝트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작년부터 위성팀의 중심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송대석과 옥토연 역시 그 프로젝트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둘은 협회 위성팀에서 같이 일하며 안면을 튼 사이지만, 비밀 프로젝트를 다루다 보니 아는 척을 하기 꺼려질 거다.

‘공개된 장소에서 둘이 친분을 드러내는 건 좋지 않아.’

송대석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계속 딴청을 부렸다.

아는 척을 할 뻔한 옥토연도 뒤늦게 그렇게 생각을 한 건지 붉은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어색하여 황지호가 혀를 찼다.

내가 끼어들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옥토연이 반가움과 안도감을 담아 나를 봤다.

옥토연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날 듯이 뛰어왔다.

“응, 안녕! 내가 공 던지는 거 봤어? 잘했지?”

“네, 잘 봤어요.”

솔직히 말해서 잘 던진 건지 모르겠지만, 잘 본 건 사실이므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옥토연은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조잘조잘 떠들었다.

야구장을 같이 오고 싶었는데 그동안 오지 못했다, 새 사업 준비 때문에 매우 바쁘다, 그동안 보낸 떡은 잘 먹었냐, 또 먹고 싶은 떡은 없냐 등등 옥토연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대하듯 말을 걸었다.

토족의 수장이 나한테 저러고 있으니 당연히 주목을 받았다.

“쟤 발이 넓네. 그치, 한이야?”

“…….”

“그때 이계 공략 같이 하면서 알게 된 걸까?”

“그건 아닐 겁니다, 레나. 효돈이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토족의 수장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음…… 저기에서 음료를 이동식으로 판매하고 있어! 통을 두 개 들고 있는 거 보니 맥주 말고 일반 음료도 파나 봐.”

반 아이들이 나와 옥토연에게 관심을 보이자 김유리가 화제를 돌렸다.

늘 믿음직한 반장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 미안할 따름이다.

황지호는 당장이라도 옥토연을 어딘가로 날려 버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사전에 끼어들지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이 자리에서 고등학생 황지호가 옥토연을 향해 ‘망할 달토끼’ 어쩌고 하는 꼴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옥토연은 내 고생도 모르고 그저 신나 있었다.

“반 애들이랑 옷 맞춰 입었네! ‘ㅇㅈㅇㅇㅇ’? 그게 뭐야. 엔조이 웃음? 아자 월요일?”

저번에 12지 회담 할 때 보니 초성 퀴즈를 그리 기꺼워하지 않더니만, 옥토연은 즐거워하며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말을 갖다 붙였다.

내가 정답을 알려 주기 전에 이 초성 퀴즈의 출제자가 불쑥 말을 걸었다.

“토연 씨, 그게 궁금해?”

“왁! 왜 용제건이 여기 있어!”

“그때 나도 이계 공략에 참가했잖아. 잊었어?”

용제건은 계속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처음 옥토연이 시선을 준 쪽을 돌아봤다.

송대석과 민그린이 나란히 앉아 있는 곳이었다.

그쪽을 향해 생긋 웃은 용제건이 말했다.

“난 의신이네 반 부담임이거든. 그런데 의신이 말고도 우리 반에 아는 애가 있나 봐. 그린이? 대석이?”

“누, 누군지 안 알려 줘!”

“아는 애가 있는 건 확실하구나.”

“대답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

그야 옥토연이 아는 애가 있는 것처럼 말을 했으니 알겠지.

용제건이 조금만 구슬리면 옥토연은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불어 버리겠다.

내가 끼어들기 전, 옥토윤이 나타났다.

“토윤 언니! 어디 있다 와!”

“구단 관계자와 얘기할 게 있었어. 여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용제건이 있었네.”

그야 안전을 따지면 이쪽은 전혀 문제없다.

은광고의 우수한 플레이어들이 한가득이고, 황지호도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용제건이 있다는 것뿐이다.

“토윤 씨도 왔구나. 수련은 잘되고 있어?”

“제건 씨 덕분에. 승천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안 하나 보네?”

“응, 이거 보여? 우리 반 애들이 써 준 거야.”

옥토윤이 용제건을 상대하는 사이를 틈타 옥토연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황지호에게 지지 않고 말싸움을 하는 옥토연이라도 용제건을 상대하는 건 꺼려지나 보다.

“오늘 시구 잘 봤어요. 옥토연 대표이사님, 안녕하세요.”

“음, 역시 너도 왔구나.”

옥토연이 자리를 잡기 전, 도시후와 마주쳤다.

도시후는 도원우와 유상희에게 인사하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옥토연은 눈을 크게 뜨고 도시후를 관찰했다.

‘저번엔 도시후더러 사상(死相)이 보인다고 했지. 이번엔 어떨까.’

옥토연은 도시후에게서 죽을 조짐, 사상을 읽어 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꼼꼼하게 얼굴을 살폈다.

도시후는 태연하게 서 있는데 장남욱은 긴장한 얼굴로 옥토연의 말을 기다렸다.

“아직 좀 찝찝하긴 한데, 저번보다 훨 낫네. 그래도 조심해.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네, 기억하고 있어요.”

장남욱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도시후에게 여전히 죽음의 낌새가 남아 있나 보다.

‘무지기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지. 여전히 무지기가 도시후를 원망하고 있는 거야.’

제천대성이 잠든 무지기에게 도시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지기는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니 그 상황을 전부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그래도 제천대성이 언제나 분신을 무지기 곁에 두며 도시후를 옭아맨 원념을 억누르고 있다고 한다.

도시후의 목숨이 걸린 무거운 이야기가 오가는데도 저놈은 속없이 웃었다.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요.”

도시후는 저리 말하고 장남욱 쪽으로 향했다.

‘장남욱 말고도 주수혁이 저 대화 내용을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주수혁은 지켜볼 뿐, 깊게 캐물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시후가 장남욱의 잔소리에 못 이겨 자외선을 피해 야구 모자를 쓸 즈음에는 1회 말이 되어 홈팀인 TC 나이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최근 TC 나이츠는 망팀답지 않게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었는데, 어린이날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줬다.

5회가 끝날 때까지 TC 나이츠가 경기를 리드했다.

‘옥토연이 엄청 신났네.’

옥토연은 열정적으로 응원 구호를 따라 하고 응원가를 부르며 TC 나이츠를 응원했다.

옥토윤은 경기 중에 빠져나가고 싶은 건지 시계를 몇 번 확인했지만, 옥토연이 워낙 좋아하고 있다 보니 포기한 것 같았다.

‘작년 이 시각에는 이계가 발생했는데.’

오늘은 흑막의 공격이 없었다.

작년과 오늘은 너무나도 달랐으니 흑막이 노리기 어려웠을 거다.

협회 내부의 변화, 국내에 주둔 중인 프로 플레이어 팀의 수준 등 달라진 건 많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결계였다.

키모폴레이아호에서 주오, TC의 차기 총수들이 발표했던 약속이 지켜져 야구장에는 SR++급의 결계가 설치되었다.

흑막이 부하를 동원하면 모를까, 이계 발생을 유도해 함락시키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태다.

‘설마 올해도?’라는 생각을 품은 관객도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그라운드 정비 시각에 아주 짤막한 인터뷰 방송이 흘렀다.

인터뷰 대상자는 그날 공략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날 잠실야구장을 지켜 준 플레이어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인데도 정말 대견하네요.]

[그렇습니다. 자막으로 보셨다시피 소개된 플레이어들이 1년 사이에 혁혁한 전과를 쌓았는데요. 학생들의 성장에 감탄하면서도 이만큼 자주 전장으로 내몰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다시금 감사를 품게 됩니다. 플레이어가 우리 사회에서 해 주는 역할만큼 보답받길 바랍니다.]

반 아이들이 같이 인터뷰를 보자며 디바이스를 켠 덕에 캐스터와 해설가의 덕담을 들을 수 있었다.

전광판과 디바이스 중계 화면에서는 인터뷰를 주도적으로 이끈 주수혁 쪽을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 주수혁은 엄청난 전공을 세운 플레이어라기보다는 휴일을 맞아 야구장에 놀러 온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의신이랑 효돈이가 인터뷰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사전에 녹화하셨군요. 아쉬워요.”

“왜 그게 보고 싶냐?”

“두 분이 칭찬받는 걸 보고 싶었거든요!”

맹효돈은 어색해하는 눈치였지만, 반 아이들은 사월세음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야구장 소풍 제안에 다들 찬성한 걸까?

덕분에 일정 조정이 쉬워졌으니 감사하긴 한데,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클리닝 타임이 끝나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경기는 TC 나이츠의 승리로 끝났다.

“아자! 이겼어! 이대로 가을 야구까지 가자!”

옥토연은 좋아서 방방 뛰어다니고, 장남욱은 씁쓸한 얼굴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래도 아직 5월인데 가을 야구는 너무 성급하지 않나 싶다.

“오늘 야구 경기 재밌었어! 또 오고 싶다.”

“이긴 팀인 TC 되게 잘 싸우더라. 다음 경기도 보러 갈까?”

TC 나이츠의 팬이 되기 직전인 아이들을 보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앞은 지옥이니까 멈추길 바란다.

피해자는 옥토연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차라리 만년 2등인 주오 드래곤즈의 팬이 되는 게 나을 텐데.’

야구계에는 불후의 명언이 몇 개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이다.

망팀이 봄이나 초여름에 잠깐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 주며 정규 리그 순위 상위권을 차지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망팀답게 결국 가을 야구가 시작되기 전에 최하위권으로 떨어질 거라는 게 저 명언의 뜻인데, TC 나이츠도 그리될 가능성이 크다.

‘플마고도 잠깐 반짝했다가 다시 망겜으로 떨어졌지.’

플마고 속 2년 차에서 염준열이 활약하고, 옹길동의 괴도짓이 잠시간의 평화를 가져와서 잠시 플마고가 재평가받은 시절이 있었다.

두 캐릭터는 조작감도 좋고, 사용하는 스킬이나 광림이 화려하며 저들의 행보는 암울한 스토리를 바꿔 주리라는 기대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아주 잠깐이었을 뿐, 둘이 처참하게 죽으며 플마고의 스토어 순위와 평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작년에는 이렇게 사람 많은 곳 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또 응원하러 오고 싶어.”

말리고 싶었는데 민그린이 저런 말을 꺼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송대석이 작성해야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적지 못하는 바람에 민그린의 반 티에는 ‘대석이가 아무것도 못 씀’이라는 의문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송대석은 신랄한 말은 툭툭 뱉으면서 정작 민그린에게 중요한 말은 제대로 못 하는 미련한 놈이었다.

“이만 가자.”

“네!”

경기의 여운에 빠져 있던 반 아이들이 함근형 선생님의 말에 따랐다.

함근형의 선생님의 반 티에는 내가 적은 ‘출석률 거의 100%’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출석률 100%가 아닌 게 아쉬웠지만, 봄 소풍은 무사히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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