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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27화 (82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27화 : 헌화 (1)

103. 헌화 (1)

소풍 다음 날, 아침.

은호와 헤어지고 2학년 구역으로 향하는 길에 주수혁과 마주쳤다.

“의신아, 어제 소풍 중이라 바빴을 텐데 시간을 내 줘서 고마워.”

주수혁은 별것 아닌 걸로 감사 인사를 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나는 주수혁의 요청으로 반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주수혁이 안내한 곳은 주오 드래곤즈의 구단 사무실, 그중에서도 구단장실이었다.

대체 왜 내가 이곳에 불려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무실 주변을 둘러싼 경호원들을 보고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감을 잡았다.

내 예상대로 주오 그룹의 차기 총수 일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번에 수리를 찾아 준 건으로 백부모께서 계속 인사하고 싶으셨대. 그런데 좀처럼 만날 일이 없어서…….”

주오 그룹의 차기 총수 부부는 주수혁의 큰아버지, 큰어머니이다.

그들의 딸이 주수혁의 사촌인 주수리이다.

‘은광고 축제 때 주수리가 미아가 된 건 사실 나 때문인데.’

하지만 그걸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과분한 감사 인사를 사양했다.

그러자 뭘 착각한 건지 차기 총수 부부는 주수혁의 친구가 겸손하다며 흐뭇해했다.

주수리는 나를 보고 감사 인사를 하긴 했는데, 말하는 내용이 어째 전부 안다인에 관한 것들이었다.

주수리도 안다인의 팬인 걸까?

주수혁과 주수리는 둘 다 안다인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닮은 것 같다.

“수리랑 최근 만난 건 저번에 열린 주오 건설 창립 30주년 행사에서였는데, 그때도 너랑 다인이에 관해서 이것저것 물었어. 또, 야구장에 다인이가 안 와서 아쉬워하더라.”

안다인이 안 온 건 나도 아쉬웠다.

도원우는 매년 유상희를 야구장에 한 번씩 권했고, 기어코 올해 같이 오는 데에 성공했건만.

주수혁은 안다인을 권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 도시후와 장남욱과 잘 놀다 왔다.

추한 부분이 없는 완전무결한 타이틀 히어로라 그런지 도원우만 한 대시 능력은 부족한 듯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어느덧 얼마 전에 있었다던 주오 건설 창립 30주년 행사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사실 그날 혜지 누나를 걱정했어. 나나 수겸이 형하고 같이 강제로 참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주수혁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오씨 집안에서 오혜지를 주씨와 엮기 위해 부린 패악을 생각하면 그 정도 짓은 아무렇지 않게 할 테니까.

하지만 주수혁이 저렇게 말을 꺼낸 거면 별일이 없었던 것 같다.

“괜찮았어?”

“응. 오 회장님, 그러니까 혜지 누나네 부친 되시는 분도 결석하시고, 혜지 누나도 안 왔어.”

주수혁의 말에 의하면 주오 건설 이사회에 소속한 오 씨들은 대부분 왔는데, 그 오 회장이라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 회장은 오혜지에게 출석은 자유롭게 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었으나 누가 움직인 결과인지 짐작이 갔다.

‘주수겸이 움직였구나.’

주수겸은 이계 종이에 인쇄된 유언장을 분석하여 오씨 집안의 누락된 유언에 관한 단서를 잡았다.

이를 이용해 주수겸이 오 회장과 교섭을 시작한 것 같다.

교섭 조건 중 하나로 오혜지의 자유를 요구했을 거다.

‘황지호도 초대받아 참석했을 만큼 큰 행사였는데, 오혜지를 주씨와 엮지 않았다는 건 주수겸이 움직였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주수혁은 오혜지가 성인이 되자 오씨 집안에서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좋게 해석했지만, 완전히 납득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집요하게 구는 꼴을 봤으니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하다.

어쩌면 주수혁이 향후 주수겸의 동향을 파악해 자력으로 앞뒤 정황을 알아낼지도 모른다.

플마고에서 주수혁이 그런 식으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의신아! 수혁아!”

“마침 두 분 다 계셨군요!”

막 2학년 건물에 도착했을 때, 김유리와 사월세음과 마주쳤다.

이른 시각에 등교한 두 사람의 성실함에 감탄하면서도,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어 걱정되었다.

주수혁이 물었다.

“유리야, 세음아, 무슨 일이야?”

“효돈이가 습격당해서 도인 선생님이 대신 싸우고 있대요!”

“빨리 서문 쪽으로 가자.”

사월세음의 말만 듣고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김유리의 말대로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이동하는 동안 맹효돈에게 디바이스로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은광고 종합 게시판에는 서문에서 도인이 날뛰고 있으니 피해 가라는 경고문이 올라와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서 우리 넷은 싸울 채비를 단단히 하고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 앞에 도착하자 난장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조경물이 박살 나 있고, 가로등은 구부러져 있고, 땅은 뒤집혀 있었다.

그 가운데 여기저기 구겨지고, 발길질당한 흔적이 있는 교복을 입은 맹효돈이 보였다.

“효돈아!”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난 괜찮다.”

처참한 꼴을 한 맹효돈을 본 아이들이 크게 걱정했다.

맹효돈은 머리가 돌이지만 몸 쓰는 일은 주수혁 못지않다.

맹효돈이 저렇게 엉망인 상태라면 크게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맹효돈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일부러 맞아 준 거야.’

맹효돈을 살피던 아이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맹효돈은 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저 맥없는 정수리를 보니 작년에 맹효돈을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설마 맹효돈을 공격한 자는…….’

상황을 파악하자 속이 끓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분노를 표하기 전에, 먼저 불같이 화를 내는 인물이 있었다.

“아비라는 놈이 자식한테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천륜을 저버리고도 하늘과 땅이 무섭지 않더냐!”

콰콰콰!

탁거산 도인의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퍼지자, 급히 천동하가 이능파를 전개해 주변을 감쌌다.

천동하가 급조한 이능파의 벽이 탁거산 도인의 기백에 밀려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그래도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에 성공하여 피부가 저릿해지는 선에서 그쳤다.

“탁거산 선생님, 진정하세요. 협회에서 곧 사람이 올 거예요.”

“이눔아, 내가 진정하겠느냐! 내 제자가 저리 얻어맞았는데!”

천동하는 냉정한 눈으로 맹효돈의 친부를 응시했다.

발로 자근자근 밟은 건지 온몸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맹효돈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걸레짝이 된 상태였다.

“지금도 과잉 방어 소리 들을걸요? 이 이상 문제가 생기면 황명 재단 법무팀이라도 수습하기 어려워요. 제자를 위해서라도 몸을 사리세요.”

“어허, 아직 한참 부족하다만. 몸을 사리다니!”

“이담아, 탁거산 선생님이 한 번 더 이능파를 사용하면 바로 광림을 써.”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던 음침한 병풍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익회장이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고 있는 걸 천동하가 도우러 왔나 보다.

서문은 지익회가 담당하는 거주 구역 쪽이 훨씬 가깝고, 천동하는 평소에 정문 쪽에서 교문 지도를 하므로 쉽게 상상이 갔다.

다행히 천동하가 상황을 수습할 것 같으니, 나는 우선 맹효돈을 보호하기로 했다.

“천동하 선배님, 저희는 양호실에 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맹효돈 말고 저에게 연락 주세요.”

“그래, 얼른 가 봐. 바로 현장에서 효돈이를 떼 놔야 했는데, 미안하다.”

천동하 혼자 탁거산을 진정시키기에도 바빴는데, 맹효돈의 케어까지 하는 건 벅찼을 거다.

탁거산은 눈을 부라리며 벌벌 떨고 있는 사내와 대치하다가 나를 돌아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기겠다는 뜻 같다.

“가자.”

“……어.”

“효돈아, 아침은 먹었어요? 검사받고 먹으러 가요!”

내가 말을 걸자 맹효돈이 기계적으로 터덜터덜 걷고, 다른 아이들이 열심히 말을 붙였다.

그래도 어두워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중간고사에서 수학 과목 40점을 넘겼다고 기뻐하던 모습, 교실 한구석에서 탄래중의 은사에게 줄 선물과 카네이션을 고르던 모습, 어제 신나게 야구장에서 놀던 모습 등이 비교되어 새삼 분노가 치솟았다.

* * *

양호실에서 종합 검사를 마친 결과, 맹효돈의 몸 상태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맹효돈은 결석하였다.

황명 재단의 법무팀과 상의할 게 많은 듯했다.

나도 상의할 게 많았기에 호랑이 저택을 찾았다.

“내 불찰이로다. 상대를 얕보았군.”

사태를 파악하고 온 황지호가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맹효돈의 친부는 파이트 클럽 건 외에도 여죄가 발각되어 미결 수용자로서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유죄를 선고받으리라는 건 거의 확정이었기에 모두가 방심하고 있었다.

“보석을 받고 나올 줄이야. 보석금은 어디에서 났으며, 그 까다로운 절차를 누가 도와준 건지 알아보겠다.”

맹효돈의 친부는 그렇게 살고도 단 한 번도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어서 전과가 없었다.

또한, 뛰어난 플레이어인 맹효돈에게 일반인인 맹효돈의 친부가 해를 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보석은 순식간에 결정되었고, 맹효돈의 친부는 곧장 아들을 불러냈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디바이스 코드로 연락을 넣었고, 맹효돈을 낚기 위해 무려 어머니를 팔았다고 한다.

그자는 나오지 않으면 납골당에 안치된 맹효돈 어머니의 유골을 처분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맹효돈을 불러내고선 자신이 무죄 처리 되도록 증언을 하고, 돈을 내놓으라며 은광고의 서문 앞에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탁거산이 아침 훈련을 빠진 맹효돈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거야.’

맹효돈의 친부가 혼자 이 일을 했을 리가 없다.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맹효돈의 친부를 피스로 삼아 수를 둔 거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수를 계속 틀어막으니 흑막은 생각지 못한 허점을 찾아 찌른 거다.

“맹효돈의 친부 말고 사람이 더 있던 걸 기억하나? 그자가 구치소에서 얻은 연줄을 통해 알게 된 플레이어라고 하더군.”

아침에 박살 난 것들 중에는 플레이어 몇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은광고 학생들이 방해하는 걸 막고, 또 일을 꾸미기 위해 준비한 이들인 듯했다.

물론, 그래 봤자 탁거산을 막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탁거산은 일반인인 맹효돈의 부친은 크게 다치지 않는 선에서 봐줬지만, 플레이어는 그렇지 않았다.

이번 건을 조사하는 데에 협력한 적호가 말했다.

“기록 기기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플레이어 중 하나가 맹효돈 학생에게 아이템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 전에 탁거산이 날려 버렸습니다만.”

“어떤 아이템이죠?”

“공격용 소모 아이템입니다. 맹효돈 학생은 저항하지 않고 있었으니 적중했을 겁니다. 하나 아이템을 사용한 쓰레기의 이능 수준이 후져서 맹효돈 학생을 죽이진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맹효돈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죽이지는 못해도 후유증이 남았겠지.”

맹효돈의 회복 아이템 중독 증상은 1년 사이에 많이 나아졌지만, 정상인에 비해선 그리 좋다 말할 수 없다.

만약 적중했다면 맹효돈은 오래도록 등교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참담한 기분이 가라앉자 뒤이어 의문이 피어올랐다.

‘왜 맹효돈을 지금 노렸지? 그것도 은광고 앞에서.’

은광고 앞에서 학생 하나가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좋은 본보기가 될 거다.

학생을 지키지 못했다며 은광고는 공격의 대상이 될 거고, 맹효돈의 소송 건에 협회가 얽혀 있는 게 밝혀지면 덩달아 협회의 평판도 떨어진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누굴 죽여 본보기를 보인다면 더 간단한 타깃이 있을 텐데, 왜 맹효돈을 노렸단 말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과 왜 이걸 대비하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조의신, 이번 수를 막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라. 보석 건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다.”

“조의신, 황호 말대로입니다. 황호 탓입니다.”

“…….”

황지호와 적호가 저렇게 말하고 백호도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 생각은 달랐다.

흑막이 맹효돈을 노릴 만한 이유에 관해 내가 사전에 파악해 전했다면, 황지호도 신경을 더 썼을 것이다.

“네가 둔 수가 쌓여 탁거산이 맹효돈의 스승이 되어 그를 지켰다. 은광고의 자치 기구가 제 기능을 하여 천동하가 바로 온 것도 네 덕이다.”

저 말을 계속 들어도 마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덕분에 생각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플마고와 지금과 다른 것. 이 정도로 공을 들여 맹효돈을 노려야 하는 이유…….’

변수가 많아 생각이 어려웠다.

성국언과 전무영, 맹효돈이 동시에 노려진다고 생각하니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하필 어버이날을 앞두고 맹효돈의 부친을 이용하다니. 악취미다. 게다가 곧 스승의 날인데.’

속으로 흑막 욕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생각이 정리되었다.

흑막이 진짜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맹효돈에게 경호를 붙였으면 좋겠어.”

“탁거산이 따라다닐 것 같다만, 호족 쪽에서도 붙여 두는 게 좋겠나?”

“응.”

플마고 속 흑막은 맹효돈을 3년 차까지 살려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2년 차이고, 맹효돈은 플마고 시절보다 건강하긴 하지만 실력은 그때보다 못하다.

그런데도 굳이 맹효돈을 노린다는 건, 그저 죽이고 싶어서가 아닐 거다.

플마고에서 파악하지 못했던 미심쩍은 요소와 맹효돈의 행보를 섞어 보니 답이 보였다.

“맹효돈은 5월 15일, 탄래중에 방문할 거야. 그날이 지날 때까지는 경계를 늦춰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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