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33화 (83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33)

103. 헌화 (7)

5월 14일, 금요일 아침.

은광고 주변은 스승의 날 특수를 노린 상품들이 전시된 매대로 가득했다.

카네이션을 제외하면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용 상품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대부분 파티 용품이거나 먹거리였다.

'우리 반에도 따로 선물을 사는 애들은 없지.'

개인적인 선물을 가지고 오는 애들은 있겠지만, 다 직접 만들어 오는 거다.

예를 들어 민그린의 야생 카네이션 그림이 그러했다.

작년 스승의 날에는 민그린이 그린 야생 카네이션 그림이 민 화백 작품의 모사작이라며 난리가 났었는데, 올해도 그린 듯했다.

미술부와 동양화 소모임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선 카네이션 연작 시리즈의 공개를 손 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작품의 가치가 높아 함근형 선생님께 드리지는 못하고 교실에 장식할 테니, 당분간 교 실을 찾는 미술인들이 많을 것 같다.

'그 관종들도 선물을 가져온다고 했는데, 만들어 오겠지?'

구슬비와 옹길동은 기성품을 극히 싫어한다.

특히 착용하는 물품의 경우, 남들도 살 수 있으므로 눈에 덜 띄기 때문이다.

그 둘의 성향이 그렇고, 솜씨도 좋으니 원가를 만들어 올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먹는 건 안 가려서 다행이다.'

두 관종은 특이한 취향을 가졌으나 먹는 것에는 그다지 까탈을 부리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만들거나 사 온 것들을 군말 없이 감사히 먹고, 평범하게 가게에서 간식거 리를 사 오곤 했다.

관종들은 스승의 날 대비 회의에 결석하는 바람에 MITRON에서 구매하는 케이크나 과 자류에 의견을 내진 못했지만, 아마 잘 먹을 거다.

"작년 스승의 날보다 구매하는 양이 늘었네요. 반 아이들이 많이 등교하나 봐요."

"네! 그때보다 두 배나 늘었어요."

MITRON의 계산대 앞.

파티시에 류장이 예약한 상품을 직접 건네며 말을 걸고, 단골인 사월세음이 밝게 대답 했다.

스승의 날에 방문하는 학생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1년이 지나고도 그걸 기억하고 있다 니.

류장은 정말 오래전부터 내가 있는 우리 반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류장은 한창 바쁠 텐데. 우리 반이 예약한 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나온 건가?'

류장이 늘 계산대를 보고 있는 건 아니므로 우연은 아닐 것 같다.

그래 봤자 인사밖에 못 하고 중요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텐데.

다른 손님들이 있으니 제대로 된 대화는 하지 못한 채로 자리를 뜨게 되었다.

"또 봐요."

보통 '또 오세요'라고 하지 않나?

사월세음은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좀 그랬다.

류장의 말대로 또 볼 예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콰콰쾅! 퍼엉!

등굣길에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다.

이번 주 내내 들었던 소리라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하늘을 보니 카네이션 모양의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누구 짓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범인은 금찬왕찬 일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리허설에서는 폭발음만 들리더니, 이런 걸 준비했구나.'

금찬왕찬 일당은 지난 만우절 때 준비한 제갈재걸 에어쇼가 도중에 중단된 걸 매우 원통 하게 여기고 있었다.

방송부를 제압하는 데에 실패하여 음향 효과는 없었지만, 제갈재걸의 모습이 하늘에 가 득한 광경은 장관이었다.

충분히 멋진 것 같은데 금찬왕찬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스승의 날에 더욱 강력하고 화려해진 에어쇼를 준비한 것 같았다.

창공을 수놓은 카네이션 사이로 제갈재걸이 걷기 시작하자 등교하던 학생들이 경악했 다.

이능 폭탄이 카네이션 모양으로 터지는 것도 엄청난데, 하늘을 걷는 제갈재걸을 구현해 낸 걸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금찬왕찬이 좋은 걸 준비했네. 만우절 때보다 더 발전한 것 같아.'

걷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학생들을 굽어살피다가 손을 흔드는 모습도 훌륭했다.

디바이스로 하늘을 촬영하고 있는 내내 속으로 계속 감탄했다.

이윽고 하늘을 걷던 제갈재걸이 멈춰 섰다.

슬슬 저번에 넣지 못한 음향 효과를 추가해 에어쇼를 펼칠 것 같았다.

그런 예상을 하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금찬왕찬 일당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1학년 0반이 그냥 지켜볼까?'

그 생각을 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삣!

은광고 곳곳에 설치된 각종 홀로그램 투사 기기에서 일제히 화면이 전개되었다.

근처에 다가가면 학교 지도, 안내문, 홍보물 등등이 떠오르는 투사 기기였는데, 누군가 가 강제로 조작한 듯했다.

갑자기 나타난 크고 작은 홀로그램들이 모두 같은 화면을 비추고 있었다.

이것도 금찬왕찬 일당이 준비했나 싶었지만, 아닌 것 같았다.

"야, 저거 뭐야! 우리가 한 거 아니지?"

"저 홀로그램들 꺼 봐! 우리 제갈재걸 선생님이 주목을 덜 받잖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분주히 움직였지만, 현재 투사 기기의 조작 권한이 잠겨 있어 끌 수 없었다.

홀로그램이 나타난 지 몇십 초가 지났을 때, 어두운 무대 위를 비추던 홀로그램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이잉! 피크가 일렉 기타의 현 위로 미끄러지는 소리였다.

긴 피크 포르타멘토 후에는 파워풀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목소리가 광채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밝고, 강렬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음성이었다.

'처음 듣는 곡인데, 목소리는 익숙해.'

파아앗!

목소리의 주인공을 짐작해 냈을 때, 홀로그램 속의 무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조명 아래로 밴드가 등장했다.

기타 둘, 베이스, 드럼, 키보드로 구성된 밴드의 중심에서 리듬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 트가 노래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보컬리스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나왔 다.

"얼굴 봐, 진짜 잘생겼다·····."

"꼬울 정도로 잘생겼네."

"이거 누구야? 우리 학교 사람이야?"

"어······ 나 알아!"

"나도."

등교하던 학생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답을 입에 담았다.

"1학년 0반 담임, 공청원 선생님!"

홀로그램 속에 있는 건 대학생 시절로 추정되는 공청원이었다.

아마 학교 축제 때 무대에 오른 것 같은데, 어떻게 촬영을 한 건지 화면과 음질이 몹시 깨끗했다.

그 덕에 막 성인이 된 공청원의 모습과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와아아아!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환성이 쏟아졌다.

등교하던 걸 멈추고 홀로그램을 들여다보고, 또 끝난 후엔 환호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 진 무대였다.

흠을 잡으려던 금찬왕찬조차 부들부들거리기만 할 뿐, 헛소리를 하지 못했다.

음악은 교양과 사교를 위해서 듣는다는 생각이 컸는데, 공청원의 노래는 더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상이 끝나자 홀로그램에서 해맑은 얼굴을 한 후배가 등장했다.

은서호였다.

- 안녕하세요! 저는 1학년 0반 반장 은서호입니다. 이 영상은 공청원 선생님의 대학 시 절에 촬영한 밴드부 공연 영상이에요.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담임 선생님을 자랑하고 싶었 어요.

- 우리 담임 선생님이 제일 멋지죠? 영상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은서호에 이어 은이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을 시작으로 1학년 0반 아이들의 담임 자랑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중에는 물론 윤여랑도 있었는데, 표정이나 말을 보니 용왕신만큼은 아니더라도 공청 흰을 꽤 따르는 것 같았다.

"야, 제일이라니! 제일 멋진 건 제갈재걸 선생님이지!"

"맞아!"

"너네 담임이 노래 좀 잘 불러 봤자 우리 제갈 쌤한테는 안 돼."

- 제갈재걸 선생님도 멋진 선생님이죠. 알아요.

금찬왕찬 일당이 바락바락 소리 지르자 은서호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녹화한 영상인 줄 알았는데 생방송이었나 보다.

은서호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답변을 했으나 어쩐지 승자가 패자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렸다.

금찬왕찬이 구현한 카네이션 사이로 창공을 걷는 제갈재걸은 확실히 멋졌다.

그러나 대학생 공청원의 밴드부 무대가 남긴 임팩트가 너무 컸다.

'그런데 왜 스승의 날에 담임으로 경쟁하는 거지?'

의문이 솟았지만, 저들은 진지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금찬왕찬이 큰 결단을 내렸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비장의 무기를 꺼내자."

"제갈 쌤이 고등학생 시절 자작시를 낭송하는 영상이다!"

뭐, 그런 영상이 있었단 말인가!

저건 나도 보고 싶었다.

제갈재걸은 남궁 그룹과 엮인 후부터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으니, 아주 귀한 자료일 거 다.

금찬왕찬이 무언가를 지시하자 하늘에 띄운 거대한 홀로그램에 앳된 모습의 제갈재걸 이 등장했다.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창공을 걷는 제갈재걸처럼 입체적으로 구현하지는 못했 지만, 큰 화면에 고등학생 제갈재걸이 직접 지은 시를 읽는 모습은 신선하고 멋졌다.

'제갈재걸은 이런 시를 썼구나.'

제갈재걸의 서정시를 들으니 몸에 따스한 기운이 돌았다.

다정하고 곧은 심성과 투명한 감수성이 세련된 시어 속에 담겨 있었다.

시 낭송 영상은 공청원의 공연 영상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한 눈을 한 고등학생이 따뜻한 자작시를 읊는 모습은 금찬왕찬이 '제일 멋지 다'라고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승부가 나지 않아 저들은 영상을 또 공개하였다.

나름 진지한 대결을 펼친 거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청원과 제갈재걸의 의도하지 않은 합동 공연이 이어졌다.

'홍규빈한테 없을 것 같은 영상이 많던데. 잘됐다.'

이번에 확보한 공청원의 영상은 한이에게 주고, 제갈재걸의 영상은 홍규빈에게 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중간에 낀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차례차례 공개되는 희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 반도 함근형 선생님의 옛날 모습을 찾아서 자랑하는 게 좋았을까요?"

2학년 0반 교실에 도착한 후.

1학년 0반, 3학년 0반의 담임 자랑을 구경했던 사월세음이 물었다.

함근형 선생님의 활약상을 모아 공개한다면 당연히 공청원이나 제갈재걸에게 밀리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했다.

'함근형 선생님은 젊었을 때의 얼굴이 훨씬 험악했어. 공청원이나 제갈재걸에 비해 불 리해.'

함근형 선생님이 젊었을 때에는 젊은 헐기가 얼굴에 지나치게 묻어났다.

증명사진이 흉악범 수배 전단 사진 같다는 소리가 돌 정도였다.

그 탓에 창천명궁의 젊은 시절 프로필 사진은 옆모습이나 뒷모습, 활이나 그림자로 반 쯤 가려 얼굴을 숨기는 게 많았다.

"우리가 자랑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좋은 분이잖아!"

"레나 말대로입니다. 그것보다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졸업하신 선배님들처럼요."

목우람의 말에 뭔가가 걸렸다.

졸업하신 선배라면 설마 우기환 일당을 가리키는 걸까? 이 말에 김유리가 답했다.

"아, 종합 게시판에 글 올라왔더라. 내일 우기환 선배님과 임연화 선생님의 대결이 생중 계될 예정이래."

그놈들은 졸업한 후에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런데 저게 과연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0반에 비해서 우리 반은 평범하네."

"......평범한 걸까?"

"물론이다. 이 몸이 그간 지켜본 스승의 날 행사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정도이지."

한이는 과연 우리 반이 준비한 이벤트가 평범한 건지 의문을 품은 듯했다.

한이의 자칭 친우들은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리고 하루 일정을 마치고 종례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 반은 예정한 대로 함근형 선생님을 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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