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39화 (83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39)

104. 곁 (4)

폭발과 함정 이능의 흔적이 사라진 은광구의 한 구역.

도철이 ‘꽤나 잘 만든 가짜 성국언’이라고 칭한 인물이 말없이 서 있었다.

그의 정체는 가짜도 뭣도 아닌 진짜 성국언이었다.

성국언은 이 자리에 없는 조의신을 생각했다.

‘정말 의신이의 말대로 됐군. 그 예측이 빗나갔으면 했는데.’

조의신은 상대가 이쪽 수를 읽을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짰다.

리플레이라는 상식을 초월하는 기술을 통해 흑막의 암살 의도를 파악했으므로, 성국언은 그런 전제가 필요 없을 거라고도 여겼으나 조의신의 말을 따랐다.

조의신의 예상이 어긋나 그대로 진짜 성국언이 납치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성국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자리에는 ‘적연’이라는 스킬로 몸을 숨긴 전설계 호족도 있으니 전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성국언 곁에는 같이 싸워 보고 싶었던 이가 있었다.

‘선생님과 같이 싸워 볼 기회를 놓쳐 아쉽군. 상대는 온갖 악랄한 수를 동원해 선생님을 노리고 있다고 하니 싸움을 피하는 게 안전하겠지만…….’

성국언은 전무영의 모습을 한 이를 바라봤다.

척 봤을 때, 체구나 생김새는 성국언이 잘 아는 전무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에다 착용한 옷과 서 있는 자세까지 전무영과 일치했다.

그나마 위화감이 느껴지는 곳은 일부러 역용술의 흔적을 남겼다는 얼굴의 일부뿐이었다.

일부러 흔적을 남겼다고 하나 상대가 특별한 이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저 가짜 전무영을 꿰뚫어 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부러 허술하게 역용술을 사용한 게 이 수준이라니. 선생님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대단한 플레이어셨구나.’

성국언의 곁에 있던 가짜 전무영의 정체는 그의 은사였다.

성국언의 청소년 시절 마음의 지주였던 선생님, 지금은 김신록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스승이 그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있었다.

“그 용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은광고를 주시하는 시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암살의 표적인 성국언은 도청당할 가능성이 컸기에 작전 수행 중에는 김신록이 연락을 담당하기로 했다.

김신록은 간이 결계 밖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결계를 친 데다 시선도 사라졌는데 말투나 어조, 속도가 전무영과 비슷했다.

전무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흉내를 낼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방금 한 저 말에는 허점이 하나 있었다.

‘용제건 선생님을 ‘그 용’이라고 부르는 점만 제외하면 완벽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긴 했으나 성국언은 굳이 지적하지 않고, 말을 잇는 김신록을 관찰했다.

이어링을 통해 현황을 확인하고, 이를 성국언에게 알리는 김신록은 다소 불안해 보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김신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정한 은사는 분명 진짜 성국언을 대신해 사라진 이들을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성국언은 김신록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곳은 문제가 없는 것 같군요.”

“……사라진 쪽의 상황은 확인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그쪽도 무사할 겁니다. 무영이는 의신이가 내 준 숙제를 열심히 해 뒀습니다. 안심하세요.”

조의신의 이름이 나온 순간, 김신록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김신록이 조의신을 신뢰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선생님이 안심할 정도라니.’

김신록뿐만이 아니라 호족들 대부분이 조의신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족, 후예와 연관이 없다고 믿고 있던 후배가 그 대상이라면 복잡한 기분이 들 법도 한데, 오히려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조의신이 이토록 신뢰받고 있다는 건 성국언이 모르는 곳에서 그가 김신록을 구해 왔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때, 김신록의 표정이 흐려졌다.

“탄래중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조의신은 맹효돈이 습격당한 건으로 수를 일부 수정했다.

수정된 계획에는 탄래중의 주변을 살피는 것도 추가되었다.

성국언 암살 계획과 탄래중이 무슨 관계가 있나 싶지만, 예전에 한 번 그와 엮인 적이 있긴 했다.

‘의신이가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지. 탄래중 건은 이상한 구석이 많았어.’

작년, 조의신은 탄래중학교와 관련하여 민원을 제기했다.

조의신은 탄래중의 낙후된 시설, 교사진과 학부모회의 횡포, 예산서, 명세서, 결산서에서 보이는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 등을 근거로 민원 글을 작성했다.

민원 검토 결과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조의신은 성국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의신이의 민원 글에 허점은 없었어. 그저 민원을 받은 교육청에서 묻어 버리려 했던 것뿐이지.’

교육청이 학생 하나의 입은 막을 수 있어도 현역 국회의원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성국언은 교육청이 나서서 민원을 막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경기도에 있는 모든 중학교의 회계 자료를 확인했다.

그리하여 성국언은 탄래중을 비롯해 그 인근에 위치한 공립 중학교 50여 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갖 종류의 횡령, 배임, 비리가 난무했는데,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플레이어 협회에서 후원하는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금이 증발했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 금액이 큰 것에 비해 떼먹기 쉬워 노릴 만했으니까.’

협회의 힘만으로는 예비 청소년을 전부 관리하고 돕는 건 불가능하므로 정부와 협력해야 했다.

협력 과정을 구축하는 사이 크고 작은 문제점이 발생했고, 구조적인 허점이 생겨 이를 이용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중간에 떼먹는 자가 있는 걸 알아도 그중 일부는 정말 절박한 상황에 처한 예비 플레이어에게 닿는 걸 알기에 협회는 지원을 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그때는 성국언의 주도로 전수 감사를 시행하고, 연루된 교사들이 징계와 형사처벌을 받는 걸 보고 물러나는 선에서 그쳤다.

유독 탄래중 주변 학교가 썩어 있던 게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문제가 된 주범들이 거쳐 간 학교들이 그 주변이었기에 해당 교사들이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면 다른 문제가 숨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탄래중 교사들이 효돈이를 싫어했던 걸까? 눈에 띄는 플레이어가 나타나면 협회가 주목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중간에 조의신이 중개했다고 하나 맹효돈의 존재 덕분에 성국언이 탄래중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맹효돈과 성국언을 한 번에 처리하려고 한다면, 탄래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국언이 김신록에게 물었다.

“동하가 연락을 했나 보군요.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네, 맹효돈 군을 관찰하던 중에…….”

갑자기 김신록이 부자연스럽게 말을 멈췄다.

성국언은 김신록에게 다음 말을 재촉하는 대신, 조용히 주변의 기척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긴 골목을 지나 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늘을 골라 걸어온 탓에 그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자가 푸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입을 열었다.

“왕의 자질을 가진 이여, 약속을 이행하러 왔습니다.”

푸른 가면을 쓴 마족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 * *

탁한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이계 안.

탁거산의 정권이 만들어 낸 파공음이 정적을 갈랐다.

슈욱!

무술 교본에도 담을 만한 완벽한 자세였다.

어지간한 희귀도의 무기는 부술 만큼 단련된 주먹.

이를 휘두르는 데에 필요한 근력.

피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

급소를 가격할 때의 타이밍.

모든 게 완벽했다.

탁거산의 무예를 매일같이 눈앞에서 보는 맹효돈도 새삼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탁거산의 공격은 닿지 않았다.

휘이이…….

탁거산이 무형종 에너미가 구름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실체를 갖추었다.

무형종 에너미는 ‘형태가 없다’라는 말 그대로 자신의 형체를 일시적으로 지우는 게 가능했다.

맹효돈은 무형종 에너미에 관한 수업 내용을 전부 기억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때리기 번거로운 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저런 놈 나올 때면 나는 빠져 있으라고 했지. 상성이 안 좋아서 힘 낭비하느니 보조로 빠지는 게 낫다고 했던가?’

무형종 에너미는 물리 공격에 강한 대신 다른 종류의 힘에는 매우 약했다.

예를 들자면 사월세음의 바람술, 구슬비가 사용하는 드루이드의 비술, 황지호가 다루는 결계술, 권제인의 이능 악기를 활용한 공격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맹효돈과 탁거산은 다른 잔재주라곤 없는 무도가였다.

“거참 번거로운 놈일세.”

파아앗!

탁거산의 발끝에서 맑은 기운을 품은 이능파가 뿜어져 나왔다.

이능파를 휘감은 채로 높이 떠오른 탁거산이 공중에서 발차기를 날렸다.

무형종 에너미는 다시 형체를 감추려 했으나 높은 밀도의 이능파가 몸에 닿는 순간, 실체가 분명해졌다.

결국, ‘파앙!’ 하고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무형종 에너미가 흩어졌다.

“별거 아니구나. 이동하지.”

탁거산은 짐짓 여유 넘치는 말투로 말했지만, 맹효돈은 그게 허세임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자는 맹효돈과 탁거산의 약점을 노리고 이런 에너미가 가득한 가든으로 끌어들인 게 분명했다.

에너미의 희귀도는 그리 높지 않은데도 상성이 좋지 않아 이능파를 크게 낭비했다.

이렇게 힘을 계속 낭비하다가 플로어 마스터나 가든의 주인을 만나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선생님을 지킬 수 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무형종 에너미는 탁거산과 맹효돈을 우선적으로 공격했다.

아직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는 다친 곳 없이 무사했지만, 은사가 자력으로 가든을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어떻게든 탁거산과 맹효돈이 가든을 공략해야 했다.

“오늘 평생 볼 에너미를 다 본 것 같네요. 탄래중 주변은 이계 청정 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조용한 동네라 에너미 볼 일이 없었거든요.”

중학교 은사는 크게 동요했을 텐데도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탁거산과 중학교 은사는 제자를 앞에 두고 불안을 숨기려는 듯했다.

“탄래중 근처에 이런 가든이 있으니 다른 이계가 얼씬도 못 한 것일세. 끔찍한 게 터를 지키고 있으면 잔챙이가 얼쩡거릴 수 없네.”

“여기가 탄래중 근처라고요?”

“그렇겠지.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전이에 드는 힘을 생각하면 멀리 보내는 건…….”

탁거산은 전이의 이동 거리에 따라 소모되는 이능파와 가든의 존재로 인한 주변 이계의 발생 빈도 저하 현상 이론에 관한 설명을 짧게 덧붙였다.

맹효돈에게는 저 설명이 지나치게 어려워 순간 도인이 외국어로 말하는 중이 아닌가 의심했다.

저 말을 해석하는 것보다 무형종 에너미를 때려잡는 게 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맹효돈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에너미를 잡다가 문득 무거워진 공기를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쿠구구구……!

이능파가 휘몰아치고 가든이 움직였다.

가든의 구조가 변형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길이 단순하게 바뀌었다.

크게 열린 길 너머, 낮게 떠 있는 구름을 타고 있는 에너미가 보였다.

가든 내에서 강력한 이능파를 휘두르고, 이계를 변형시키는 에너미는 하나뿐이었다.

“플로어 마스터가 납시셨군.”

탁거산이 반투명한 플로어 마스터를 올려다보았다.

플로어 마스터의 주변에는 지직거리며 실체를 갖췄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소형 에너미가 여럿 떠 있었다.

전부 무형종 에너미였다.

휘이이이!

플로어 마스터가 소용돌이의 눈처럼 생긴 기관을 움직여 탁거산, 맹효돈, 중학교 은사를 한 번씩 응시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눈이 중학교 은사 쪽에서 멈췄다.

다른 에너미에 비해 지능이 월등히 높은 플로어 마스터는 이 파티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듯했다.

탁거산과 맹효돈이 플로어 마스터의 의중을 파악하고 크게 긴장했다.

플로어 마스터가 지시를 내리자, 소형 에너미들이 일제히 중학교 은사를 향해 돌진했다.

그 광경을 본 맹효돈은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기 전에 몸부터 움직였다.

파아아앗!

맹효돈의 이능파가 형상화된 거대한 주먹이 허공에 떠올랐다.

맹효돈이 곧바로 달려 나가 광림, ‘싸움꾼의 인력(引力)’을 발동한 결과였다.

싸움꾼의 인력에 지목당한 대상은 맹효돈이 정한 ‘싸움터’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맹효돈은 싸움의 대상으로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에너미를 지목하고, 중학교 은사와 떨어진 곳을 싸움터로 정했다.

광림의 잔재로 거대한 주먹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본 탁거산이 경악했다.

에너미들의 타깃이 맹효돈으로 바뀌었다고 깨달은 것이다.

고오오오……!

플로어 마스터가 중학교 은사 대신 맹효돈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눈앞이 소형 에너미 떼로 흐려진 순간, 맹효돈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탁거산이 급히 이쪽으로 오려다가 플로어 마스터의 공격에 가로막히는 것.

너무 빨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을 못 한 중학교 은사가 굳어 있는 것.

한쪽 팔은 버릴 각오를 해야 급소를 방어할 수 있겠다는 것 등등의 정보가 맹효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맹효돈이 왼팔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을 때였다.

“효돈아, 움직이지 마.”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운 가든 안, 맹효돈이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편에서 역광을 등진 듯한 날개가 번쩍이다 맹효돈을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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