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0)
104. 곁 (5)
범상치 않은 힘을 느낀 소형 에너미들이 급히 맹효돈을 향해 달려드는 걸 멈추고, 실체를 지웠다.
그러나 날개 같은 두 검은 이미 적진에 깊이 파고든 후였다.
휘잉!
두 개의 검, 두빛나래가 허공에 섬광을 그었다.
늦게 실체를 지운 소형 에너미 떼들이 검격에 닿기 무섭게 소멸했다.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소형 에너미 떼들의 3분의 1이 사라져 버렸다.
에너미의 소멸 이펙트의 잔상 속에서 검객이 맹효돈을 돌아봤다.
역광의 나래, 주수혁이었다.
‘주수혁이 왜 여기에 있어? 얼마 전에 부반장에 관해서 묻던 거랑 관계가 있나?’
맹효돈의 머릿속에서 반가움과 혼란한 심정이 뒤섞였다.
설마 조의신과 주수혁이 협력하여 움직이기로 한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곧바로 머릿속에서 부정했다.
‘아니, 부반장이 이런 위험한 데에 주수혁을 보낼 리가 없잖아!’
조의신이 이런 위험한 곳에 파견할 구조대를 고른다면 직접 가거나 믿을 만한 어른을 택할 거다.
맹효돈을 구하러 왔을 때, 학교 친구가 아니라 담임인 함근형을 데려왔던 것처럼 말이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주수혁을 알아본 탁거산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탁거산은 맹효돈의 위기를 보고 광림을 발동시켜 주변을 전부 날려 버리다가 주수혁을 보고 멈췄는데, 그 탓에 밸런스가 무너져 조금 휘청거렸다.
플로어 마스터가 그 틈을 파고들어 부식 스킬을 사용하기 전, 주수혁의 비서 김철이 끼어들었다.
파앙!
김철의 이능파를 두른 구둣발이 플로어 에너미를 걷어차자 스킬 사용이 취소되었다.
플로어 마스터가 재차 공격하기 전에 김철이 탁거산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플로어 마스터와 거리를 벌린 후에야 김철이 입을 열었다.
“탁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철이 아니냐! 수혁이랑 같이 온 게냐?”
“네, 도련님의 경호를 위해 왔습니다.”
주수혁과 김철, 강력한 플레이어가 둘이나 가세하자 에너미들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맹효돈의 사지를 찢을 기세로 호전적으로 굴던 에너미들은 이쪽을 견제할 뿐, 바로 덤벼들지 않았다.
에너미들의 태도에 탁거산과 맹효돈이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가든의 주인은 주수혁과 김철의 기습을 알아채지 못한 걸까?
가든의 주인이 내부 상황을 전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저 둘의 출입 여부 정도는 파악해야 정상인데, 에너미들은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의문이 많았지만, 맹효돈은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야, 어쩌다 온 거냐?”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따라왔어. 효돈이의 은사님도 한 번 더 뵙고 싶기도 했고.”
주수혁은 가든에 잠입한 사실을 무슨 교내 매점에 같이 따라온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주수혁도 나름 깊은 생각을 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워 행동했을 텐데 지금 설명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 가든은 어딘가 이상해. 공기부터 뭔가 달라. 그래서 나랑 철이 형의 진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아.”
주수혁의 말대로 맹효돈도 위화감을 느꼈다.
이곳은 보통 이계와 뭔가 달랐다.
이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능파가 간헐적으로 들끓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들었다.
다른 가든에 가 본 적이 없던 맹효돈은 그냥 여기가 가든이라서 그랬다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주수혁의 말에 의하면 여기가 이상해서 그런 듯했다.
“듣고 보니 뭔가 공기가 이상한 것도 같은데…… 가든 공략해 봤냐?”
“공략하진 않았어. 가든이 남긴 잔해 정화 작업에 참가한 적은 있지. 그때 가든의 주인이던 진족이 새로운 가든에 초대해 주셨어. 그때 관찰해 본 거야.”
맹효돈의 질문에 주수혁이 간단하게 요약해 말했지만, 제법 큰 사건이었다.
작년 여름 방학, 주수혁은 은광구의 경계에서 가든 정화 작업을 수행해 공간 왜곡과 이계 확장 현상을 막았다.
그때 주수혁은 진족의 호의를 얻어 가든을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
주수혁은 그때의 경험, 지금 느낀 감각, 통찰력을 발휘해 결론을 내렸다.
“진짜 주인을 대신해 누군가가 억지로 가든을 움직이는 것 같아. 그러니 높은 희귀도의 가든인 데도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방금 에너미들이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잖아.”
주수혁은 이 가든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 가든의 주인은 운사였다.
운사의 힘을 원천으로 가든이 유지되고 있으나 현재 가든을 움직이는 건 도철이었다.
그렇기에 도철은 이능파를 상당히 아낄 수 있었으나 가든에 대한 장악력이 낮은 상태였다.
주수혁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도 이능파의 흐름과 에너미들의 움직임만으로 그 사실을 추측해 냈다.
맹효돈도 대충 감으로 주수혁의 말이 옳다고 느꼈다.
“여기는 제가 맡을게요.”
“수혁이 이눔아, 내 나이가 얼마나 됐다고 할배 취급을 하느냐!”
“탁거산 선생님의 광림은 강력하지만 효율이 나쁘잖아요. 이곳엔 적어도 진족이 둘 있어요. 광림을 아껴 두세요.”
주수혁이 설득하자 탁거산이 한 수 접기로 했다.
주수혁의 말대로라면 이곳에는 최소 진족 둘이 있었다.
하나는 가든의 주인, 다른 하나는 가든을 움직이는 자.
어쩌면 이들 둘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으니 힘을 온존해 둬야 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야, 저 에너미들 물리 공격이 잘 안 먹혀.”
맹효돈이 주수혁을 걱정하며 말했다.
주수혁의 주요 공격 수단은 쌍검이다.
맹효돈과 탁거산의 무도, 싸움 스킬과는 결이 다르지만, 물리 공격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수혁의 실력을 생각하면 쌍검에 이능파를 두껍게 두르고 싸우는 것도 가능하긴 할 거다.
‘주수혁의 이능파 총량이 많긴 해도 좀 힘들지 않나?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할지 모르는데.’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활용한 공격 스킬을 사용할 때에도 보통 이능파를 사용한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무기 전체에 이능파를 두껍게 두르고 싸우지는 않는다.
유효한 공격 수단이기는 하나 효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전기 충격기를 쓸 때, 트리거를 당기는 대신 몸에서 전기를 뿜어 충격기를 작동시키는 거나 다름없었다.
“응, 그렇지. 대신 무형종 에너미들은 약점이 명확해.”
주수혁이 쌍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치 주수혁은 무형종 에너미들의 약점을 노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맹효돈은 말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지켜보기로 했다.
‘도인이랑 저 경호원이 말리지 않고 있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야.’
주수혁은 괜찮을 거라고 맹효돈의 감이 고하고 있었다.
파아아앗!
눈부신 빛이 시야를 덮었다.
주수혁의 곧게 뻗은 등에서 날개가 돋아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맹효돈은 순간 쌍검에서 나온 빛을 잘못 본 건가 싶었는데, 정말로 날개 형태의 힘이었다.
‘날개……? 스킬이나 아이템의 효과는 아니야. 광림이다!’
주수혁이 날개가 돋은 각도에 맞춰 검을 높이 들어 올리자 쌍검에서도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능파의 광채가 아니라 이능의 효과로 빛이 발산된 듯했다.
“구름과 안개를 날려 버리고 싶으니까 바람 속성을 부여해 볼까.”
주수혁이 그렇게 말하자 날개와 쌍검에 깃든 힘이 바람의 마력으로 변했다.
검 주변에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돌풍으로 변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다.
자연계 이능은 귀한 편에 속했고, 속성을 두 개 이상 다루는 이는 더욱 드물었다.
그러나 주수혁은 원하는 속성을 얼마든지 다룰 수 있었다.
주수혁의 광림, ‘무결한 날갯짓’ 앞에서는 상대의 약점이 무엇이든 관계가 없어졌다.
솨아아아아!
주수혁의 몸이 바람과 함께 앞으로 쏘아졌다.
광림의 이름처럼 완전하고 무결한 날갯짓처럼 보였다.
맹효돈은 주수혁과 검이 바람으로 화하는 순간에 시선을 빼앗겼으나 곧바로 친구와 싸우기 위해 움직였다.
끼기긱……!
바람의 마력을 감지한 에너미들이 급히 산개하려고 했으나 맹효돈이 전개한 싸움터에 묶여 도망갈 수 없었다.
맹효돈은 주수혁의 검의 궤도를 예측하고 달려갔다.
검이 닿는 영역에서 벗어난 에너미를 찾아낸 맹효돈이 주먹을 쥐었다.
콰앙! 쾅!
맹효돈은 아주 짧은 시간, 주먹에 이능파를 실어 에너미를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그 주먹에 실린 힘으론 에너미를 소멸시킬 수는 없었으나 주수혁의 검 끝으로 밀어 넣는 건 가능했다.
주먹을 날린 맹효돈이 돌아보자 이미 바람의 검으로 수많은 무형종 에너미를 소멸시킨 주수혁이 달려오고 있었다.
주수혁은 맹효돈이 자신을 도우리라고 확신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맹효돈은 처음으로 이 가든에 들어와서 웃었다.
사아아아……!
바람의 검이 주변을 휩쓴 직후, 맹효돈이 지정한 싸움터가 사라졌다.
싸움꾼의 인력으로 붙잡아 둔 모든 에너미가 소멸했기에 자동으로 광림이 해제된 것이다.
짧은 시간에 대량의 에너미가 소멸하자 탁거산과 김철을 상대하고 있던 플로어 마스터가 우뚝 굳었다.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이대로 플로어 마스터까지 토벌할게요. 효돈아! 철이 형!”
“알았다!”
“확인했습니다.”
주수혁이 맹효돈과 김철의 이름을 부를 때, 한쪽 검 끝을 들어 어두운 구석을 가리켰다.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퇴로를 막아 달라고 요청 중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맹효돈은 즉각 퇴로와 플로어 마스터 사이를 향해 달려갔다.
‘플로어 마스터를 광림으로 묶어 둘 필요도 없어. 이 정도라면 잠깐만 시간을 끌어도 주수혁이 끝을 낼 거다!’
주수혁이 쌍검을 교차시켜 힘을 모으고 있었다.
단숨에 승부를 낼 생각인 듯했다.
플로어 마스터는 퇴각하려 했으나 퇴로는 막혀 있고, 정면에선 탁거산이 막고 있었다.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플로어 마스터가 마지막 발악을 하려 했다.
플로어 마스터의 핵에서 이능파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주수혁 쪽이 더 빨랐다.
콰아아아아!
플로어 마스터가 이능파를 폭주시키기 전, 바람의 날개가 핵을 꿰뚫었다.
핵에 꽂힌 두 개의 날개에서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납게 날뛰던 에너미가 서서히 바람에 녹아 흩어졌다.
쉬익!
플로어 마스터가 형체를 모두 잃었을 때, 주수혁의 파생 스킬 쌍검일신(雙劍一身)이 발동해 두빛나래가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무결한 날갯짓이 해제된 검에는 바람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주수혁이 몇십 초 동안 흐트러진 호흡을 다듬자 전투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거쳤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상성이 유리했다고 해도 이건…….’
맹효돈은 주수혁의 성장을 실감했다.
근접 전투 능력으로만 따지면 주수혁과 맹효돈은 라이벌로 묶일 만큼 실력이 비슷했다.
그러나 방금의 싸움을 보면 둘의 차이는 극명했다.
주수혁은 성장했다.
진정묵과 싸울 때에도 느꼈지만, 에너미와 싸우는 걸 보니 그 성장의 정도가 크게 느껴졌다.
‘나는 고작 왼팔을 버린다는 생각밖에 못했는데!’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탁거산은 무리하게 광림을 발동시켜 맹효돈을 구하려 했을 거고, 그 이후의 싸움은 더욱 어려워졌을 거다.
“너…… 왜…… 어떻게…….”
왜 이곳에 싸우러 온 건지, 어떻게 그렇게 강해진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여러 감정이 밀려 들어와 맹효돈이 말을 잇지 못했다.
맹효돈이 계속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주수혁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친구가 다치잖아.”
맹효돈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는데도 주수혁은 정답을 말했다.
주수혁은 친구를 위해 여기에 왔고, 강해졌다.
그리고 맹효돈은 주수혁이 말하는 친구에는 자신 외에도 조의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