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3화 (84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3)

104. 곁 (8)

명계에 다녀왔을 때, 죽음의 신들은 죽은 자만으로는 윤회의 굴레를 지킬 수 없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죽음의 신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안광 스킬에 힘을 더해 ‘생사(生死)의 안광’이라는 힘을 주었다.

상태창에 나온 생사의 안광 스킬의 효과와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효과] 시선에 이능파를 실어 특수한 현상을 일으킨다.

죽음의 신들의 뜻으로 삶과 죽음의 힘이 추가된다.

[설명]

죽음의 신들이 새긴 뜻이 담긴 안광.

그 뜻을 허락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이 스킬이 가진 힘은 아직 미지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았다.

이 힘을 막 얻었을 때, 흑막은 윤회의 굴레에 틈을 만들고 삶과 죽음의 비밀을 훔쳐 살생부를 만들던 중이었다.

나는 생사의 안광으로 삶과 죽음의 힘을 가려내어 흑막이 만든 틈을 찾았다.

‘이 눈이 없었다면 호랑이들이 내 수에 동의하지 않았겠지.’

내가 이번 작전에 관해 제안했을 때, 호랑이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황지호가 이렇게 말했다.

―조의신, 리플레이 속 성국언은 죽었다. 지금 대신 죽으러 가겠다는 소리를 하는 건가?

적호도 탐탁지 않아 하며 덧붙였다.

―조의신을 대신해 역용술을 잘 쓰는 이를 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아들만은 못하지만, 제법 솜씨가 좋은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적연을 다룰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십시오.

적호에 이어 은호가 말했다.

―의신이 형, 그 수는 저나 다른 호족 분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 중에 의신이 형이나 다른 호족들을 희생시키고 싶은 분은 없어요. 하지만 의신이 형이 이렇게 말했다는 건 저희가 납득할 만한 수가 있다는 거겠죠?

은호의 말은 마치 납득할 만한 수가 있으면 반드시 반대하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은호 옆에 앉은 백호군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저 말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호랑이들이 여차하면 대놓고 반대할 기세라 신중하게 말을 골라 답했다.

―상대는 호족에 관해 잘 알아. 역용술을 경계하겠지. 물론 적호가 적연을 사용할 거라고도 생각할 거야. 그러니 역용술을 쓸 분과 적호는 진짜 성국언 선배님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흑막이 무슨 짓을 하면 호족 측에서 대비하고 있으리라는 걸 그쪽도 알 거다.

그러므로 여러 겹의 함정이 필요했다.

내가 둘 수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해도 호랑이들은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그래서 반드시 내가 가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이번에 흑막은 운사와 옛 한국 지부장님의 힘을 이용할 거야. 이 둘을 되찾으려면 내가 가는 게 확실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그게 가능할지 알 수 없어.

성국언이 리플레이 속에서 본 정신 공격 이능의 주인은 죽은 옛 한국 지부장이다.

그리고 그 이능을 움직인 힘의 주인은 운사다.

그 둘은 지금 에너지원, 이능의 매개체로서 흑막에게 붙잡혀 있다.

사실 성국언의 암살을 저지하는 건 간단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저 둘의 힘을 이용해 공격해 올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방어는 물론, 저들을 되찾는 건 상당히 어렵게 된다.

―명계에서 죽음의 신들이 준 힘이 있어. 그 힘을 이용하면 둘을 구해 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생사의 안광이 지닌 힘과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설명했다.

호랑이들은 죽음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내가 괜히 쓸데없는 의무를 짊어진 게 아니냐며 한 소리 하긴 했지만, 내 의도는 이해했다.

황지호는 여전히 석연치 않아 하며 말했다.

―조의신 네 뜻은 잘 알겠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네 수대로 작전을 이행하려면, 너는 성국언이 리플레이에서 겪었던 일을 당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선택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고 했죠. 자신이 정신 이능에 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다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국언이 리플레이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설명했기에 호랑이들도 그가 당한 정신 공격 이능에 관해서 알고 있다.

다행히도 시간 문제도 있어 성국언은 자신이 겪은 일을 과정 없이 아주 간단하고 담담하게 정리했다.

게다가 성국언이 정신 이능에 당한 건 아니므로 설득이 쉬웠다.

그 덕에 정신 이능 대비를 위해 구형 시뮬레이터로 연습했다는 말을 숨길 수 있었다.

―게임을 통해 어떤 능력인지 봤어. 괜찮아.

정신 이능에 당하는 동안에는 이쪽에서 이능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당하기 전에 피하면 그 힘을 추적할 길이 사라진다.

정신 이능을 파훼한 직후, 힘이 어그러진 순간을 노려야 한다.

내가 정신 이능에 당하는 걸 그리 기꺼워하지 않던 호랑이들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대신 황지호가 조건을 하나 붙였다.

―알았다, 조의신. 대신 조건이 있다.

―뭔데?

―전무영과 준비한 수를 조정했으면 하는군.

그렇게 조건이 붙긴 했지만, 대부분의 수는 내 뜻대로 흘렀다.

예정대로 옛 한국 지부장의 광림을 파훼한 지금, 나는 생사의 안광을 발동해 그 힘을 간파했다.

삶과 죽음을 가리는 눈이 힘의 근원을 파고들었다.

‘생각대로야. 세 개의 힘이 보여.’

이번에 내가 상대하는 힘의 주인은 마침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자들이었다.

살아 있는 흑막의 부하.

이미 죽어 있는 옛 한국 지부장.

그리고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묶여 있는 운사.

생사의 안광은 그 셋의 힘을 정확히 가려냈다.

쿠구구구!

금이 가던 공간이 부수어지는 가운데, 균열 사이로 세 개의 힘이 엮여 있었다.

죽은 자의 힘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산 자의 힘은 어디로 엮여 있는지 똑똑히 보였다.

‘옛 한국 지부장의 주검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죽음의 신들이 준 힘답게 죽은 자의 힘은 단번에 찾아냈다.

문제는 운사 쪽이었다.

운사가 비록 죽음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자였다.

운사의 힘이 보여도 이를 추적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지이잉……!

과도한 이능파 사용으로 이명이 들렸다.

이명과 진동이 눈으로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균열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성국언, 제법이구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이쪽을 깔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나를 약자로 보고 업신여기는 듯했다.

‘마계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왔다는 흑막의 부하인가? 육신은 광림으로 성국언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신을 들여다보면 아니라는 걸 알 텐데.’

흑막의 부하는 운사를 통해 이능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 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한 듯하다.

정신계 이능이 발동하면 당연히 내 정체가 들통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능파에 여유가 있겠지. 방심해선 안 돼.’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흑막의 부하가 말했다.

[인간의 잔재주 따윈 나의 힘 앞에서 소용없다. 짓뭉개 주마!]

더욱 커진 균열 사이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정신을 가둔 공간이 일부 무너졌으니, 이제부터 하는 공격은 육신에도 영향을 줄 거다.

흑막의 부하가 누구인지 파악이 안 된 상태라 공격 수단은 미지수다.

탈출해 공격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아직 나갈 수 없었다.

‘운사의 위치를 찾지 못했어. 조금만 더!’

균열 사이로 뻗어 나간 생사의 안광이 운사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먹구름이 낀 듯한 거대한 가든 속에 운사의 기운이 퍼져 있어 그 본체의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 눈으로 이쪽을 보려 하는가. 성가시군!]

목소리에 이능파가 실려 있는 건지 눈에 무거운 압력이 가해졌다.

흑막의 부하가 내 눈을 노리고 있었다.

아직 내 육신의 대부분은 옛 한국 지부장의 정신 이능에 영향을 받고 있기에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듯했다.

그래서 생사의 안광이 뿜는 힘을 더듬어 눈을 공격하려는 거다.

쿠구구구……!

아직 본신의 힘 대신 운사의 힘을 부릴 생각인 건지 균열 사이로 먹구름이 쏟아졌다.

눈을 노리는 건 알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힘을 거둘 수도 없었다.

‘호랑이들한테 운사를 찾아 주겠다고 했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었다.

공격을 피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하는 선택이 아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싸우는 플레이어가 있지만, 이런 강력한 적을 상대로 훈련 없이 맞선다는 건 무모하다.

그러니 두 눈을 다 버릴 수는 없었다.

‘어느 쪽을 남길지 선택해야 해.’

선택을 마친 나는 오른쪽 눈에서 힘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왼쪽 눈에 운사가 있는 화로의 위치가 막 담긴 순간.

콰아아아!

먹구름에 삼켜진 왼쪽 눈이 붉게 물들고 시야가 닫혔다.

* * *

은광구의 한 구역.

성국언과 전무영의 모습을 한 김신록, 푸른 가면을 쓴 포모르 마족이 마주하고 있었다.

‘납득은 했지만, 꺼림칙하군.’

포모르 마족이 집요하게 성국언을 추적했으나 피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은광구가 호족의 영향하에 있고, 절흑풍림이 포모르 마족을 대놓고 경계하고 있으니 한반도에서 성국언을 추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반도에서 포모르 마족이 움직이는 꼴을 보는 게 성가시긴 하지만 굳이 그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조의신이 제안했다.

―성국언 선배님이 포모르 마족과의 거래에 응하셨으면 해요.

이상한 제안이었지만, 성국언은 후배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포모르 마족이라는 변수를 지우고, 그 힘을 활용하고 싶어요.

옆에서 듣던 전무영은 곧바로 반대했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마족의 거래에 응해 다른 문화권의 신보를 파괴하다니요. 드러나면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이고, 지지율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성국언도 전무영의 의견에 동감했다.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서 단순히 도덕적인 면에서도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포모르 마족과 적대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조의신은 성국언과 전무영이 반대하는 모습에 조금 기뻐했다.

둘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네, 저도 선배님께 그런 경력을 남겨 드릴 생각은 없어요.

이어서 조의신은 어느 제안을 했다.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조의신이 거짓을 고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성국언은 조의신을 믿고 그 말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마음을 바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통 연락을 주지 않아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요.”

푸른 가면의 마족이 저자세로 말했지만, 저 말에는 희미한 의심이 묻어 있었다.

줄곧 포모르 마족과의 접촉을 피하던 성국언이 갑자기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연락했으니 의심할 법도 했다.

성국언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보셨으니 알 겁니다. 저를 노리는 집단이 있습니다. 뜻을 관철하기 위해선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왕의 자질을 가진 자는 겸손하시군요. 지금 상황을 보면 당신의 목숨쯤이야 혼자 힘으로 지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핫, 저들이 암살 시도를 한 번만 할 것 같습니까?”

성국언이 친근하고 노련하게 말할수록 푸른 가면의 마족이 품은 의심이 옅어졌다.

푸른 가면의 마족은 내심 감탄했다.

품고 있는 기운도 그렇고, 말솜씨도 훌륭했다.

유독 플레이어에게 박한 국가에서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하고, 다누 신족의 대관석이 인정할 만한 왕의 자질을 타고난 자는 과연 달랐다.

“포모르 마족이 신화에 남긴 혁혁한 전공, 지력이 없는 땅에서도 보이는 영향력을 보고 저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 정치적인 생명을 걸고 대관석을 부술 만한 가치가 있겠죠.”

푸른 가면의 마족은 홀린 듯이 성국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리어 팔이 저런 자에게 부수어지면 다누 신족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먼저 포모르 마족이 약속대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성국언의 이어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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