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4화 (84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4)

104. 곁 (9)

플로어 마스터를 쓰러뜨린 후, 가든 안.

김철이 나서서 플로어 마스터와 그 치하에 속했던 에너미들이 남긴 이능의 여파가 전부 소멸한 것을 확인했다.

김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맹효돈은 수업 중에 배운 걸 떠올렸다.

‘보스가 아닌 센 놈을 쓰러뜨리고 죽기 전에 남긴 이능파가 다 없어지면 그 구역 주변은 당분간 안전하다고 했어. 그때 좀 쉬고 다시 공략하러 간다고 했지.’

하지만 맹효돈을 포함한 이들 일행 중 쉴 생각인 사람은 없었다.

사실 주수혁이 맹활약하는 바람에 이능파나 체력 소모는 거의 없어서 쉴 필요는 없었다.

‘주수혁이 싸우는 걸 보니까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핵을 꿰뚫던 주수혁의 힘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 맹효돈이 얻고자 하던 필살기가 머리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물론, 맹효돈이 주수혁을 그대로 흉내 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생각할 게 많았다.

‘주수혁은 격투기에서 뭘 많이 참고한다고 했어. 반대로 나도 주수혁의 검술에서 보고 배울 게 있겠지.’

맹효돈이 주수혁의 싸우는 모습을 계속 떠올리며 필살기의 이미지를 잡고 있을 때였다.

“여전히 구름이 짙어. 낮은 곳은 안개가 심해. 진족의 주인이 다루는 이능파 총량이 아주 큰 것 같아. 그리고…….”

천리안 스킬을 사용하던 주수혁이 갑자기 맹효돈에게 말을 걸었다.

검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집중하던 맹효돈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힘의 농도가 짙은 곳을 살펴봤는데, 이능파가 이상해. 효돈아, 어떻게 생각해?”

‘뭔가 이상하긴 하더라.’라고 생각하고 있던 맹효돈이 이름을 불려 눈을 끔뻑였다.

탁거산과 김철, 중학교 은사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주수혁이 굳이 저 둘 대신 맹효돈에게 묻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어…… 그런 것 같긴 한데…….”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어?”

맹효돈이 진지하게 머리를 썼다.

공부 쪽은 안 되지만 싸움에 관한 거라면 지혜와 감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맹효돈이 파이트 클럽에 있던 시절, 에너미와 싸울 때였다.

맹효돈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보호대도 없이 싸워야 했지만 타고난 싸움꾼답게 에너미를 맨손으로 다 때려잡았다.

초반엔 승승장구하는 맹효돈을 보며 즐거워하던 관객들은 곧 지루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높은 희귀도의 에너미를 데려오면 협회의 위성에 포착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맹효돈은 특별한 방식으로 개조된 에너미를 상대하게 되었다.

“예전에 저런 이능파를 쓰는 에너미랑 싸운 적이 있다.”

“에너미랑? 어떤 점이 달랐어?”

맹효돈은 그때 있던 일을 떠올렸다.

최편득은 높으신 분을 통해 에너미를 데려왔다며 떠벌렸다.

그렇게 떠든 것에 비해 에너미의 희귀도는 평소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에너미가 다루는 이능파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겨우 에너미를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으나 맹효돈은 중상을 입었다.

그날부터 회복 아이템을 대량 사용하게 되었는데, 파이트 클럽에서 공급하는 아이템들에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붙어 있어 맹효돈의 빚은 늘어 갔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는데, 파이트 클럽엔 이상한 게 개 많아서 생각을 못 했다.’

파이트 클럽을 찾는 이들이 한 괴상한 차림, 그들이 하던 비정상적인 행위 등등 맹효돈의 상식을 초월한 게 지나치게 많았다.

그러니 에너미가 좀 이상해도 마음에 담아 두기 어려웠다.

“좀 오래되고 썩은 거 같은 이능파를 쓰는 놈들이었는데, 희귀도에 비해 이능파 양이 많았어. 쓰러뜨리기 직전엔 좀 새것 같은 이능파를 쓰긴 했다.”

“지금 이 가든에서 느껴지는 이능파는 그 오래됐다는 쪽에 가까워?”

“어.”

주수혁은 그 에너미를 어디에서 보았는지, 어쩌다 싸우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 모습에 맹효돈은 직감했다.

‘주수혁 저 새끼도 파이트 클럽에 대해 아는구나.’

주수혁이 마음만 먹고 조금만 조사한다면 알 만한 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과거를 알았으니 동정이든 뭐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주수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맹효돈을 대했다.

주수혁은 그저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운 태도를 취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이능 기술을 쓰는 자를 상대하고 있나 봐. 효돈이가 느꼈다는 것을 바탕으로 생각해 봤을 때, 가든의 주인은 사전에 이능파를 뽑아 둬서 축적해 뒀을 가능성이 있어.”

맹효돈은 주수혁이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탁거산, 김철, 중학교 은사는 그 뜻을 이해했다.

자연계 스킬 등을 카드화시켜서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건 가능하지만, 이능파 자체를 카드화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황호가 결계술을 카드화하여 권레나에게 선물했으나 그의 이능파를 카드화해 선물하진 못했다.

그 카드를 발동시키려면 결국 이능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능파 그 자체를 저장할 수는 없었다.

비유하자면 카드화된 스킬은 배터리 없는 전자 기기였고, 이를 작동시키려면 플레이어가 자신의 이능파를 배터리로 삼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적은 이 상식을 깨고 있었다.

“만약 내 추측대로라면 가든의 주인은 사전에 이능파를 저장해 두었다가 지금 사용하는 중일 거야. 그렇다면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의 이능파 총량을 쓸 수 있겠지.”

주수혁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인간이 저 기술을 사용했다면 길어야 몇십 년 이능파를 모았겠지만, 진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동안 이능파를 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낙관할 부분은 있었다.

“효돈이가 상대했다는 에너미는 이능파 저장의 실험체일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이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건 최근일 거야. 그 전까지는 그리 이능파를 많이 모으지 못했겠지.”

맹효돈이 주수혁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애쓰는 사이, 시선이 모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맹효돈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맹효돈의 이해 정도가 아니라 그의 안전이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자는 효돈이를 노리고 있을 거야.”

주수혁은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맹효돈이 싸웠던 에너미와 이 가든의 주인이 같은 기술, 그것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힘을 쓰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파이트 클럽은 실험체의 처리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효돈이의 입을 막을 생각인 걸까? 그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주수혁은 생각을 이으면서 파티 구성, 배치를 제안했다.

적이 맹효돈을 우선적으로 노릴 것을 가정해 정한 자리였다.

맹효돈은 보호받는 입장이 된 걸 그리 내켜 하진 않았으나 대충 적이 자신을 노린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납득한 걸 본 후에야 탁거산이 입을 열었다.

“수혁아, 그래서 대체 어떻게 여기에 온 게냐?”

“작년 스승의 날에 효돈이랑 같이 선생님께 인사드렸는데, 좀 늦더라도 올해도 인사하고 싶었어요.”

주수혁은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 말을 들은 맹효돈은 주수혁이 거짓말은 안 했지만, 사실을 다 밝힌 것도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식사 중이신 것 같아서 나오시면 같이 차라도 한잔할까 생각했어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그러던 중에 이변이 일어났어요.”

“전이 현상을 말하는 게냐?”

“그것도 이변 중 하나였죠.”

마치 주수혁은 다른 일이 더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탄래중 주변에서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이 넓은 범위에서 대거 발생했어요. 플레이어 위성이 바로 감지해서 근방에 위치한 디바이스로 알람을 보냈죠. 탁거산 선생님 쪽 디바이스는 전이의 영향하에 놓여서 받지 못했을 거예요.”

“우연은 아닌 것 같구나.”

“그럴 거예요.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은 황명 재단에서 파견한 경호원분들이 계시던 좌표 위에서 발생했으니까요.”

탁거산과 맹효돈 사제는 당연히 경호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경호 목적이라 해도 황명 재단 측에서 반강제로 붙여 준 이들이라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좋게만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들이 주변에 있다가 사건에 말려들었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건 단순한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이 아니었어요. 주변에 피해가 가는 걸 막기 위해 경호원분들이 움직였을 때,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또?”

“네, 그분들의 이능파 출력이 갑자기 낮아졌죠. 천리안으로 봤을 때 마치 이능파가 어딘가로 빨려드는 것처럼 보였어요.”

주수혁은 그 현상을 오래 관찰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어서 탁거산 일행이 있는 한식당을 삼킨 전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난리 통을 보다가 전이 현상을 보고 뛰어든 게냐?”

“맞아요. 제 눈에는 전이한 곳 저편에 가든이 보였으니까요. 가든을 경험한 적 있으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수혁이 설명을 마쳤을 때였다.

줄곧 듣고 있기만 하던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가 주수혁에게 물었다.

“효돈이 학교 친구한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니?”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이능파가 어딘가로 빨려드는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지? 자세한 위치를 말해 줄 수 있을까?”

주수혁은 위치와 좌표를 정확하게 설명했다.

주수혁은 탄래중 출신인 맹효돈 보다 주변 설명을 더 잘했다.

탄래중 주변은 초행인 탁거산도 정확히 그 위치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설명을 들은 중학교 은사가 주수혁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흐린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탁거산 선생님께 상담드리려 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가든으로 전이되기 전, 중학교 은사가 무언가를 상담하려 했다.

중3이 되어 이능을 발현한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은광고에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그 애에게 이능파 수치 측정 키트를 사용했을 때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 애의 이능파 수치가 많이 불안정했어요. 청소년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라 협회나 정부 쪽에 상담하려 해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상담해 주시는 분 말로는 일반인 가정 출신인 플레이어의 이능이 사라지는 건 비교적 흔한 일이라고…….”

중학교 은사는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의 이능파 통계를 전부 확인하는 등 제자를 위해 직접 문제점을 찾고자 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수학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지만, 중학교 은사는 맹효돈의 입시 준비 때에도 그랬듯이 최선을 다했다.

“이능파를 측정하는 시간을 달리해 보기도 하고, 장소를 다르게 해 보기도 했죠. 그러다가 원인을 알아냈어요.”

사비를 털어 이능파 수치 키트를 사들여 제자의 이상을 확인한 결과, 중학교 은사는 정답에 가까워 보이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증명하는 것은 지극히 곤란했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잘못되면 보복을 당해 제자의 입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은사는 플레이어계와 연이 있는 다른 제자를 통해 상담할 이를 찾으려 했다.

“자연파 이능 방출 현상이 일어났다는 곳, 탄래중 근처에 위치한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에 방문한 후에는 항상 이능파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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