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5화 (84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5)

104. 곁 (10)

리플레이 속에서 전무영이 성국언과 동시에 아공간에 삼켜진 순간.

아공간이 어디에 이어졌는지, 누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런 힘을 쓴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전무영은 곧바로 광림을 사용했다.

성국언을 두고 도망가기 위해 광림을 발동한 건 아니었다.

기습을 당했으니 반격의 기회를 잡기 위해 반사적으로 그리 행동했다.

그 결과, 성국언의 정신이 이능에 삼켜졌을 때에도 전무영은 무사했다.

‘국언이 형……!’

전이가 끝난 직후에는 성국언이 곁에 있었는데, 곧바로 도망칠 틈도 없이 당하고 말았다.

성국언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전무영이 망연자실했으나 곧 상황 판단을 위해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가든인가? 구름과 관계가 있는 진족의 가든일 가능성이 크다.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진족은 하나가 아닌 것 같군. 국언이 형은 어떻게…….’

성국언의 부재와 위기 앞에 크게 동요했기에 전무영의 사고는 맑지 못했다.

게다가 계속 광림, ‘그림자 없는 시간’을 발동하고 있었기에 이능파 소모도 상당해 집중력이 흔들렸다.

전무영은 성국언이 사라진 곳을 살피며 이능파의 흔적을 더듬으려 했지만, 강력한 이능에 당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비서는 어디 갔어? 같이 데려왔잖아.”

“전이하는 순간엔 있었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쌍둥이가 있었다.

전이 직전에 보았던 아이들 같았다.

그들의 겉모습은 어리고 약해 보이지만,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졌다.

전무영은 성국언처럼 진족을 꿰뚫어 보는 눈은 없었지만, 저들이 강력한 진족임을 알아챘다.

“놓친 거 아니야? 비서를 놓치면 귀찮은 일이 생길 텐데.”

“분명 있었어. 여기 들어와서 숨은 거 아니야?”

“그럼 찾아야겠네! 그분께서 둘 다 없애야 한다고 하셨어.”

쌍둥이들은 꾸밈없고 천진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말하는 내용은 섬뜩했다.

전무영은 숨을 죽이고 그 대화를 엿들었다.

“그래 봤자 이 가든 안에 있겠지. 잔재주로 숨어 봤자 오래 못 갈 거야.”

“도망 못 가게 입구 쪽을 강화해야겠네. 운사의 힘을 좀 많이 뽑아 써야겠다.”

“이러다가 다른 곳에 이어진 가든 무너지는 거 아니야? 성국언을 상대하는 것도 소모가 좀 큰데.”

“그렇긴 한데, 이 가든만 안전하면 괜찮지 않을까?”

전무영은 순간 갈등했다.

적은 그림자 없는 시간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

가든을 봉쇄한다 해도 이 광림을 잘 이용하면 탈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탈출해서 구조 요청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사이에 성국언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의원님과 합류하면 대항할 수단이 생긴다. 곁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의원님이 다루는 광림의 조건이 채워지니까.’

밖에서 지원을 불러오는 게 안전하겠지만, 사실 탈출에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전무영은 성국언과 합류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전무영은 쌍둥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의원님에게 정신을 공격하는 이능을 사용했다고? 그러면 의원님은 안전하시겠군. 정신적으로 굴복하실 리가 없어.’

쌍둥이들은 몹시 오만하고 자신들이 가진 강대한 힘에 큰 자신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쌍둥이들은 전무영이 그들의 대화를 훤히 들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들은 그 정도로 가까이 있으면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이 가든에는 ‘운사’라고 불리는 힘의 원천이 있고, 다른 가든도 운사를 통해 제어하고 있다.’

운사라고 하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운사는 개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다.

그것도 신인의 곁에서 제사를 주관하고 날씨를 다루던 관리다.

‘설마 진짜 그 운사를 가리키는 건가? 아니, 그저 관용적인 표현이거나 상징적인 말일 수도 있다. 이 가든에는 구름이 많으니 힘의 근원을 운사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그것이 진짜 운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로 전무영은 정보를 모으고 정리했다.

쌍둥이들은 말이 많았기에 제법 수확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성국언과 합류하기 전까지 계속 저 대화를 듣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계가 찾아왔다.

‘……광림 가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의원님은 아직 나올 낌새가 없군.’

그림자 없는 시간이 끝나려 했다.

전무영의 광림은 완벽한 은신 능력을 지닌 대신, 광림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전무영은 광림이 끝날 시간을 가늠해 멀리 물러났다.

‘기척을 철저하게 죽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리를 두고 있으면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침 이 가든 안은 어둡고, 구름이 가득해 숨을 곳이 많았다.

전무영은 낙관하며 멀리 물러났다.

전무영은 자신이 쌍둥이의 기척을 감지하지도 못할 만큼 멀리 떨어졌다.

성국언과의 합류를 고려해 너무 멀어질 수는 없어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전무영이 기척을 죽이며 ‘그림자 없는 시간’을 해제했을 때였다.

“어?”

“흠.”

쌍둥이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광림을 해제하기 무섭게 전무영 쪽으로 도약한 듯했다.

전무영이 필사적으로 몸을 숨겼는데도 쌍둥이의 눈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찾았다. 여기에 있네, 감히 우리의 눈을 속여?”

쌍둥이들은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인간이 자신들의 눈을 속여 숨어 있었다는 게 속이 뒤틀릴 정도로 싫었다.

그래서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세웠던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아, 그 의원과 저 비서가 나란히 미쳐 있으면 보기 좋았을 텐데.”

“쟤는 그냥 죽이자.”

저들은 성국언과 전무영을 동시에 미치게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작정이었으나 계획을 수정해 전무영은 죽일 생각인 듯했다.

전무영은 속으로 이가 갈렸지만, 반박을 할 여유도 없이 교전에 응해야 했다.

하나 전무영은 전투에 능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전투보다는 보조, 실제의 전장보다는 정보전에서 활약하는 인물이었다.

전무영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상하군. 어떻게 내가 저 공격을 피하고, 이런 움직임을…….’

전무영은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전무영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능숙한 움직임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고, 최적의 루트로 이동하며 이능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곧 한계가 왔다.

“잡았다.”

콰드득!

바람의 이능을 사용하는 아이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힘이 전무영의 복부를 꿰뚫었다.

전무영이 급히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려 했으나 그 전에 온몸이 차에 치인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쌍둥이 중 하나가 전무영을 걷어차 어느 이능의 중심으로 밀어 넣은 듯했다.

“죽기 전에 네가 모시는 인간이랑 같은 꼴을 당하게 해 줄게.”

전무영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치명타를 입은 상태로 정신을 공격하는 이능에 당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죽기 전에 이능에서 빠져나와 회복하면 살길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과 이능파를 끌어모아 대응해야 하는 이능 속에서 육신의 고통을 억누르며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전무영에겐 시간이 없었다.

즉사에 이를 만한 부상을 입은 직후였기에 이능을 빠져나오기 전에 육신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전무영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과거와 후회를 마주했다.

‘선생님…… 시완아…….’

성국언의 비서 전무영은 감정 기복이 적고 냉정하고 침착한 보좌관이라 평가받고 있지만, 사실은 달랐다.

성국언이 자신 대신 다치면 불같이 화내며 비서를 때려치우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존경하는 은사를 만나면 아이같이 좋아하며,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은사가 무사히 살아 있는 걸 알았을 때에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전무영이 굳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된 건 성국언의 곁에 있다 보니 드러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전무영이 크게 표현을 하지 않아도 성국언이 기민하게 알아챘고, 정치계에서는 이편이 유리했다.

‘늘 고마웠습니다. 고맙다…….’

그걸 알지만, 리플레이 속 전무영은 많은 이들이 먼저 떠나기 전에 감사를 표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전무영이 품은 가장 큰 후회는 따로 있었다.

‘국언이 형!’

이곳으로 전이되기 전의 일이었다.

‘국언이 형을 보호할 방법이 없었나? 정말로?’

전무영은 성국언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전무영의 정신을 잠식한 이능은 성국언의 곁에서 멀어지던 그 순간을 보여 주었다.

죽음에 가까워진 육신의 고통보다 성국언도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다.

‘만약 그때 ‘그림자 없는 시간’으로 적의 눈을 피한 게 내가 아니라 국언이 형이었다면, 국언이 형은 살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전무영은 후회로 반복되는 주마등을 지켜봤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에어 세단에서 뛰어내리고 아공간에 삼켜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무영아, 내려!”

전무영의 신체는 한계에 가까워졌다.

무기력하게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전무영은 죽기 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

전무영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성국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아아…….

그러자 전무영의 손에 닿은 성국언이 사라졌다.

환상 속에서 전무영은 ‘그림자 없는 시간’을 자신이 아닌 성국언에게 사용했다.

성국언이 사라진 모습을 보자 전무영이 환히 웃었다.

그 순간, 다른 선택을 해 과거와 후회의 규칙을 어긴 전무영의 정신이 뒤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전무영의 육신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게 전무영이 겪은 리플레이의 끝이었다.

―전무영 선배님, 연습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현실에 돌아왔을 때, 조의신이 전무영에게 말했다.

―하핫, 무영이에게 숙제를 낼 생각이냐?

―네.

성국언의 농담 섞인 말투를 두고 조의신은 진지하게 답했다.

―전무영 선배님은 리플레이의 마지막 순간에 광림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아냈을 거예요. 어렵겠지만, 연습해 주셨으면 해요.

조의신이 내 준 숙제는 그림자 없는 시간을 다른 이에게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전무영은 자신의 광림을 완벽한 은신을 하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다.

제 자신을 감추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게 되었다.

‘죽기 직전에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이능을 개화하는 케이스는 여럿 있어. 내 광림도 그런 거겠지.’

그림자 없는 시간을 타인에게 써 본 적이 없고, 귀한 광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다른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숙제의 해결은 쉽지 않았다.

하나 전무영은 전심전력으로 숙제에 매달렸다.

이 능력이 있다면 성국언이 얼마나 안전해질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전무영은 그동안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마법을 배우려 하기도 했는데, 마법보다는 저 광림의 새 능력 쪽이 유효해 보였다.

그리고 전무영은 숙제를 마치고 이곳에 왔다.

전무영은 어느 존재를 그림자 없는 시간으로 지키고, 자신은 정신을 공격하는 이능에 맞서 파훼하고 나왔다.

‘구형 시뮬레이터로 연습한 것보다 심하군. 의신이는 괜찮나?’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전무영은 후회와 공포가 주던 오싹한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리플레이 속에서 봤던 지긋지긋한 가든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딘가에서 교전이 시작된 듯하군. 이제 이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겠지. 설령 이쪽을 공격한다고 해도 문제없다. 우선 의신이와 합류를…….’

전무영의 시선 끝에 누군가가 보였다.

잘 아는 실루엣이었다.

‘……국언이 형? 아니, 저건 의신이다!’

전무영은 급히 조의신 쪽으로 달려갔다.

조의신이 비틀거리며 왼눈을 누르고 있었다.

왼눈을 억누른 왼손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전무영이 저도 모르게 조의신의 이름을 부르며 걱정하려 할 때였다.

“……무영아, 아직 적이 근처에 있다.”

조의신이 성국언의 말투를 흉내 내며 전무영을 막았다.

조의신은 아직 성국언의 모습을 빌릴 생각인 것 같았다.

‘설마 아직 들키지 않은 건가? 그것보다 눈은……!’

적은 무슨 생각인지 조의신의 눈을 노렸다.

진짜 성국언 역시 상위 존재로부터 받은 특별한 눈이 있으므로, 눈을 노릴 만한 이유는 충분하긴 했다.

생각이 많았지만 전무영은 조의신에게 맞춰 주기로 했다.

“다치셨으면 물러나십시오. 남은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다. 그것보다 찾으러 가야 할 게 있다.”

전무영으로선 조의신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무영은 다른 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침 그림자 없는 시간의 가용 시간이 한계에 다다랐다.

“제가 숙제를 해결해 모셔 온 분은 달리 생각할 겁니다.”

그림자 없는 시간이 거두어져 전무영이 모셔 온 자가 나타났다.

황호였다.

황호의 시선이 조의신의 왼눈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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