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55화 (85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5)

105. 경계 (8)

황호가 용제건을 곧게 응시했다.

그 시선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현재 황호는 황지호의 모습으로 교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용제건은 저래 봬도 교사였다.

실제로 둘은 학생과 교사 관계였지만, 황호가 저런 눈을 하고 용제건을 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국언이 그런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황호는 사고를 이었다.

‘용제건은 김신록과 관련된 것들, 지난 용궁 사건 등을 비롯해 조의신에게 큰 은혜를 입은 데다가 방송국 사건 때 크게 다치는 걸 눈앞에서 봤다. 조의신의 부상 소식에 동요했군.’

조의신의 왼눈이 있던 자리를 보고 난 후라 속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나 다쳤는지 직접 보지 않으면 더 불안해할 것을 잘 알았다.

황호는 용제건의 도발적인 태도가 불안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용제건뿐만 아니라 김신록과 성국언도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는군. 이런 상황에서 용제건의 불안에 이 몸까지 말려들 수는 없다.’

김신록은 다친 조의신과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는 용제건 걱정에 여념이 없는 듯하고, 성국언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황호는 긴 역사 속에서 주변이 흔들리는 경우를 셀 수 없이 경험해 왔다.

그때마다 황호는 중심을 잡아 위기를 해결했다.

저 셋이 흔들리는 것과는 역으로 황호는 더욱 침착해졌다.

‘용족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조의신을 회복시킬 수는 있다. 염제 신농의 힘을 다룰 수 있는 리웨이가 있고, 아케아가 아끼는 유상희가 있다. 하나…….’

황호는 리웨이의 복수를 돕는 대신 약속을 했다.

그 약속에 따라 리웨이는 한반도에 머무를 예정이다.

그러나 그건 리웨이가 졸업하는 내년부터로, 현재 리웨이는 중국에 있다.

부르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유상희는 부르면 바로 오겠지만, 문제는 조의신이었다.

‘아무리 유상희라도 그 눈을 회복시키는 데에는 큰 힘이 필요하다. 조의신이 흔쾌히 치료를 받을 것 같지는 않군.’

치료가 유상희의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조의신이 차라리 눈을 내버려 두겠다 할 것 같았다.

황호의 생각은 길지 않았는데, 용제건이 독촉하듯 말했다.

“게다가 의신이의 눈에 구름이 얽혀 있다면서. 용왕신의 무녀들이 구름의 힘을 다루는 건 알지?”

황호는 사실 용족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었다.

용족은 툭하면 조의신더러 은인 운운하고, 용궁 같은 귀찮은 걸 떠넘겨 댔다.

이참에 그 은혜라는 걸 갚고 은인 관계를 청산하게 만들면 참 좋겠지만, 용족이 하는 짓을 보면 이렇게 된 거 다른 것도 더 받고 가족처럼 지내자며 들러붙을 게 뻔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도움을 받을 여지는 남겨 두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도 황호는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잊었을 리가. 용왕신을 배신한 무녀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은광고에 구름을 드리워 삿된 눈을 뿌리는 데에 일조했지 않았나. 신역의 수호자로서 마땅히 기억해야 할 일이다.”

황호의 목소리는 언뜻 듣기엔 다정하게 들렸으나 내용은 냉정하기에 짝이 없었다.

성국언은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는 진족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내용을 듣고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용제건은 황호의 말에 냉정을 되찾은 것 같았지만, 아직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맞아. 황호 씨도 알겠지만, 지금 무녀들이 그 뒤를 이었어.”

“알고 있다. 전원 힘을 계승한 지 1년도 안 되었지.”

“경험은 적지만, 그중 하나는 역대 용왕신의 무녀 중 최강의 힘을 지녔어. 의신이를 맡길 수 없다면 내가 직접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거야.”

황호가 용제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의신은 네게 자신을 위한 소원을 빌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왼눈을 잃었고 지금 네가 무녀의 이야기를 꺼낸 거겠지. 은인이 부담을 덜 느낄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군.”

황호의 말에 순간 용제건의 말문이 막혔다.

황호는 여태까지 동등한 진족을 상대하듯이 말했는데, 저 말을 할 때는 마치 조카의 친우를 달래는 듯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

황호는 용제건이 할 말이 있으면 더 하도록 잠시 기다려 줬다.

용제건의 말이 이어지지 않자 황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몸은 조의신의 치료를 중요히 여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군. 이번 일을 마치고 치료에 전념하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나?”

황호가 그렇게 말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다루기 힘든 상대인 용제건도 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지 않았고, 김신록의 안색도 돌아왔다.

성국언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호족의 수장답군. 용제건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들어준 것도 아니지만, 제안을 완전히 거절하지는 않아 가능성을 남겨 뒀다. 그런데도 분위기를 진정시켰어.’

황호가 이번엔 성국언 쪽을 돌아봤다.

우호적인 표정이었으나 황호의 속을 읽을 수 없었다.

“아직 적은 가짜 성국언의 진위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 점을 이용하면 조의신의 존재를 감추고, 적의 허점을 노리기 좋겠지.”

성국언은 황호가 현재 무슨 심정인지는 읽지 못했지만, 어떠한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빠르게 이해했다.

성국언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눈병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분간 안대를 착용하고 다녀야겠군요.”

“황명은광병원에 오도록. 필요하면 진단서를 끊어 주겠다.”

“무영이랑 같이 들르겠습니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주로 말을 하는 건 황호와 성국언이었으나 김신록이 가끔 질문하고 용제건도 가끔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한참 이야기하고 있을 때, 황호의 반응이 갑자기 느려졌다.

‘분신 쪽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성국언이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 때, 김신록이 말했다.

“황호 님께서 교전을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    *    *

갈림길을 앞두고 황지호가 분신을 늘렸다.

황지호가 분신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이 세계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분신을 늘리는 과정을 본 건 처음이었다.

‘같은 나이대의 분신도 늘릴 수 있구나.’

황지호의 분신을 여럿 봤으나 같은 나이대, 같은 모습의 분신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본 황지호의 분신들은 서로 차별되는 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대가 다르거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등에 변화를 줘 분신을 동시에 보더라도 같은 존재가 아닌 친척이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지금 보는 황지호와 그 분신들은 완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분신을 다른 형태로 만드는 게 더 까다롭겠지. 긴급한 상황이라 같은 모습을 분신으로 만든 걸 거야.’

황지호는 분신 여럿을 동시에 움직이면 부하가 온다고 했다.

분신을 다루느라 멍한 모습을 하고 있던 황지호를 몇 번 봤으니 잘 알았다.

평소에는 분신의 수를 제한하고 있었을 텐데, 갑자기 숫자를 늘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전무영은 순수히 감탄했다.

“굉장한 이능이군요. 옷까지 복사가 되다니요. 아이템도 복제가 가능합니까?”

“착용 중인 옷은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내 이능파에 반응해 복제된 거다. 모든 분신이 그런 특수한 옷을 입은 건 아니지만, 몇몇 분신들은 항상 준비하고 다니지.”

눈앞의 분신들이 같은 옷차림을 한 건 그냥 복사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보다.

특수한 이능을 지닌 옷 같은데, 황지호 같은 힘을 가진 자는 거의 없을 테니 사실상 황지호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일 거다.

자연 발생한 아이템인 것 같진 않으니 직접 만들지 않았을까?

호족은 긴 시간 동안 재력과 힘이 남아돌았을 테니 황지호의 이능을 활용하기 위한 전용 아이템을 만드는 것쯤은 쉬웠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다 넥타이가 없어.’

넥타이로 내 임시 안대를 만들었으니 분신들도 착용하고 있지 않은 건 당연하긴 했다.

특수 제작한 황지호 전용 아이템이라면 양산이 쉽지 않을 텐데, 귀한 아이템을 눈을 가리는 데에 쓰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지금 내가 착용한 넥타이를 사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황지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전에 출발하는 게 좋겠군.”

전무영은 궁금한 게 많은 듯했지만, 그 말에 따랐다.

그렇게 동시에 세 길을 나아가게 되었다.

황지호가 셋이 되었으니 이쪽 일행은 다섯이 되었다.

둘, 둘, 하나로 나눠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지호와 전무영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두 길은 내가 분신을 이용해 공략하겠다. 한 길은 같이 나아가지.”

“저도 그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력적으로도 문제가 없으니까요.”

황지호가 혼자 한 길을 맡아도 괜찮긴 할 거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분신이 당할 뿐이다.

의문이 남긴 했다.

‘분신이 공격당하면 본신에 영향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물어보면 황지호가 안 알려 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뒤를 따르는데, 황지호가 물었다.

“셋이 같이 가는 게 의외인가 보군. 설마 혼자 갈 생각이었나?”

딱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혼자 행동해서 운사를 되찾을 가능성이 오른다면 그러겠지만, 지금 나는 부상 중이고 전투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황지호가 셋으로 나뉘었는데 굳이 내가 혼자 행동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단독 행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성국언의 능력을 고려하면 혼자 행동한다고 고집하는 쪽이 이상하지.’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성국언이 할 법한 대답을 골랐다.

“아닙니다.”

“무슨 생각을 거쳐서 한 답인지 신경 쓰인다만, 대답 자체는 마음에 드니 넘어가 주지.”

마음에 들었으면 됐지 뭘 그렇게 따지려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셋은 가운뎃길을 택해 전진했다.

티가 크게 나진 않았지만, 그사이에 황지호의 날 선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황지호가 좀 침착해진 것 같아. 적을 앞두고 집중한 걸까?’

다른 분신 쪽에서 일어난 일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단순히 운사를 되찾기 직전이라 마음을 가라앉혔을 가능성도 있다.

운사는 먹구름을 부리는 게 특기라고 들었는데, 앞으로 나아갈수록 구름이 머금은 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운사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역에 다다랐다는 증거였고 그만큼 운사와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편에 무언가가 있어.’

이 길은 적이 급하게 준비한 수다.

길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기에 금방 끝에 가까워졌다.

좁은 길 너머에 무언가가 있었다.

황지호와 전무영도 이를 느꼈는지 이능을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고오오오…….

가든을 구성하고 있는 짙은 먹구름이 일렁였다.

힘이 일으키는 파장을 본 황지호가 탄식하듯 말했다.

“아직도 이만한 힘을 사용하다니.”

황지호는 앞으로의 싸움이 아니라 이 힘의 주인인 운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무지기와 구갈안나가 어떤 식으로 힘을 빼앗겼는지 잘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황지호의 눈이 갑자기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두 분신이 싸우기 시작했다. 각각 플로어 마스터급의 에너미를 상대하는 중이다.”

플로어 마스터급이라는 말에 이쪽에서 상대할 적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우리가 가든의 중심에 이만큼이나 파고든 이상, 적은 더 이상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다.

굳이 세 갈래의 길을 만든 건 셋으로 나뉜 일행을 하나씩 없애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전부 플로어 마스터에게 맡겼을 리는 없었다.

‘당첨이네.’

황지호의 걸음이 빠르게 변했다.

갑자기 페이스가 빨라졌으나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을 빠져나오자 풍경이 일변했다.

방금 전까지 좁은 통로 속을 걸어온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화르륵!

그 넓은 공간 가운데에 불꽃이 이글거리는 거대한 화로가 있었다.

화로에서 무언가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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