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57화 (85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7)

105. 경계 (10)

황호와 교전을 개시하기 전, 도철은 혼돈의 진을 통해 어떤 감각을 전달받았다.

혼돈은 제 능력을 발휘해 가든 내부를 살핀 듯했다.

운사의 구름 속에서도 혼돈은 가든 전체에 몇 명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정확하게 감지했다.

그 결과를 확인한 도철이 혀를 찼다.

‘끌어들이려고 했던 것들보다 더 많다.’

그 시점에서 가든에는 도철 쪽을 제외하면 세 개의 집단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도철이 직접 사냥하려 했던 성국언으로 위장한 조의신, 전무영, 황호.

두 번째는 성형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이던 주수혁, 김철, 탁거산, 흑마와 맹효돈의 은사.

세 번째는 도철이 의도한 대로 일행과 떨어진 맹효돈과 제자를 구하러 온 함근형.

저 세 그룹의 머릿수를 다 합치니 도철이 상정했던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젠장, 이렇게 되면 내 힘을 제대로 발휘해 싸울 수 없다!’

도철은 다수에게 패배해 도망쳤다는 전승이 있다.

그 탓에 상대의 머릿수가 늘어날수록 불리해지고 약해진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도 그분이 도철에게 임무를 맡기고 도철이 이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인 건 운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사의 힘을 사용하면 안개와 구름으로 상대를 현혹하고 가든을 조작해 무리를 갈라놓는 게 용이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도철의 뜻처럼 흐르지 않았다.

도철은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그 이유를 추측했다.

‘내 쪽은 성공했다. 그러니 다른 쪽에서 일을 망쳤겠지. 탄래중에서 전이를 할 때 호족이 손을 썼을 거다.’

도철은 아직도 자신이 성국언과 전무영의 납치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믿었다.

상대의 잔꾀를 부수고 진짜를 가든에 데려와 호족의 허를 찔렀다며 자화자찬 중이니, 작전 중에 발견한 자잘한 이상 신호를 전부 무시했다.

다른 쪽 전이에서 트러블이 있을 거라는 그럴싸한 근거도 있으니 도철의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사실 전이를 시전한 두 곳에서 다 문제가 발생했고, 가든에 잠입한 호족은 전무영과 이동한 황호 하나뿐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운사와 네 힘만으로는 이번 건을 끝낼 수 없다. 우리가 개입하겠다. 너는 그 자리에서 화로를 지켜라. 우리는…….]

혼돈의 진에는 가든의 상황 외에도 다른 사흉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다른 사흉들이 이번 작전의 마무리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전부 그분의 지시겠지만, 들을수록 도철의 마음엔 들지 않았다.

기껏 잘해 놨더니 다른 쪽에서 일을 망치고 새로 누군가가 개입해 공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그래도 일이 이렇게 틀어졌으니 순순히 도움을 받아야겠어.’

내키지 않으나 도철은 메시지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이후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도철의 그 생각은 곧바로 무너졌다.

갈림길을 만들어 각개격파하려 했으나 황호가 분신을 만드는 바람에 준비한 수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혼돈이 나를 속인 건가. 아니, 저자는 설마 황호……!’

도철은 화로가 있는 방에서 황호를 본 후에야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다.

호족의 수장이 몸소 나서서 분신을 부려 가며 도철의 수를 뒤흔들고 있었다.

다른 호족도 아니고 황호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으나 운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운사 때문이었군! 국회의원 하나를 지키겠다고 황호가 나설 리가 없지.’

황호가 여기에 온 이유는 운사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도철은 그의 행동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비록 숫자는 저쪽이 많았고, 상대는 강자인 황호였으나 도철은 호기를 부렸다.

직접 싸우겠다고 나선 건 황호 하나뿐이고, 이쪽에는 인질인 운사와 인질이 될 예정인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철이 이겨 황호를 쓰러뜨리거나 중상을 입히면 크나큰 공적을 세울 수 있고, 지더라도 인질로 협상을 하면 황호는 도철을 놔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열한 계산을 마치고 도철이 황호에게 어금니를 드러냈다.

하지만 도철의 계산 과정에는 오류가 수없이 많았기에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답을 알았나 보군.”

황호가 한쪽 눈을 잃은 인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볼품없는 모습이어야 할 그 인간은 당당히 서 있었다.

눈을 잃을 정도로 공격을 받았는데도 마치 두려움, 고통 따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도철은 긴 역사 속에서 저런 인간을 몇 번 보았다.

도철이 가장 혐오하는 강하고 선한 인간이었다.

“내 말이 틀립니까? 도철.”

외눈의 인간이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순간, 도철은 저 인간을 죽이고 싶어졌다.

성국언을 죽이라고 명령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저 인간을 지금 죽여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악의로 가득한 수를 전부 무너뜨릴 것 같았다.

‘남은 눈을 잃고도 태연할 수 있는지 보겠다!’

그러나 도철의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황호가 나서서 직접 그 인간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결계에 남은 송곳니 자국을 보자 도철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황호의 존재를 잊고 오로지 저 인간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도철이 정신을 차렸다.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화로를 두고 달아날 순 없다. 다른 사흉이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해!’

그러나 황호의 힘 앞에서는 버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도철은 곧바로 궁지에 몰렸다.

구름 깊숙이 몸을 감추었으나 황호의 마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게 되었다.

인간 앞에 뿔이 드러나자 굴욕과 분노로 몸이 떨렸으나 도철은 살기 위해 입을 놀렸다.

‘몇 놈이나 잠입했는지 이쪽에서 알고 있다고 티를 내면 교섭이 쉬워지겠지.’

도철은 자신이 가든에 잠입한 세 집단의 존재에 관해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완벽한 대책을 세운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 와중에도 도철은 교활함을 발휘했다.

‘사흉 중 하나가 가고 있다’라고는 했지만, ‘하나만 가고 있다’고 하지는 않은 게 그러했다.

‘저쪽에 황호의 분신을 배치했을지도 모른다. 사흉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방심하게 하여 틈을 노릴 수 있다.’

도철이 인질을 잡았다고 떠들었는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

황호는 의견을 묻는 것처럼 눈을 잃은 인간을 쳐다보며 기다렸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힘과 권한을 지닌 건 황호일 텐데, 어째서 인간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황호가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을 리도 없는데, 의문이 커져만 갔다.

파앗!

그때, 하나 남은 눈에서 이능파가 맴돌았다.

생사의 안광을 사용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이능파 같았다.

그때와 종류는 다르지만, 공간을 채운 공기가 잠시 무거워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힘이었다.

눈 하나에 담기에는 버거운 힘이었기에 인간의 눈가가 크게 떨렸다.

“…….”

그 힘을 쓰는 걸 본 황호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외눈에 머물던 이능파의 일부가 황호 쪽으로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능파를 받아들인 황호가 표정을 지우고 물었다.

“확인했다. 이 몸이 도착할 때까지 괜찮겠나?”

일련의 과정을 보면 마치 저 둘이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조의신이 천동하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을 사용하여 가든 전체를 한눈에 담아 맹효돈과 함근형을 찾아내고, 그 위치를 시야 공유 이능으로 황호에게 전했다.

그러나 성국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곤 짐작도 못 한 도철은 헛된 생각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황호의 물음에 외눈의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웃음은 가든에 끌려오기 전에 보였던 것과 비슷했다.

*    *    *

함근형이 플로어 마스터를 쓰러뜨린 후.

함근형과 맹효돈은 주수혁과의 합류보다는 체력 보전과 안전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함근형은 합류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보다 그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주수혁은 천리안의 소유자다. 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으니 방향을 알고 있지 않나. 이곳의 상황은 파악했을 거다.”

“이렇게 많이 멀어졌는데 그게 보여요? 주수혁이 이계에선 천리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는데…….”

“이론상 천리안의 사정 범위 안이라면 이계 내부는 전부 보인다. 단, 아무리 가까워도 이계와 현실의 경계 너머는 보이지 않겠지.”

맹효돈이 질문하자 함근형은 교사로서 성실하게 답했다.

현실에서 이계 안을 보는 것, 이계 안에서 현실을 보는 것은 아주 특수하고 귀한 이능으로만 가능하고 천리안으로는 어렵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덤으로 함근형은 백리안, 천리안의 사정 범위와 해당 스킬 소유자가 이계 공략에서 맡는 역할에 관해 덧붙였다.

졸지에 맹효돈은 과외 공부를 하게 되었으나 질문한 본인이 자초한 결과였기에 묵묵히 들었다.

열심히 들으려고 했지만, 곧 한계가 왔다.

1대1이라서 그런지 함근형은 맹효돈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칼같이 파악하고 다시 설명했다.

“맹효돈, 너도 곧 눈이 열리게 될 거다.”

“눈이 열려요?”

“좋은 플레이어는 어떤 식으로든 새 눈을 가지게 된다. 이능은 플레이어의 훈련 방향과 성장에 따라 개화되지 않나. 신체 능력이 좋아지거나, 스킬이나 광림을 통해 눈이 열리게 된다.”

맹효돈이 그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자 함근형이 예를 들었다.

함근형은 맹효돈이 알아듣기 쉽도록 주변 인물을 예시로 삼았다.

“예를 들자면, ‘신탄의 사수’ 안다인은 필요한 때에 눈의 성능을 스코프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주수혁에게는 스킬인 천리안이 있고, 나는 광림을 통해 명사수의 시선을 빌릴 수 있지.”

“아…….”

아는 이름들이 나오니 맹효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 훈련 등에서 저들이 싸우는 걸 보았기에 함근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했다.

저들은 모두 좋은 눈을 지니고 싸움에 임했다.

생각해 보니 탁거산도 그러했다.

탁거산은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수련 중 딴짓하는 방윤섭을 적발했고, 맹효돈의 엉성한 자세를 고쳐 주곤 했다.

‘도인한테는 보이지 않을 각도일 텐데도 매번 지적했어.’

맹효돈은 예시로 든 인물 외에도 다른 뛰어난 플레이어를 생각했다.

바로 조의신이었다.

‘그럼 조의신도 무슨 눈을 가지고 있겠지. 황지호 돌아이 새끼도 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거 같던데…….’

맹효돈의 생각대로 황호에게는 안광 스킬이 있었다.

맹효돈은 그 이후로도 몇몇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나도 눈이 열릴까?’

답이 없는 생각은 곧 끊겼다.

맹효돈의 머리에 한계가 왔다는 걸 안 함근형은 곧장 화제를 바꾸었다.

“가든의 공략은 다른 쪽에서 할 거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진족이 공격대에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하더군.”

함근형은 맹효돈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조의신의 계획대로라면 흑막이 어떻게 나오든 황호나 적호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가든으로 전이되므로 맞는 말이었다.

설명을 더 하려던 함근형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함근형이 줄곧 들고 있던 활에 빛이 감돌았다.

쉬이익!

맹효돈이 겨우 눈으로 따라갈 만한 빠른 속도로 함근형이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아무것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함근형이 노린 곳의 반대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그 공격대가 공략을 마치기 전에 너희를 잡아야겠다.”

목소리는 하나였다.

맹효돈이 새로이 나타난 적을 경계하고 있을 때, 함근형이 경고했다.

“맹효돈, 상대는 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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