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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60화 (86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60화 : 경계 (13)

105. 경계 (13)

“저렇게나 멀리 있는데……!”

도올이 황호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황호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으나 이는 이능파로 인한 효과일 뿐, 물리적인 거리는 상당했다.

도올은 황호의 오만함에 혀를 찼다.

몸을 감추고 습격하는 대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길을 택한 게 황호답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맹효돈의 생각은 도올과 달랐다.

‘저 둘의 주의를 돌리려고 일부러 저런 거 아닌가?’

맹효돈은 크리스마스이브 건으로 황지호의 정체에 관해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황호가 비록 20대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지금 나타난 게 같은 반 돌아이라고 곧바로 알아봤다.

맹효돈은 황호가 기습을 하는 대신 저렇게 화려하게 등장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황호는 조금이라도 빠르게 둘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존재감을 발산한 것이라고.

맹효돈은 그 의도를 알아챈 것에 이어 황호를 누가 보낸 건지도 눈치챘다.

‘부반장이 보냈구나!’

황호와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도올과 혼돈이 두 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시도할지 꿰뚫어 본 함근형에 의해 저지되었다.

파바박!

수많은 화살이 도올과 혼돈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함근형이 소환한 광궁이 터질 듯 빛을 뿜었다.

광궁에서 뻗어 나온 화살들이 쏘아지는 게 마치 빛의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혼돈이 멈추고, 도올의 머리카락이 꼼짝도 못 할 정도의 힘이었다.

도올은 빛의 화살을 쳐다보며 이능파를 끌어올렸다.

도올의 힘에 반응해 머리카락이 모든 공간을 덮을 기세로 불어났다.

“인간이 그런 힘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도올이 화살비 너머에서 소리쳤다.

그 말에 함근형 대신 다른 자가 답했다.

“오래 쓸 필요 없지. 이 몸이 갈 때까지만 쓰면 되니까.”

파아앗!

황금 빛이 시릴 정도로 눈을 찌르자 도올이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소형의 결계들이 칼날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도올은 몸을 피했으나 그 움직임에 따라가지 못한 머리카락이 결계에 의해 대거 잘렸다.

잘린 머리카락이 결계의 틈 사이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저 둘을 쉽게 인질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여태껏 처리하지 못한 주제에 어리석군.”

어느덧 함근형이 만든 빛의 비가 멎었으나 도올과 혼돈은 움직일 수 없었다.

황호가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혼돈은 압박감을 느끼는지 피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도올 또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주시당하니 위압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러나 도올은 수천 년 산 진족답게 바로 정신을 차리고 기습하기 위해 손 뒤로 머리카락을 조용히 모으며 도발했다.

“부하 대신 움직이다니. 그쪽에는 믿을 만한 부하가 없나?”

“그렇게 보이나? 그저 네 주인보다는 덜 게으를 뿐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네놈이 게으름을 논하다니.”

도올이 황호의 태만했던 시절을 들추며 분노를 부추겼으나 황호는 이를 상대하지 않았다.

도올은 황호가 도발에 흔들리는 순간을 기다렸다.

하나 아무리 기다려도 황호를 노릴 만한 빈틈은 보이지 않았다.

황호는 흔들리는 대신 도올의 평정심을 뒤흔드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눈코입이 없는 것은 혼돈, 긴 털을 가진 것은 도올이군.”

황호가 입에 담은 정답에 도올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전투를 할 때 정체가 밝혀지는 건 진족에게 있어서 치명적이다.

약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유명한 일화를 지녀 지명도가 높은 진족은 큰 힘을 지니지만, 그만큼 약점이 노출되어 노려질 리스크도 커진다.

그런 리스크를 무시하고 등장과 함께 정체를 밝히는 제천대성 같은 진족도 있었으나 그건 예외 중의 예외였다.

‘대체 어떻게 바로 알아봤단 말인가! 긴 털을 지닌 진족은 흔하고, 혼돈처럼 밋밋한 얼굴을 가진 진족도 적지 않다. 둘이 같이 있어서 알아보았나? 그래도 그건…….’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족은 적지 않다.

사흉은 그동안 제 주인의 뜻에 따라 이계 충돌 후 현세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를 특정 지을 단서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지금도 황호와 대화를 나눌 때 정체로 연결될 법한 말은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

외형만 보고 정체를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 황호가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 건 흑막의 부하를 추려 내려던 조의신의 집념과 도철이 흘린 단서가 합쳐진 결과였으나 도올과 혼돈은 이를 알지 못했다.

“어떻게 정체를 꿰뚫어 보았는지 궁금한가 보군. 지금 궁금해야 할 건 그게 아닐 텐데.”

황호의 말에 도올이 생각을 멈추었다.

무언가 받아치려 했으나 공연히 불필요한 정보를 입에 담을까 봐 쉽게 말을 고르지 못했다.

황호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왜 네놈들을 바로 죽이지 않고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나?”

황호는 시간을 끌고 있다.

황호의 존재감에 정신을 빼앗겨 어떤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으나, 저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올은 황호가 보였던 행동을 빠르게 되짚어 보았다.

‘처음 등장할 때와 창천명궁의 화살비가 멎은 직후를 제외하면 힘을 거의 쓰고 있지 않다. 힘을 쓸 수 없는 이유가 있나?’

황호가 분신을 다룬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반도에서 만능에 가까운 힘을 가진 황호지만, 한계는 존재한다.

지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밖이라면 모를까 가든 안에서 모든 분신들이 힘을 펑펑 쓰는 건 불가능했다.

도올은 겨우 결론을 내렸다.

‘설마 다른 곳에서도 교전하는 중이라 힘을 쓰지 않았던 건가? 지금 황호는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 등장할 때 힘을 과시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황호는 분신 간의 힘 조절을 하고 있었다.

도올은 자신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올과 혼돈이 힘을 합쳐서 초장부터 온 힘을 다해 황호와 교전했다면, 분신을 지우는 것 정도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파아앗!

도올의 머리카락을 일부 잘라 내고 사그라들었던 황금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

허공에서 결계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답을 알려 준 건 네놈들에게 승산이 없기 때문이지.”

플로어 마스터들을 상대하던 분신들이 역할을 마치고 사라졌다.

도철은 황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황호가 힘 조절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도올은 인질을 잡아야겠다, 저항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퇴각에 전념하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해 이 가든의 구조는 훤히 꿰고 있었다.

‘그분께서 황호를 상대하라고는 명하지 않았다. 퇴각해야 한다.’

도올은 단숨에 탈출로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머리카락을 놀려 퇴로를 확보하면 혼돈도 힘을 모아 공격을 날리고 탈출을 시도할 거다.

눈 하나 깜빡하는 짧은 시간 동안 탈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려던 순간.

“곧바로 도망치려 들다니. 나한테 퇴로부터 보여 준 이유가 있군.”

황호가 정확히 탈출로로 이어지는 공간 앞을 가로막았다.

황호는 다른 분신 곁에 있는 이를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조의신은 황호를 여기로 보내기 위해 천동하의 이능을 사용했다.

천동하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과 파생 스킬 시야 공유를 사용하면서 조의신은 퇴로로 추정되는 길부터 보여 줬다.

그 덕에 그 주변을 시작으로 정교한 결계를 미리 짤 수 있었다.

“지형을 알고, 적이 움직일 방향을 알면 덫을 짜는 건 쉬운 일이지.”

황호가 주변에 산개시켰던 작은 결계들이 단숨에 재조립되었다.

결계라기보다는 덫에 가까운 형태로 다시 구성된 황호의 힘이 도올과 혼돈을 가두었다.

혼돈의 머리카락들이 거세게 결계에 부딪쳤으나 여러 겹으로 된 결계를 전부 뚫는 건 불가능했다.

“크윽……!”

도올이 미친 듯이 머리카락을 움직여 댔으나 결계가 파괴되는 속도보다 수복되는 게 빨랐다.

황호는 한 손을 뻗어 결계를 제어하는 상태에서 고개를 돌렸다.

함근형은 언제든지 활을 쏠 수 있도록 대기 중이었고, 맹효돈도 경계를 늦추고 있지 않았다.

“저것들은 이제 붙잡았다. 다친 곳은 없나?”

황호가 맹효돈에게 물었다.

맹효돈은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황호가 같은 반 돌아이인 황지호라는 건 알아봤으나 지금 그는 20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방금 전엔 엄청난 힘을 보여 줬다.

저렇게 나이 든 모습을 할 때는 구분해서 상대해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런 짓을 했다간 맹효돈은 헷갈려서 말을 못 할 게 뻔했다.

맹효돈이 복잡한 생각을 길게 할 수 없었기에 그냥 물었다.

“어, 괜찮은데…… 반말해도 되냐?”

“음, 상관없다. 편하게 하도록.”

황호가 마치 10대 황지호처럼 답했다.

조의신의 상태가 나쁘지만 않았다면 가볍게 처웃으며 답했을지도 모를 만큼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정체를 짐작하고도 여전히 반 친구로 대하고자 하는 맹효돈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덕이다.

이 과정을 보고 많은 것을 알게 된 함근형은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은 것에 반해 맹효돈은 속 시원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평온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드드드드…….

도올에 비해 얌전하게 붙잡혀 있던 혼돈의 피부가 크게 떨린다 싶더니, 가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호의 표정이 흐려졌다.

본신이 있는 자리, 조의신과 전무영이 있는 곳에서도 이변이 발생했던 탓이다.

* * *

천동하의 이능을 사용해 가든 안을 살핀 후.

오른눈이 지끈거렸으나 그걸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을 보았다.

‘맹효돈이 무사히 파생 스킬을 터득했구나.’

맹효돈의 파생 스킬 각성이 가까워져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플마고에서 맹효돈이 파생 스킬을 얻은 건 고3으로, 수많은 실전 경험 결과 얻은 성과였다.

맹효돈에게는 그를 가르칠 만한 적당한 스승이 없었기에 실전을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다.

플마고에서 맹효돈이 파생 스킬을 각성하기 위해서는 다치는 것을 각오하고 싸워야 했다.

‘여기에선 좋은 스승이 생겼지만, 실전에서만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감각이 부족했지.’

맹효돈의 파생 스킬은 본인이 가진 힘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걸 할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멈추면 쓸 수 없다.

우선 맹효돈의 감이 따르는 대로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는 셈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파생 스킬을 각성할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맹효돈의 잠재 능력, 함근형 선생님의 힘을 믿었지만 위험했어.’

이번에 흑막이 진짜 성국언을 납치했다면 더 위험한 일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성국언이 납치되었을 경우엔 곧바로 천동하의 능력으로 전이의 흔적을 더듬어 추격대를 편성해 가든으로 진입할 계획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를 포함한 추격대가 가든을 정리할 계획이었으나, 만일의 경우도 대비했다.

최악의 경우엔 전무영으로 위장한 김신록이 이능파 링크를 발동해 가든을 정리한다는 게 그러했다.

‘하지만 그 수가 완성되는 건 황지호가 분신으로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는 느려. 함근형 선생님이나 맹효돈이 다쳤을 수도 있어.’

사흉 중 셋이나 동원된 걸 보니 속이 얼어붙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황지호 쪽을 보았다.

지금 상태에서 계속 천동하의 능력을 발동하는 건 다소 어려웠기에 저쪽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황지호가 나를 보며 고갯짓을 한 번 했다.

해결되었다는 신호다.

그때였다.

“그분께서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군!”

도철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화로를 보았다.

화로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화르르륵!

화로에 새겨진 진이 터질 듯이 타오르고, 운사의 힘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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