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72화 (872/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72)

107. 선발 (2)

은광고 앞 번화가로 이어지는 도로.

에어 리무진 안, 주수혁이 각종 보도 자료와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김철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주수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세심하게 운전했다.

지금 주수혁은 친구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고,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김철이 오랜만에 말을 걸었다.

“도착했습니다. 데이트 잘 하고 오십시오.”

“네? 데이트가 아니라 친구와 약속이 있는 건데…….”

홀로그램을 끄던 주수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수혁은 붉어진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정말로 데이트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는 게 뻔히 보였다.

주수혁이 드물게 보이는 고등학생다운 표정을 보며 김철이 씨익 웃었다.

은인 조의신에 관해 알게 된 후, 김철은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김철이 정차 후 차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아, 농담이었구나…… 하하하, 다녀올게요!”

머쓱해하던 주수혁은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주수혁이 오늘 만나기로 한 상대는 바로 안다인이었다.

맹효돈 사건을 계기로 주수혁은 주변 상황에 더 관심을 갖고,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았다.

그중에는 다소 괴롭고 충격적인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안다인에 관한 건이었다.

‘지호는 다인이를 가족 같은 존재라고 했어. 저택에 머물 정도로 가깝다고도 했지. 그땐 많이 놀랐는데…….’

안다인은 호족과 연을 맺은 듯했다.

게다가 안다인은 평소 아주 귀엽게 생긴 강아지를 두고 조의신과 친하게 지냈는데, 최근에는 더욱 가까워진 듯했다.

주수혁은 두 사람이 학교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후, 확신했다.

조의신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안다인은 김유리를 대할 때 짓던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의신을 상대로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였다.

그 생각을 하면 주수혁은 우주 저편으로 내던져지는 감각을 느꼈으나 지금은 애써 그걸 무시했다.

‘……그리고 의신이도 지호네 저택에 머물렀다고 했어. 앞으로 의신이를 돕기 위해선 다인이와 협력하는 게 좋을 거야.’

비밀이 많은 조의신을 돕기 위해선 여러 수를 동원해야 했다.

이번 사건에서 개입하기 위해 함근형의 일정을 확인해 추적했던 것처럼, 주수혁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수혁은 바로 안다인과 만나기로 했다.

대련이 아닌 목적으로, 그것도 학교 밖에서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요일에 안다인의 귀한 시간을 빌리는 건 미안하지만, 학교에는 눈이 많으니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려면 따로 만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데이트는 아니야.’

주수혁은 본인과 안다인을 제외한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생각을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둘이 약속한 건 카페 앞이었는데, 유리창 너머로 안다인이 보였다.

안다인은 구석에 앉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주수혁의 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다인이다……! 내가 늦은 건 아니지?’

주수혁은 바로 시계를 확인해 봤다.

약속한 시간은 아직 30분이 넘게 남아 있었다.

안다인은 주수혁과 만나기 전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인 듯했다.

주수혁은 늦은 게 아니란 걸 알고 안심한 후에 홀린 듯이 안다인을 바라봤다.

‘……내가 선물한 책갈피야.’

압화 책갈피를 들고 있는 안다인의 손에 붉은 동백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다인과 동백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주수혁은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안다인의 얼굴에 근심이 서려 있는 게 보였다.

책의 내용 때문은 아닌 것 같아 주수혁도 덩달아 마음에 그늘이 지는 것 같았다.

“응……?”

시선을 느낀 듯 안다인이 고개를 들어 주수혁을 바라보았다.

사실 현재 안다인을 바라보는 중인 행인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주수혁의 시선은 민감하게 알아채고 반응했다.

유리창을 두고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수혁이 뒤늦게 손을 들어 인사할 때까지 어색한 시선 교환이 이어졌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다.”

“아니야, 그냥 저번에 수혁이가 추천해 준 책을 읽고 싶어서…….”

둘의 대화 주제는 순식간에 책으로 바뀌었다.

이 광경을 문새론이 보았다면 기껏 데이트 비슷한 상황이 되었는데 또 독서 모임을 할 거냐면서 탄식할 지경이었다.

주수혁과 안다인을 응원하는 이들의 속은 전혀 모른 채로, 그 둘은 책을 통해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대화하던 두 사람은 무언가를 감지하고 아주 잠깐 대화를 멈췄다.

“계속 서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 이동하자.”

“응, 어디로 갈까? 학교 쪽으로 가는 게 좋겠어.”

주수혁과 안다인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이동했다.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통행하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일요일이라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정문 가까이 가자 몹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통행인의 수가 0이 된 순간, 주수혁과 안다인이 동시에 벼락같이 움직였다.

쉬익!

주수혁은 소형 쌍검을 실체화해 허공을 향해 던졌다.

헛손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주수혁은 목표를 맞추는 데에 성공했다.

각각의 소형 쌍검이 무언가를 꿰뚫고 부수자마자 주수혁은 파생 스킬 쌍검일신(雙劍一身)을 발동했다.

그러자 물리 법칙과 인과를 무시하고 쌍검이 주수혁의 손에 돌아왔다.

“이능을 사용해서 만든 정찰용 아이템이네.”

날의 길이가 손가락만 한 소형 쌍검에 카메라처럼 생긴 아이템이 꿰뚫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세간의 관심을 받은 덕에 주수혁은 이런 정찰용 아이템을 자주 봐 왔다.

자폭 기능이 발동하기 전에 주수혁은 소형 쌍검을 휘둘러 아이템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휘익!

주수혁이 소형 쌍검을 던져 회수하는 사이, 안다인도 사냥을 마쳤다.

안다인은 주수혁처럼 무기 아이템을 꺼내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파생 스킬 ‘전신총화(全身銃化)’를 사용해 정찰용 아이템을 저격했다.

안다인의 손가락 끝에서 나온 총탄은 정확히 정찰 아이템들을 찾아내 격추시켰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본 주수혁이 감탄했다.

‘총성이 들리지 않았어. 화력이 높진 않았지만, 전신총화를 사용하면서 소리를 완전히 죽일 수 있다니……!’

주변에 정찰용 아이템이 없다고 판단한 후, 주수혁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정찰용 아이템이지만, 간단한 공격 기능까지 달려 있어. 자폭하면 좀 위험하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교내에서 만날 걸 그랬다.”

주수혁은 둘 중 누구를 노리고 이 아이템을 사용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둘 다 주목받는 플레이어이므로 노려질 가능성은 어느 쪽이든 충분했다.

안다인은 자신이 격추시킨 아이템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몇 번 본 형태야. 부모님과 있을 때, 이 아이템으로 도촬당할 뻔한 적이 있어. 나 때문일 거야.”

안다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주수혁은 놀라는 것에 이어 분노했다.

‘그러고 보니 새론이가 우리 둘의 악성 개인팬들을 조심하라고 했어.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문새론은 둘의 악성 개인팬, 속칭 악개에 관한 경고를 한 적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범인 외에도 자신에게 화가 났다.

맹효돈, 조의신에 이어 안다인까지 주수혁이 모르는 곳에서 큰일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주수혁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안다인이 말했다.

“수혁아, 어제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무지했던 주수혁과 달리 안다인은 주수혁에 관해 알고 있는 듯했다.

주수혁은 더욱 화가 나고 미안해졌다.

주수혁이 그런 속마음을 꾹 누르고 되물었다.

“지호한테서 들었어?”

“응, 지호는 나를 정말 가까운 가족처럼 대해 주고 있어. 너와 의신이에 관한 일을 나중에 알게 되면 더 마음을 쓸까 봐 바로 말해 준 것 같아.”

그런데 어째서 호족이 안다인을 가족처럼 대하는 걸까?

주수혁은 당연한 의문을 품었으나 차마 묻지는 못했다.

그사이 안다인은 은광고를 향해 걸었다.

걷는 방향은 평소 둘이 자주 사용하던 대련장 쪽이었다.

안다인은 안전하다고 판단한 후, 말문이 막힌 채로 따라오던 주수혁에게 말했다.

“내 출신에 관해 말할 게 있어.”

*    *    *

주말이 지난 후, 월요일.

스승의 날 이벤트로 들떠 있던 은광고는 주말 사이에 있던 일로 떠들썩했다.

성국언 암살 미수 사건은 은광고 코앞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또 센터 건은 플레이어들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를 다닌 적이 있던 은광고 학생도 있다고 했지.’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를 다녀 이능파를 뽑힐 위기에 처했지만, 운 좋게 이를 피한 학생들도 있었다.

몇 번 센터를 나갔지만, 몸이 안 좋아진 것 같아서 온갖 핑계를 대고 그만두거나 깽판을 쳐서 운영진 쪽에서 자신을 쫓아내도록 유도한 게 그러했다.

후자의 경우는 보통 0반에 들어가는 학생들이었다.

은광고에 들어오기 전부터 0반처럼 살던 이들은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 이야기가 뜨자 바로 무용담을 풀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쫓겨났는지 이야기를 풀었는데, 저 짓을 은광고에서 하면 자치 기구 소속 학생들이 오열할 법한 짓거리였다.

‘진짜 집요하게 굴었나 보네. 은광고에 들어갈 만한 인재들을 쉽게 놓치고 싶진 않았겠지. 들어오기 전부터 0반은 그랬구나…….’

한편, 이 난리가 난 와중에도 주말 사건과 전혀 관계없이 주목받는 0반 집단이 있었다.

바로 졸업한 0반, 우기환 일당이었다.

강한 담임 임연화와 우기환 일당은 스승의 날을 맞아 격돌했다.

그자들이 천익산에서 펼친 대결은 생중계되었고, 그 무지막지함은 큰 화제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우족들에게 써먹었던 함정을 업그레이드해서 돌아왔을 줄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우기환 일당은 졌다.

우기환 일당 기준 부실한 근육의 우족들에 비해 임연화는 지나치게 강했던 탓이다.

귀여운 제자들과의 대결을 위해 깜짝 특훈을 하고 등장한 임연화는 평소보다 더욱 강했기에 우기환은 꼼짝도 못 하고 당했다.

이능파로 강화된 강철 그물을 맨손으로 찢고 깊게 파인 함정에 빠져도 가볍게 점프해서 빠져나오는 임연화를 상대할 원시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은광고를 들뜨게 하는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조의신, 너 어디 아프냐? 좀 이상해 보인다.”

“괜찮은데.”

유상훈은 매우 의심스러워했지만, ‘계속 아파 보이면 유상희 씨 부르면 되겠지.’라는 말과 함께 그 화제는 더 건드리지 않았다.

유상훈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놈도 혹시 한중일 교류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저기에 나가는 걸 두고 놀리듯이 몇 번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야, 좀 있으면 플젯 정식 오픈하는데 너도 할래?”

갓겜 PlayerZ의 오픈 베타 테스트 기간이 끝나 정식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나 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