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83화 (88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83)

108. 취재 (1)

운사가 깨어나고 며칠이 지나 금요일이 되었다.

늘 그랬듯이 은광고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에 출전할 선발 멤버 예선전이었다.

기껏해야 몇십 명이 지원하리라고 예상했는데, 수백 명이 몰리는 바람에 학생회가 급히 일정을 재조정해야 했다.

‘스포츠 관련 동아리, 소모임에서 서운해할 정도로 지원이 많았지.’

군 사관학교와 스포츠 교류전을 할 때에도 대표 선수 선발전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사람이 몰리지 않았다.

이능 특목고에서 스포츠에 열중하는 학생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중일 교류전은 사관학교 교류전과 달리 일반적인 스포츠가 아닌, 이능을 겨루는 장이 될 예정이므로 은광고 학생들의 관심이 컸다.

수가 많다 보니 학생회 측에서는 플레이어SAT-K로부터 이명을 받을 정도로 실적이 있는 학생들은 예선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나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신문부로서 취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치른 예선전 봤어? 나 다른 구역에서 직관하느라 못 봤는데, 체육관 박살 날 뻔했다면서.”

“아, 그거…… 화력 조절을 못 했는데 체육관 결계를 켜는 걸 깜빡해서 그랬대. 공청훤 선생님이 안 보고 계셨으면 진짜 박살 났을걸.”

“그거 관전하던 프로 플레이어 팀 스카우터들이 막았다고 들었는데? 공청훤 선생님이 기사에서 이름 빼 달라고 했나 보네.”

방과 후, 신문부실.

신문부에서는 온통 한중일 교류전 예선전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프로 플레이어 팀 스카우터들이 소문을 듣고 와 예선전을 관전하고, 선전한 은광고 학생들에게 디바이스 코드를 주기도 했다.

스카우터들은 비록 예선에서 떨어져도 팀에 필요한 스킬, 광림을 지녔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에게도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소문이 퍼지자 졸업 준비를 위해 참전하지 않았던 3학년 학생들도 뒤늦게 예선전을 치르겠다고 지원하여 규모가 더 커졌다.

‘늦게 신청한 학생들은 그냥 안 받아 줘도 됐을 텐데, 학생회가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

학생회장 염준열을 필두로 학생회 전원이 나서서 예선전 일정을 조율했다.

그 결과, 교류전에 별생각이 없었으나 프로 플레이어 팀에 자신을 어필하려는 학생들, 그냥 축제에 참가하는 감각으로 지원한 학생들 등이 대거 예선전에 합류했다.

그 덕에 예선전을 취재하려던 신문부에서도 취재 일정을 다시 짜야 했다.

재조정 결과 1학년 후배들도 예선전 취재에 합류하게 되었다.

아직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은 2, 3학년들이 예선전에서 보인 화려한 이능에 연일 감탄하고, 다음을 기대했다.

“학교 홍보 대사 중에서 예선전에 나오는 건 독고미로 선배밖에 없지?”

“응, ‘역광의 나래’, ‘신탄의 사수’ 그리고 ‘무명의 초신성’은 각각 이명이 있어서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해.”

“의신이 선배가 싸우는 거 보고 싶었는데!”

교류전 본선이 어떻다느니, 선발된 인원끼리 강화 합숙도 취재를 할 수 있을지 등등에 관해 이야기하던 후배들이 갑자기 내 쪽을 보며 말했다.

거의 이름밖에 없는 거나 다름없지만, 일단은 은광고 홍보 대사고 교류전에 나가는 동아리 선배에게 관심을 두는 듯했다.

청소년 교류전 건이 생각보다 커지고, 주변에서 거는 기대가 많아지니 적당히 발을 빼기가 더 어려워졌다.

곤란해하고 있을 때, 은호가 온화한 목소리로 1학년 후배들을 달래듯 말했다.

“본선이 시작되면 의신이 형이 싸우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기대돼. 그래도 무리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어.”

“맞아……!”

은호와 함께 1학년 후배들이 사심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무 착한 후배들이 저렇게 마음을 써 주니 매우 고마웠다.

나는 참 후배 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끼어들었다.

“조의신, 너를 걱정하는 후배들이 이렇게 많다.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겠지?”

황지호가 ‘건강 관리’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 말을 들으니 향록의 영약이 절로 떠올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요새 황지호는 건강 어쩌고 하면서 내가 영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감시하는 중이었다.

안다인도 나처럼 영약에 시달려야 했지만, 성실한 타이틀 히어로인은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의연하게 영약을 마셔 걱정을 덜어 주고 있다고 한다.

호족 부부는 안다인이 약을 잘 먹는다면서 나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약도 참 잘 먹어요. 쓴 약이라 아이가 먹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어찌나 잘 참는지.

―혼자 힘들어할까 봐 향록에게 부탁해 같은 맛의 약을 같이 먹어 주려 했는데, 괜찮다면서 우리 앞에서 약을 먹더군요.

안다인의 마음 씀씀이와 영약의 쓴맛을 참는 굳은 의지에 나도 부부 못지않게 감동했다.

나도 안다인을 본받아 영약을 이겨 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영약을 마셔야 할 때마다 미각의 고통에 괴로워졌다.

오늘도 황지호가 영약을 마시는지 감시할 거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한편, 1학년 후배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문새론이 은호에게 말했다.

“0반 부반장 후배도 예선전에 관심이 많나 보네, 지금이라도 취재 주제 바꿔 줄 수도 있음!”

문새론의 말대로 현재 은호, 1학년 0반 부반장 천은하는 청소년 교류전 예선전을 취재하고 있지 않다.

은호는 현재 다른 특집 기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제안 감사드려요. 하지만 제가 지금 담당하는 주제도 흥미로워요.”

“예선전보다도 더?”

“예선전에 관심이 많지만, 0반으로서 선배님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많아요. 우기환 선배님의 대결이 얼마 전에 벌어져서 제 취재 주제에 관심을 두는 분들도 꽤 계셔요.”

문새론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한 은호가 나와 황지호 쪽을 보며 말했다.

은호의 태도는 겉으로만 보기엔 그저 선배를 존경하고 취재에 열정이 있는 학생처럼 보였다.

“게다가 모처럼 0반 선배님들이 도와주시기로 했으니까요.”

신문부 소속 0반은 현재 세 명이다.

2학년 0반의 나, 황지호.

1학년 0반의 은호.

은호가 가리키는 0반 선배님들이란 나와 황지호였다.

은호로부터 선배 소리를 들은 황지호는 웃겨 죽으려고 했지만, 간신히 처웃지 않고 참았다.

이미 2학년 0반의 대표 돌아이로 이름난 황지호가 갑자기 처웃어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텐데, 이제 와서 왜 참는 건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호가 판을 순식간에 완성해서 나와 황지호까지 묶어 뒀지.’

나와 호랑이들이 갑자기 졸업한 0반 선배들 취재를 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운사가 깨어난 날, 호랑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은호, 나는 운사가 풍백과 우사처럼 배신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나락에 가겠노라고 할 때, 운사의 얼빠진 얼굴을 보셨습니까? 놀려 먹는 재미가 있는 건 옛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황지호, 적호는 우리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던 은호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두 호랑이는 운사를 믿는 듯했다.

은호는 이를 두고 어떤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백호군에게 물었다.

―백호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백호군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나는 내 친우들을 믿는다.

황지호, 적호에 이어 백호군까지 운사를 믿겠다고 했다.

은호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저 셋이 이렇게 말했으니 호족 내에서 운사를 의심하고 배척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은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의신이 형은요?

―……어?

설마 나한테 물어볼 줄은 몰랐다.

의외의 질문에 답이 늦어지고 있자니 호랑이들이 불만스러워했다.

―조의신, 설마 운사의 일이 너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표정을 보니 황호가 말한 대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만. 예상치도 못했다는 얼굴입니다.

―…….

―백호도 어이없어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입을 그만 다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은호는 다른 호랑이들과 달리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웃으면서 이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할 말이 많으나 다른 호랑이들이 대신 말해 주고 있으니 가만히 있겠다는 뜻 같았다.

고민 끝에 신중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운사가 남겼다는 구조 요청을 확인하면 확실해질 거야. 운사의 결백을 증명해 줄 테니, 그걸 보고 판단하고 싶어.

내 말을 들은 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신이 형과 제 생각이 같네요.

―그 구조 요청을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는 뜻인가?

―네,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해요.

은호는 운사가 잠들어 있는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로는 확인을 해야 하네 마네 하고 있지만, 그 눈에는 옛 친우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은호가 저렇게 말하니 다른 호랑이도 더 말을 얹지 못했다.

―신호의 잔해가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운사 님의 신호를 직접 본 0반 졸업생에게 말을 들어 보고 싶네요.

―꽤 까다로운 작업이 되겠군. 0반 졸업생들은 돈이나 힘으로 쉽게 꾀어낼 수 있지 않다. 성국언이나 우기환을 생각해 봐라.

황지호가 성국언과 우기환을 예시로 드니 난이도가 얼마나 높은지 느껴졌다.

호족의 수장도 저렇게 말할 정도로 0반 졸업생을 상대하는 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게다가 이번에 상대해야 하는 선배놈들은 졸업하고도 구교사 물리 제령을 한답시고 학교에 잠입해 건물을 폭파시키려던 미친 자들이다.

호족이 압박한다고 해서 입을 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방법은 있어.

내 입장과 위치를 활용하면 0반 졸업생 선배놈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을 고려해 제안했다.

―나는 0반이자 신문부잖아. 취재를 목적으로 접근하면 돼.

―좋은 생각이네요.

은호가 동의했으니 조만간 취재 계획을 짜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은호가 한마디 덧붙였다.

―저와 황호 님도 0반이자 신문부이니 함께 움직일 수 있겠어요.

딱히 은호와 황지호까지 번거롭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게다가 최근 신문부에는 취재할 사항이 많아서 한 주제에 인원을 많이 배정하기는 어려울 거다.

저 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 전, 황지호가 딱 잘라 말했다.

―지금 그 눈을 하고 혼자 행동하려 했나? 모처럼 좋은 제안을 했나 싶었더니.

―의신이 형이 잠시 잘못 생각한 거겠죠. 설마 저와 황호 님을 빼고 혼자 가시겠어요?

―은호, 조의신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다. 설령 지금 왼눈이 아예 보이지 않아도 똑같은 소리를 하겠지.

―황호 님께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의신이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지호와 은호가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 은호는 곧바로 움직였다.

은호가 졸업한 0반 선배놈들에 관해 취재를 하고 싶다고 제안하자 신문부의 부장이 허락했고, 자연스럽게 0반 직속 선배인 나와 황지호를 끌어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일정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0반 졸업생 선배놈들의 취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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