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84화 (88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84)

108. 취재 (2)

은광고는 동창회, 동문회 등이 활성화되어 있어 졸업 후에도 학생 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은광고의 졸업생조차 의문스럽게 여기는 모임이 하나 있다.

바로 0반 졸업생 교우회였다.

0반 출신은 졸업하면 제각각의 길을 찾아 떠날 것 같았기에 교류를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인상이 컸다.

그러나 미친 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고, 재학 중 정신 나간 짓을 같이 하다 보니 정이 들었는지 졸업 후에도 가깝게 지냈다.

다 함께 은광고 구교사 제령을 하러 갈 정도로 말이다.

“0반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0반 졸업생 교우회 간사가 말하자 각 졸업 기수별 대표들이 술렁였다.

현역 0반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협조성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동안 교우회 소속원들은 이를 매우 섭섭하게 여겨 할 말이 많았다.

“누구? 찬솔이들? 아니면 우기환이?”

“걔들일 리가 없죠. 금찬왕찬 그것들은 담임 따라다니느라 바쁘고 우기환 그놈은 우리랑 대화하는 사이에 근손실 난다고 연락 안 하잖아요.”

“아니, 우기환은 졸업하고도 그러고 살아?”

“우기환하고 같은 기수 놈들은 거의 다 그래. 정해수 그놈은 그나마 미로 팬질 한다고 덜하다만.”

“미로 예선전 영상 올라온 거 보셨어요? 학교 홍보 선전물도 또 찍었던데…….”

“당연히 봤지.”

0반 후배를 두고 서운한 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대화 주제가 독고미로로 바뀌었다.

0반 출신 중 최초로 아이돌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지 다들 관심이 많았고, 이들은 모일 때마다 한 번씩은 독고미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처음 말을 꺼낸 간사를 포함해 전원 독고미로에 관한 정보 교환에 열중하고, PlayerZ의 티저 영상에 나온 노래를 다 같이 들은 후에야 겨우 화제가 바뀌었다.

주제는 현역 0반에 관해서였다.

“신입생 0반은 어떰? 어차피 교우회 들어오는 건 나중이겠지만, 좀 신경 쓰이네.”

“1학년 0반 반장인 그 은서호? 걔는 싹싹해. 그런데 뭐 말을 걸려고 하면 부반장이 나타나서 정신을 쏙 빼 놔 가지고…….”

“그 1학년 0반 부반장이면 천은하 말하는 거죠? 천동하 동생답게 멀쩡하고 착해 보이던데요.”

“그런 놈일수록 뭐가 있어. 왜 0반에 있겠냐고. 우기환 1학년 시절을 생각해 봐라.”

우기환을 사례로 들자 전원 납득했다.

우기환은 입학 초기에는 왜 0반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성적도 매우 우수했고,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성실하여 교사들이 0반 애들이 다 우기환 같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몇 달 지나지 않아 우기환의 기행을 목격하고 교사 전원 그 말을 취소했다.

“그럼 간사한테 연락한 0반 후배는 누군데?”

마침내 본론으로 돌아왔다.

간사가 대답하기 전에 교우회에 출석한 이들이 답을 댔다.

“한 명밖에 없네. 조의신이겠지.”

“아, 걔는 착해. 디바이스 코드 주고받은 사람한텐 꼬박꼬박 인사하고 그랬을걸. 나도 인사받았다.”

“아까 그런 놈일수록 뭐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조의신 입장에선 갑자기 디바이스 코드를 떠넘겨서 곤란했지만, 일단은 선배라 인사 정도는 했을 뿐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대응을 했지만, 우기환과 금찬왕찬을 겪어 본 졸업생들 입장에선 조의신이 아주 예의 바르고 착한 후배로 보였다.

“연락한 건 의신이가 맞습니다.”

“무슨 일로 연락한 거래? 여기서 말한 거 보니까 우리랑 관련 있는 건가 본데.”

“설마 우리한테 도전장을 내민 건 아니겠지?”

“지금 간사 맡는 후배님께서 그랬었지. 웬일로 연락하나 싶었는데 한번 붙어 보자고.”

“아, 맞아. 쟤가 져서 간사를 떠맡았었지.”

미친 자들의 모임 연락 담당은 귀찮고 궂은일을 떠맡아야 했기에 아무도 간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제비뽑기로 간사를 정했는데, 마침 후배 하나가 졸업하자마자 덤비기에 간사직을 걸고 싸워 줬다.

현재 간사를 맡고 있는 0반 졸업생은 제법 잘 싸우긴 했지만, 더 미쳐 있는 선배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간사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과 맞서 싸우기 위해선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에게 함께 싸울 힘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요.”

“그래그래, 앞으로도 간사 잘 하고.”

“쟤가 정상은 아닌데 일은 잘해.”

“왜 지는 정상인 것처럼 말함?”

다시 제멋대로 화제가 바뀌기 전, 교우회 간사가 끼어들었다.

“조의신도 저와 비슷한 목적으로 연락했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목적이라는 말에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간사가 미친 짓을 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0반 졸업생들도 그 이유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졸업한 0반 선배를 취재할 계획이라 합니다. 우리를 인터뷰하고 싶다더군요.”

“그냥 단순한 졸업생 취재야? 진짜로?”

“그 후배가 신문부이긴 해요. 거기에 0반 몇 명인가 있던데.”

“요즘 은광고에서 예선전 하느라 신문부 인원 바쁠 텐데 이걸 이 시점에 취재한다고? 졸업 시즌도 아닌데 굳이?”

“우기환이 강한 담임이랑 싸우는 바람에 이런 기획이 잡힌 것 같긴 함.”

조의신의 취재 요청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들은 조의신이 순수하게 취재를 위해 오는 게 아니라고 멋대로 짐작했다.

간사도 조의신이 그저 취재하러 오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간사가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이 내린 결론을 말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조의신도 구교사의 귀신과 맞서 싸우려는 겁니다!”

재학 당시, 0반 전통이라는 담력 시험을 하기 위해 구교사로 갔다가 간사는 귀신을 마주쳤다.

그 이후로 간사는 구교사 제령을 위해 힘썼으나 이를 이루지 못했다.

이 의지를 0반 재학생들이 이어 가길 바라고 있었으나 후배가 우기환과 금찬왕찬이라 포기하고 직접 제령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조의신의 연락으로 새로운 길이 보였다.

“진짜 그런 듯? 드디어 구교사의 귀신과 작별할 때가 됐구나……!”

“이제 보내 줘야 할 때가 됐지!”

졸업생들도 간사의 의견에 하나같이 동의했다.

근거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 소리였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으나 관련이 없는 말도 아니었다.

“그럼 후배를 맞이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간사의 말에 0반 졸업생들이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 성국언이 있었다면 말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윗기수는 불참하여 회의 결과만 받기로 한 상태였다.

그렇게 간사를 주축으로 0반 교우회는 후배를 모실 준비를 시작했다.

*    *    *

기숙사에서 맞이한 주말.

얼마 전에 큰일도 있었으니 느긋이 훈련을 하고, 계획을 재점검해 보고 싶었으나 할 일이 많아 일찍 일어나야 했다.

아침에 디바이스를 확인해 보니 밤늦게 유상훈이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유상훈] 야

[유상훈] 다음 주 수요일 플젯 오픈임.

[유상훈] (링크)

[유상훈] 디바이스 코드 인증하고 사전 등록 했냐? 오픈 전에 해야 아이템 들어와.

요즘 들어 유상훈의 메시지가 부쩍 길어졌다.

메시지의 내용은 PlayerZ에 관한 정보였다.

선발대인 유상훈은 우리에게 뭐든 가르쳐 주고 싶은데, 심하게 훈수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걸 보니 플마고에서 유입된 극소수의 유저를 돕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내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 영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읽기 편하게 움짤이 포함된 공략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이 망겜이라 내가 뭔 짓을 해도 결국 다 접고 떠났다.

그 생각을 하니 유상훈의 노력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장남욱] 와, 상훈아. 나 네가 메시지 이렇게 길게 보내는 거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PlayerZ에 거는 기대가 큰가 보구나.

[유상훈] ㅇ

[장남욱] 그런데 게임 해 본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상훈이 너는 클로즈 베타 때부터 계속 해 온 헤비 유저라 우리와 차이가 크게 있을 거래. 조작에 익숙하지 않고, 게임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게다가 넌 랭커였잖아. 나는 완전 초보자인데 괜찮아? 네가 보내 준 영상을 보면서 예습을 하고 있는데, 아직 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같이 게임 하면 네가 답답해할 수도 있을까 봐 걱정이야.

[유상훈] 요약 좀.

[장남욱] 어…….

[장남욱] 나 게임 잘 못 할 것 같은데 괜찮아?

[유상훈] ㅇ

유상훈은 아주 빠르게 긍정했다.

저 심정도 이해가 갔다.

친구가 잘하든 못하든 그냥 같이 게임 하고 싶은 거다.

나도 누가 나랑 플마고를 해 준다면 매우 기뻤을 텐데, 차마 그 망겜을 추천할 수 없어서 저렇게 적극적으로 권하지 못했다.

그래도 누군가가 플마고에 관심을 보이면 그때 초보자 유저를 위한 조언을 해 주었다.

하지만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도 결국 망겜에 질려서 다시는 플마고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유상훈] 예약 다운로드 설정해 놔. 오픈 시간 되자마자 시작하게. 그때 다운받으려고 하면 사람들 몰려서 늦어.

[장남욱] 응, 알았어.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할게,

[유상훈] ㅇ

유상훈은 보기 드물게 메시지를 길게 보내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메시지에 답변하는 속도도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장남욱도 PlayerZ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버 랭커 출신인 유상훈은 언젠가 최상위 레이드에 도전할 텐데, 우리가 그걸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벽을 느끼기 전까지는 같이 갈 생각이다.

‘사전 등록은 해 뒀고, 예약 다운로드 설정을 해야지. 유상훈처럼 VR 모드로 하는 건 좀 그러니까 일반 버전 다운로드를…….’

장남욱과 유상훈의 대화에 가끔 끼어들면서 PlayerZ 정보를 보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는 한 명이 보냈지만, 두 곳으로 나뉘어 도착했다.

[염준열] 의신아.

[염준열] 스승님.

염준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도 메시지를 둘로 나눠서 날씨 예보를 해 주나 싶었는데, 조금은 달랐다.

메시지에는 오늘의 날씨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긴 했다.

그러나 자주 쓰던 홍룡 스탬프도 보이지 않았고, 염준열의 태도가 다소 진지하게 느껴졌다.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염준열은 각각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염준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용궁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염준열] 스승님이 하신 일에 관해 들었어요. 용궁에서 뵐게요.

오늘은 졸업한 0반 선배놈들을 인터뷰할 예정이지만, 그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바로 용궁이었다.

요 며칠간 영약을 먹고 있고 은호가 준 렌즈를 착용하긴 했지만, 치료는 용궁에서 무녀들의 도움을 받아 주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치료를 위해 일찍 용궁에 방문하기로 했었다.

거기에 염준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용족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염준열이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오히려 계속 모르고 있는 쪽이 이상해.’

염준열이 내 사라진 왼눈에 관해서 알게 된 것 같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