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86화 (88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86)

108. 취재 (4)

용궁, 조의신을 배웅한 용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황룡은 조의신을 붙잡진 않았으나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모처럼 용궁의 새 주인이 생겼는데 은인이 욕심이 이리도 없고, 이렇게 바쁘다니.”

황룡의 기분에 영향을 받은 운룡들은 구름 위에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혹시 궁의 주인인 조의신이 머물고 가지 않을까 적룡궁, 백룡궁, 흑룡궁을 정비했던 운룡들이 특히 서운해했다.

“좀 더 쉬게 하고 싶었는데, 할 일이 많아 보여 잡지 못했구나.”

“황호 씨를 봐. 그냥 포기하고 같이 다니잖아. 황룡도 의신이를 따라다닐래?”

“좋은 방법이구나. 용궁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면 나도 은인을 돕기 위해 동행했을 거다.”

용제건은 반쯤 장난으로 던진 말인데 황룡이 진지하게 응수했다.

황호가 하는 짓에 공감하다니, 역시 황룡은 황호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황룡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지 은인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다른 용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청룡은 별로 도움이 안 됐을걸.”

“그렇겠지. 하지만 준열이가 여기에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이야기의 화제는 ‘만약 다른 용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조의신을 용궁에 머물게 할 수 있었을까?’로 바뀌었다.

청룡은 내심 은인이 머물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겠지만, 티는 내지 않을 거다.

그러나 염준열이 적극적으로 조의신을 만류하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청룡과 청호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호족 중에 신인 씨와 청호 씨가 있다면 청룡이랑 하는 짓이 비슷했겠지. 청호 씨는 일단 지켜만 보고 있다가 신인 씨의 의향을 따를 거야.”

“하하, 적호는 어떻지? 적룡이라면 그냥 솔직하게 가지 말라고 할 거야.”

“적호 씨도 비슷할 거야. 마음만 먹으면 험한 말을 해서라도 잡겠지. 하지만 설득하면 결국엔 의신이 의견을 존중해 줄 것 같긴 해.”

백룡과 백호의 이야기도 나왔다.

용제건과 황룡은 그 둘이 서운함을 감추고 조의신을 배웅해 줄 거라고 예측했다.

백호에 관해선 용제건이 첨언했다.

“백호 씨는 의신이 편 잘 들어 주더라. 아마 여차하면 의신이의 도주도 도와줄걸?”

“백룡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은인의 도주를 도울 것 같긴 하다.”

용족들은 색을 상징하는 용족과 호족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즐겁게 대화했다.

이런 대화는 전부 용족과 호족이 가까워진 덕에 할 수 있었다.

용족이 다른 진족에게는 벽을 세우고, 용궁이 고립되어 있을 때에는 꿈도 못 꾸던 대화였다.

그렇기에 염준열은 두 용들이 호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느꼈다.

황룡과 용제건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염준열은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흑룡 님은 어떤가요?”

흑룡에 관해 묻자 용제건과 황룡이 우뚝 굳었다.

황룡이 안대 너머로 염준열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준열아, 흑룡 누나라고 불러야지. 그렇게 부르면 흑룡이 서운한 나머지 무리를 해서 강림하려 할지도 모른단다.”

“아……!”

나이에 관계없이 염준열에게 형, 누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용족이 한두 명이 아니었는데, 흑룡도 그런 용들 중 하나였다.

흑룡은 승천했기에 염준열과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으나 그녀가 누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건 잘 알았다.

흑룡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용제건과 황룡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 준열아. 청룡이 삼촌이라고 안 부를 때마다 서운해하는 걸 봐. 흑룡은 그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걸?”

“적룡, 백룡, 흑룡은 그날 비늘을 내어주어 용왕신의 강림을 도와 현세에 개입하는 바람에 영 상태가 좋지 않단다. 그런 중에 준열이한테 흑룡 님 소리를 들으면 아주 섭섭할 거야.”

고작 누나 소리를 안 했다고 저럴까 싶긴 했지만, 청룡이 삼촌 소리에 집착하는 걸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염준열은 빠르게 반성하여 말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어요. 앞으로는 흑룡 누나라고 부를게요.”

용족들이 그 말에 매우 만족스럽게 여겼다.

“그래, 흑룡이 기뻐할 거다. 흑룡에 관해 물었지? 흑룡은 아마…… 일단 의신이를 순순히 보내려고 하는 백룡에게 싸움을 걸 것 같구나.”

“그러겠지. 백룡에게 시비를 걸고 냉기를 온 사방에 뿌려 댈 거야. 생각 없이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밖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리지 않게 얼려 버리겠지.”

황룡과 용제건은 자리에 없는 흑룡을 두고 예상한 바를 늘어놓았다.

흑룡이라면 냉기로 용궁을 난장판으로 만든 후, 사죄의 의미로 피리를 연주할 것이다.

은인은 그 연주도 듣고 가야 할 테니 결국 길게 붙잡아 둘 것이다.

즐거웠던 대화는 어느덧 승천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추억담으로 바뀌었다.

황룡은 즐거운 기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대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래, 준열이는 오늘 용궁에서 이능파 링크를 연습한다고 했지?”

“네, 황룡 님…… 아니, 황룡 형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하, 나는 편한 대로 불러도 된다. 준열이가 불러 주는 거라면 어떤 호칭이든 좋단다.”

황룡이 저렇게 말하긴 했지만, 형이라고 부를 때 표정이 한결 밝았다.

그 점을 고려해 염준열은 호칭을 정했다.

“황룡 형이 김신록 선생님과 이능파 링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후에 어떤 조언을 해 주셨다는 것도요. 저도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 조언이 준열이한테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도와주겠다. 일단 이능파 링크를 같이 해 보는 게 좋겠구나.”

황룡이 긍정적으로 답하자 염준열이 감사 인사를 했다.

황룡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능파 링크 준비를 할 생각이었으나 염준열은 할 말이 남은 듯했다.

그걸 기민하게 파악한 황룡이 물었다.

“부탁할 게 더 있나 보구나. 뭐든지 말해 보렴.”

사실 염준열은 오늘 이능파 링크 연습만을 하려 했다.

김신록과 실전에서 이능파 링크를 사용해 본 황룡에게 조언을 얻더라도 연습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의신의 부상 소식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염준열은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염준열은 스승이자 후배인 조의신과 싸우기 위해 좀 더 서둘러서 강해지고자 결심했다.

“제 스승님, 적벽괴도…… 의신이가 저에게는 ‘홍룡화’라는 잠재 능력이 있다고 했어요.”

“홍룡화……?”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황룡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 옆에선 용제건은 급격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조의신이 알려 준 염준열의 잠재 능력이라는 홍룡화라니, 듣기만 해도 용제건을 설레게 했다.

염준열은 결연하게 말했다.

“용족의 기운이 가장 강한 용궁에서 저 힘을 다루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    *    *

성국언으로부터 이상한 문자가 도착했으나 무시할 수 없었다.

성국언은 내가 바쁘네 어쩌네 하긴 했지만, 정말 바쁜 건 성국언 쪽이었다.

성국언은 여전히 안대를 착용하고 다니는 중이었는데,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특히 안대 건을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쇼라고 떠드는 기자들이 문제를 여럿 일으켰다.

‘성국언의 눈을 두고 집중 취재한답시고 사고를 많이 쳤지.’

대표적인 짓 중 하나는 어느 기자가 지인을 이용해 황명은광병원에서 기록 빼돌리려 했던 것이다.

황명은광병원은 플레이어 전용 특별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해 온전히 호족의 손으로 관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포함한 정규직, 비정규직 및 협력 업체 직원이 약 8천 명.

의사와 간호사를 합쳐서 약 4천 명.

이중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호족의 입김이 닿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성국언의 기록을 허술하게 다룰 리가 없는데, 겁도 없지. 하필 그때는 적호와 김신록이 돌아가면서 성국언을 돕던 때라 알아차리는 것과 대처가 아주 빨랐어.’

그 과정에서 성국언의 정적이 돕기도 하며 사건이 매우 커졌다.

그 결과, 의료 기록을 빼돌리려고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이들 수십 명이 직장을 잃고 황명 재단 법무팀과 성국언의 고소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사건은 더 있었다.

지지자인 척 가장하고 접근한 플레이어가 성국언의 안대를 벗겨 내리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의료 기록을 빼돌리려 했다가 걸린 걸 만회하려고 한 수작일 거야. 대중 앞에서 멀쩡한 성국언의 눈을 보여 줘서 여론을 완전히 뒤집을 생각이었겠지.’

성국언의 안대를 벗기려고 시도했던 자는 상당한 수준의 프로 플레이어로 기습에 몹시 능했다.

무려 그자는 전무영의 가드를 뚫고 성국언의 안대에 손이 닿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대를 벗겨 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안대에 손이 닿는 것과 동시에 비도가 날아와 목말뼈를 부수고 힘줄을 갈라 버리는 바람에 쓰러졌던 탓이다.

이 비도의 주인은 제자의 위험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스승, 김신록이었다.

‘과잉 방어라고 성국언을 몰아가려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 플레이어가 중무장했고 폭발물 아이템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넘어갔지. 소속을 캐 보니 국제 수배자이기도 했고.’

어차피 황지호의 결계가 걸린 안대이니 쉽게 벗겨질 리도 없고, 성국언이 그냥 순순히 당하고 있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런 큰 사건이 있는데도 성국언이 메시지를 보낼 정도라니, 정말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성국언 외에도 메시지를 보낸 이들이 있었다.

[왕찬솔] 님, 뭐 함?

[금찬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니셈.

금찬왕찬은 제갈재걸과 관련된 일이 없으면 평소에 먼저 메시지를 안 하는데, 뜬금없이 시비를 걸었다.

금찬솔과 왕찬솔은 시비에 이어서 플레이어 협회 제휴 상점 링크를 올렸다.

링크에 나온 상품은 협회가 이계 공략, 에너미 토벌 실적 등을 토대로 부여하는 플레이어 포인트로 결제가 가능한 탐지용 소모 아이템이었다.

저 링크를 하나 올리고선 자신들에게 감사하라며 금찬왕찬이 생색을 부렸다.

하나도 안 고맙다고 하면 진상짓을 할 게 분명했으므로 일단은 고맙다고 했다.

[우기환] 평소에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위기 따윈 별게 아니다.

저 원시인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는 말을 정중하게 바꾸어 메시지를 보냈지만, 우기환이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얼마 안 있어 근육 트레이닝 중이라는 자동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상해. 금찬왕찬과 우기환이 이상한 건 늘 있던 일이지만, 성국언도 묘한 메시지를 보냈잖아.’

의문의 메시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전원 0반 선배였다.

갑자기 0반 선배들이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니, 우연일까?

“우연일 리가 없죠. 선배들이 의신이 형을 위해 충고해 주시는 거예요.”

용궁을 나선 후, 은호와 합류했다.

메시지에 관해 말을 꺼내자 은호는 여기에 뭔가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0반 졸업생 교우회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복잡한 기분이 들 때, 은호가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말로 하는 것보다 힘을 사용하는 게 빠를 때가 있으니까요.”

은호는 이 함정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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