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92화 (892/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92)

109. 책임 (2)

“정답인가 보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겉으로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용제건은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답을 늦게 말한 게 패착이었다.

평소에 염준열의 리플레이에 관해 생각해 뒀거나 용제건이 나타날 거라 예상했다면 나름 대비했을 텐데, 유희계 용의 기습에 당하고 말았다.

그냥 갑자기 저렇게 튀어나온 건 재미만을 위해서가 아닌 듯했다.

“우리 준열이가 주말 내내 고생했는데도 그 홍룡화란 건 전혀 못 하더라고. 홍룡을 부르지 않아도 홍룡스러운 느낌이 났지만, 전투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아. 차라리 이능파 링크를 연습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

“염준열 선배님이 주말 내내 연습하셨다고요?”

“응, 황룡이 걱정할 만큼 열심히 연습했어.”

내 제자 염준열은 안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노력하고 있었나 보다.

염준열이 노력가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전해 들으니 감동과 미안한 마음이 솟았다.

염준열 같은 과분한 선배를 모처럼 제자로 맞이했는데, 스승인 나는 요새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가르침을 주기는커녕 다치고 와서 제자를 걱정시키며 용족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참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많이 미안한가 봐. 그냥 미안해하지만 말고 제자의 성장을 위해 그걸 하는 게 어때?”

“……그거라니요?”

“리플레이 말이야.”

일부러 모르는 척하려 하니 용제건이 그냥 대놓고 말했다.

용제건은 리플레이를 직접 경험했으면서 그렇게 아끼는 후예에게 그걸 시키고 싶을까?

성국언과 전무영이 리플레이 했을 때도 흥미를 보였다는 건 잘 알지만, 일단 그 둘은 성인이고 얼마 전까지 용제건과 척을 지고 살지 않았는가.

‘두 사람에게도 가능하면 리플레이를 쓰고 싶지 않았는데…….’

수를 둘 때 필요 불가결한 상황이 아닌 한, 누군가의 생존이 걸려 있지 않는 한 리플레이는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염준열에게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염준열은 또래에 비해 아주 강하고, 주변에는 그를 아끼는 강자가 넘쳐 나지만, 늘 안전하지는 않다.

김신록과 염준열의 대련을 봤을 때 그걸 통감했다.

염준열이 김신록 수준의 암살자와 1대1로 마주한다면 필패할 게 뻔했고, 심지어 누군가가 구하러 올 때까지의 시간도 벌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용족이 가르치지 않는 이능 삼키기와 기척을 죽이는 법을 가르쳤지. 홍룡화도 언젠가 익혔으면 했어.’

게다가 홍룡화는 폭주와 함께 얻은 힘이다.

언젠가 염준열이 폭주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홍룡화를 제어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상태라면 피해가 커질 것이다.

리플레이로 경험해 보고 전무영처럼 연습한다면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리플레이를 하는 건 꺼려졌다.

“……염준열 선배님은 용제건 선생님보다 더 긴 악몽을 보게 될 거예요.”

“응, 준열이가 나보다 더 오래 산다는 거 알아. 내가 본 꿈에서 준열이가 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염준열 선배님께 리플레이를 권하신다고요?”

“그래, 내가 준열이를 좋아하는 건 그저 후예여서가 아니야. 난 준열이가 사랑받은 것보다 더욱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점을 아주 좋아해.”

그야 그렇긴 하다.

염준열의 좋은 점을 논하자면 끝이 없고, 그중 하나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과 곧은 심성이 들어갈 거다.

염준열은 리플레이에서 보고 겪은 일을 두고 아주 괴로워하겠지만, 그걸 이겨 내고 성장할 것이다.

“잘 생각해 봐. 난 찬성이야.”

용제건이 반대하지 않을 거란 건 보면 안다.

하지만 팔불출 집단인 용족이나 붉은 사자가 가만히 있을까?

용족이 평소 하는 꼴을 보면 호족이고 뭐고 내 은광고 기숙사 방을 불태우러 총출동할 게 뻔했다.

이 생각을 입에 담지 않았는데 용제건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용족이나 염방열의 팀도 네가 보여 주는 악몽이라면 받아들일걸? 그리고 준열이는 아주 기뻐하겠지. 이런 악몽을 보여 줄 만큼 스승이 자신을 인정해 줬다고 말이야.”

전자는 용제건이 과장해서 한 소리라고 쳐도 착하고 성실한 제자 염준열이라면 그렇게 말해 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스승이자 후배인 내가 다친 걸 알고 몹시 걱정하던 염준열을 어찌 악몽에 밀어 넣겠는가.

파아앗!

생각을 더 하기 전에 용제건이 결계를 지웠다.

난 이제부터 잔뜩 고민해야 할 텐데, 용제건은 할 말을 다 하고 속이 시원한지 실실 웃고 있었다.

조용히 혼자 생각할 시간도 빼앗을 건지 용제건이 동의 없이 같이 등교하자고 했다.

“자, 그럼 같이 등교할까? 의신이랑 등교한다고 준열이, 0반 애들 그리고 신록이한테 자랑해야지.”

대체 그게 왜 자랑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용제건이 염준열과 등하교하는 걸 평소에 자랑질하고 다니는 건 알고 있다만 그건 염준열이라 자랑이 되는 거다.

또, 나랑 가까운 염준열이나 0반 애들은 몰라도 왜 김신록한테까지 자랑을 하는 건가.

“아, 황룡한테도 자랑해야겠다.”

용제건은 디바이스를 가동해 진짜로 메시지를 보낸 것 같았다.

메시지에는 나와 용제건이 등굣길에 서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곧 ‘의신아, 무슨 일 있어요? 어쩌다가 용쌤한테…….’, ‘조의신, 용제건과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저택에 들러서 아침이나 먹고 가라.’, ‘부반장, 약점 잡혔냐?’, ‘의신아, 다음에는 셋이서 등교하지 않을래?’, ‘황호에게 교직 자리가 남는지 물어보마.’ 등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들 용제건의 장난질에 말을 맞출 필요가 없는데, 아침부터 한가한가 보다.

그리고 학교에 오자 정말 한가한 놈과 마주쳤다.

“모레를 대비해 컨디션을 조정하는 중이다.”

유상훈은 PlayerZ의 오픈에 맞추어 일정과 생체 리듬을 조정하는 중이라 한다.

PlayerZ는 플레이어가 주역인 콘셉트인 만큼 광림이 초기화되는 시각, 한국 표준시, 그리니치 표준시 GMT +09:00 기준으로 0시에 오픈할 예정이다.

유상훈은 취침과 기상, 식사 시간을 오픈 시각에 맞춰 조정했으며 식량과 물, 간식 등도 구비했다고 한다.

게임 오픈, 대규모 업데이트 등에 맞춰서 저렇게 대비하는 건 헤비 유저에게 있어서 당연한 거긴 했다.

특히 신규 레이드의 퍼스트 클리어, 속칭 퍼클을 노린다면 저 정도는 해야 했다.

플마고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었으니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또, 지금 유상훈은 게임 초보들과 함께 시작하니 저렇게 해도 퍼클은 못 할 텐데 참 열정이 넘쳤다.

“야, 도시후도 같이 할 거다.”

“도시후?”

컨디션 조정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갔는데, 도시후의 이름이 나온 건 뜻밖이었다.

유상훈은 도시후에 관해 어떤 사감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어제 직업 추천해 주고 스킬트리도 봐 줬어. 넷이면 파티 짜기도 편해.”

장남욱과 연관된 사건 때문에 유상훈은 도시후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게임 앞에서 달라졌다.

도시후는 유상훈의 반응이 남다르니 게임에 더욱 관심을 보인 듯하다.

하긴 서먹서먹한 사이더라도 같이 게임을 하다 보면 달라질 것 같긴 하다.

내 주변엔 플마고를 하는 사람이 딱히 없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도시후는 너희 둘이 직업 고르는 거 보고 맞춰 주기로 했어. 넌 하고 싶은 거 골라.”

직업 선택권은 우리를 우선시하는 걸 보니 도시후를 좀 마음에 들어 하긴 했어도 나나 장남욱 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유상훈은 무조건 방패를 들 생각이므로 탱커 자리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쉬는 시간마다 유상훈이 파티 구성과 직업 밸런스에 관해 일장연설을 하는 걸 듣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오늘은 방과 후에 운사와 은호를 보러 갈까 했는데, 어렵겠네.’

해독하지 못한 운사의 메시지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게 몇 개 있어서 확인하고 싶었으나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 한중일 플레이어 교류전 선발을 뽑는 본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지난주에 치열한 예선이 치러져 인원을 추렸는데, 그 멤버들이 전원 본선에 나가는 건 아니었다.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람도 있었지.’

선발은 기말고사 기간 전에 끝나지만, 이후 여름방학에는 합숙 훈련에도 참가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교류전과 일정이 맞지 않는 학생, 그저 스카우터에게 본인의 능력을 선보이는 게 목적이었던 학생들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런 이들을 빼도 여전히 본선에 출전한 자들이 많아 본선도 치열할 것 같다는 게 신문부의 예상이었다.

‘구교사 관련 기사 작성은 끝났으니 본선 취재를 도와줘야겠지. 나도 일단은 본선에 나가기도 하고…….’

오늘 신문부 활동 시간에는 구교사 자료를 살피고, 기사 작성을 마무리했다.

그사이에 다른 신문부원들은 본선 취재에 나섰는데, 수가 많아 모든 장소에 인원을 보내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간이 남았으니 본선이 치러지는 체육관과 운동장 중, 신문부가 파견되지 않는 곳을 골라 가려 할 때였다.

“조의신, 가자.”

옆에서 구교사 자료 정리를 하던 황지호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설마 다짜고짜 저택으로 가자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저택에 가자는 게 아니다. 물론 네가 온다면 환영하겠지만 말이다.”

“의신이 형이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주변의 소음을 차단했거든요. 그래서 못 들었나 봐요, 죄송해요.”

어쩐지 유독 기사 작성할 때 집중이 잘된다고 생각했더니 은호가 나를 배려해 주었나 보다.

별것 아닌 일에 사과하는 착한 후배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자니 황지호가 독촉했다.

“조의신, 이 대결을 놓치면 후회할 테니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뭔데?”

황지호가 저렇게 말한다고?

얼마나 대단한 대결이기에 저러는가.

“오늘 주수혁과 염준열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다.”

“빨리 가자.”

아주 대단한 대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두말하지 않고 서둘러서 신문부실을 나섰다.

타이틀 히어로와 내 제자이자 선배의 대결이라니, 놓칠 수 없었다.

*    *    *

역광의 나래 주수혁.

소홍룡 염준열.

이명이 있는 둘은 예선을 면제받아 본선에 자동 진출하였다.

본선은 랜덤하게 조를 짜서 리그전 방식으로 치러졌는데, 그러다 보니 이미 선발로 뽑히는 게 확정된 이들끼리도 맞붙는 경우가 발생했다.

오늘 시작된 리그전에서 전승한 주수혁과 염준열이 그러했다.

‘준열이 형이랑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 다들 기대하고 있으니까 싸우는 게 좋겠지? 대련 연습도 되고.’

주수혁은 리그전에서 광림조차 사용하지 않고 승리했다.

이는 염준열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얕보거나 힘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우리는 지금 선발전을 치르고 있지만, 한 팀이야. 최종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상대해야 해. 패를 전부 보이는 건 현명하지 않아.’

은광고의 선발전이 화제가 되자 교류전을 치를 예정인 상대 국가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은광고인만 있는 게 아니라 기자와 스카우터, 적의 밀정도 있었다.

염준열도 그걸 잘 알고 있었는지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관객 쪽에 시선을 보냈다.

염준열의 시선이 조금 오래 닿는 곳에는 낯선 얼굴들이 보였다.

‘준열이 형도 상대를 의식하고 있어. 이번 대련은 광림 없이 끝내는 게 좋겠다.’

그러던 중, 염준열의 시선이 우뚝 멎었다.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온 듯한 조의신이었다.

주수혁도 이어서 조의신을 발견했다.

순간 주수혁은 들고 있던 두빛나래 아이템 카드에 힘을 줬고, 염준열의 눈에는 붉은 기운이 스쳤다.

‘의신이가 보고 있다면 계획을 바꿔야겠네.’

주수혁은 진심을 다해 싸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적의 눈? 밀정?

그런 것보다는 조의신에게 인정을 받는 게 우선이었다.

마침 염준열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대련 시작 직전, 둘은 약속하듯이 말을 나눴다.

“수혁아, 최선을 다해 싸워 줘.”

“저도 부탁드릴게요.”

친선 경기를 치르는 가벼운 분위기였던 운동장이 어느덧 진검 승부를 앞둔 긴장감이 넘쳤다.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와 이능파의 흐름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심판을 맡기로 했던 0반 판독기로 유명한 교사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외쳤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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