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93화 (89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93)

109. 책임 (3)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주수혁과 염준열이 곧바로 손에 들고 있는 무기 아이템에 이능파를 실었다.

주수혁은 애검 두빛나래를, 염준열은 화염술을 사용하기 위한 서포터를 실체화했다.

카드의 실체화, 무기 착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동작은 눈으로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기에 언뜻 보기엔 저절로 아이템을 착용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전에 봤던 것보다 빨라. 둘 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구나!’

둘의 성장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현재 이 자리에는 둘의 대결을 보기 위해 운동장 관객석의 자리가 모자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상태다.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저기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은광고생이지만, 저 둘의 전투 능력은 학생 수준에서 벗어났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것 같다.

그저 놀라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좌절하는 이도 있었다.

“으으…….”

일찌감치 예선에서 탈락한 마진승이 염준열을 보며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이명이 없는 마진승은 자칭 라이벌 염준열과 달리 예선전을 치러야 했다.

마진승은 광림까지 동원해 가며 어떻게든 본선에 진출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마진승의 실력을 고려하면 아슬아슬하게 예선을 통과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으나 대전 운이 지나치게 나빴다.

‘하필 예선 같은 조에 맹효돈하고 차석원이 있었지. 지금 마진승이 이기긴 어려운 상대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취재차 방문한 신문부원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잘 싸웠다고 한다.

맹효돈은 운사가 잡혀 있던 가든에서 큰 싸움을 치른 이후로 한층 더 성장한 상태였다.

그 큰 싸움에서 맹효돈은 파생 스킬인 ‘싸움꾼의 스승’과 ‘싸움꾼의 눈’을 습득했고 예선전에서 이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맹효돈은 파생 스킬 없이도 충분히 예선을 돌파할 실력을 지녔으나 이를 몸에 익힐 겸 써 버린 듯했다.

‘맹효돈은 많은 사람과 싸울수록 강해지는 타입이야. 탁거산도 이를 알고 있으니 수련 시간을 줄이고 교류전에 나가는 걸 허락해 준 거겠지.’

게다가 아직 1학년에 불과하지만, 은호가 없었다면 수석이었을 차석원 또한 강했다.

차석원은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는 괴짜였으나 전투 능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마진승은 1학년에게도 대패하여 큰 충격에 빠졌다.

‘운이 나쁘긴 했지만, 마진승이 본선에 나갔어도 선발되긴 어려웠을 거야.’

운 좋게 예선에서 수월한 상대를 만나 본선에 올라왔다 해도 금방 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저기에 있는 주수혁과 염준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진승도 그 사실을 지금의 대결을 보며 절절히 느꼈을 거다.

학교 대표로 선발되는 학생들은 저 둘과 나란히 싸울 만한 수준이어야 했다.

지금 마진승이 저들과 팀을 짜면 발목을 잡을 것이다.

‘마진승의 진정한 힘은 누구와 싸워서 이기는 것에 달려 있지 않아. 그래서 지금 광림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건데…….’

마진승은 그걸 죽기 직전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후에 ‘초원의 귀공자’라는 이명을 받게 된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침에 용제건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마진승에게 리플레이를 사용한다면?

“의신이 형?”

은호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리플레이를 생각 저편이 밀어 두고 다시 앞을 보았다.

화르륵!

염준열이 곳곳에 깔아 둔 잠복 불씨가 화염술의 파생 스킬인 원격 점화에 반응해 일제히 불꽃으로 화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불꽃에 갇힌 주수혁은 날갯짓을 하듯 쌍검을 휘둘렀다.

주수혁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여 놀라는 이들도 있었으나 불꽃은 아무것도 태우지 못했다.

검날이 스칠 때마다 염준열의 화염은 지워졌다.

김신록이 염준열의 화염술을 비도로 지웠던 것처럼, 주수혁이 불꽃을 베어 버린 것이다.

“이 정도로 수혁이를 잡긴 어렵겠네.”

“준열이 형이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셨잖아요.”

불꽃이 지워지고 연기만 남은 가운데, 둘이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웃고 있지만 저 둘은 여태까지 주고받은 공격을 떠올리며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저 둘은 이제 스킬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앞으로 팀을 구성할 걸 고려하면 몇 번 더 스킬을 사용하고 이대로 무승부로 끝내는 게 좋겠지. 하지만 어쩐지…….’

그때, 두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보았다.

이쪽에 진족이 둘이나 있어서 알아보고 쳐다본 걸까?

아니, 은호의 정체를 염준열이나 주수혁이 꿰뚫어 볼 것 같지는 않은데.

응원하는 의미에서 일단 작게 손을 흔들었다.

여길 봤을지 잘 모르겠다.

둘은 다시 시선을 서로에게 돌렸다.

“아직 최선을 다하시진 않았죠?”

“그럼, 이제 몸풀기가 끝났지. 수혁이는?”

“저도 그래요.”

멀리 있어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을 보니 무슨 말을 나누는지 보였다.

모두가 놀랄 만한 위용을 보이면서 싸우는 중에도 둘의 사이가 좋고 여유가 있어 보여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둘의 다음 수를 기대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말했다.

“흠, 결계의 출력을 올리는 게 좋겠군.”

은광고에는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 체육관이나 운동장 주변에는 결계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 결계는 강도 조절이 가능하다.

강도를 항상 최대로 해 두면 안전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전력, 이능파, 아이템 소모가 심하고 결계가 조금 불투명해져 관전하기에 불편하다.

‘본선인 만큼 그럭저럭 결계 강도를 높여 놨을 텐데. 저 둘도 그 강도에 관해 잘 알 거고.’

굳이 올릴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하는데, 심판과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걸 본 두 호랑이가 말을 주고받았다.

“눈치가 빠르군. 이 몸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어.”

“수험생의 인터뷰를 담당할 만하네요.”

심판을 맡은 학생회 고문, 별칭 0반 판독기 교사가 자치 기구 소속 스태프에게 지시했다.

“결계 출력을 최대로 올리세요. 빨리!”

자치 기구 소속 스태프들은 이유를 묻는 대신 급히 운동장 내부와 관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결계의 출력을 올렸다.

출력이 올라간 바람에 결계가 조금 불투명해져 관객석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때였다.

콰아아아!

큰 소리와 함께 결계가 진동했다.

결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강한 힘이 퍼져 나왔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왼눈이 잘못된 바람에 내가 헛것을 보는 걸까?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내부를 주시했다.

결계 내부에서 염준열이 부른 홍룡과 주수혁이 무결한 날갯짓으로 소환한 물의 칼날이 격돌하고 있었다.

“홍룡이다! 실물은 처음 봐!”

“저건 역광의 나래의 그…….”

“아니, 둘은 선발 확정된 거 아냐? 왜 저래.”

“아, 처음부터 디바이스로 찍을걸!”

관객들의 동요가 상당했다.

목소리를 낮추고 의견을 주고받는 스카우터들과 디바이스로 영상을 기록하는 외부인들이 눈에 띄었지만, 열광하는 관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저 둘은 정말 진심으로 싸우고 있었다.

“준열이 형, 광림을 꺼내면 불리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물론이야.”

염준열이 부리는 홍룡은 화염의 용이다.

주수혁은 모든 속성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화염과 상극인 물을 검에 깃들게 할 수 있다.

그냥 보기엔 주수혁이 압도적인 우위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물처럼 상극인 힘은 진족과 후예 사이에 존재하는 법칙처럼 불합리하고 절대적이지 않아.’

비록 상극이라 해도 싸워서 이길 여지는 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어린아이가 홍염의 제왕 염방열을 향해 물총을 쏜다고 해서 그가 지겠는가?

상극이면 다소 불리해지긴 하지만, 힘과 기술을 잘 다루면 싸울 만하다.

염준열은 그걸 알기에 주수혁의 광림이 무엇인지 인지하면서도 굳이 홍룡을 꺼낸 거다.

“불리해질 거라는 거 알아.”

“아는데 홍룡을 부르셨어요?”

염준열이 홍룡을 타고 높이 급상승하였다.

고개를 크게 들어 올려 봐야 할 만큼 염준열이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늘 저 멀리에서 염준열이 말했다.

“응, 땅에서 싸워야 하는 수혁이가 불리해지겠지!”

화르르륵!

홍룡이 주수혁을 향해 불을 뿜었다.

주수혁은 여태까지 염준열의 화염술을 지웠던 것처럼 쌍검으로 이를 없애려 했다.

광림 무결한 날갯짓으로 두른 물의 기운까지 있으니 이는 수월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불꽃을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

홍룡의 불꽃이 검날을 타고 올라오고 불기둥이 되어 주수혁을 삼키려 했다.

주수혁이 급히 물러나 화를 면했지만, 염준열의 맹공이 이어졌다.

주수혁은 전혀 반격하지 못한 채로 멀리서 날아오는 불꽃을 일방적으로 맞아야 했다.

지울 수 있는 불꽃과 없는 불꽃이 뒤섞여 주수혁이 대항하기 어려웠다.

점점 운동장 지면이 불에 잠식되었다.

‘홍룡의 최대 출력 불꽃은 김신록도 지우지 못했어. 그걸 기억하고 주수혁에게도 쓰는 거겠지.’

오래 산 후예인 김신록조차 지우지 못한 불꽃인데, 물의 기운이 있다고 해서 주수혁이 어떻게 하긴 어려웠다.

염준열은 자신이 무기가 무엇이며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염준열의 강점은 원거리전이다.

홍룡을 타면 기동력이 올라가고 공중전이 가능해지고, 원격 화염술을 쓸 수도 있으니 거리를 두고 싸우는 게 유리하다.

‘김신록도 염준열과 싸울 때에 가장 먼저 거리를 좁히려 했지.’

게다가 주수혁은 근거리 무기인 검을 들고 싸우지 않는가.

이대로 가면 주수혁은 당하기만 할 것이다.

거리를 좁혀 염준열 본인을 공격할 수 있다면 홍룡의 최대 출력 불꽃이 뿜어지는 빈도를 줄여 공략이 용이할 거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수혁아, 기권할래?”

염준열이 주수혁이 서 있는 지상까지 닿도록 큰 목소리로 물었다.

후배를 걱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도발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염준열은 물론이고 관객 전원이 주수혁을 바라봤다.

불세출의 천재 주수혁이 과연 항복할 것인지, 의미 없는 소모전을 이어 갈지 궁금한 듯했다.

주수혁은 염준열에게 대답하듯 쌍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두빛나래에 감돌던 물의 기운이 사라졌다.

“여기에서 광림을 거둔다고요?”

“벌써 힘이 다한 거야? 하긴 엄청 싸우긴 했는데…….”

“주수혁은 저 정도로 안 지칠걸.”

“뭐야, 그럼 기권한다고?”

다들 주수혁이 포기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니, 아직 주수혁에게 수가 남아 있어.’

내 생각이 전해진 것처럼 주수혁의 광림이 다시 발동했다.

무결한 날갯짓의 힘이 다시 쌍검에 깃들었다.

그리고 순간, 주수혁의 두빛나래가 불꽃에 휩싸였다.

염준열의 홍룡이 아닌, 주수혁의 날개에서 비롯된 화염이었다.

어째서 주수혁이 그나마 유리한 물이 아니라 불을 불러낸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자연계 이능에 관해 잘 아는 이들은 주수혁의 의도를 알아채고 경악했다.

“갑니다, 준열이 형!”

그 말과 함께 주수혁은 불꽃의 힘이 서린 쌍검을 휘두르며 화염 속으로 돌진했다.

주수혁은 더 이상 염준열의 불꽃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불꽃을 지배하고자 했다.

주수혁은 지금 염준열을 상대로 ‘이능 삼키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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