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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포스트모템 (8)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
한반도를 들썩이게 한 스승의 날 사건도 한 달가량 지나자 협회 직원들의 숨통이 트였다.
야근 시간이 조금씩 줄어 어느덧 정상 퇴근이 가능할 정도가 된 덕이었다.
하지만 홍규빈의 야근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 오늘 자로 업데이트된 피해자 현황 자료입니다. 전에 말씀하셨던 구제 방안 논의도 정리해 두었으니 검토 부탁드립니다.”
“피해자 현황 자료 정리는 정 사원한테 맡겼습니다만.”
“윤 대리님이 대신 작성하셨습니다. 대리님은 정 사원님 찾으러 외출하셨어요.”
홍규빈은 두통을 느꼈으나 내색하지 않고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보고서를 제출한 후 돌아서 걷는 직원의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 보였다.
정시 퇴근과 정 사원이 혼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굳이 대면 보고를 한 건 정 사원의 태업을 알리기 위함일 거다.
두통으로 인해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 홀로그램을 열어 보고서를 읽던 홍규빈이 탄식을 삼켰다.
‘이렇게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허망하게 힘을 잃었다니…….’
플레이어 협회에서는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를 다닌 후, 힘을 잃은 것으로 판명된 피해자의 현황 조사를 실시했다.
우려한 대로 힘을 상실한 이들은 대부분 센터 출신이었다.
완전히 힘을 잃은 것뿐만 아니라 발현 당시에 비해 힘이 크게 약해진 경우는 집계조차 어려웠다.
자신이 자연스럽게 힘을 잃은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이능을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좀 아쉽긴 한데, 지금 하는 일이 좋아서요. 플레이어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긴 해요.]
[목숨 내놓고 싸우는 것보단 이능 없어지는 게 낫지.]
[↑스타 플레이어가 매년 얼마씩 버는지 앎?ㅋㅋㅋㅋㅋ 긁지 않은 복권 내다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데?]
[↑스타 플레이어는 아무나 되냐? 프로 팀이나 협회에 있는 사무직들 다 이능이 구린 플레이어임ㅎㅎ]
[플레이어인 거 숨기고 단기 알바 뛰다 걸린 사람도 있습니다. 플레이어라고 다 잘나가는 거 아니고 어중간하면 오히려 취직하는 데 제약이 많아요…….]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플레이어는 극단적인 생각하지 말고 협회에 지원 신청 넣어라. (링크)]
다행인지 불행인지 플레이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아닌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유명 인사도 있었다.
성장하며 이능을 잃었지만, 플레이어 교육을 받았던 경험을 살려 이능을 주제로 한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방송 콘텐츠는 이계 공략 리뷰, 플레이어 관련 굿즈 구매 후 언박싱, 은퇴한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식당 방문 등 주제는 다양했지만 전부 플레이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현재 이 방송인은 플레이어가 아니었기에 ‘이계 공략은 안 하고 방송이나 한다’는 식의 반감도 사지 않아 BJ국내산콩보다 안티도 적었다.
스승의 날이 지나고 얼마 후, 휴방일에 방송을 켠 이 스트리머의 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렸을 때부터 플레이어들을 좋아했고,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중학생 때 발현하자마자 청소년 예비 플레이어 지원 센터도 갔어요. 그런데 하필 거기가 지금 뉴스 나오는 그곳인 거야.
―아, 오해하지 마세요. 정상적인 센터도 있었대요. 거기 출신인 분들은 멀쩡하게 플레이어 됐고요…… 하…….
―내가 얼마나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는데…….
스트리머가 말을 멈춘 사이에 TTS가 들어간 후원이 쏟아졌다.
유명 방송인이라 그런지 쉬지 않고 사람 목소리에 가깝게 재현된 시스템이 시청자가 보낸 메시지를 읽어 댔다.
비율을 따지면 울상인 방송인을 달래는 내용이 8.
놀리며 장난치는 내용이 1.
방송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쓰다 매니저에게 바로 차단당한 내용이 1.
편집된 영상을 보는 홍규빈의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플젯 첫 플레이 방송 기대하시던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즐겁게 못 할 것 같아요. 죄송해요. 플젯은 개인적으로 해 볼 생각이에요.
―예정되어 있던 합방도 취소될 거예요. 방송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죄드렸습니다. 독고미로 님과 정말 어렵게 약속을 잡았는데,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기대해 주신 팬분들께도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던 플레이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플젯 플레이, 독고미로와의 합방 취소에 채팅창과 도네이션 란이 불타오르다 못해 폭발하려 했다.
괜찮으니까 울지 말라고 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즙 짜지 말고 플젯 로그인이나 해라’, ‘미로랑 합방한다고 어그로 끌더니 이게 뭐냐, 구독 취소한다’ 등 날카로운 말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 시청자들끼리 싸우기 시작하고 결국 감당이 되지 않아 매니저가 후원을 막고, 채팅창은 구독 1개월 이상 시청자가 이모티콘만 쓸 수 있도록 설정을 바꿔 버렸다.
―당분간 방송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음 정리를 하고 올게요.
플레이어 굿즈로 가득한 방음 방에서 울던 스트리머가 방송을 꺼 버렸다.
방송을 끈 후에도 남아 있던 시청자들이 울거나 좌절하는 이모티콘을 잔뜩 써 댔다.
그후 스트리머는 계속 방송을 쉬었으나 플레이어 굿즈에 둘러싸인 채 우는 모습은 수많은 기사에 인용되어 등장하게 되었다.
홍규빈은 피해자 명단에 올라간 스트리머의 이름을 보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청소년 시절 홍규빈의 꿈 또한 플레이어였기에 저 스트리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의신이 덕에 수많은 예비 플레이어를 구했지만, 이미 플레이어가 되고자 하는 꿈을 잃은 자도 있어. 구제할 방안이 있다면 좋을 텐데.’
홍규빈은 한때 거대한 악의 앞에서 꿈을 잃을 뻔했다.
그 꿈은 그의 스승인 제갈재걸의 희생의 결과 지켜졌다.
이번 사건에서도 탄래중의 한 교사가 제자의 장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결과 센터에 관한 조치를 더 빠르게 취할 수 있었다.
홍규빈도 누군가의 꿈을 지켜 주고 싶었다.
‘힘을 빼앗는 방법이 있다면, 돌려주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이 짓을 꾸민 자가 안전 장치를 만들어 두진 않았나?’
홍규빈이 그렇게 생각했으나 아무리 보고서를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센터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홍규빈의 근무 시간은 도통 줄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반쯤은 자진해서 야근하는 셈이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소라면 조의신에게 우는소리를 하며 제갈재걸의 소식을 알려 달라고 은근히 요청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신이의 눈은 괜찮을까? 성국언 의원이 안대를 쓰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치료 중이겠지…….’
한 눈을 잃은 채로 성국언 흉내를 내던 조의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막에 관해 몰랐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의신은 완벽하게 성국언으로서 행동하고 주변의 눈을 속였다.
강력한 이능을 사용하며 고통을 참고, 다른 이를 연기하는 게 쉬울 리가 없을 텐데 조의신은 꿋꿋이 해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감히 힘든 티를 낼 수 없었다.
게다가 성국언이 대활약을 하며 협회의 일을 엄청나게 줄여 주고 있어 홍규빈이 투덜대는 건 더 힘들어졌다.
성국언은 협회가 센터에 지원한 예산을 빼돌린 탄래중 교사진과 학부모회를 시작으로 모든 센터를 전수 조사하여 고소, 고발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고발당한 이들이 순식간에 집단을 형성해 목소리를 내었다.
대담하게도 언론과 접촉해 국회의원이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괴롭힌다며 성국언을 규탄했으나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약자를 흉내 내고 싶었다면 횡령한 돈으로 국내 굴지의 로펌 소속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 반해 성국언이 법률 자문을 받은 곳은 플레이어 출신 변호사 변재익이 소속한 변월. 규모도 작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
그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약자 소리를 내는 이들을 비웃는 밈이 몇 개나 만들어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덩달아 성국언과 소위 자칭 약자들의 처지를 비교해 본다고 변월이 여기저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바람에 해당 법률 사무소는 의도치 않게 홍보 효과를 누렸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홍규빈과 성국언은 매우 가까워졌다.
서로 밝히기 어려운 비밀도 지니고 있었으나 조의신이 중간에 있던 덕에 정보 공유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홍규빈은 성국언이 포모르 마족과 한 거래에 관해서 들을 만큼 말문을 튼 상태였다.
포모르 마족의 동태를 확인하려던 찰나, 디바이스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발신자는 조의신이었다.
‘의신아……!’
은광고는 기말고사 기간일 텐데 연락하다니.
시험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게 아닌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조의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뻔히 아는데 행여 홀로 무리할까 봐 홍규빈은 서둘러 디바이스를 확인했다.
조의신은 예의 바른 인사말로 시작으로 안부를 물었고, 몸 상태를 걱정하는 홍규빈의 말은 적당히 넘겨 들었다.
[조의신] 그럼 다음에 시간 나면 한 번 뵈어요. 이만 공부하러 갈게요.
[조의신] 이 영상은 시간 날 때 보세요.
[조의신] (영상)
조의신이 메시지를 마치며 영상을 하나 첨부했다.
저 영상에 홍규빈이 해야 할 일에 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홍규빈은 짧은 고민 끝에 마음을 굳게 먹고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을 본 홍규빈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에, 이런 귀한 영상이 있었다고……!’
영상 속에 앳된 얼굴의 제갈재걸이 직접 지은 시를 읽고 있었다.
더는 시를 쓰지 못하는 스승의 옛 모습에 홍규빈은 반쯤 넋을 잃고 영상을 감상했다.
홍규빈은 짧은 영상을 몇 번이고 재생했다.
홍규빈은 조의신이 보낸 메시지를 두고 긴장하고, 의심하고, 주저했던 자신의 행적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런 참회의 시간을 가진 덕인지 쌓여 있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막 정 사원을 붙잡아 돌아온 윤 대리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홍규빈의 행태를 지켜보다가 등을 돌렸다.
“……보고는 나중에 드려야겠다.”
“아, 그럼 좀 놔요!”
“자리에 앉으면.”
윤 대리가 버둥거리는 정 사원을 질질 끌고갔다.
정 사원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표준 근로 시간이 어쩌고 하며 떠들었으나 윤 대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윤 대리가 막 자리에 도착했을 때쯤, 정 사원이 말했다.
“전 여친이랑 잘 안 돼서 화풀이하는 거예요?”
“…….”
“그 전 여친은 박 팀장…… 아니, 박 아무개랑은 깨진 것 같던데?”
정 사원은 저래 보여도 기술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플레이어였다.
추적에 능하고, 다수를 상대로 하는 전투에 능했으며 감도 좋았다.
정 사원은 그 능력을 발휘해 전 여친에 관한 사항을 민감하게 파악했고, 그 주제로 윤 대리의 속 긁는 짓을 아주 잘했다.
윤 대리가 전 여친과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걸 알아챈 게 분명했다.
윤 대리는 정 사원을 내팽개치듯이 놓으며 말했다.
“네가 알 것 없다.”
윤 대리는 슬픈 얼굴로 박 전 팀장의 무사를 묻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과 가슴에서 수많은 나비들이 날갯짓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